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9)
779화 난전
그때 손씨 형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초휴는 벌써 혈영대법까지 펼쳤다. 십여 갈래 혈영이 쾌속하게 두 사람을 감싸며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피가 흩날렸다. 혈영대법의 혈기, 그리고 두 사람이 얻어맞아 토해낸 피의 혈기였다.
두 사람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심 선배, 도와주십시오!”
심포진의 나이와 배분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진화련신 중에는 제일 젊은 축에 속했고, 나이와 배분으로 보자면 손씨 형제와 항렬이 같았다. 그 둘이 심포진을 선배라고 부른 것은 공포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좌망검려의 심포진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사실 좌망검려 전체가 신중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수련하는 무도가 그런 것처럼 침착하고 온건했다.
본래 심포진은 이 상황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도와달라고 애원한 이상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나서려 하자 방칠소도 독고이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사숙조님, 좀 도와주십시오. 심포진을 막아주세요. 여 형은 제가 참적룡을 놓고 싸울 때 저를 도와줬습니다. 여 형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잖습니까? 초휴가 아니라 여봉선을 도운다고 생각하시고요.”
독고이는 콧방귀를 뀌었으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서 심포진을 막아섰다.
초휴를 돕는 일이라면 독고이는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방칠소가 아무리 부탁한들 들어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봉선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독고이 역시 여봉선을 봤을 때 싫기는커녕 퍽 마음에 들었다.
검왕성 무사들은 대체로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남을 깔보는 데다 인정사정없이 구는지라 미움을 사는 일이 많았다.
검왕성 고위층들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고쳐지지를 않았다. 다음 세대는 좀 바뀌리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뀌기는 바뀌었다. 바뀐 결과가 방칠소인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방칠소의 행실을 지켜보며, 검왕성 고위층은 차라리 안 바뀌는 게 나았겠다고 이를 갈았다. 검왕성의 미래가 이런 녀석에게 달렸다는 생각만 하면 독고이는 속이 다 뒤집혔다.
방칠소가 여봉선처럼 성실하고 대범하며, 강호에서 진솔한 벗을 많이 사귀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독고이는 여봉선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을 도와주는 거야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심포진, 이런 일에 왜 끼어드는 게요?”
독고이는 심포진에게 한발 다가서며 말했다.
같은 오대 검파로서, 검왕성과 좌망검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이였다. 간혹 오대 검파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다소 마찰을 빚는 일은 있지만, 말도 못 붙일 수준은 아니었다.
심포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오? 초휴가 손씨 형제를 도륙하는 것을 두 눈 뜨고 구경만 하라고요? 그러면 정도 무림의 체면이 뭐가 되겠소이까?”
좌망검려가 천사부나 대광명사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에 가까운 정도 종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정도에 속하는 문파임은 분명했다. 초휴가 어쩔 작정으로 저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코앞에서 정도 무림인들인 손씨 형제를 죽이는 것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독고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손가에서 해온 짓거리를 정도로 쳐줄 수 있소? 손가 노인네는 이득 없이는 손가락 까딱 안 하는 자의 전형이요, 거기에 더해 좀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머리부터 처박고 보는 인물이고. 옹색하기 짝이 없소. 당신이야 정도 무림의 사람이 분명하지만, 손가도 그렇다고 해야 하나?
옛날 곤륜마교가 있을 때 손가가 곤륜마교에 얼마나 아부를 떨어댔소? 단약에 병기에 딸까지 거침없이 바쳤지. 먼젓번 정마대전 때는 얼굴이라도 내밀었던가? 천만에 방귀 소리 한 번 안 내더군!”
심포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해도 수수방관할 수는 없소. 우리 좌망검려의 체면은 어쩌란 말이오?”
독고이는 불길처럼 타오르는 장검을 뽑아 들고 담담히 말했다.
“됐소. 쓸데없는 말은 그만둡시다. 좌망검려는 체면을 따질지 몰라도 우리 검왕성은 관심 없으니까. 오늘 일은 당신 탓이 아니라 검왕성에서 오지랖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시오. 우리도 겨뤄 본 지 오래되지 않았소? 노부도 한번 보고 싶군그래. 당신이 갈고 닦은 검도가 어느 경지까지 도달했는지를!”
말이 끝나자마자 독고이와 심포진은 칼을 부딪기 시작했다. 물론 두 사람 다 살의 같은 것은 없었고, 단지 실력을 겨뤄 보려는 것이었다.
독고이가 나선 것은 방칠소의 부탁 때문이었고, 한편으로는 여봉선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심포진 역시 체면 때문에 나섰을 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으면 굳이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격렬한 싸움 같았으나 사실은 대련에 불과했다.
진화련신 강자 네 명이 둘씩 맞붙는 판이 벌어졌으나, 북궁백리만은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출수하지도 않았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이 북연 동산군 대장군께서 가만히 있을 때는 침착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 상황은 수수방관하는 것이 제일 나을 수도 있었다. 초휴는 북연 진무당의 당주고 자신 또한 북연 사람이었다.
나서서 돕지 않으면 곤란할지도 모른다. 반면 그는 항륭이 초휴를 견제하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초휴를 공격하면 북연 조정의 명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소리 없이 관전만 하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교착 상태에 빠져드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초휴가 손씨 형제를 쫓건 말건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일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냥 대체 이 소동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만 궁금했다. 귀신이 끊임없이 흐느적대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귀신은 사람들을 도발해 여봉선을 죽이게 만들 셈이었다. 하지만 초휴가 난데없는 싸움을 일으키는 바람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귀신이 대체 무슨 수로 여봉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업어갔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 들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선량해서가 아니라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손씨 형제는 이미 한계까지 몰려 있었다. 둘은 젊었을 때부터 함께 무도를 익혀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러나 초휴 앞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압도당했다. 반격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힘겹게 막아내던 손계례가 이를 갈았다.
