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94)
794화이것이 바로 힘!
이튿날 정오 무렵.
엽소는 밤늦게부터 지금 시각이 될 때까지 수련을 계속한 결과, 이미 선천공 입문 단계에 들어선 상태였다. 물론 수련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그의 자질이 뛰어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지난날 담연대사가 초휴에게 그랬던 것처럼, 초휴가 그의 뇌리에 선천공을 주입하면서 이 공법에 대한 본인의 이해를 비롯해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거의 관정(灌頂)에 가까운 수준으로 전수한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남의 숙제를 베끼는 거나 다름없는 이런 식의 전수는 대단히 편리하고 효과 만점이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공법을 깨우친 게 아닌지라 공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무래도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는 그다지 권장할 만한 수련법이 못 되었다.
하지만 지금 초휴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자기 몸도 아닌 남의 몸에 먼 훗날 무슨 문제가 생기건 말건, 그게 대수겠는가.
엽소는 며칠이 지나도록 두문불출하며 초휴가 전수한 공법과 무예를 익히는 데 전념했다. 그야말로 수련에만 미쳐 살다시피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열흘째 되던 날, 문중 회의가 열리니 속히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요 열흘 사이 초휴는 이따금 그를 지도해준 것 말고도, 요즘 강호 돌아가는 사정이나 엽가의 근황 등에 대해서도 종종 질문했다.
하지만 환허육경이 무너져 내린 지도 벌써 반년이나 지난 터라, 위서애가 초휴의 복수를 시도했다는 소식 말고는 관중형당 및 진무당의 구체적인 근황과 관련하여 엽소가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
하긴 애써가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다음에야, 크지도 않은 도시의 일족 중에서도 방계 제자한테 그런 고급 정보를 얻어들을 수단이 있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초휴는 굳이 그더러 정보를 알아 오라고 하지는 않았다. 막말로 자신이 구축해둔 기반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들 몸뚱이도 없이 혈혼주 안에 갇힌 처지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섣불리 알아봤자 번뇌만 깊어질 뿐이다. 해서 당장은 하루라도 빨리 몸을 복구하여 실력부터 되찾고 보는 게 우선이었다. 나머지야 그다음에 차차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엽가는 실력이 그다지 강한 축에는 못 들었다. 초휴의 본가인 초가에 비하면 좀 나을지 몰라도,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엽가 가주 엽곤(葉坤)은 내강경이었다. 삼화취정 경지의 노야가 한 사람 있지만, 문중 일에서 손 떼고 물러나 앉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론상으로는 엽가의 문중 회의에는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엽소와 같은 방계 제자들은 한옆에 서서 분부만 받들 뿐, 실제로 회의석상에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자격은 열 명 남짓한 직계들만의 몫이었다.
엽곤이 상석에 앉아 근엄히 운을 뗐다.
“보름 후에 강동 손가 노야의 축수연이 열릴 예정이다. 축하선물은 내가 이미 마련해 두었고 젊은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을 골라 하객으로 보낼 생각이다. 너희들 가운데 누가 가면 좋겠느냐? 단, 누가 가더라도 축수연에서 엽가 체면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에 좌중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엽가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가서 선물과 함께 축하 인사만 건네면 되는, 쉽고도 생색나는 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자그마치 구대 세가의 일원인 강동 손가의 행사다.
엽가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일족들은 축하하러 갈 기회 자체를 부여받지도 못한 귀한 자리인 셈이다.
그런데 엽가는 어째서 초대받았는가 하면, 가문이 소유한 광산에서 강동 손가에 자재를 공급해왔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손가와 주종관계에 있은 덕에 축수연에도 초대를 받은 것이다.
엽곤이 직계 제자들을 둘러보더니 헛기침 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둘째가 다녀오는 게 낫겠구나.”
엽정이 벌떡 일어나며 뛸 듯이 기뻐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순간 엽가의 장남인 엽릉(葉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내강경이라서 엽정보다 실력도 높고 나이도 서른에 가까워서 이미 문중 가업을 맡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의 자기 공로는 무시되고 생색나는 일이 아우의 몫으로 돌아가다니.
그는 가친의 처사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친의 결정을 승복 못 하겠다고 대들 용기는 없어서 우거지 죽상만 하고 있었다.
이때 엽곤이 말을 덧붙였다.
“원래 이런 일에는 첫째가 나서는 게 마땅하나, 우리 광산에 문제가 생겼다는구나. 장 총관은 너무 고령인 데다 근자에 지병까지 재발해서 은퇴를 해야 할 판이다. 그러니, 첫째 네가 잠시 광산을 맡아줘야겠다. 광산 관리를 맡길 신임 총관도 네가 알아서 뽑도록 하여라.”
그 말에 품었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진 엽릉이 희희낙락하며 명을 받들었다.
엽가의 광산은 엽가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소중한 핵심 가업의 관리를 전담하고 신임 총관 선발과 관련해 전권까지 위임받은 것은, 남의 잔치에 얼굴이나 비치고 오는 것보다 훨씬 더 실속이 보장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혈혼주 안에서 엽곤의 수법을 지켜보던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저 아비의 결정에는 형평성 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일을 피하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챙기는 데만 급급했던, 자신의 그 아비 같지도 않은 아비에 비하면 제법 지혜로운 가장이 아닌가. 가문 전체를 가주 혼자서 꾸릴 수는 없었다. 한 가문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가문 구성원 모두의 단합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주부터가 집안 내 암투를 조장할 만한 편파성을 보이지 말고 중심을 잘 잡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 일만 해도 순리대로 하자면 광산 일을 먼저 엽릉에게 맡긴 후 손가 축수연 얘기를 꺼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엽곤은 굳이 순서를 바꿔 축수연 임무부터 결정해서, 엽정으로 하여금 자기가 형보다 더 인정받은 듯한 착각과 함께 큰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그리고는 곧장 광산을 엽릉에게 맡긴다고 선언해서 잠시 의기소침해졌던 그에게 죽다 살아난 듯한 큰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참으로 수하들을 다루는 능력이 돋보이는 가주가 아닌가.
