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26)
826화 작은 성의 강자
초휴는 주위의 시체들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저들은 당신의 원수요? 여기에는 어떤 세력들이 있소?”
상기는 그 시신을 힐끗 보더니 냉담하게 말했다.
“상성 사람 외에는 전부 원수지요. 저희가 발견한 보몽수(莆朦樹) 가지를 저들이 빼앗으려 해서 싸움이 난 겁니다. 다른 세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녹도의 세력은 쉼 없이 이합집산하니까요. 상성이 최대의 세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긴 합니다.”
“보몽수는 뭐요? 아주 대단한 보물인가 보지?”
상기가 손짓하자 깡마른 남자가 허리춤까지 오는 바위 뒤로 가더니 굵은 나뭇가지를 파내 왔다.
“이겁니다. 가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미약하나마 여기서 원기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겉껍질 한 겹만 벗겨내면 전부 먹을 수 있지요. 이만한 나뭇가지면 십여 명이 반년은 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초휴는 정말 놀랐다.
그 나뭇가지에 미약한 천지 원기가 깃들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바깥세상 같았으면 약초로도 쳐주지 못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뭇가지일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십여 명을 먹여 살릴 식량이고, 다들 이것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운다니 말이다. 이곳은 초휴의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혹독한 곳이 아닌가. 그는 보몽수를 던져주며 말했다.
“갑시다. 당신네의 상성이란 곳으로 안내하시오.”
상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몽수 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럼 이것은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초휴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저 나뭇가지를 어디에 쓰겠는가?
상기 일행은 아주 순종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초휴를 안내했다. 하지만 초휴는 아무래도 의구심이 들었다.
“아까 그 사람들과는 원수처럼 싸우더니, 왜 나와는 싸우려 하지 않는 거지?”
상기가 담담히 말했다.
“그들은 보몽수를 빼앗으려 하지만 당신은 외래자이니 그러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너무 강합니다. 목숨 걸고 싸울 수는 있지만, 헛되이 죽기는 싫습니다. 녹도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요. 우리가 목숨 걸고 저들과 싸워서 힘을 소모하게 만드는 만큼, 상성의 다른 사람들은 살길이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그렇게 해 봐야 얻는 것도 없이 죽지 않겠습니까.”
초휴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여기의 규칙을 어느 정도 알 듯했다.
상기 일행이 사는 상성은 퍽 멀었다.
상성까지 거의 반나절을 가서야 도착했다.
물론 그들의 걸음이 느려서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는 내력 진기를 대량으로 써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육신의 힘으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으니 느린 게 당연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초휴는 작은 성을 보았다. 그 성은 바깥 세계의 작은 현성 하나만도 못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돌덩이를 쌓아 올린 것이라 단조롭고 볼품도 없었다. 성문에만 상고 시대의 글자체로 ‘상성’ 두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바깥 기척을 느꼈는지 상성에서 한 무리의 무사들이 몰려나왔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빼빼 말랐으나 눈빛이 사나운 노인이었다.
그들 역시 상기 일행과 마찬가지로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노인이 걸친 것만은 제대로 된 장포였으나, 온통 낡고 해져서 수백년은 입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때 갑자기 상기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할아버지! 이자를 죽여요! 실력이 엄청난 외래인이에요. 이자를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으면 이번 검은 폭풍을 넘길 수 있을 거예요!”
돌발사태가 벌어졌으나 초휴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기에게 이것저것 에두른 말로 물어보면서 그는 녹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대충 알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은 도덕이나 윤리적인 규칙 따위는 구천(九天) 바깥으로 내버린 지 오래였다. 이런 자들을 신뢰하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 차지하려고 살인을 서슴지 않을 기세로 싸웠던 자들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초휴가 지닌 물건은 그들에게 값어치도 매길 수 없는 보물일 터였다.
이곳은 공간의 취약한 지점과 이어져 있다, 옛날 독고유아와 영현기가 싸우다 그 취약점이 깨지는 바람에 이쪽 세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초휴와 다른 사람들은 진법의 열쇠를 써서 같은 방법으로 공간을 깨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또 들어온 사람이 분명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상기 일행이 말한 외래인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무사라면 병기와 무공 외에도 각종 수련용 단약이나 치료약을 지니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 것들은 여기 토박이들에게는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이 아니겠는가. 이 황량한 세상에서는 평범한 풀이나 나무조차 찾기 힘드니 영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이곳에 호기심이 생겼고, 옛날 독고유아와 영현기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것도 토박이들뿐이었다.
이들에게 묻는 편이 자기 혼자 사막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듯했다. 그래서 함정이리라 짐작하면서도 따라왔던 것이다.
초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상기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지금 당신은 내 손안에 있는 처지인 걸 잊었나?. 당신 할아버지가 공격하면 내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꼭 나와 동귀어진을 해야 할 원한이 있는 건도 아니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소?”
그 말에 상기는 낯빛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검은 폭풍이 불어 닥치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상성 전체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겠지. 하지만 내 목숨과 당신 목숨을 맞바꾸면 상성의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목숨을 내던질 이유로는 충분해.”
초휴는 상기의 눈에서 한 가닥 공포를 보았다. 아주 미약한 한 가닥이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여기 토박이들에게 죽음 같은 것은 흔한 일인지도 모른다.
상기는 즉각 상성 성주에게 외쳤다.
“할아버지! 뭐하고 계세요? 얼른 이 자를 죽여 버려요! 저번 검은 폭풍 때처럼 상성 전체가 거의 무너지도록 두실 거예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한 사람도 살아오지 못했어요. 제가 죽으면 온 상성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잖아요!”
초휴의 얼굴에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손을 휙 내젓자 검을 쥔 혈영이 상기 곁에 나타나더니, 선혈이 응집된 장검을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상성 성주의 낯빛은 여전히 험악했으나, 견디기 힘든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손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훤히 보였다.
