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35)
835화 ‘그’의 계획
초휴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던 동안 위서애의 마음은 정말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그는 은마권이 모래알 같기는 해도, 연맹이라 규정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연맹이라고 불러 줄 수도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연맹이라 할 수 있으려면 그 연맹의 간판으로 공인된 인물이 외부인에게 살해당했을 때, 기세등등하게 복수에 나서서 체면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국은 위서애가 들고 일어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까지 내걸고 야소남을 불러낸 뒤에야 은마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었다.
은마의 변변치 못한 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츄휴가 죽은 뒤로 은마 실력자들은 위서애 일맥에 전인이 없어졌다고 여기고, 그의 위세를 빼앗아보려고 탐욕에 찬 눈을 번들거렸다. 한심한 정도가 아니라 이득에 눈이 먼 것이었다.
그러나 위서애의 말은 들은 초휴는 별로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은마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령인 위서애의 심기를 상하게 할 것 같아 굳이 입에 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위서애 본인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니 초휴도 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위 선배님, 사람은 제각기 뜻이 다른 법입니다. 곤륜마교가 사라진 지 오백년이 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곤륜마교건 은마건 하나의 상징에 불과할 겁니다. 나서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 강권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요. 지금 은마권을 통틀어 우리를 기꺼이 도울 자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위서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 안 될 게다. 무상마종과 내 옛 친구 둘, 그리고 적련마종처럼 대부분 일에서 중립을 지키는 자들이 있을 뿐이니까. 진조선이 인물이기는 하지만 적련마종 바깥을 볼 줄을 모르는 게 아쉽지. 그리고 나머지는 네가 봤던 유마애, 무마교 같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은마를 자신들의 임시 거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너를 해치지는 않겠지만, 굳이 너에게 마음을 쏟을 일도 없지. 나머지는 도움을 청할 것도 못 된다. 해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인 무리니까.”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침묵했다.
단목천산이나 여봉선 같은 사람들은 은마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초휴가 은마의 후계자인 만큼 특별한 대우를 받는 줄 알고 있었다.
은마 내부가 그 정도로 엉망일 줄은 미처 몰랐다. 후계자 노릇도 쉬운 게 아니구나 싶었다.
위서애가 탄식했다.
“어차피 이득을 주고 거래를 해야 한다면 배월교와 손잡는 게 차리라 낫지. 그들은 적어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상황이 까다롭구나. 야소남은 아주 중요한 폐관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배월교의 사무는 동황태일과 배월교 대제사가 모두 처리하고 있다. 지금 배월교를 찾아가 봐야 야소남은 만날 수 없을 게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배월교는 남입니다. 저쪽은 명마고 우리는 은마가 아닙니까. 일시적으로 손을 잡을 수야 있겠지만 모든 희망을 그들에게 거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겠지요.
위서애가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신승’ 나마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은마에는 천지통현경의 강자가 없는데, 신승 나마가 나서면 어찌하겠느냐?”
은마권이 오랫동안 모래알 같기는 했으나, 그 모래알이 한데 뭉쳤을 때의 힘은 여전히 놀라웠다.
진화련신이나 진단경 무사의 숫자는 충분했고 분파도 수십 개는 되었다. 심지어 음마종처럼 매경령 한 사람뿐인 종문이라 해도 무공만큼은 저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은마는 한 번도 배월교처럼 우뚝 서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얼까?
저마다 따로 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수백년 동안 천지통현의 강자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였다.
천지통현쯤 되는 인물이 강호에 매우 드물기는 했다. 전설 속에는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쯤 되면 지존이라 할 만했다. 혼자서 천하를 제압할 만한 힘을 지닌 그런 경지의 인물은 누구도 섣불리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은마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다 같이 모여서 한꺼번에 나서봐야 움직이는 표적에 불과했고, 잘못하면 전멸할 수도 있었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승’ 나마에 필적할 사람은 찾을 수 없겠지만, 그를 잠시 잡아둘 만한 사람은 있을 테니까요.”
위서애는 다소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더 묻지는 않았다.
초휴는 다른 이들과도 앞으로의 계책을 상세히 의논했다. 수보리선원이나 다른 자들이 정말 공격해 오면, 이편의 세력을 어떻게 배치해서 누구를 상대케 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지금까지 초휴는 숨어 있었다. 적은 드러나 있고 이편은 숨어 있으니 초휴 쪽이 판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모두의 눈앞에 드러난 상태인 것이다. 모두의 눈에 뚜렷하게 잘 띄는 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면 오는 대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약하면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주도권을 잃게 될 게 뻔하니까.
초휴는 일단 진무당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쨌거나 진무당은 초휴 휘하 중 최강의 세력이었고 그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곳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진무당은 처음부터 매경령과 방호가 버티고 있었고, 위서애가 나서 준 적도 있었다. 초휴가 부재일 동안 조금 골치 아픈 일은 있었으나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진무당 자체의 실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매경령은 그간의 일을 초휴에게 상세하게 말해주더니, 생긋 미소를 지으며 그를 놀렸다.
“청룡회의 그 여자애가 당신을 좋아하던데?”
초휴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농담하지 마십시오. 고작 한 번 본 게 전부면서 그런 걸 어떻게 단언한단 말입니까.”
