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8)
818화 승패(勝敗) 대신 성패(成敗)를 보다
단목천산과 초휴가 협공하여 보천남을 압박하는 걸 보는 좌중의 무사들은 표정이 제각기 달랐다.
다만 그들 대부분이 보천남이 궁지에 몰리는 걸 내심 흐뭇해하는 점만은 대동소이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청룡회 일원 중 태반이 단목천산을 통해 발탁된 그의 심복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가 아닌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판단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보천남과 단목천산 중 누가 진정으로 청룡회에 득이 될 자인지, 또 누가 지금 청룡회의 기반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천랑 만은 내내 좌불안석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보천남이 패하면 자기 목숨은 그길로 끝장이 아닌가!
이때 대결 국면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변환을 일으키는 현무진공의 위력에 맥을 못 추며 밀리던 보천남의 눈에서 돌연 극강의 혈망이 터져 나오더니, 용신이 피로 물들며 일신의 힘이 순식간에 수배나 폭증했다. 그 기세를 몰아 청룡언월도를 내리치자 주위의 모든 것이 그 광포함에 압도당하는 듯했다.
이때부터 초휴가 구사하는 모든 절기가 엄청난 청룡의 기개 앞에 계속 무위로 돌아갔다. 공법의 잦은 변환만으로는 승산이 없게 되자, 천도전갑은 다시금 무이천도로 변환되며 홍진표묘참이 시전되었다.
하지만 공간을 화폭처럼 갈라버리는 위력이 무색하게도 청룡의 기개는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청룡언월도가 광기에 젖은 도망을 발하며 덮쳐오는 가운데, 보천남의 힘은 여전히 바닥을 드러낼 줄 몰랐다. 대체 그 힘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한옆에 쓰러져있던 단목천산이 몸을 일으켜 초휴를 돕고자 했으나 노쇠한 몸으로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방금만 해도 보천남 옆에 다가가기가 무섭게 나가떨어지지 않았던가. 초휴 홀로 죽을힘을 다해 보천남을 상대하는 이때, 육강하가 돌연 소리쳤다.
“이봐, 저놈이 뭔가 이상해. 저자의 손을 주시해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혈영대법이 저놈에게도 먹혀드는지를 한번 시험해보자고. 잘만 되면 저놈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는 초휴의 정신이 온통 보천남을 상대하는 데만 집중되어 있었던 탓에, 다른 것에는 일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육강하의 말에 초휴는 보천남의 손에 시선을 돌렸다.
홍진표묘참의 위력이 보천남의 육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건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샌가 그의 손아귀가 찢어져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처에서 스며 나온 피는 붉은 색이 아니라 금빛이 도는 청색을 띠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기괴한 일이었다. 초휴는 사람이 공법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피 색깔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때 초휴의 두 팔도 청룡언월도가 일으킨 도망의 폭풍을 막느라 온통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지금과 같은 육신의 강도로도 상대의 공세로부터 멀쩡하기란 어려웠다.
다행히 불멸마단 덕분에 상처가 생기는 족족 아물곤 했다. 물론 불멸마단이라고 해서 무한하게 힘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육가와 손가의 전장에서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혈을 자양분 삼아 몸을 복구했기에 그는 불멸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여건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초휴가 자신의 몸을 불멸의 상태로 유지하자면 그만큼 자신의 힘을 고스란히 소모해야 했다. 그러니 너무 심하게 다치면 견디지 못할 거라는 건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초휴는 육강하가 귀띔한 대로 보천남에게 바짝 접근하며 혈영대법을 한계치까지 출수했다. 순식간에 무수한 혈영이 허허실실 뒤섞여 터져 나왔다.
대부분 일찌감치 보천남의 손짓 한 번에 혈무가 되어 흩어졌으나, 그런 와중에도 일부 혈영이 그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초휴가 혈신마공을 시전하여 보천남의 손에서 피 한 방울을 흡착해냈다.
