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0)
810화 현무진공(玄武眞功)
구대 세가의 일원으로 실력도 약하지 않은 두 가문이 생사를 걸고 싸웠던 건 중간에서 초휴가 부추긴 탓이 컸으나 발단이 된 건, 이 때문이었다.
구급 공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두 가문이 손에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는 건 아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지존급에 속하는 공법인 것이다. 자그마치 능소종에서 귀하게 여겨 전승해온 공법이니 결코 평범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능소종이 창안한 그들만의 전승 공법이 아니라 상고시대 어느 강자가 남긴 유물이었다.
왕년에 그 강자는 능소종 종주와 숙적이었고 인간관계란 유유상종인 법이니, 그 역시 종주에 버금가는 실력자였다. 제자 하나 없이 적과 격전을 치르다 죽음을 맞게 된 그는 뜻밖에도 자신의 공법을 능소종에 전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현무진공이 지존급 위력을 지닌 것은 이것이 한 가지 공법이 아닌 열 가지 절기를 한데 집대성한 무도의 총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열 가지 공법이란, 무이도법(無二刀法), 문천창결(問天槍訣), 천명검도(天命劍道), 대이극보(大易戟譜), 호효곤집(虎哮棍集), 산해권경(山海拳經), 현무신장(玄武神掌), 열강퇴절(烈强腿絶), 원융금지(圓融金指), 갑골용조(甲骨龍爪)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공법에 이 열 가지 무예가 합쳐졌으니 가히 절세 지존이 아니겠는가.
초휴는 자기 무도의 구성만도 이미 매우 복잡다단하다고 생각해왔다. 도, 불, 마의 무공을 동시에 수련한 데다, 무슨 장법이니, 권법이니, 지법이니, 도법에 이르기까지 두루 익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상고의 강자는 자그마치 열 가지 절기를 공법 하나에 녹여냈으니 초휴보다도 몇 수 위인 셈이었다.
이런 합일을 이룰 정도라면 그 강자는 이 열 가지 무도를 모조리 궁극의 경지까지 통달했음이 분명했다.
초휴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 가지 무도에도 정통하지 못한 자가 어찌 상이한 무도와의 융합을 시도할 수 있었겠는가.
현무진공은 초휴의 구미에 딱 맞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지라, 평소에 쓰던 대표적인 절기들의 사용이 곤란해진 된 처지로서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예전 절기들을 절대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가급적 안 쓰는 게 정체를 은폐하는 데 좋을 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무진공은 무려 열 가지 절기가 융합된 것이니, 그의 정체를 감추기에 더할 나위 없을 터였다.
다만 현무진공을 수련하는데 난제가 하나 있었으니 병기의 문제였다.
일부 절기는 병기가 있어야만 시전이 가능한데 공간 비전함이 있으니 도, 창, 검, 극을 넣어 다니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보병은 물론이거니와 저급 신병조차도 초휴가 쓰기에는 강도가 너무 약했다. 다행인 것은 현무진공을 창시한 상고 강자도 이 점이 꺼림칙했던 모양이다.
비급 중에 ‘천도전갑(天道戰匣)’이라 명명된 병기 제작을 위한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첨부된 설계도를 살펴보니 천도전갑은 어떤 특정 병기가 아니라, 자잘한 기괄 및 진법이 가득 포함된 일종의 함이었다.
병기가 필요할 때마다 그 안의 기괄 부품들을 이용해 도, 창, 검, 극 등 그 어떤 병기라도 순식간에 조립이 되도록 고안된, 한마디로 만능 병기인 셈이었다.
다만 천도전갑의 제작이 상당히 까다로운 탓에 완성을 위해서는 완벽한 솜씨가 요구되었다. 단 한 차례 실수에도 모든 과정이 어그러지면서 천도전갑 제작이 실패로 테니 말이다.
현재 이처럼 난해한 물건을 다룰만한 능력자가 누구일지 생각해보았더니 역시나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막야자가 그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듯했다. 막야자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노인네는 신병각 각주 자리를 내놓은 뒤에도 여전히 낙비홍을 살뜰히 챙겨주고 있었다. 그녀를 자기 친아들보다도 귀여워하는 마음이 초휴의 눈에도 고스란히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초휴는 육가와 손가에서 노획한 최상급 자재들을 낙비홍에게 주며 막야자에게 천도전갑의 제조를 의뢰해달라고 부탁했다. 쓰고 남은 자재는 막야자 대사가 수고비 조로 가져도 좋다는 말과 함께.