엽곤의 당부가 이어졌다.
“손가 축수연에는 우리 엽가 전체를 대표해 참석하는 것이니만큼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둘째 너는 외양과 실력 모두 번듯한 제자를 선정해서 대동하도록 해라.”
엽정이 빛의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평소 자신과 친한 방계 제자 몇 사람을 지명했다. 광나는 자리에 참석하는데 당연히 자기 사람들을 챙겨야 할 게 아닌가.
이때 초휴가 엽소의 뇌리에서 속삭였다.
“자, 이제 앞으로 나서. 그리고 손가에 너도 가겠다고 말하는 거야.”
엽소가 당황하여 속으로 반박했다.
“엽정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이런 일에 나를 데려갈 리 없단 말입니다.”
“안 데려간다고 해서 포기할 거야? 이건 엽가 전체를 대표하는 일이야. 저 엽정이란 놈 혼자만의 행사가 아니라고. 너에게도 갈 자격이 있다는 걸 실력으로 보여주란 말이야. 가슴 쫙 펴고 당당히 모두의 앞에 나서는 거야. 언제까지나 엽가 안에만 갇혀 살 수는 없잖아. 과감히 밖으로 나가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평생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거란 말이다!”
초휴의 자극에 힘입은 엽소가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외쳤다.
“가주님! 저도 가고 싶습니다!”
이 돌발사태에 어안이 벙벙해진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엽소는 문중에서 워낙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데다, 엽정에게 그렇게나 당하고도 굽힐 줄을 몰라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처지였다.
엽정의 눈 밖에 난 그를 가까이했다가는 자칫 자기한테도 불똥이 튈지 모르니 가문 사람들도 그를 업신여기며 기피 해왔다. 하지만 갑자기 당차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실로 의아한 일이 아닌가.
어쨌건 배포는 가상하나, 과연 그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까? 엽정의 핍박이 없더라도 어차피 그는 방계 제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였다.
다른 방계 제자들이야 양친이 모두 건재하니 단약과 수련자원을 풍족히 누릴 수 있었으나 엽소 는 그런 건 언감생심 욕심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쩌다 받는 가욋돈마저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폐인 아비의 치료비로 쏟아야 했고, 수련에 있어 남들보다 한 수 처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엽정이 냉소를 날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물러나지 못해!”
하지만 엽소는 그를 본체도 않고 목을 빳빳이 세운 채 엽곤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가주님, 저도 축수연에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엽곤은 한참이나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서야 이 방계 제자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해냈다. 하지만 꾸짖지는 않았다.
명색이 엽가 제자인데 남들보다 잘나 보이고픈 욕망과 패기를 갖는 건, 가문의 발전을 위해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비록 자기 아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존재일지라도, 엽소 또한 엽가의 자손이 아니겠는가. 해서 엽곤이 담담히 말했다.
“자신에게 자격이 있다고 말했느냐? 그러나 자격이라는 게 자기 입으로 주장한다 해서 증명되는 건 아니지. 둘째야, 마땅한 자를 내보내서 실력을 시험해보도록 해라.”
엽정이 턱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방계 제자 한 명이 교활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엽소 형, 도검에는 눈이 없으니 조심해야 할 거요.”
그자 역시 응혈경이었다. 그러나 엽소보다 나이는 어려도 일찍 응혈경을 뚫은 터라 승부는 뻔하지 않겠는가.
그가 장검을 빼 들고 엽가의 청풍낙엽(淸風落葉) 초식으로 엽소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순간이었다.
한줄기 시린 빛이 번쩍하며 그를 스치는가 싶더니 ‘띵’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장검이 튕겨 날아버렸다. 그리고 검을 쥐었던 손아귀가 찢어지며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게 아닌가.
너무도 창졸간 벌어진 일에 넋을 놓고 있던 그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확인하고서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에 엽가 사람들은 무슨 괴물이라도 보는 눈으로 엽소를 쳐다보았다.
일 초 만에 상대의 병기를 날려버리는 실력이라면 이 초 만에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문제가 아닐 게 뻔하지 않은가. 대체 어떻게 저런 실력이 생겨, 이토록 빠른 검법을 시전한다는 말인가!
엽곤도 엽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강경의 실력자인 만큼, 일찌감치 그의 실력을 간파할 수 있었다.
엽소는 그냥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검을 내질렀을 뿐이었다. 그런데 검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상대가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엄청나게 강력한 무예도 아니었다. 단순히 출수의 속도가 매서운 초식이었으니까.
게다가 엽곤의 눈에 비친 엽소는 기본기도 탄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엽가와 같은 군소 가문에서 쉽게 갖출 수 있는 기본기가 결코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이야 둘째치고 엽가 방계에서 이처럼 우수한 젊은이가 배출되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라 할 만했다. 해서 엽곤은 호쾌하게 소맷자락을 날리며 말했다.
“쓸만하구나. 사흘 후 이공자 일행에 합류해도 좋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바짝 신경 써야 하느니라.”
엽소는 기쁜 내색도 없이 무덤덤한 얼굴로 회의장을 나갔다.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눈빛에서 확연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드러내고 말로 표현한 건 아니어도 예전의 멸시에 찬 눈빛과는 뚜렷이 달랐다. 방금과 같은 그런 눈빛을 받아본 기억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가슴 떨림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기분이 어때? 이게 바로 우월한 힘이 가져다주는 쾌감이란 거다!”
엽소의 귓가에 초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조는 가벼웠지만, 미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