혈영마공을 이용한 시전자는 자신의 기혈에 대해서는 물론, 남의 기혈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장악할 수 있게 된다. 해서 방금 흡착한 피 한 방울만으로도 초휴는 보천남의 상태를 간파할 수 있었다.
이제야 강호에서 보천남이 미치광이로 통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지난날 그가 대광명사로 혈혈단신 쳐들어갔을 때, 허운은 그를 죽일 실력이 있었음에도 살려서 돌려보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섣불리 그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다가 진정한 악마나 괴물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을 경계한 때문이었던 것이다!
무도에 정진하다 보면 외부 사물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수련에 자주 애용되는 단약 등도 결국은 외부의 물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기 스스로 수련해낸 결과물이 아닌지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혈교내단을 삼켜 체화하고 요수공법(妖獸功法)을 수련한 엽천사는 여간 대담하고 위험한 짓을 벌인 게 아닌 셈이다.
하지만 보천남은 엽천사가 벌인 짓의 수위를 넘어섰다. 그건 대담한 수준을 넘어서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해야 했다.
과거에 그는 수련을 통해 서서히 청룡의 피를 체화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 피를 자신의 몸에 곧장 융합시켰다.
달리 말하자면 청룡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피를 통해 청룡과 자기 몸의 동화를 꾀함으로써, 본인이 진정한 청룡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상상으로야 누구나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보천남은 서슴없이 실천으로 옮겼으니, 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이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이 기상천외한 시도는 성공도 아니거니와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의 체내에서는 선혈을 시작으로 해서 일부 경맥과 골격에서도 흉수로의 변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흉수의 힘은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한 천지에서 비롯된다. 천지의 힘은 영원토록 바닥을 드러낼 리 없으니, 흉수의 힘이 마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당연히 힘에서 인간을 압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흉수인지 신수인지 모를 존재와의 동화는 이미 보천남의 뼛속 깊숙이 진행된 상태였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아도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 출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흉수 특유의 흉맹함과 광포함이 전면으로 드러나서 인간의 본성을 잠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제어가 불가능한 괴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초휴는 보천남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동화를 꾀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그 길을 택해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다.
이는 흉수의 영향을 받기 전부터 보천남이란 인간 자체가 단단히 미친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육강하가 지켜보다 못해 또 소리쳤다.
“이봐! 정 어렵겠다 싶으면 잠시 퇴각하자고. 이미 사람도 아닌 놈을 무슨 수로 당해낸다는 거야! 자기 목숨을 귀하게 생각하는 놈 같으면 애당초 흉수가 되려 했을 리도 없다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미친놈과 무슨 수로 싸우겠다는 거야?”
“내가 왜 못 싸워? 저놈이 목숨을 걸겠다면 나도 걸면 될 뿐이야!”
초휴는 후퇴는커녕 현무진공 중 현무신장을 내지르며 반격에 나섰다. 이에 태산의 기개에 버금갈 괴력이 폭발하며 보천남의 공세를 일부나마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막아내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할까? 그야 불멸마단만 믿고 부딪히는 수밖에!
초휴의 일신에서 짙은 혈무가 터져 나와 보천남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혈무는 중인의 예상과는 달리, 단순한 공격용이 아니었다.
보천남이 단번에 혈무 의 포위망을 갈라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혈무는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의 체내 기혈력(氣血力)을 잡아 끌어내고 있었다.
초휴가 혈신마공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자신의 선혈까지 동원한 것이다. 현재 보천남 체내의 기혈력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 상태였다. 하나는 원래 있던 자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룡의 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융합을 이루었어도 아직 완전무결한 융합까지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피와 흉수의 피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지는 보천남 본인도 장담하기 어려울 터였다.
혈신마공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자, 온몸 경맥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이 가중되더니 급기야 보천남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의 눈빛이 흉맹함을 더하는가 싶더니 공세는 한층 더 광포해졌다.
