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2)
812화 피바람을 일으켜야 할 이유
초휴가 청룡회의 수장을 맡기로 한 결정을 누구보다도 기뻐한 이는 목자의였다. 초휴가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단목천산은 그녀를 친딸처럼 생각했다. 목자의에게 단목천산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보천남 때문에 서로 칼을 겨누게 되지는 않을지 그녀는 내내 노심초사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합의로 세 사람 모두가 한 편이 된 것이다.
보천남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지라 초휴와 단목천산은 핵심적인 문제에 합의를 보자 곧장 향후 세부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단목천산이 이르기를 석 달 후면 삼년에 한 번 열리는 청룡회 집회가 있다고 했다.
청룡회 집회는 천강 삼십육 분타의 타주 전원이 총타에 집결하여 지난 삼 년간 수행한 임무에 대해 보고하고 여러 현안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원래 이 회합은 단목천산이 주재해야 했으나 그가 연금된 관계로 보천남은 이 중대한 임무를 아는 게 별로 없는 단천랑에게 맡긴 상태였다. 그러니 집회가 어떤 꼴이 날지 지켜보는 맛도 쏠쏠할 터였다.
초휴와 단목천산은 이 기회를 노려 출수하기로 했다. 일거에 보천남과 그의 일당을 제거하고 청룡회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시간이 좀 있다고 해서 한가로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초휴는 한때 청룡회에 몸담은 적도 있으나, 당시는 그저 말단 살수에 불과했다. 이번에 무려 청룡회의 수장을 맡으려면 아랫사람들이 승복할 만한 실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그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전적(戰績)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당분간 천살 분타를 초휴가 맡으면서, 그 김에 거창한 임무도 하나 수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결정을 하기 전에 초휴는 분타의 타주가 멋대로 바뀌어도 총타에서 관여치 않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내 단목천산의 답변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예전에야 당연히 총타에서 관여했었다고 한다. 반드시 대용수의 재가를 거쳐야만 신임 타주가 임명될 수 있었고, 매년 분타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소상히 보고할 의무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보천남은 그 많은 분타 일에 일일이 신경 쓰는 게 귀찮아진 데다, 단목천산 한테 권력이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해서 분타 일은 분타의 재량으로 알아서 처리하되, 삼년에 한 번씩만 총타에 몰아서 사후보고하면 된다고 방침을 바꾸었다.
초휴가 천죄 분타에 있었을 당시, 단천랑이 제멋대로 수하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벌였던 것도 총타에서 관여치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보천남이 이런 지경으로 조직을 방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룡회가 망하지 않고 버텨올 수 있었던 데에는 단목천산의 공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하의 보좌를 받을 수 있었던 보천남의 운발도 크게 한몫한 셈이다.
강호가 워낙 넓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미처 보고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총타에서는 하부조직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시시각각 분타 일을 챙겨야 할 게 아닌가.
예컨대 풍만루만 봐도 본부는 동제에 있더라도 북연 및 서초 지부와 시시각각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물론 이는 정보 조직의 특성상 특별히 더 그렇다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웬만한 종문들도 보천남만큼 방만하게 조직을 운영하진 않는다. 삼년 동안 한 차례도 관여하지 않는 상부라니! 아랫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멋대로 해 먹다가 조직을 말아먹기에 딱 좋지 않은가.
천살 분타의 타주로 행세하기로 한 이상, 초휴에게는 또 다른 신분이 필요했다.
사실 강호에서 활약하자면 별칭쯤은 필수였다. 예전에는 임엽이라는 전생의 본명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미 은마에서 사용했던 별칭을 또 쓸 수는 없는지라 초휴는 ‘임혈의(林血衣)’라는 별칭을 새로 만들었다.
낙비홍은 그 별칭을 듣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흑의를 즐겨 입던 사람이 난데없이 혈의라니?’
그러자 초휴가 내놓은 해석인즉슨, 살인을 자주 저지르다 보면 흑의가 피로 물들기 마련이고 그게 곧 혈의가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나는 살인마요.’라고 떠들고 다니는 셈인 것이다.
낙비홍은 초휴가 허세 부리는 게 이젠 아주 습관이 되었다며 구시렁거렸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천살 분타에 접수된 살인 의뢰서를 뒤적이던 그는 적당한 건을 찾지 못해 볼멘소리를 내었다.
“동제 땅덩이가 이렇게나 넓건만, 여태 접수된 의뢰 건이 고작 이것뿐인가? 내가 나설 만한 게 전혀 눈에 띄지 않는군그래.”
지금 초휴는 임무들이 너무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쉽고 단순해서 불만이었다. 보란 듯이 전적을 쌓아 일거에 청룡회 구성원들의 승복을 받으려면 일을 크게 벌여 명성을 떨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눈앞의 임무들은 표적의 실력이 가장 강한 게 천인합일이었으니, 초휴가 손을 대기에는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송소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초 대인, 천살 분타는 그저 일개 분타에 불과합니다. 표적이 천인합일 정도면 최고 난도에 속하는 셈이지요. 무도종사급 이상의 강자들을 참살하는 임무는 당연히 총타로 보내집니다. 의뢰인들부터가 애당초 총타 쪽으로 의뢰하고요.”
초휴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더니 돌연 낙비홍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복수하고픈 원수가 없소? 내가 공짜로 해치워줄 수 있는데 말이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한번 말해보구려.”
낙비홍의 입술이 들썩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역겨운 낙가를 밟아 달라 말하고 싶었다. 낙비홍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 간당간당 붙어있는 숨통마저도 절단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가. 그녀는 초휴와는 달리, 자기 가문도 가차 없이 쓸어버릴 만큼 냉혹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참에 누구를 혼내주면 좋을까?’
불현듯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세력이 있었다.
