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7)
817화 청룡의 피
이미 보천남이 단천랑에게 언급했듯이, 그는 단목천산이 십중팔구는 무슨 일을 터뜨려도 터뜨리지, 가만히 앉아서 끝장날 위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초휴가 지금 갑자기 등장했어도 보천남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보천남은 매사에 극도로 단순 포악한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를 부리건 간에 죄다 짓밟아 죽여 버리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짙디짙은 살기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응집되어 보천남의 손에 실리는가 싶더니, 가까이 있던 단목천산을 잡으려 들었다. 허공에서 충격을 동반한 폭음이 터지더니 청색 용조(龍爪)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사방팔방 단목천산이 도피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노쇠해진 단목천산에게도 일전을 치러볼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다.
그의 손에서 ‘유금반룡곤(鎏金盤龍棍)’이 떠오르더니 보천남의 공세를 막아냈다.
양측의 기세가 정통으로 충돌하자 굉음과 함께 극강의 파동이 터져 나와 좌중을 덮쳤고, 사람들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초휴는 겉보기에 유약하고 온화한 선비로 보였던 단목천산이 이처럼 강맹한 무도를 구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나 곤봉을 병기로 쓰는지라 자연히 출수 동작 하나하나가 힘차고 매섭기 이를 데 없는 게 뚜렷이 보였다. 고령인 지금 저 정도라면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광포한 기세를 발했겠는가!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 그는 단목천산은 일 합 만에 보천남에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여전히 유금반룡곤을 꽉 움켜쥔 손은 미미하게나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목천산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데다 다년간 출수한 적이 없는지라, 지금 그의 실력은 전성기 시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이 한창때의 실력이라 해도 보천남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을 터였다. 과거 자질이나 명망 면에서 보천남을 월등 앞섰던 단목천산이 대용수 자리를 보천남에게 양보하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천남의 실력이라면 분명 청룡회를 오랜 세월 동안 창대하게 발전시켜 나갈 거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발전은커녕, 문젯거리만 끊임없이 만들며 조직을 말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초휴 차례였다. 보천남의 출수와 더불어 초휴가 한 발을 내딛자 두 사람의 간격이 거짓말처럼 좁혀졌다.
곧이어 초휴가 천하도 뒤엎을 기세로 산해권경을 내지르자 권의가 작렬하여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가차 없이 쓸어버렸다.
이에 보천남 또한 일권으로 응수하니, 극도로 응집되다 못해 살기가 뚝뚝 흐르는 듯한 예기가 파죽지세로 공간을 베어갔다.
이윽고 양측의 일권이 격돌하며 폭발을 일으키자, 그 충격으로 대전 내 설치된 진도에서 미친 듯이 광채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의 충돌로 인해 호종대진의 정상적인 가동이 위협받을 지경에 이른 게 분명했다.
원래 보천남의 계산 대로라면 초휴가 제아무리 강해야 진단경에 불과하니, 이처럼 힘으로만 맞대결을 벌이는 건 자살 행각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을까.
양측은 거의 동시에 몇 걸음을 뒤로 밀려났다. 단순히 힘의 세기로만 우열을 논한다면 백중지세를 이룬 셈이다.
급기야 초휴의 전신이 마치 금박, 은박을 입히기라도 한 듯 옅은 화염으로 뒤덮인 걸 본 보천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화연체? 정녕 네놈이 진청제와 같은 길을 걸었더란 말이냐!”
환허육경 당시 정선지장과의 동귀어진이라는 대형사건을 일으킨 초휴 말고도 강호를 발칵 뒤집어놓은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진청제였다.
홀로 자신만의 독자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당당히 천하무적 종사의 위명을 쟁취한 당대의 걸물 말이다.
물론 그 일이 있은 뒤로 무림인들 사이에서 진청제처럼 내력진화로 육신을 단련하려는 시도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으나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성공은 고사하고 되레 손해를 보는 자들이 전부였다.
