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9)
819화 청룡회의 주인이 되다
그간 초휴가 죽여 온 적들 중 보천남은 유일하게 이렇다 할 사적인 원한이 없는데도 죽여야만 했던 적수였다.
사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원수로 치자면 지난날 그를 엿 먹였던 단천랑, 그 협잡꾼이 단연 일 순위일 터였다. 어찌 보면 단천랑 때문에 보천남과 이토록 사생결단으로 싸워댄 셈이니, 세상사가 참으로 우습게 돌아가지 않는가.
보천남이 죽기 전에 말한 것처럼 그는 패하지도 않았고 뚜렷하게 무얼 잘못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생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믿어온 이 편집광은 저승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도 자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물론 자기합리화를 위해 억지로라도 그렇게 믿으려 애쓴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보천남의 심중에는 직진만이 있을 뿐 우회한다는 발상 따위는 없었다. 설령 직진의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 그는 떨어져 죽을지언정 되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살수 노릇을 하던 시절에도 자신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불문곡직하고 죄다 죽여 버렸다. 대용수가 되고 나서는 자기가 내린 결정이 옳건 그르건 간에 그 누구의 반박과 간섭도 용납하지 않았다. 설령 자기가 틀렸고 남이 옳았을지라도 말이다.
보천남은 단천랑을 수하로 받아들인 후에, 단천랑이 아랫사람들을 희생시켜서까지 윗전에 알랑대기 급급한 질 나쁜 인간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천남은 그가 자신의 수하라는 이유만으로 초휴가 죽이려 드는 걸 절대 허용치 않았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찌 옳고 그름, 그리고 성공과 실패만을 유일한 잣대로 삼고 한 사람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보천남은 그저 편집과 아집을 소신과 패기로 착각한 불쌍한 인간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그의 성격상 초휴의 손에 죽지 않았어도 언젠가 천지통현급 강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엔 꼼짝없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보천남이 남긴 말들 가운데 그나마 맞는 말이 있다면 초휴의 낯짝 두꺼운 성격이 강호에 더 잘 어울린다고 했던 그 말 정도가 아닐까?
이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자면 남보다 더 강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낯짝이 두꺼울수록 유리한 게 사실일 테니까.
보천남의 죽음이 현실로 확정된 순간, 대전의 가장자리에 피해있던 단천랑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씬 젖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연신 흔들렷다.
‘보천남이 죽다니! 그 풍운방 십 위권의 강자가 다른 자도 아닌 초휴 손에 죽다니!’
그는 거의 매일 밤 초휴가 자기를 죽이러 오는 악몽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초휴가 죽은 다음에야 그럴 걱정 없이 평안히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며칠이나 되었다고 악몽의 주인공이 불사조처럼 되살아나서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그는 초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제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믿건 말건, 초휴는 사지 멀쩡하게 그의 눈앞에 실존해 있었다.
더욱이 보천남의 심복인 자신이 최근에만도 무슨 짓거리를 저질렀는지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치졸한 방법으로 윗전에 알랑댄 건 애교에 속할 정도였고, 청룡회 내 권력 쟁탈 과정에서 그가 밉보인 상대가 비단 한두 명이겠는가.
보천남의 비호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 그는 초휴가 아니라도 청룡회 그 누구의 손에 맞아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때 대전을 둘러싸고 있던 진법이 느슨해지기라도 했는지 봉쇄되었던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이 순간을 틈타 단천랑의 일신에서 자욱이 혈무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더 있어 봐야 좋은 꼴을 볼 리 만무하니, 과감히 정혈을 태워 도주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한 발 떼기도 전에 혈영 한 줄기가 그를 휘감더니 초휴 옆에다 패대기쳤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쓰러질 듯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던 초휴가 우악스럽게 단천랑의 목을 움켜쥐었다. 단천랑은 온몸의 진기를 폭발시키며 벗어나고자 격렬히 몸부림쳤다.
그러나 초휴의 손이 쇠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는지 도대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에 저항을 포기한 그는 말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초휴는 그에게 간교한 혀를 놀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초휴가 사정없이 손에 힘을 주자 단청랑의 목이 뚝 하고 부러졌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단천랑의 눈에서 해탈의 기운이 엿보였다.