* * *
사실 근자에 들어 경호산장의 상황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는 막야자가 신병각 각주를 사임한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
신병각 각주로 있던 시절에야 각주의 권한으로 아무 자재나 신병각에서 갖다 썼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물론 병기 제조를 계속 의뢰받고는 있다지만, 아무래도 신병각 시절에 비하면 여러모로 여건이 열악한 게 사실이었다.
해서 근래에 들어서 막아 자가 친히 만들어낸 신병은 기껏해야 두세 개에 불과했다. 그것도 초휴의 천마무까지 합친 숫자였다.
그러나 천도전갑의 기상천외한 설계도를 받아본 막야자는 마음이 크게 동했다. 거기다가 의뢰인이 최상품만의 자재까지 대어주니, 이런 의뢰를 왜 거절하겠는가.
다만 막야자의 고질병이 또 발동한 게 문제였다. 병기를 제조하려면 우선 그 병기를 사용할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드는지부터 봐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낙비홍이 이리저리 둘러댔으나 결국 막야자는 의뢰인이 초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당연히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다행히도 금방 마음을 가라앉혔다. 비록 강호에 몸을 두긴 했으나, 그는 반쪽짜리 강호인이었다. 강호의 얽히고설킨 은원과 이익을 둘러싼 아귀다툼을 허다하게 겪으면서 강호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막야자는 그런 것보다는 쇳덩이를 자기 뜻대로 다듬는 시간이 훨씬 더 행복했다. 해서 그가 초휴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의 관심은 금방 천도전갑으로 향했다.
* * *
천도전갑 제작 의뢰가 흔쾌히 받아들여진 걸 확인한 초휴는 맘 편하게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그동안 엽소는 천살 분타의 상징과도 같은 두 고수의 손에 맡겨졌다. 청룡회 사대혈살 송소와 한곡에게 특훈을 맡긴 것이다.
초휴가 보기에 엽소의 잠재력은 쓸 만했다. 그리고 여기서 잠재력이란 무도에 관한 게 아니라 성격에 대한 부분이었다.
평소에는 차분히 잘 참지만 독한 출수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한번 잘 키워봄 직한 것이다.
게다가 두 가문을 멸문시킴에 있어 엽소의 공이 컸던 만큼, 초휴는 이런 식으로라도 그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반쪽짜리나마 그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셈이니까.
* * *
그로부터 한 달 후. 천살 분타의 지하 대당에서는 한곡과 송소가 여러 임무를 뒤적이며 할 만한 걸 고르고 있었다.
초휴가 이곳에 와 있는 바람에 목자의와 그 둘은 분타만 지키고 있을 뿐,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대신 수하들이 그들이 해야 할 일까지 맡아 처리했는데 엽소도 한몫 거드는 중이었다. 처음 두어 번은 한곡과 송소를 따라나섰으나 지금은 단독 임무 수행에도 투입되고 있었다.
청룡회가 신입 살수를 키우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잔혹하리만치 단순했다. 살인 임무에 투입되어 표적을 죽이면 훌륭한 살수로 인정받지만 표적에게 당하면 폐물 취급을 받는 것이다.
엽소를 초휴가 일방적으로 이곳에 던져놓긴 했으나, 한곡과 송소는 그의 자질에 대해 의심치 않았고 봐주는 법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그를 혹독히 훈련 시켰다. 만약 그가 폐물이었다면 애당초 초휴가 그들에게 훈련을 맡기지도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한곡과 송소는 천살 분타 내에서는 가면을 쓰지 않았다. 송소는 평범하게 생긴 중년인으로, 언제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웃을 때마다 입가에 몇 겹씩이나 잡히는 주름은 그를 지긋한 나이의 자상한 농부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 온화한 인상의 소유자가 양손에 피를 잔뜩 묻혀 사대혈살에까지 이른 정상급 살수라는 걸 누가 믿겠는가.