진화련신(眞火練神)과 진화연신(眞火煉身)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천지를 느끼고 깨달은 바가 축적되기만 하면 단시간 내에도 달성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장시간에 걸쳐 내력진화로 육신을 단련시켜야 하는데, 경맥 한 가닥 한 가닥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속속들이 단련시켜야만 하는지라 신병을 제련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극한의 고통을 십년, 심지어 수십 년에 걸쳐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견딜 수 있다 하더라도 고통을 참느라 정신이 분산된 와중에 정확히 내력진화를 제어할 수 있을까?
자칫 도중에 문제라도 생기는 날엔 자신의 몸만 상하고 말 터였다.
설령 고통을 참고 제어도 해낼 수 있다 치자.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깨우침을 얻은 다른 동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가며 속속 진화련신 경지로 들어섰건만, 유독 나만이 홀로 그 지루한 싸움을 이어간다는 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다.
이런 까닭에서 당대의 강호에서는 여전히 진청제 혼자만이 그 외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초휴는 몸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꼼수를 필 수 있었기에, 진청제가 지난 세월 성실히 거쳤을 그 수십년을 단번에 뛰어넘었을 뿐이었다.
그런 내막까지 알 리 없는 보천남으로서는 초휴의 선택이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오만함을 되찾으며 냉소를 머금었다.
“진화연신이 뭐 별것이나 된다던가? 진청제가 왔다면야 신경 쓰일 수도 있겠으나, 네 놈 따위가 뭐가 대단하다고? 진청제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놈이!”
곧이어 보천남의 몸 뒤에서 청색 광채가 휘돌기 시작하더니 흉수의 강림을 방불케 할 극강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비늘 하나하나까지 생생한 청룡의 법상이 떠오르니, 그야말로 상고 신수(神獸) 중 하나인 청룡의의 실물을 보는 듯했다.
청룡은 초휴와 단목천산을 공격하는 대신, 보천남의 몸에 바짝 용신(龍身)을 갖다 붙였다.
순간 보천남 일신의 기세가 더없이 흉포하게 변하더니 푸른색 청룡강기가 언뜻언뜻 용의 발톱 및 꼬리와도 같은 형상을 그의 전신에 걸쳐 응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의 두 눈이 금색으로 물들더니 뱀의 눈알처럼 곧추서기까지 했다.
이와 유사한 변화는 혈교내단을 체화한 엽천사에게서 본 적은 있으나 보천남의 경우는 대관절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단목천산이 초휴에게 소리 낮춰 당부했다.
“조심하시오. 보천남은 지난날 상고 청룡의 핏방울을 손에 넣은 적이 있소. 그게 정말로 청룡의 피였는지 아니면 무슨 강력한 파충류 흉수의 피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때부터 보천남 본인과 청룡회 공법상에 기이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분명하오. 일단 저런 상태에 돌입하면 실력이 폭증하는 건 물론이고, 성격도 광포하게 변하면서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달려들곤 하지. 나는 저자의 성격이 지금처럼 변한 이유가 청룡의 피와 연관된 건 아닐까 하고 줄곧 의심해왔소.”
단목천산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천남은 두 사람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그가 되는대로 손을 휘젓자 청색 강기가 청룡언월도를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살기로 층층이 응집된 도날이 핏빛을 번뜩이며 두 사람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왔다. 지금 보천남은 본인의 힘을 거의 극한까지 발휘해서 이 청룡언월도를 응집해내고 휘두르는 데 쓰고 있었다.
대개 강기로 사물을 응집하는 일은 외부로 강기를 발출할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 가능하기 마련이다. 다만 실력의 고하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검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갓 외강경에 이른 무사가 발출하는 검기는 근본적으로 검기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힘 한 줄기를 쏘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테니까. 한마디로 실력이 강할수록 강기로 응집해낸 사물의 모양도 더욱 실물에 가까워지고 위력도 더 강해지는 것이다.
보천남이 구현해낸 청룡언월도는 남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기가 강하게 응축된 결과였다. 실제 도날처럼 눈앞의 공간을 동강 내버릴 기세로, 가차 없이 허공을 갈라댔다.
이에 질세라 초휴의 수중에서 천도전갑이 떠올랐다. 그가 손끝을 한번 튕기자 천도전갑은 순식간에 거대한 전투용 도로 변환되었다.
이어서 현무진공 중 무이도법이 시전되자, 무지막지한 도세의 위력이 상대를 압박해갔다.
