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9)
지금 임중군을 벗어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청룡회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초휴는 앞으로도 추살의 위협에 끝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에게는 당장 부상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할 장소와 시간도 필요했다.
그렇다면 청룡회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인 건 분명했다. 물론 그게 옳은 대안일지 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점 하나는 분명했다. 이 자가 장차 북연을 뒤흔들 천죄 분타의 타주가 확실하다면, 초휴 입장에서는 그의 뒤를 따라다녀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만약 내가 청룡회의 기밀을 누설하거나 청룡회를 마음대로 떠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초휴가 돌연 당돌한 질문을 던지자 타주가 반문했다.
“쫓겨 다니는 기분이 그렇게 좋더냐?”
초휴가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에 타주가 담담히 말했다.
“청룡회를 배신할 시에는 지금 맞본 고통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초휴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훗날 청룡회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강력한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마침내 마음을 굳힌 초휴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타주에게 물었다.
“타주 대인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그 말에 청룡회 타주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청룡회 사람들 대다수가 암호명만 있을 뿐, 이름은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천죄 분타의 타주이고 너는 내 수하로 들어왔으니, 나를 그냥 타주라고 부르면 된다. 타주들을 구분해야 할 때는 ‘타주’라는 호칭 앞에 분타 명칭만 붙이면 되는 것이고.”
그는 주변의 시신들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저들 모두는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 자, 나와 함께 가자. 추적하는 자들은 너를 찾지 못할 것이다.”
초휴는 천죄 타주의 뒤를 따라 그곳을 떠났다. 가는 도중 상대의 숨결을 감지해본 결과, 그는 이미 취삼화와 응오기를 거쳐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초절정 고수임이 분명했다. 어기오중의 다음 단계는 응신삼경(凝神三境)이다. 응신삼경에 이르면 명실상부한 대가급의 거물로 인정받는다. 천인합일의 경지이면 그래도 대가의 아래 단계에서는 최강의 고수
인 셈이다. 그런 존재가 한낱 청룡회의 일개 타주에 불과하고, 청룡회에는 무려 삼십육개의 분타가 있다.
그러니 천죄 타주의 수준에 버금가는 타주들이 적어도 서른여섯 명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거기에다 청룡회 총타의 고수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서른여섯 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초휴도 청룡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초휴의 청룡회 가입이 반강제로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이것이 초휴에게 나쁜 일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 청룡회의 실력이 이처럼 강력하다면 비록 분타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곳에 있는 이상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었다.
과연 천인합일의 경지답게 지각능력이 남달리 출중한 천죄 타주는 초휴를 추격하는 강호의 무사들을 가뿐히 따돌리고, 임중군 남쪽에 위치한 대산군을 향해 줄곧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천죄 분타가 위치한 곳이었다.
그 무렵 초휴를 뒤쫓던 문파 사람들은 객잔에서 도망 나온 무사의 입을 통해 초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이미 네 명의 내강경이 그를 추격 중이라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초휴는 독 안에 든 쥐가 된 꼴이니, 그들의 부담도 한결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서둘러 현장으로 가는 대신, 섭동류에게 이를 보고하고, 그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였다.
섭동류 일행은 폭우에 지워지다시피 한 흔적을 더듬어 숲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숲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시뻘건 핏물이 어디선가 계속 흘러나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초휴가 중상을 입었거나 참살당한 흔적으로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핏물이
어째서 이리도 많이 흘러나오는 거지?
먼저 뒤따라간 내강경 네 명이 변태가 아닌 바에야 초휴의 시신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발겼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피는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심상찮은 예감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든 섭동류는 이내 사람들을 재촉하여 앞으로 내달렸다. 이윽고 그들 앞에 나타난 건 초휴의 시신이 아니라, 놀랍게도 세 구의 시신과 한 무더기 가득 쌓여있는 살점
조각들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너무도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 대관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내강경 고수가 네 명이나 따라붙었는데 초휴가 그들을 몰살시켰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해대는 와중에 섭동류만은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윽고 시신을 살펴보고 돌아온 수하가 섭동류에게 몇마디 귓속말을 했다. 다 듣고 난 섭동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명 중 하나는 초휴에게 죽었으나, 나머지 셋은 결코 그의 짓이 아니오. 셋 중 하나는 검기에 가슴이 뚫려 죽었고, 또 하나는 강력한 강기에 사로잡혀 몸이 산산조각이 났으며, 마지막 하나는 예리한 강기에 목이 떨어져 나갔소. 세 명 모두 한 초식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이는 흉수의 실력이 살해당한 사람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방증이오. 아마도 취
삼화, 응오기, 심지어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최강의 고수일지도 모르지.”
그 말에 좌중의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를 만한 실력자라면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강호 어디에 갖다 놔도 문파 하나를 세우고도 남을 거물이란 말이니까. 그것도 소소한 문파가 아닌 대형 정통 문파 말이다. 그들의 정보에 의하면 초휴는 그저 배경 없는 낭인 무사에 불과하니, 그런 실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저들을 죽이고 초휴를 구해간 것인가.
