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01)
801화 험악한 인심
“네가 아무리 출중한 재능을 가졌다고 한들, 손장명 눈에 들지 않았으면 지금도 일개 방계 제자에 불과했을 거다. 물론 장차 엽가의 집사나 중견 역량 정도는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일 건 뻔해. 손장명이 너를 눈여겨봤다는 게 무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여차하면 손장명이 강동 손가의 힘을 내세워 엽가의 문중 일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야.”
“막말로 너를 가주로 밀어줄 수도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엽가는 직계의 엽가야. 엽곤과 엽릉의 엽가이기도 하지. 그리고 엽소 ‘너의’ 엽가는 아니지. 이 싸움은 선수 치는 자가 이기게 되어있어. 네가 미적대는 동안 저들이 선공을 날리는 날엔 너는 개털 신세밖에 안 되는 거야. 뒤늦게 반격해봤자 아무 소용 없단 말이야. 그래도 괜찮나?”
초휴의 뼈아픈 말이 사정없이 엽소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는 지금 온통 혼돈 그 자체였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복잡하고 극악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엽정에게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지난날, 엽릉이 나서 말려준 적도 있지 않았던가.
엽소의 눈에는 가주 엽곤도 마냥 공명정대하기만 어르신으로 보였다.
‘엽곤이 여차하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고?’
정말이지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선배님, 다른 분부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추측만으로 자기 일족을 죽이라는 분부만은 받들지 못하겠어요. 송구합니다.”
초휴는 강요하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못하겠다고? 나는 두 번 말하지 않아. 대신 네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는 하겠다. 다만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길 바라지.”
세상을 다양한 간접으로 보기에는 엽소의 나이가 아직 어렸다. 사람 사는 세상에 싸움이 없을 순 없다. 그건 부자지간도, 형제지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엽소는 널리고 널린 방계 제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일전에 엽릉이 엽소를 도왔던 건 순전히 자기 아우에게 어깃장을 놓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자기가 자애로운 대공자임을 과시할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엽곤의 경우는, 명색이 가주된 자가 사심이 있다 한들 어떻게 대놓고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뒤에서는 철저히 직계들의 이익을 챙겼다. 그것도 응당 자기 아들부터 챙기고 본 것이다.
엽소가 처음에는 초휴의 말을 고스란히 믿지는 않았으나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닌지라 무의식중에나마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엽곤 부자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 * *
그로부터 수일 후 문중 회의가 열렸다. 상석에 앉은 엽곤이 골치가 아픈 듯 연신 이마를 문질러대고 있었다.
“강동 손가와 고평 육가가 반목 중이라는 건 다들 잘 알 테지. 지금 양측은 화해는커녕 되레 갈등이 더 격화되고 있다. 자칫하다간 크게 한판 붙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손가에 광석을 공급해왔으니 저들과 운명공동체로 묶인 처지라고 봐야 할 터. 그런데 제주부 채가가 육가를 돕기로 한 모양이더군. 우리나 채가나 제주부에 있는 건 마찬가지니 아무래도 우리끼리도 일전을 불사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앞으로 상단이 오가는 데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야.”
이내 말을 멈춘 엽곤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엽소!”
느닷없는 호명에 엽소가 깜짝 놀라 답했다.
“제자, 여기 있습니다.”
현재 상단은 엽소가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엽소는 혹시 있을 시 모를 채가의 습격에 대비해 엽곤이 인력 충원이라도 해주려는 모양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엽곤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의 사업 비중이 아무래도 상단에 비해 광산 쪽이 더 크니, 당분간 너도 이숙(二叔)을 도와 광산을 지키도록 해라. 상단은 문중 노인들을 보내 관리토록 하겠다.”