성주를 바라보며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손녀를 아주 많이 아끼는 것 아니오? 생각 잘하시구려. 손끝 하나라도 움직였다간 그대로 죽일 수밖에 없으니까.”
“할아버지!”
상기가 온몸의 힘을 다 끌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처절하게 외쳤다.
초휴는 코를 문질렀다.
속아서 여기까지 온 피해자는 자신인데, 오히려 자신이 남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천하에 몹쓸 악당이 되어버린 꼴이 아닌가. 황당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성 성주가 이를 꽉 악물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슬쩍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발아래 모래가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초휴의 눈앞에 나타난 그가 일권을 날렸다.
그러나 초휴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초휴의 몸에서 내력진화가 타오르며 산해권경이 펼쳐졌다. 산과 바다를 떨게 할 듯한 일권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위세로는 상성 성주보다 훨씬 강했다.
두 주먹이 충돌한 순간 강대한 힘의 폭발이 일어나고, 모래가 일순간에 퍼져 나가더니 먼지 폭풍이 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작 일 초를 교환했으나 초휴는 낯빛이 확 변했다. 저도 모르게 욕설까지 내뱉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기운을 숨기고 있어 몰랐으나, 막상 붙어 보니 상성 성주는 천지통현의 강자였던 것이다!
상기가 자신을 속이려 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는 상기를 역이용해 토박이들의 작은 성을 완전히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에 독고유아와 영현기의 행방, 그리고 상고 대겁난에 관해 천천히 물어보려 했다.
그의 짐작이 맞아떨어지긴 했으나, 다 굶어 죽게 생긴 토박이 무사들 사이에 천지통현의 지존 강자가 있을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다 무너진 작은 성에 거대한 용이 살고 있는 사는 격이 아닌가!
일 초를 교환한 직후 초휴는 나가떨어졌지만, 상성 성주 역시 뒤로 물러났다.
초휴는 그제야 이곳의 천지통현은 바깥과 같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은 그가 제풀에 놀란 것뿐이었다.
상대방이 천지통현의 무사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천지통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무도로써 천지와 감응하여 일거수일투족으로도 천지의 힘을 마음대로 끌어와 쓰는 것이다.
진단경이나 진화련신이 천지의 힘을 약간 빌려오는 정도라면, 천지통현은 완전히 자유자재로 장악해서 사용하는 경지를 뜻했다.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으나 천지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야소남 같은 천지통현의 강자는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어떤가? 여기는 이미 죽은 세계였다. 천지 원기가 극도로 희박한 죽음과 적막의 땅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무슨 힘을 끌어올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작은 모래바람 정도인 것이다.
조금 전 상성 성주가 썼던 것 역시 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뿐이었다. 천지통현이 갖는 최대의 강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휴를 바라보는 상성 성주의 눈에도 경악이 깃들었다.
녹도에는 꾸준히 외래인이 들어왔다. 그러나 대다수는 실력이 시원찮았다.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바깥의 황야에서 굶어 죽거나, 그들 같은 토박이 무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조금 전에도 상기는 초휴가 강하다고 했지만, 상성 성주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초휴를 죽여 버리고 손녀를 구해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상대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분명 진단경인데 이렇게 육신의 힘이 강하다니, 바깥세상의 무도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발전했단 말인가? 진단경의 무사가 이리도 강하다고?
성주는 더 생각하지 않고 몸을 날려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천지의 힘을 끌어 쓸 수 없으니 성주의 무도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이했다. 강력한 기술 같은 것도 없었고, 자신의 몸이 곧 병기였다.
파죽지세로 내지른 일권의 예기는 허공을 뚫을 기세였다. 초휴의 눈앞에서 성주는 이미 사라지고, 대신 천지를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운 장창이 보이는 듯했다.
초휴의 천도전갑이 울리더니 문천패창으로 바뀌었다. 예기는 여전했으나 일순간 천도전갑의 기관 장치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났다.
초휴는 뒤로 몇 발짝을 물러섰다.
상대는 천지통현이었다. 내력의 진기를 쓰지 않고 천지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육신 자체의 힘만으로도 엄청났다.
상성 성주는 손날을 칼처럼 세우더니 천지를 베어 버릴 기세로 초휴를 내리쳤다. 이번에는 초휴도 내력의 소모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천도전갑이 무이천도로 바뀌었다. 그 일도에 공간 전체가 화폭처럼 정지했다. 폭풍이 멈추고 누런 모래 먼지도 허공에 그대로 멈춘 듯했다.
홍진표묘참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상성 성주의 낯빛이 변했다.
그는 발광하는 사자처럼 노호성을 질렀다. 두 눈이 시뻘게지더니 폭음이 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가루가 되었다.
상성 성주가 처음으로 내력 진기를 이용한 기술을 쓴 것이었다. 대광명사의 구변사자후와 비슷한 무공이 홍진표묘참의 공간을 부숴 버렸다.
그러나 초휴의 일도는 이미 상성 성주의 손과 격돌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천지를 덮을 듯한 칼날의 빛이 번쩍이더니 성주는 십여 장을 나가떨어졌다.
초휴는 뒤로 세 발짝을 물러났다.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우세를 점한 셈이었다.
대결을 보고 있던 상기의 눈에 경악과 불신의 빛이 스쳤다. 약간의 후회마저 섞인 눈빛이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초휴와 동귀어진을 할 생각으로 유인해 온 것이었다. 그를 죽이고 물건들을 빼앗으면, 그것으로 사람들이 이번 검은 폭풍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외래인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 온 내력 진기까지 썼는데도 상대를 잡기는커녕 수세에 몰리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데려온 자가 상성의 희망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