매경령이 손가락을 세워 살랑살랑 흔들었다.
“여자의 직감이란 거죠. 눈치 못 챘어요? 그 여자애는 계속 빤히 날 바라보더라니까요.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그 애의 적의가 느껴지던걸. 자기 남자를 빼앗은 여자를 바라보는 눈초리였단 말이죠.”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당신한테 적의를 품는 거야 당연하지요. 나와 무관하게 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여자는 다 그럴 겁니다.”
차녀대법을 수련한 매경령은 본인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대단했다.
화귀파파의 흡인력이 저급한 육체적 욕망에 국한되어있다면, 매경령의 아름다움은 마음 깊은 구석까지 스며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남자에게는 결코 불쾌할 게 없는 매력이겠지만, 다른 여자들이 볼 때는 기분 좋게 느껴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같은 속성끼리는 서로 배척하는 법이기도 한 것이다.
매경령이 코웃음을 쳤다.
“낙비홍 그 아이와는 잘만 지내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초휴가 다소 기괴한 어조로 말했다.
“낙비홍? 낙비홍이 무슨 여잡니까.”
낙비홍은 기루에 가서 데리고 즐길 아가씨를 찾아대는 종류의 여자였다. 그가 빤히 보는 앞에서 은근슬쩍 목자의를 꼬시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초휴는 낙가에서 억지 혼인을 강요했던 일 때문에 그녀의 마음에 그늘이 져서, 성적 취향이 그렇게 돼버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지요. 진무당에 돌아가면 즉각 모든 인력을 불러들여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항륭 쪽은 신경 쓸 거 없어요. 어차피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인데, 우리가 당장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황제도 딱히 트집을 잡지는 못할 겁니다.”
매경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 나갔다.
* * *
한편에서 남몰래 초휴와 매경령을 관찰하던 목자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자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매경령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같은 적의가 일었다. 그녀를 초휴 곁에서 철저히 떼어놓고 싶었다.
그때 낙비홍이 또 목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목자의가 느닷없이 물었다.
“비홍 언니, 진무당 매 부인은 초 공자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낙비홍은 목자의가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고 답했다.
“엄청 오래됐지. 매경령은 원래 관사우의 부인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표면상의 신분일 뿐이었고, 관사우가 죽은 뒤에는 초휴랑 같이 다녔지만. 사실 매경령의 진짜 정체는 음마종 성녀야. 위서애 선배님과도 사이가 아주 좋고 말이지. 은마권에서는 퍽 지위가 높은 사람이니까.”
낙비홍이 그렇게 말하자 목자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매경령이 음마종 성녀라고는 하지만 자신 또한 지금은 청룡회를 대표할 만한 위치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매경령보다 젊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속마음을 낙비홍이 알아챘다면 그녀는 목자의가 너무 순진하다고 놀렸을 것이다.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지만, 어떤 남자는 성숙미가 있는 편을 더 선호하기도 하니 말이다.
* * *
초휴는 매경령과 상의를 끝낸 후 다시 위서애에게 가서, 무상마종에 구원을 청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무상마종은 줄곧 곤륜마교의 정통을 수호하는 편에 서 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초휴가 후계자의 신분을 내세워서 무상마종에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윗사람 노릇을 하려면 만사에 상과 벌을 제대로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초휴는 아직 은마권 전체를 통솔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무상마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우게 만들려면 그로서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했다.
초휴는 북연 땅에 무상마종의 거점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 성의를 표할 생각이었다.
무상마종은 은마권의 여러 세력 중 뿌리가 깊고 기반이 든든했다. 대놓고 일을 벌일 때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은밀하게 숨어 다녔다. 세력 범위 역시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한 동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연 땅은 초휴의 구역인 것이다. 만일 진무당이 무상마종의 뒤를 봐준다면 동제에서보다도 더 편하게 숨어 있는 게 가능할 터였다.
의논이 끝난 후에야 위서애가 말했다.
“신승 나마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뭘 어쩌려느냐? 무려 천지통현의 지존 강자다. 결코, 얕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수준의 강자를 얕볼 리가 있겠습니까. 위 선배님, 제가 했던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그 녹도라는 공간에도 천지통현까지 수련한 사람이 있더란 말이죠. 그곳에서는 거의 진기를 쓸 수가 없긴 합니다. 천지의 힘은 말할 것도 없지요. 천지통현이라 해도 결국 몸뚱이만 갖고 싸워야 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서 데리고 나온다면, 나마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초휴의 말은 즉흥적으로 떠올린 발상이 아니었다. 그는 몸속의 통천 열쇠 덕분에 아무 때나 녹도 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천량 그 노인네는 진짜배기 천지통현이 아닌가. 안 써먹고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초휴의 말을 들은 위서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침중하게 말했다.
“계획 자체는 괜찮은 거 같다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해야겠구나. 세상에서 정확하게 아는 게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일 것이다. 네가 그자를 이용하면 그자도 너를 이용하지 말란 법이 없지. 네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존재를 다룰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위서애는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볼꼴 못 볼꼴을 무수히 봐 온 사람인지라, 행여 초휴가 자신이 짜낸 계책에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절대적 확신이 없으면 저도 위험을 무릅쓰진 않습니다.”
초휴가 그렇게 말하자 위서애도 더는 뭐라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