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99)
799화 첫 살인
손가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엽소는 다시금 외톨이 신세로 돌아갔다. 귀갓길 내내 엽정은 그를 괴롭혔고, 엽가 선배도 이번에는 굳이 그를 말리려 들지 않았다.
손가로 향할 때는 도중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나름 대국적 견지에서 일행을 통솔했다. 무사히 축수연에 다녀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임무도 다 끝났으니 신경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엽정이 내내 분을 참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분풀이는 눈감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는 엽가의 이공자고 다른 하나는 눈에 띄지도 않는 방계 제자 나부랭이다. 누구 편을 드는 게 좋을지는 백치라도 알 수 있을 터였다.
엽소가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걸 보더니 엽정이 다짜고짜 일을 시켰다.
“엽소, 어서 가서 물을 길어와라.”
엽소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산중에 물이 어딨다고 길어오라 하십니까? 우리가 가져온 물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요?”
“시키면 냉큼 갈 일이지, 뭔 잔말이 많은 거냐!”
화를 폭발시킨 엽정이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탕 사발을 냅다 던졌다.
엽소는 다행히 사발에 맞는 건 피했지만 뜨거운 국물을 온몸에 덮어쓰고 말았다.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양 흥미롭게 지켜만 볼 뿐, 나서서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엽가 선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엽정이 고의로 엽소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엽소가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엽정을 노려보았다. 순간 초휴의 음성이 뇌리에 울려 퍼졌다.
“저놈을 죽여버려!”
엽소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리고 놀라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죽이라니요?”
이토록 오랜 세월 엽정에게 시달렸으나 엽소는 단 한 번도 그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피를 나눈 한집안 친족 사이가 아닌가. 방계의 몸에도 엄연히 엽가의 피가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초휴가 친족 살인을 명하니 이것만큼은 엽소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람을 죽여본 경험 자체가 없는 그로서는 더더욱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당연히 죽여야지! 너도 죽이고 싶을 만큼 그를 증오하잖아? 지금 안 죽였다간 앞으로 더 처참히 시달릴 일만 남을 텐데 그래도 좋단 말이냐? 여기는 인적도 없는 황량한 야산이야. 너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죄다 죽인 다음 흔적을 불태워 없애면 아무도 모른다고. 엽가로 돌아가서 산적들 소행이라고 해버리면 전혀 의심 살 만한 구석이 없다고. 장소, 시간대, 정황 등등 모든 여건이 다 완벽한데, 이런 절호의 기회를 왜 놓치려는 거냐? 딴생각 말고 빨리 해치워 버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그동안 네가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한번 생각해 봐. 저들이 과연 너를 한집안 식구로 여겨 왔을까? 천만에! 같은 혈족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만의 일방적인 착각일 뿐이야. 저들 눈에 비친 너는 한 마리 개새끼에 불과해. 아니지, 엽가에서 키우는 개도 너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살걸?”
초휴의 말에는 은근한 마력이 실려 있어 엽소의 심중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살의를 자극했다. 그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더니 어느샌가 엽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자 육강하가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 저렇게나 착하고 순수한 녀석에게 살인을 부추기다니,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를 나눈 혈족 사이라고. 게다가 저 녀석은 피를 본 적도 없을 텐데 첫 살인이 제 핏줄을 죽이는 거라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초휴가 육강하를 힐끗 째려보다니 담담히 말했다.
“나는 저 녀석 나이에 본가 전체를 내 손으로 멸문으로 몰아넣기까지 했어.”
육강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반년 넘게 초휴와 함께 지내오면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눈치 못 챘겠는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기에 그 말이 자기를 놀리려는 소리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한편, 바깥세상에서는 자기를 향해 서슬 퍼렇게 다가오는 엽소의 모습에 엽정이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나와 한판 붙어 보려고? 그간 본 공자가 집안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꾹 참고 살았더니 이젠 너 따위마저 내가 우습게 보이는 거냐! 네가 똑똑히 기억해둬야 할 게 있······.”
엽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 엽소의 검집에서 뽑혀 나온 장검은 엽정의 몸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분수처럼 피를 내뿜으며 엽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이 비천한 놈이 나를 죽이는 거야? 감히 나를 이렇게?’
엽정은 손을 들려 했으나 순식간에 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더니 시신이 되어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손에 들린 피 묻은 장검을 내려다보는 엽소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해갔다.
사람을 죽이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살인의 첫 상대가 자신의 일족이 아닌가.
하지만 의외로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심지어 알 수 없는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지금까지 자기를 생지옥에 살게 했던 자가 바닥에 죽어 나뒹구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그의 손끝이 미미하게 떨려왔다. 그건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난생처음 맛본 희열이었다!
육강하가 고개를 갸웃대며 구시렁댔다.
“어라? 저 녀석도 제법일세그려? 난생처음 사람을 죽여놓고도 저토록 멀쩡하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강하는 엽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심약해 빠져서는 실력도 자질도 하나같이 변변찮다면서 하필 그를 고른 초휴의 안목을 성토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흉악한 마두로 자라날 잠재력이 충분한 인성이 아닌가!
초휴가 담담히 받아쳤다.
“나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야. 더러는 악한 본성을 너무 오래 억누른 나머지 되레 더 크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지. 엽소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아비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참아왔어. 아주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지. 하지만 그럴수록 심중 원한은 점점 더 깊어진 거야. 본인이 그걸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지. 누구나 마음속에 마귀 하나씩은 들어있기 마련이야. 나는 엽소의 마음 깊은 곳에 갇혀있던 마귀를 풀어줬을 뿐이야. 내가 그 마귀를 집어넣은 건 아니란 소리지.”