악몽 속에서 수도 없이 재현되었 장면이 현실이 된 지금, 그간의 악몽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 * *
초휴가 몸을 휘청거리자 목자의가 번개처럼 뛰쳐나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초휴는 고개를 저으며 도움의 손길을 사양했다.
불멸마단이 존재하는 한, 지금과 같은 상태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회복하는 데 필요한 힘만 남아있다면 상처는 금방 아물 터였다.
초휴의 시선이 단목천산을 향하자 무슨 뜻인지 알아챈 그가 탄식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여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위에서 대기하던 무사들이 일제히 출수에 들어갔다. 청룡회는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쇄신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보천남이 죽었다고는 하나, 그의 추종세력이 진심으로 승복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권력다툼이라는 것은 이래서 무정하고 잔혹한 법이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줄 한번 잘못 섰다가 개죽음을 당하든지, 혹은 탁월한 선택으로 부귀영화가 하늘을 찌르든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단목천산의 눈길이 줄곧 중립을 지켜오던 용수를 향했다. 그의 매서운 눈빛을 느낀 상대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애절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용수, 내가 묵묵히 가만있었다고 해서 보천남을 편든 건 아닙니다. 나라고 왜 그자의 만행이 역겹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지랄 맞은 성정을 이용수도 잘 아시질 않습니까. 나도 말로 설득하려 해봤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이다.”
이에 단목천산이 준엄히 호통쳤다.
“처결이 내려질 때까지 당분간 사용수 자리에서 물러나 있으시오.”
이처럼 민감한 시국에 태도가 모호한 자를 계속 청룡회 용수 자리에 앉혀두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사용수는 한숨을 내쉬며 본인의 가면과 삿갓을 벗어 내려놓더니 한옆에서 처결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단목천산으로서는 관용을 베푼 것임을 본인도 잘 아는지라 이의가 있을 리 만무했다.
드디어 자신이 청룡회의 대용수가 되었음을 단목천산이 선포하리라 예상되는 순간이 왔다. 하지만 그는 돌연 초휴를 지목하며 폭탄선언을 하는 게 아닌가!
“오늘 이후로 우리 청룡회의 신임 대용수는 바로 초휴 대인이시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단목천산의 심복들 외에는 모두 이 뜬금없는 발표에 놀라워했다. 다들 한마디씩 해대는 바람에 대전은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초휴를 반대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너무 창졸간에 내려진 결정에 당황한 탓이었다.
단목천산이 대용수가 되겠다고 한다면야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처음부터 대용수는 단목천산의 몫이었던 데다, 그간 청룡회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을 모두가 익히 봐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휴는 솔직히 말해서 한낱 외부인이 아닌가. 비록 한때는 그도 청룡회 살수였고 장생검종도 단번에 쓸어버릴 정도의 실력자라지만, 아무래도 모두가 흔쾌히 그를 대용수로 인정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기에 단목천산이 좌중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여러분으로서는 이 갑작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난감할 법도 하오. 그러나 현재 초휴 대인 말고 대용수를 맡을 적격자가 어디 있겠소? 신분상의 적격 여부를 따지자면 초 대인도 엄연히 청룡회의 일원이었소. 단천랑 저 독사 같은 자가 음해를 꾀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초 대인은 칠대 용수의 일원이 되고도 남았을 거요. 실력은 또 어떤가? 여러분도 방금 보았다시피 당당히 보천남을 죽일 정도가 아니오?”
그래도 여기저기서 의론(議論)이 식을 줄 모르자 단목천산이 힘껏 두 팔을 내저어 좌중의 주목을 유도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아오. 내가 대용수를 맡아야 한다는 것일 테지.”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금 내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들이 나오는 건가?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싸울 기력도 없소. 동일 경지끼리의 싸움에서조차 나는 기습밖에 하지 못했소. 정면 대결을 벌인다면 내가 풍운방의 그 빛나는 군웅들과 감히 실력 고하를 겨룰 자격이나 되겠는가 말이오? 그러나 내가 가지지 못한 자격을 초 대인은 갖추고 있소. 방금의 일전만으로도 나는 이미 수명이 수년이나 깎인 상태요. 여러분이 진실로 이 늙은이를 아낀다면 내가 맘 편히 정양할 수 있게끔 속히 초 대인을 대용수로 모셔주시구려.”