이쯤 되자 초휴도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혈무가 한층 더 짙어지더니 거대한 핏빛 고치와 같은 형체를 응집해냈다.
그것이 한 차례 박동할 때마다 보천남의 기혈이 대거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때 초휴의 안색도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상태였다.
제아무리 불멸마단이라 해도 이처럼 장시간에 걸친 소모를 견디는 건 무리였다. 해서 혈신마공을 시전하기 위해 자신의 기혈의 힘을 끊임없이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초휴와 보천남은 그야말로 기약 없는 소모전에 돌입한 것이다.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터였다.
바로 이때 단목천산의 신형이 번쩍하며 보천남 등 뒤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유금반룡곤에 실어 태산도 가를 기세로 보천남을 내리쳤다. 그 힘이 어찌나 파괴적이었던지 유금반룡곤의 표면에 금이 갈 정도였다.
한 차례 굉음이 울리더니 보천남의 강기 방어가 산산이 파훼 되며, 단목천산도 그 충격으로 병기와 함께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사력을 다한 그의 일격이 효과를 발했는지 보천남의 입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금색이 아닌 누가 붉은색이 선연한 피였다. 이때를 틈타 거대한 핏빛 고치가 산산이 작렬했고, 동시에 보천남 일신의 모든 구멍에서 선혈이 대거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의 몸에 감돌던 청색 강기가 급격히 소멸하더니 청룡 법상도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금빛을 띠었던 그의 눈도 서서히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때를 놓칠세라 초휴가 천도전갑을 문천패창으로 변화시켜 보천남을 정면으로 가격했다. 문천패창은 ‘푹’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팍을 관통하더니, 여세를 몰아 석벽에 그의 몸을 꽂아버렸다.
하지만 초휴의 출수와 동시에 보천남도 오른손에 마지막 힘을 실어 만든 용조로 초휴의 가슴팍을 뚫어 버렸다.
이를 보고 기겁한 목자의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려 했으나, 한곡과 송소가 죽어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저 둘의 싸움이 얼핏 끝난 듯 보일지 모르나 행여 단말마적인 출수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목자의 정도의 수준으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저, 침착하세요. 초 대인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흔적도 안 남기고 사라졌던 양반이 감쪽같이 되살아났던 일을 벌써 잊으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초휴는 완전히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하고서도 태연히 자기 가슴에서 보천남의 손을 뽑아냈다. 그러자 상처에서 선혈이 대거 뿜어져 나왔다.
그는 비틀거렸으나, 불멸마단의 보호 아래 심맥이 서서히 제 기능을 되찾으며 상처도 아물어갔다. 애석하게도 보천남에게는 불멸마단이 없으니, 그의 죽음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흉수의 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생명력은 이상하리만치 강하고 끈질겼다. 심맥이 창에 관통당한 지금도 여전히 숨이 끊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보천남은 눈앞에서 희미하게 어른대는 초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갑작스레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한 차례씩 크게 웃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왈칵 솟구쳤다.
“초휴, 네놈이 나를 죽이긴 했다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긴 건 아니다!”
보천남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막판에 단목천산이 결정타를 가할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누가 이겼을지는 하늘만이 알 테니까.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일대일로 정면승부를 한다 치면 초휴는 절대 보천남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초휴의 기개는 여전했다.
“당신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 굳이 승부에 연연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당신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순간에도 보천남의 표정과 말투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초휴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승패(勝敗) 대신 성패(成敗)를 본다 이거냐? 하하하! 초휴, 네놈 낯짝이 여간 두꺼운 게 아니로구나. 하긴 그래야 이 강호에서 길게 살아남겠지. 넌 나보다 훨씬 더 강호에 잘 어울리는 놈이다. 그건 내가 인정하마. 그러나 기억해라. 청룡회가 네 차지가 되고 나면 내 수중에 있을 때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더 참담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본좌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패하지도 않았다!”
이윽고 보천남 체내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청금색 광망을 띤 피 한 방울이 그의 마지막 생기와 함께 완전히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