밖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인지라 사태파악이 안 될 지경이었다.
마침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똑똑히 깨달은 순간, 그들은 너나없이 비명을 질러대며 우왕좌왕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지 않은가.
여태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아온 엽소가 처음으로 반격을 했다는 사실만도 엄청난데 심지어 단칼에 엽정을 죽이다니! 자그마치 엽가의 이공자를 말이다. 저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사람들의 비명에 엽소도 정신이 번쩍 났다. 피로 물든 장검을 잠깐 내려다보던 그는 눈에서 한기를 뿜으며 다른 이들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했다.
살인이라는 게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 횟수가 늘어갈수록 별것 아니게 느껴지기 마련인 것이다.
엽소는 원래 응혈경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그는 초휴가 준 공법 덕분에 이미 다른 이들과는 수준 자체가 다른 무인이 되어있었다. 따라서 그의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된 것이다.
엽가 선배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이 미친놈이 감히!”
엽가의 선배인 그에게는 일행을 무사히 귀가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졸지에 이공자가 죽었으니, 이대로 살아 돌아간들 혹독한 징벌이 기다릴 게 뻔했다.
지금 그는 후회막심이었다. 아까 엽정이 엽소를 괴롭힐 때 자기가 나서 말리기만 했어도 이런 사달까지 나지는 않았을 텐데······. 뒤늦게야 자신의 잘못된 처신에 대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엽가의 청풍낙엽 검법은 기민하고도 매서운 검세로 유명하다. 엽가의 선배가 이를 시전하자 검광이 사면팔방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빛났다.
엽소가 제아무리 공법의 덕을 보고 있다고는 하나, 상대는 엄연히 선천경인지라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해서 몇 합을 주고받은 끝에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선배가 승기를 틈타 그를 제압하려는 순간, 엽소가 돌연 검을 거두는가 싶거니 몸을 상대에게 밀착시키며 무언가로 홱 그었다. 청룡이 일순간 바다를 박차고 오른 듯한 그 속도에 상대는 반응도 채 할 수 없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한줄기 도망이 번쩍 빛난 후, 선배는 피가 솟구치는 목을 움켜잡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경악한 눈빛으로 엽소의 손에 들린 단도를 쳐다보았다.
‘엽가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검을 쓰건만, 엽소는 대체 저 살 떨리는 도법을 누구한테 전수를 받았단 말인가?’
하지만 답을 찾기에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그는 시체가 되어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엽소가 다른 이들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자 다들 공포로 퍼렇게 질려서는 제각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천경의 선배를 죽인 실력자를 그들이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어느샌가 그들 뒤에 바짝 다가선 엽소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모조리 죽여버리자!’
첫 살인을 한 엽소는 아직 초휴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출수할 때 주저하거나 허둥대는 횟수가 너무 잦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하나같이 약해빠졌으니 망정이지, 강한 상대였다면 진작에 반격을 당했을 터였다.
현장에 있던 엽가 사람들을 전부 죽이자 엽소는 탈진하여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피범벅이 된 자신의 양손과 절간 안팎에서 나뒹구는 시신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모두 자신이 벌인 짓이라는 걸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초휴가 기다리다 못해 먼저 말을 걸었다.
“이제 정신 차려. 다 끝났어. 마무리만 하면 되는 거야. 여기에 불을 질러서 시신과 흔적을 모조리 없애도록 해라. 하지만 그전에 마혈대법으로 시신에 남은 기혈을 모조리 흡수해. 그 기혈의 힘이 너를 선천경으로 만들어 줄 거야. 그러고도 기혈이 남으면은 몸에 잘 비축해두었다가 이후로 수련하면서 두고두고 쓰도록 하고. 엽가에 돌아가면 네가 추살에 쫓기는 절체절명의 위기 중에 선천경을 뚫었다고 말하면 되겠지.”
엽소의 입술이 들썩였으나 결국 초휴가 시킨 대로 했다. 혈마대법으로 기혈을 모조리 흡수한 후, 시신과 화물은 물론 절간마저 통째로 불태워 없애버린 것이다.
육강하가 의아하다는 듯 초휴에게 물었다.
“저 아까운 기혈을 죄다 저 녀석한테 주는 건가? 너한테도 필요할 텐데?”
“천인합일에도 못 이른 허접쓰레기들의 기혈은 가져다 뭐 하게?”
초휴의 시큰둥한 대답에 육강하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고 있을 판이야? 혈마대법으로 몸을 재건시키자면 무엇보다도 최대한 기혈을 많이 축적하는 게 관건이잖아. 먼저 몸뚱이를 만든 다음 서서히 기혈을 보강해나갈 방법을 찾으면 되잖나? 그러다 보면 언젠간 전성기 때의 실력도 회복되겠지.”
그러나 초휴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러려면 시간을 얼마나 많이 잡아먹어야 할 거 같아? 벌써 반년이나 이러고 있는데 더는 곤란해. 내가 말했지. 이번엔 제대로 크게 한판 벌일 거라고! 당신이 말한 방법은 내 계획에 없어. 그런 식으로 찔끔찔끔 회복되는 게 아니라 단번에 우뚝 올라설 거란 말이지. 예전보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초휴가 이렇게 대차게 나오자 육강하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재건하여 전성기 실력을 회복하는 기혈의 힘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자기도 아는 데 초휴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찔끔찔끔 모으지 않으면 달리 무슨 수로 그 많은 기혈을 한꺼번에 구하겠다는 걸까. 몸뚱이도 없는 주제에 어떤 세력을 통째로 쓸어버릴 작정인가?
하지만 초휴가 먼저 무슨 계획인지 말하지 않는 이상, 그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