어느덧 섭동류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어느샌가 이 일이 자신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 미궁 속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초휴에게 내려진 수배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내용을 좀 바꿔야겠소. 수색 및 체포가 아닌 수사만 할 것이오. 그에게 직접 손을 대는 건, 당분간 삼가는 게 좋겠소.”
그 말에 사람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자기더러 맡아서 하라 해도 거절할 판이니,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이 되레 고맙게 들릴 판이었다.
임중군의 대형 문파 사람들이 이처럼 갈피를 못 잡고 충격에 빠져있을 무렵, 초휴는 천죄 타주와 함께 대산군의 어느 황폐한 산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눈에 띄지도 않는 동굴 앞에 이르자 천죄 타주가 벽을 몇 차례 두드렸다. 얼핏 아무렇게나 두드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일정한 규칙을 띤 손짓이었다.
그러자 돌연 벽에서 문이 하나 나타났다.
“들어가자. 이곳이 바로 우리 천죄 분타가 있는 곳이니라.”
문 안으로 들어선 초휴가 타주의 뒤를 따라 아래 방향으로 계속 걸어 내려가다 보니, 그곳에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지하 궁까지 갖춘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윽고 지하 궁의 맨 아래층에 당도하자, 중앙에 있는 연무장에 모여 있던 검은 무사복 차림의 무사 백여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분타 내에 머무는 시간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은 철
삿갓을 얼굴에 쓰는 게 아니라 등 뒤에 매달고 있었고, 철가면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타주가 돌아온 것을 보자, 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일제히 두 손 모아 인사를 올렸다.
“타주님을 뵙습니다.”
이에 천죄 타주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그들 중 몸이 마르고 얼굴에는 우스꽝스러운 염소수염을 양 갈래로 기른 육순 남짓한 사내에게 물었다.
“귀수왕(鬼手王)! 유가, 조가, 엄가, 이 세 가문은 모두 처리했는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였습니다.”
그 말에 타주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던 초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밖에 나와 있던 그 세 가문의 잔당들도 내가 모두 해치웠다. 그리고 이 자는 내가 새로 영입해온 초휴라고 한다. 일단 데려가서 휴식을 취하게 하게. 그다음엔 알아야 할 규칙들을 숙지시키고, 등급을 정할 수 있게 임무를 주도록.”
말을 마친 타주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힐끗 초휴를 한번 훑어본 후 제각기 흩어졌다. 더러는 임무를 수행하러 가고, 더러는 연무장에서 무공을 연습했다. 또는 내공 수련을 위해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다른 곳이었더라면 타주가 친히 신입을 데려왔을 경우 주목을 끌기 마련일 텐데, 이곳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 그런지, 딱히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살수들의 팔할이 타주가 직접 데려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입순서로만 보면 영락없는 막내이니 초휴는 최대한 공손히 귀수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귀수왕은 비록 그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엄연히 내강경의 실력을 갖춘 무사였다. 초휴는 그에게서 일종의 압박감을 느꼈다. 귀수왕은 그가 지금까지 봐온 내강경 고수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강한 실력을 지닌 고수임이 분명했다. 초휴의 인사를 받은 귀수왕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초휴? 취의장에서 수배령을 내렸다는 그 초휴? 어허, 정말 놀라운걸. 취의장이 수배령을 내리고 임중군 무림 전체가 추살에 나섰는데도 여태 살아있다니, 자네도 보통내기는 아닌가 보군.”
그러자 초휴가 고개를 저어 보이며 다소곳하게 응수했다.
“추살을 피해 다닌 일은 자랑거리도 못 됩니다. 게다가 타주 대인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더라면 꼼짝없이 죽었을 겁니다.”
“겸손할 것 없어. 운이 좋은 것도 결국은 자네 실력에 속하는 거니까. 우리 천죄 분타에 일손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주님이 아무나 마구잡이로 데려오시지는 않거든. 그랬다가는 청룡회의 망신임은 물론, 그 때문에 상부에서 문책이라도 떨어지는 날엔 타주님의 체면도 우습게 될 테니 말이야. 자네는 이제 갓 입회했으니 한동안 임무를
받지 않아도 된다네. 우선 청룡회에 대해 간략히 들려준 다음, 우리 분타의 규칙과 주의사항 등에 대해서도 말해 줄 테니 잘 숙지해 두도록 하게.”
살수라고 해서 반드시 냉혹하고 잔인하기만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지금 초휴 앞에 서 있는 귀수왕(鬼手王)이란 자는 얼굴에 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얼핏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그가 사람을 죽일 때도 여전히 그런 표정을 지으리라는 것을 초휴는 알 수 있었다.
귀수왕은 그에게 청룡회의 규칙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고, 천죄 분타의 규칙에 대해서도 일부나마 알려주었다. 사실 전생의 기억 속에도 이런 내용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 귀수왕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더욱 생생하게 와 닿았다. 표면적으로 청룡회는 살수 조직이긴 하나, 정파에도 속하고 사파에도 속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청룡회의 살수는 정파 사람도 죽이고 사파 사람도 죽인다는 소리였다. 여하튼 누구나 대가만 지불할 수 있다면 하면 상대의 출신 문파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죽이는 게 청룡회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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