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23)
823화 차례차례 당도하다
육장류는 다소 미심쩍다 싶었다.
“혹시 열쇠를 많이 만들어 둔 거요?”
왕도종이 어색하게 웃었다.
“열쇠 하나당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해서 좀 많이 만들어 두었지요. 나중에 다른 강자들이 오면 그들에게도 줄 생각입니다.”
육장류의 안색이 확 변했다.
“뭐라고? 이 일을 다른 자들에게도 알렸단 말이오!”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다른 종문에서 독고유아와 영현기의 전승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진무교 것인지 아닌지를 신경이나 쓰겠는가? 분명 미친 듯이 달려들어 빼앗으려 할 게 뻔했다.
왕도종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바깥에서 홀연히 살기가 느껴졌다. 왕도종의 눈에 공포의 기색이 어렸다.
“청룡회 놈들입니다!”
초휴는 왕가 저택에 도착한 것이다. 왕가의 진법들이 하나씩 빛을 내기 시작했다. 초휴 일행의 살기를 감지하고 방어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허, 꽤 예민한 진법이군.”
송소가 옆에서 말했다.
“왕도종도 어쨌거나 진법으로 가문을 일으킬 정도의 능력자니까요. 대종사가 머지않은 실력이라고 들었습니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딱하게 됐군. 진법 대사면 진법 대사답게 얌전히 진법이나 연구할 것이지. 왜 굳이 무도 전승을 탐내서 화를 부른단 말인가? 본말전도 아닌가.”
초휴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도전갑이 대역전극으로 변신하며 굉음을 울렸다. 엄청난 기세의 폭발에 왕가의 진법은 층층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초휴의 공세에 거의 일 초도 버티지 못한 셈이었다.
바로 그때 불진이 휙 날아들며 탄탄한 강기가 초휴의 극을 막아내더니, 육장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피를 보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좋게 넘어갑시다. 이미 정보도 얻었을 텐데 굳이 이곳 사람들의 씨를 말릴 필요가 뭐가 있소?”
“진무교 육장류?”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육장류 뒤에 숨어 고개만 내미는 왕도종을 힐끗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탐욕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지만, 왕가 사람들이 전부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청룡회를 막는 게 불가능함을 잘 알았다. 이미 소식을 여기저기 퍼뜨려 원병을 청한 게 분명했다.
“나를 아시오?”
육장류 역시 위아래로 초휴를 훑어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가 얼마 전 보천남을 죽이고 수장이 된 청룡회 수장 임혈의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임혈의에게서 진화련신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상대는 아직 진단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떻게 진단경이 보천남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초휴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에 진무교 장문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독고유아와 영현기에 관한 일 때문이라면 나도 저들을 죽일 이유가 있을 리 없소. 하지만 왕가는 감히 우리 청룡회 사람을 살인멸구 하려 했소. 그러니 왕가를 살려두면 우리 청룡회의 위엄이 무슨 꼴이 되겠소?”
육장류는 미간을 찌푸리고 왕도종을 힐끔 보았다. 왕도종은 이런 이야기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때 주변에서 하나둘씩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강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일 먼저 나타난 두 사람은 각각 진화련신경과 무도진단경이었다. 하나는 초휴도 잘 아는 영백록이었고, 다른 하나는 낯선 중년 무사였다. 그러나 영백록과 비슷한 얼굴을 한 그는 중년이어도 우아하고 고상한 인상이었다.
초휴는 그가 누구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아마 상수 영가의 가주인 영소(嬴昭)일 터였다.
독고유아와 영현기에 관한 일은 영가에서도 중시하고 있었다. 원래 영삼서를 보내려 했으나 영삼서는 최근 폐관에 들어간 지라 영소가 직접 온 것이다.
영백록은 가주 자리를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서 영가는 어떤 일을 누가 처리하건, 그가 함께 가서 경험을 쌓게 했다.
영가 다음으로 온 사람은 갑옷 위에 붉은 피풍을 둘렀고, 험악한 생김새에 거대한 도를 멘 진화련신의 무사였다. 초휴를 본 그가 기이한 표정을 짓더니 냉소했다.
“고작 진단경한테 당하다니, 보천남 그놈도 정말 폐물이었군.”
차림새와 어투로 보아 그의 신분도 추측할 수 있었다. 청룡회의 최대 적수인 백호당 총당주, ‘혈봉천도(血鋒天刀)’ 혁련장봉(赫連長鋒)이었다.
사실 그는 퍽 운이 나빴다.
백호당의 실력은 약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싸움을 즐기는 타고난 장수였다. 그러나 혁련장봉은 재수가 없었다.
보천남은 청룡의 피와 융합한 뒤 가끔 광기가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그리고 마침 절정기의 보천남을 마주쳤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던 것이다.
초휴는 단목천산한테 그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혁련장봉은 동제부터 서초까지 쫓긴 끝에 진화련신에서 진단경으로 떨어졌고 온몸의 뼈가 절반은 부러졌다고 했다.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혁련장봉은 청룡의 피가 힘을 다 소모할 때까지 버텨냈다.
그리고 힘을 다 쓴 보천남에게 반작용이 왔다. 보천남 자신의 피는 거의 뽑혀 나가고 청룡의 피만 남아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계속 싸웠다가는 보천남의 목숨이 위험해질 판이었으므로 혁련장봉은 간신히 도망쳐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상은 몹시 심각했다.
백호당이 동제 조정 밑으로 들어간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간 혁련장봉은 줄곧 요양하고 있었다. 다시 강호로 나선 게, 최상의 몸 상태를 회복해서인지 혹은 보천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혁련장봉 뒤로 동제 조정 사람들도 몇 명 보였다.