송소의 입담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도 쉼 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이봐, 우리 소저가 아무래도 초 대인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이쯤 되면 마음이 홀랑 다 넘어갔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그렇다고 해도 나쁠 건 전혀 없지만 말이네. 소저가 요 몇 년간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는가 말이야. 저렇듯 아리따운 여인이 계속 피비린내에 묻혀 산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건 사내들도 버텨내기 힘든 생활이니 말이지. 초 대인이야 뭐, 일찍이 청룡회에 몸담았던 적도 있고 하니 남도 아닌 셈이지. 우리 소저를 살려준 인연도 있으니 나는 이래저래 저 선남선녀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두 사람이 잘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송소야 그 이름처럼 늘 웃고 있다지만 한곡은 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송소보다 약간 더 젊어 보이는 외양에는 매서운 한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칼날의 흉터가 아래턱까지 한 줄로 길게 이어져 있어, 얼핏 보면 마치 얼굴이 반쪽으로 쪼개진 듯한 인상이었다.
송소가 주저리주저리 읊어댄 말에 그는 본인의 인상과 딱 어울릴 만한 대꾸를 했다.
“선남선녀라고? 천만에! 강호에 피바람을 몰고 다니는 대마두와 여자 살수라고 해야지.”
그러자 송소가 발끈했다.
“어쩌면 이리도 풍류를 모를까. 이 멋대가리 없는 양반아! 대마두건 뭐건 간에 우리 소저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어줄 만한 사람인 건 틀림없잖아? 소저가 초 대인과 혼인만 한다면 청룡회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나 이용수 어르신은 든든한 뒷배를 두는 셈이니 이래저래 좋은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한곡은 자신의 검을 닦으며 냉랭히 받아쳤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법이야, 남이 일일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 넣어줄 순 없는 거란 말이네.”
송소는 뻗치는 울화를 주체하지 못해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대화거리가 생기면 그들은 늘 이런 식으로 삐걱거렸다.
송소가 신경질적으로 임무 의뢰서들을 뒤적이며 쏘아붙였다.
“어찌 된 게 이날 이때껏, 서로 마음이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니까!”
이때 뒤에서 목자의의 음성이 들려왔다.
“두 숙부님, 무슨 말씀을 나누는 중이세요?”
송소가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양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소저,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요?”
목자의가 해맑게 대답했다.
“의부님 쪽에서 전갈이 와서 초 공자님께 알려드리려고요.”
마음이 급했던지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송소가 보란 듯이 한곡을 돌아보며 말했다.
“봤지, 자네도 봤지! 분명 초 대인에게 마음이 있으신 게 틀림없다니까! 소저가 저렇게 밝은 모습을 보인 적이 언제 있었나? 일년을 통틀어도 몇 번 웃지도 않는데 말이지.”
“정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게 또 있는 줄 아나? 검으로 정을 끊어낼 때가 되어서야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알게 되지. 정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모르는 자네가 소저의 마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자체가 가소롭다는 말이네.”
한곡의 대꾸에 화가 치민 송소가 어찌나 눈을 부라렸던지 눈알이 다 튀어나올 뻔했다.
송소는 자기가 워낙 심지가 곧은 사람이니, 이렇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인물과 붙어 다니면서도 속이 터져 죽지 않고 멀쩡한 것이구나 싶었다.
그 무렵 초휴는 여전히 폐관 중이었다. 현무진공이 생각보다는 난해하지 않은 덕에 이미 입문 단계에 들어선 상태였다. 권법, 장법, 도법 등은 이미 기본기가 튼튼했기에 입문이 더없이 빨랐고, 그 외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서도 이해를 병행해가며 수련할 만했다.
다만 입문은 쉬웠으나 한 달 안에 모든 걸 완전히 통달하기는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해서 일단 입문한 것에 만족하고 남은 시간은 대폭 증강된 본신의 힘에 적응하는 데 할애했다.
현재 초휴의 경지는 상당히 애매모호 했다. 그의 육신만 보면 영락없이 진청제와 다를 바 없는 진화련신이다. 손가 노야 정도는 손쉽게 처리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지만 말이다.
그러나 실제 경지는 여전히 진단경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완전한 진화련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천지의 기운을 느끼고 깨우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주야장천 수련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기연과 돈오가 수반되어야만 할 터. 이쯤 해서 폐관을 접을 때가 된 것이다.
때마침 밖에서 목자의의 기척이 느껴지자 초휴는 폐관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십중팔구 단목천산 쪽에서 연락이 온 것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