그 말에 엽소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내세운 구실이야 광산이 상단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였지만, 광산 쪽에는 이미 엽곤마저 이숙이라 부르는 엽가의 노선배가 버티고 있었다. 자기 같은 새까만 후배가 가봤자 그의 심부름이나 하게 될 게 뻔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엽곤이 자신의 권한을 박탈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반박 한마디 못하고 분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하나같이 엽소의 처우가 바뀐 게 고소한 눈치였다. 한동안 그가 승승장구하는 게 배 아파 미치겠더니만, 이제야 원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래서 사람이란 잘 나갈 때도 겸손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그들은 내심 비아냥거리며 쾌재를 불렀다.
엽소는 억울한 마음만 가득 한 채, 대충 보따리를 챙겨 광산으로 향했다. 사실 이 모든 게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광산이 엽가의 근간 사업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문중 사람들이 늘그막에 소일하는 곳이라고 봐야 했다.
예전에 엽릉이 광산을 맡았었다고는 하나, 어쩌다 한번 들여다본 게 다일 뿐, 기본적으로는 문중 노인네들이 노닥거리며 소일거리나 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그런 곳으로 엽소와 같은 젊고 유능한 제자를 보냈다는 게 무얼 의미하겠는가. 누가 봐도 그 의도가 뻔했다.
엽소를 떠나보낸 엽곤이 탄식했다.
“실로 아깝구나!”
“뭐가 아깝습니까?”
엽릉의 질문에 엽곤이 담담히 답했다.
“우리 엽가가 인재를 귀히 여기지 않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러나 엽소는 손가 대공자 눈에 든 데다 실력마저 출중하니, 지금 그를 누르지 않으면 장차 네 입지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부득이 내가 이리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말끝에 엽곤이 아들을 노려보며 매섭게 일갈했다.
“네놈에게 엽소를 당당히 누를 능력만 있었어도 아비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굴 필요가 뭐가 있었겠느냐?”
엽릉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출난 구석이라곤 없이 웅크리고만 살던 놈이 손가에 다녀온 후로 하루아침에 실력이 급상승하지 않았는가. 엽릉으로서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편, 광산으로 쫓겨난 지 한 달 남짓이 지나자 엽소는 결국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한번 힘과 권세의 맛을 본 자는 웬만해선 그 맛을 잊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처사를 승복하기도 어려웠다.
한동안 그는 위풍도 당당히 엽가 상단을 이끌고 동제 각처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거북이처럼 세월아 네월아 느려터져 밥만 축내던 노인네들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말이다.
그토록 애쓴 데 대한 보상이 결국 이런 처사란 말인가! 자기가 왜 이런 데로 좌천을 당해야 한단 것인가!
그때 초휴의 음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제야 내 말이 믿어지나? 지금 엽가로 돌아가 봐. 어쩌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를 악문 엽소는 이번에는 초휴가 하라는 대로 했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몰래 엽가로 와버린 것이다.
돌아온 그는 부친부터 찾아보려 했다. 오랜 세월 생활비를 받는 족족 부친의 치료비로 써온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제주부 온 동네에 아비 연명시키는 효자로 이름났을 정도였다. 더러는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 효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엽소 부자가 살았던 처소가 텅 비어 있지 않은가. 시중들던 계집종들은 물론이고 누워만 지내던 부친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그길로 뛰쳐나와 아무 하인이나 붙잡고 물었다.
“아버님은 어디 계시나? 어째서 안에 안 계신 거지?”
하인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엽소 공자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내가 묻고 있잖아! 아버님 어디 가셨느냔 말이다!”
엽소가 실핏줄 터진 눈을 부릅뜨며 다그치자 식겁한 하인이 황망히 답했다.
“보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엽소는 넋이 나간 나머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분명 계집종들한테 아버님을 잘 부탁해놓고 갔단 말이다. 내게 지급될 돈도 고스란히 저들에게 주기로 되어있었건만, 어떻게 그새 돌아가신단 말이냐? 어째서 아무도 내게 알려 주지 않았어!”
하인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말했다.