우두머리는 수를 놓은 비단 용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초휴는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송소가 알아보고 귀띔해 주었다. 동제 황실의 고수인 ‘고평왕(高平王)’ 여잠로(呂湛瀘)였다.
그는 황실과 가까운 사이로 이미 삼 대째 황가를 지켜왔다. 그 뒤에는 진단경 고수가 몇 명 있었는데, 역시 동제 황실의 공봉당 소속이었다.
같은 동제 사람이었으나 백호당과 동제 황실은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보아하니 별로 화목한 사이는 아닌 게 분명했다.
동제 황실에 뒤이어 누군가 또 들어섰다. 초휴의 눈에 알아채기 어려운 한기가 스쳤다.
바로 순양도문의 진화련신 강자, 호전육진인의 수장 장운자였다. 바로 환허육경에서 초휴를 곤경에 몰아넣은 인물 중 하나였다.
장운자를 본 순간 초휴의 머릿속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떠올랐다. 초휴의 심성이 악독해서라기보다도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지면 가슴에 한을 품었고, 이기면 상대의 씨를 말렸다.
환허육경 때 그는 말로 다 못할 고통을 겪었다.
자신이 노승 정선지장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와중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혈혼주에 반년 넘게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무도를 정리하는 것 외에 초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그들을 어떻게 죽일까를 궁리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명, 한 명에 어울리는 방법을 생각해 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손가 노야와 육가 노야가 제일 간단했다. 빈틈이 제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운자는 쉽지 않았다.
장운자는 순양도문 호전육진인의 수장으로 천강전에서 좌선하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지라 밖에 나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장운자가 이렇게 빨리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문제는 지금 장운자를 죽이려고 정체를 드러내도 좋을 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육장류는 그들을 흩어보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전부 당신이 불러온 거요?”
왕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육장류 정도로 수양을 쌓은 사람조차 이 뻔뻔한 작자를 으깨 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일을 잔뜩 성가시게 만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작 왕도종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부 온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간 동제의 절정급 대문파와 교제를 해 두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단경이 이렇게나 많은 데다 진화련신의 강자까지 있으니 슬며시 뱃심도 생기는 기분이었다.
“여러분, 기꺼이 열쇠를 드릴 테니 부디 우리 왕가를 구해주십시오. 공간이 약한 곳의 지도 반쪽은 청룡회가 갖고 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중인들의 시선이 초휴에게 쏟아졌다.
그때 요염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홀연히 울렸다.
“열쇠? 지도? 다들 이렇게 모인 걸 보니 뭔가 좋은 걸 찾아내셨나 보군. 나도 데려가 주면 안 될까?”
달콤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얇은 비단을 두른 여자가 허공에서 천천히 날아 내려왔다.
그녀는 반투명한 자줏빛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허리께부터 갈라져 있어서 살짝 움직일 때마다 하얗고 늘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옷 자체는 단단하게 두르고 여몄으나, 비단이 하도 얇아서 도드라지게 솟은 가슴까지 슬쩍 비칠 지경이었다.
가장 기이한 것은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이었다. 신녀의 모습이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여 눈을 떼기 어려웠다.
영가의 영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화귀파파(花鬼婆婆, 화귀할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
그녀는 영소를 힐끗 노려보았다.
“밉살맞기도 하지. 화귀부인이라 불러요! 서극 사막의 햇볕이 여간 뜨거워야지. 거기 있다가는 이 고운 피부가 탈 것 같아서 중원이나 한 바퀴 돌아보려던 참이오. 그 김에 나와 함께 봄밤을 보낼 잘생긴 도련님이 어디 없는가 찾아보기도 하고 말이지. 옆에 있는 건 영백록이라는 청년인가 보군? 듣던 대로 영준한 도련님이네. 누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집에 돌아갈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말이지.”
영소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우리 노야와 같은 배분이면서 누나는 무슨 누나! 감히 상수 영가에 손을 댔다간 나찰교를 박살 내 버릴 테니 그리 아시오!”
영소의 말에 초휴도 그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명마 팔파 중 하나인 나찰교의 진화련신 고수 화귀였다.
초휴는 나찰교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서극 사막에 살았기 때문이다.
방칠소야 그들과 여러 번 마주쳤겠지만, 초휴는 부옥산 정마대전 때 나찰교 무사를 한 명 본 것이 전부였다.
화귀파파의 배분은 대단해서, 영소가 말한 대로 영가의 노야인 영사와 같은 항렬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평판은 아주 지저분했다.
천성이 음탕하거니와 쌍수채보(雙修采補)의 요사한 무공까지 익혀, 젊은 남자의 양기로 자신의 몸을 보해 젊음을 유지하고 수명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여러 대문파의 적잖은 청년 제자들이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서 보약이 된 끝에 결국 폐물로 전락했고, 그녀의 행위는 수많은 대문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문파 사람들은 서극 사막까지 찾아가 나찰교에 한바탕 항의하는 소동 끝에 화귀파파는 다소 얌전해졌다.
“어머나, 무서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화귀파파가 톡톡 두드리는 손짓에 가슴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자제력이 부족한 왕가 제자 일부가 눈이 시뻘게져서 바라보는 걸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공기처럼 취급했다.
장운자 같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야 설령 마음이 동한다 한들 뭘 할 힘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화귀파파의 정체를 환히 알고 있으니 겉만 탱탱한 늙은 할멈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의 성인(聖人)이라 할 만한 영백록은 당연히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초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유혹 중에도 가장 저급한 육체적 유혹쯤이야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차라리 매경령의 차녀대법이 화귀파파보다 백 배는 더 강력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