“초휴! 정말 우리를 죽일 셈이냐? 강동 손씨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러느냐!”
초휴가 냉소했다.
“무슨 원한이 있냐고? 정말 몰라서 묻나! 저번 월녀궁에서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 실컷 부채질하지 않았나? 게다가 이건 결국 너희를 살리려는 거다. 너희는 지금 악귀에 씌웠단 말이야. 내가 천도시켜 주지!”
혈영대법을 전력으로 펼치자, 십여 갈래 혈영이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손씨 형제에게 닥쳐들었다. 아예 숨통을 끊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강동 손씨의 한빙진기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것으로 강호에 이름이 나 있었다. 강기건 원신이건 마찬가지였다.
초휴에게 극한까지 밀리자 형제는 서로 마주 보더니 인결을 맺었다. 일순간 뼈를 찌르는 한기가 가득 차며 주변의 모든 것이 얼기 시작했다. 천지 원기마저 한기 속에서 얼어붙는 듯했다.
빙봉천하(氷封天下)!
그러나 그 가공할 한기는 손씨 형제의 진기만이 아니라 원기 또한 뽑아가고 있었다. 한기가 크게 일면서 십여 갈래 혈영은 모두 얼음 속에 갇혔지만, 형제의 낯빛은 이미 끔찍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이 초식은 그들의 정혈이 아니라 원기 자체를 소모하는 것이었다. 정혈을 소모하면 일부분은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원기의 소모는 진귀한 약재를 복용하며 정성껏 요양하지 않으면 영구히 회복될 수 없었고, 심하면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손씨 형제는 한기 속에 얼어붙은 혈영과 초휴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숨을 다 내뱉기도 전에, 얼어붙어 있던 초휴가 천천히 인결을 맺었다.
타오르는 불광이 폭발하면서 대일여래의 허상이 초휴의 뒤에 나타났다. 범어 영창이 울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환일대법!
대일여래의 빛이 만물을 비추는 순간 무궁무진하던 한기의 얼음은 모조리 녹아 버렸다. 그 불광 속에는 마기와 핏빛이 희미하게 어려 있어 더욱 요사해 보였다.
초휴는 거침없이 소리 질렀다.
“요망한 귀신이 포기할 줄 모르고 발악하는구나! 내 오늘 완전히 천도해 주마!”
그때까지 줄곧 교양 있게 처신하던 손계례가 결국 욕설을 퍼부었다.
“귀신은 네놈이겠지! 이 요물 같은 놈! 초휴! 이유도 없는 살육을 저지르려 하다니, 오늘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강동 손씨는 너와 철천지원수가 되어 끝장을 볼 것이다! 곱게 죽기는 영영 그른 줄 알아라!”
막다른 길까지 몰린 손씨 형제는 초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진화련신 고수 두 명이 초휴 편을 들고 나섰으니 다른 자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초휴가 둘을 완전히 끝장내려는 순간, 한 줄기 뇌광이 눈앞에 나타났다. 장승정이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초휴는 도를 쥔 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을 위해 나설 셈인가?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싫어하는 편 아니었소?”
장승정이 담담히 말했다.
“좋아하지는 않소.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구려. 저 귀신은 우리가 여봉선 형을 죽이도록 도발했소. 악독하고 음험한 술수인 거지. 정말 여 형의 목숨을 주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 해도 나는 찬성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지금 당신은 두 사람을 죽여 상황을 교란해서 여봉선을 지키려는 게 아니오. 두 사람의 목숨을 한 사람과 바꾼다면 당신과 저 귀신이 뭐가 다르단 말이오?”
“뭐가 다르냐고? 내가 이들을 죽이도록 놔둬야 정말 여기서 나갈 기회가 생긴다는 게 다르오. 게다가 이 일은 사사로운 원한에 불과하오. 장승정, 정말 끼어들 셈이오?”
장승정은 한 발 나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끼어들고 싶은 게 아니라,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나서는 거요. 정도 무림에는 정도 무림의 법도가 있고, 천사부에도 천사부의 법도가 있소.”
정도 무림 전체를 대표할 자격을 갖춘 세력은 손에 꼽았다. 하나는 대광명사였고, 다른 하나는 수보리선원을 들 수 있었다.
천사부의 자세는 대광명사나 수보리선원과 달랐다. 도가는 청정무위를 근본으로 한다. 천사부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사부가 해온 일은 악을 박멸한다기보다 악을 제압하는 것에 가까웠다.
마도에서 너무 심한 일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예를 들어 그들의 코앞에서 멸문지화를 일으키는 수준이 아니라면 굳이 관여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
마찬가지로 무림 세력이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워도 일정 수준에서 통제되는 충돌이라면 굳이 나서지 않았다.
서초 무림 세력이 북연보다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정도건, 마도건 파괴력을 일정 수준 내에서 통제함으로써 힘의 소모를 적잖이 줄여 온 것이다.
지금 장승정이 끼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초휴가 정말 사사로운 원한으로 이러는 거라면 그냥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초휴는 손씨 형제를 죽여 상황을 교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여봉선을 구하려는 게 분명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두 사람을 죽인다? 이는 장승정에게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휴는 다소 괴이쩍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소천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장승정이 매우 냉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이 그렇기는 했다. 강호에 명성이 높은 소천사 장승정은 정의를 가슴에 품은 협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어떤 저울 같은 것,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법도가 있었다. 그 저울은 노천사가 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