“공자님이 떠나신 후, 대공자님이 종들에게 지급될 돈을 종전 액수로 깎으셨어요. 그 돈으로는 종들 먹고살기도 빠듯하니 약값까지 대기에는 어림도 없었죠. 왜 공자님께 알리지 않은 건지는 쇤네도 잘 모르겠습니다.”
엽소는 혼비백산하여 조각처럼 서 있었다.
‘그토록 참고 인내한 결과가 고작······!’
이때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엽릉의 귀에도 전해졌다. 그를 본 엽릉이 씩씩대며 다가와서는 호통부터 쳤다.
“누가 너더러 가주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근무지를 이탈해도 된다 했느냐?”
“제 몫의 돈이 왜 제대로 종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겁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째서 제게 알리지 않으셨나요?”
엽소의 붉게 물든 눈동자를 마주한 엽릉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에 네가 상단 총관을 맡았을 때야 그만한 돈을 받을 수 있었겠지. 그러나 광산으로 가서 더는 총관이 아니니 네 몫의 돈도 예전 수준으로 삭감한 것이다. 뭐가 잘못되었느냐? 가뜩이나 채가와 이리저리 부딪히느라 잡음이 끊이질 않아 죽겠는데, 네놈 따위까지 신경 쓸 정신이 어딨단 말이냐?”
엽소가 정신이 나간 채로 뒤돌아 가려는데 뒤에서 엽릉의 핀잔이 이어졌다.
“어딜 가려고? 멋대로 근무지를 이탈했으면 중벌을 받아야 할 게 아니냐!”
하지만 엽소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대는 그의 입에서 연신 이 소리만 나왔다.
“어째서? 어째서?”
이때 초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냐고? 네가 가주의 아들이 아니니까. 네 존재가 가주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니까. 아직도 모든 가문 가주들이 죄다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하나? 하나같이 가문 전체를 우선시한다고 생각해? 엽곤이 그럴 만한 위인이었다면 오늘날 엽가가 저런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겠지. 이봐, 아직도 모르겠나? 네 아비가 가문을 위해 희생당했는데도 일족이라는 것들이 처음에 돈 몇 푼 던져준 것 말고는 내내 나 몰라라 했지. 그때부터 저들의 간악한 본성은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거야. 자, 이제는 네가 뭘 해야 할지 알겠어?”
엽소의 눈가는 실핏줄이 터져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힘껏 검병을 움켜잡으며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죽일 거요! 전부!”
* * *
엽가 대청.
엽소가 돌아왔다는 보고를 들은 엽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얘야, 이번 일은 네가 너무 경솔했구나. 상단 총관직을 박탈하면서 그에게 지급하던 돈마저 삭감해버려 엽소의 아비가 죽었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는 날엔 문중 전체에서 비난과 질책이 빗발칠 것이야. 명심해야 한다. 한 가문의 가주가 되려면 작은 일에는 관용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자칫하다간 꼬투리를 잡히기 십상이야.”
엽릉이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소자가 경솔했던 면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총관도 아닌데 총관이 받아야 할 액수를 받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엽릉이 말을 이어가려는데 엽소가 돌연 대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엽릉은 의아했다. 밖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은 뭘 하고 있길래, 누가 왔는지 알리지도 않고 막 들여보낸단 말인가.
자기가 가주가 되면 이런 같은 방만한 행태는 바로잡아 기강을 세우리라 다짐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단은 엽소의 버르장머리부터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야 벌을 받으러 온 거냐? 너는 가주의 허락도 없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그것도 하필 엽가와 채가의 관계가 이렇게나 화기애애할 때를 택해서 말이지. 네 죄를 네가 알렸······.”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싸늘한 은빛 광망이 번쩍하며 그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엽릉이 위기를 감지하기도 전에 지근거리에서 빛의 속도로 감행된 일격은 순식간에 그의 머리통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허공에 뜬 머리는 바닥에 나뒹구는 목 없는 시신을 보고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저게 어째서 내 몸뚱이인 것만 같지?’
“엽소!”
엽곤이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엽소가 어떻게 감히 바로 자신의 면전에서 아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