“밟아주고 싶은 세력이 있긴 해요. 당신과도 간접적으로나마 원한 관계에 있으니 마침 잘됐군요.”
“어떤 세력이오?”
“새로 칠종의 일원이 된 장생검종(長生劍宗)!”
초휴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기억이 나는 게 없었다.
“전혀 못 들어본 곳인데?.”
“당신이 창란검종을 없앤 바람에 칠종에 한 군데가 비었잖아요.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경쟁이 말도 못 했어요. 최후의 승자는 장생검종이었죠. 사실 장생검종이 낙점된 데는 장검산장의 공이 컸어요. 장생검종의 종주 방장생(方長生)과 장검산장의 장주 정정산이 의형제 사이거든요. 방장생이 종주로 올라간 것부터가 정정산이 전폭적으로 밀어준 결과였고, 심지어 그가 가진 신병도 정정산이 준 거예요. 명검보 삼십육 위에 올라있는 ‘유화(流火)’라는 거죠.”
“훗날 언젠가 당신이 장검산장을 친다면 장생검종은 분명 장검산장 편을 들 거예요. 어차피 치워버려야 할 세력이라면 미리 치워서 나쁠 거 없잖아요? 장검산장의 우군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니까요. 꼭 장검산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장생검종 그 자체만 놓고 봐도 역겨워 죽겠어요. 칠종팔파에 든 게 무슨 엄청난 일인 양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까요. 일전에는 감히 구분당 사람을 건드리기까지 했다고요. 소 원장님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놈들과 끝장을 봤을 거예요!”
“좋소. 내 전적의 첫 희생양은 장생검종으로 하지.”
“아 참, 당신이 맡겨 달라 했던 천도전갑이 완성됐으니 가져가도 된대요.”
“이렇게나 빨리?”
초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개 신병 하나를 만들자면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과연 막야자 같은 실력자라면 웬만한 신병은 한 달이면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도전갑은 설계도만 봐도 기괄이 어찌나 많고도 복잡한지 단시간 내 완성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완성하다니?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의부님 말씀으로는 완성은 했으되 당신과 의논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더군요.”
초휴는 그길로 낙비홍과 함께 경호산장으로 향했다.
* * *
초휴는 아직 본모습을 내보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청룡회 살수의 가면과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핏빛 장포 차림으로 심야에 경호산장으로 들어갔다.
막야자는 초휴를 보고도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병기 만드는 일에만 집중해왔을 뿐 강호 분쟁에는 휩쓸려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명색이 노강호로서 보고 들은 건 많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보통 사람 눈에는 해괴하기 짝이 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막야자는 가타부타 말을 꺼내는 대신 곧장 완성된 천도전갑을 내보였다. 완성체는 석 자 크기의 은백색 철갑으로, 상판에 진문(陣紋)이 빽빽이 새겨져 있는 모습이 얼핏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 느껴졌다.
“한번 시험해보게.”
막야자의 권유에 초휴가 진기 한줄기를 천도전갑 내에 주입했다. 이내 안에서 기령의 응답이 감지되는가 싶더니, ‘찰칵찰칵’ 기괄이 변환을 일으키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천도전갑은 순식간에 거대한 전투용 도로 변신했다!
먼젓번 천마무의 굽은 도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거의 사람 키만 한 길이에다 도신이 큼직하고 도병은 좁다라니 긴 것이 패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천도전갑이 변신한 도의 이름은 ‘무이천도(無二天刀)’라 했다. 그가 한번 더 진기를 주입하자 무이천도가 장창으로 변했다. 설계 도면에 적힌 대로라면 이 창의 이름은 ‘문천패창(問天覇槍)’일 터였다.
초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도면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나 잘 만드셨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요?”
막야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했다.
“지금으로는 천도전갑이 최강의 위력을 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도면 설명에 의하면 천도전갑이 최강 위력일 때의 강도는 신병 중에서도 최상품에 필적한다고 되어있네. 그러나 지금 자네도 보다시피 병기들의 강도가 고작 중품과 하품 사이에 불과해. 최상품은 고사하고 상품 언저리에도 접근하지 못한단 거지.”
“한마디로 천마무와는 비교도 안 될 허접한 강도인지라, 천마무 만한 위력을 기대하기도 불가능하겠지. 결론만 말하자면 이건 자재의 문제일세. 물론 자네가 극상품만 골라 자재를 제공하긴 했지만, 천도전갑의 핵심을 이룰 결정적인 자재가 한 가지 빠졌더군. 우선 아쉬운 대로 다른 자재로 대체하긴 했지만, 현 상태로는 천도전갑의 최강 위력을 끌어내는 건 무리야.”
“말씀하신 그 자재는 어떤 것이며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초휴의 질문에 막야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진성운철(震星隕鐵)’이라 불리는 자재라네. 밤하늘의 운석이 대지로 추락할 때의 속도가 워낙 빠른지라 천지 원기 속을 지나는 내내 한껏 불타오르지. 수없이 천지의 위력에 담금질 된 끝에 금속류로 변하는 게야. 그리고 대지에 떨어질 때도 극한의 땅, 그것도 차디찬 물속에 떨어져야만 하지. 타오르던 운석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으면서 진성운철이 만들어지는 거라네.”
“여기서 문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이야 흔하지만 떨어질 때 담금질을 거쳐 금속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는 걸세. 거기에 더해 하필 차가운 물속으로 떨어질 확률은 매우 희박할 테지. 노부가 알기로 지금껏 진성운철로 만들어낸 병기는 명검보 이십육 위에 올라있는 신병, ‘유광사월(流光邪月)’이 유일하네. 그건 장검산장이 소장하고 있지.”
초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이번에도 또 장검산장이 아닌가. 언젠가 장검산장을 반드시 쓸어버려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