하지만 양측의 병기가 맞부딪히며 힘의 우열을 겨룬 순간, 초휴는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절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었고, 이것은 무슨 도법 같은 것으로 메꿀 수 있는 격차가 아니었다.
특히 청룡으로 화한 상태의 보천남은 흉수의 광기에 젖은 탓에 도법이라고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매 초식에서 본연의 전투력이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었다.
더욱이 흉수 특유의 공격 본능은 초휴의 도법에서 취약한 부분만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공략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보천남은 초휴가 여태 상대해온 적들 가운데서도 단연 막강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풍운방 십 위권의 실력은 입으로 떠벌려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무수한 살육 경험이 축적된 결과인 것이다.
정선지장도 그만하면 충분히 강한 셈이었지만, 최정예 살수 출신인 보천남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특히 힘의 웅혼함과 세기에 있어 그 둘은 더더욱 천양지차라고 해야 할 터였다.
보천남이 미친 듯이 초휴에게 맹공을 퍼붓는 틈을 노려 단목천산의 유금반룡곤이 더없이 강렬한 광채를 쏘아냈다. 그 찬란함이란 막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방불케 했다.
그 해는 불현듯 보천남 머리 위로 추락하듯 떨어졌다.
이번 일격은 단목천산이 현재 쏟아내는 힘의 한계에 이른 것으로, 심지어 한창때의 기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보천남이 빛의 속도로 습격을 피하는가 싶더니 청룡의 꼬리가 세차게 꿈틀대며 강기를 흡수해 십여 장 크기로 폭증했다.
섣불리 초휴와 협공하려다가 되레 청룡의 꼬리에 가격당한 단목천산은 병기와 함께 멀리 튕겨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상대의 신경이 분산된 틈을 놓칠세라 초휴가 파해 초식을 시전하자, 도세의 격랑이 넘실대는 족족 눈앞의 모든 걸 갈라버렸다.
대전 내 공간 자체가 마구 동강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청룡회 무사들은 너도나도 대전 가장자리로 몸을 날려 피했다.
파해 초식의 위력은 초휴의 배가된 힘을 빌려 극강의 수위까지 치솟았다. 그 위력 앞에 보천남도 속절없이 후퇴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강기로 응집해낸 청룡언월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일격을 끝으로 도를 쥔 초휴의 손도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괄의 조립을 통해 만들어낸 병기인지라 이처럼 엄청난 충격을 견디기엔 무리가 따르는 모양이었다. 급기야 ‘끽끽’ 하고 금속성 마찰음까지 들리지 않는가.
초휴가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막야자가 일전에 언급했던 천도전갑의 결함을 제대로 체감한 셈이었다.
무슨 병기이건 간에 어떠한 장점을 가졌는지는 둘째 문제고, 무엇보다도 튼튼하고 예리한 게 우선이다. 충격을 잘 견뎌낼수록 병기의 주인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음은 물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천도전갑에 여러 병기로 변환되는 큰 이점이 있긴 하나 아쉽게도 위력 면에서 부족했다. 이렇듯 병기의 강도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보천남과 같은 강적을 상대하자니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목천산이 목숨을 건 습격을 감행해 만든 기회를 이리 쉽게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천도전갑이 다시 변환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장창으로 변했다. 바로 문천패창이었다!
문천패창이 위용을 드러내더니 기세도 늠름하게 파죽지세로 보천남을 몰아붙였다. 생전에 나름 창술로 한가락 했다던 육가 노야의 위력도 문천패창의 위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될 듯했다.
이어서 문천패창이 대이전극으로 변환되더니 현무진공 중 대이극보가 시전되었다.
여봉선의 마신무쌍극과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면이 있어도, 이 또한 강맹한 무도가 돋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잇따라 병기가 바뀌며 공법도 더불어 바뀌었다. 보천남이 한 가지 무도에 적응하여 약점을 간파했다 싶으면 초휴는 이내 공법을 달리하여 그의 공세를 무력화시켜버렸다.
현무진공의 진정한 용법과 진가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무진공 앞에서 상대는 아무리 애써도 초휴의 공세를 간파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