단목천산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아무도 더는 토를 달지 못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몸을 일으키더니 초휴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대용수께 인사 올립니다.”
이에 초휴가 손을 내저어 그들을 만류한 후 당당히 위용을 과시했다.
“과분한 예법은 딱 질색이니 모두 허리들 펴시오. 여러분들 중에 대용수로서 나의 적격성과 관련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소? 그러나 개의치 않을 것이오. 여태껏 이 초휴를 따르기로 해서 후회한 자들을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걸 말씀드리리다. 오늘 여러분의 선택이 옳았음을 내가 행동으로 증명해 보일 테니까!”
말끝에 그가 눈짓으로 보천남의 시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청룡회 내부에 역대 용수를 안장할 만한 곳이 있습니까?”
단목천산이 잠시 주저하더니 답했다.
“청룡회 내에 사상신종 시절 조성해둔 독립공간이 있긴 합니다. 창고로 쓰기엔 크기가 여의치 않아서 역대 용수들을 안장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지요.”
“그렇다면 보천남을 그곳에 안장하면 되겠군요.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떠나서 그는 대용수였고 청룡회의 칼날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으니까요. 오늘 그에게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도, 하필 자기한테 맞지도 않는 자리에 앉은 탓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그뿐인 겁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어느 샌가 초휴에 대한 호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방금 초휴의 발언은 그저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듯 마음이 관대한 인물이 수장을 맡는다면 두고두고 보복성 처결에 시달릴 염려는 없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송소가 단천랑의 시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초 대인, 아니 대용수! 저자는 어찌 처리합니까?”
초휴가 시신을 힐끗 보더니 그저 이 한마디로 끝냈다.
“들개 먹이로나 던져주도록!”
“······.”
송소는 순간 당황하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여하튼 보천남이 죽었으니 초휴의 청룡회 장악은 순조롭게 마무리된 셈이었다.
다만 아직 소소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다행히 단목천산이 곁에 있으니 당분간 잡다한 일들은 그에게 미뤄버릴 생각이었다.
단목천산을 완전히 신뢰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전심전력으로 초휴를 보좌하는 것 외에는 그에게 달리 방도가 없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단목천산은 은퇴를 앞둔 고령에 보천남을 죽이고 초휴를 맞이했다. 한마디로 초휴가 그에게 있어 마지막 대용수인 셈이다.
살아생전에 초휴의 영도 하에 청룡회가 안정되고 더욱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초휴만큼 자격요건을 두루 갖춘 수장감을 찾기도 어려운 이 판국에 말이다.
이제 단목천산은 초휴에게 모든 걸 걸었다. 초휴는 지금도 강하지만, 앞으로도 그간의 인과를 깡그리 무시해도 될 만큼 더 강해질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강호는 오백년 전 한바탕 정마대전을 치른 데 이어 그 후 오백년간의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뿐이지, 실제로 이 강호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평화로웠던 세월이 있었던가?
강호가 난세에 접어들면 자기 스스로가 충분히 강하든지, 아니면 충분히 강한 다른 누군가에게 의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단목천산은 이미 본인이 강하지 않기에 초휴에게 의탁하려는 것이다. 이제 이 도박의 승패가 어떻게 날지는 오롯이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단목천산은 곧장 청룡회를 봉쇄하고 초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당분간 임혈의의 정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등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았다.
반면 초휴는 청룡회 내에서 정양을 핑계 삼아 느긋하게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그도 나름 할 일이 많았다.
일전에 그는 자신의 증폭된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로 육가 및 손가 노야와의 일전을 끝마쳤었다. 그 두 노야는 초휴가 상대한 여러 진화련신 중에서도 비교적 약체에 속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었기에 자신의 힘이 얼마만큼이나 증강된 것인지를 미처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