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39)
836화 콩가루!
허도가 홀연히 일어섰다.
“대광명사로서는 가나 안 가나 좋을 게 없긴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저 혼자 다녀오는 거로 하지요.”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혼자 간다고?’
같은 사형제끼리 서로의 됨됨이를 모를 리가 있을까. 허도는 도무지 못 미더운 사람이었다. 지금 같은 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니, 혹시 대광명사에 가만히 있느라 좀이 쑤셔서 저러는 건 아닐까?
좌중의 못 미더워하는 시선을 느낀 허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그럽니까? 자꾸 선입견을 품지 말란 말입니다! 저도 일의 경중 정도는 압니다. 제가 그래도 삼대 선당 상좌인데 그 이름으로도 안 된단 말입니까? 가 봤다가 초휴가 못 버틸 것 같으면 끼어들어서 사마외도를 무찌르고 명성이나 좀 얻지요, 뭐. 만일 상황이 재미없게 돌아가면 중재나 하고요. 제일 나쁜 결과라고 해야 체면이 깎이는 걸 텐데, 나 혼자 체면 깎이는 게 다 같이 깎이는 것보다 낫잖습니까.”
다들 괴이쩍은 표정이 되었다. 허도가 이렇게까지 철든 소리를 할 때도 있구나 싶었다.
확실히 이럴 때 나서기는 그들 중에서 허도가 제일 적합했다. 나서면 공격할 수 있었고 물러나도 지켜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도의 성격은 외부에도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좀 체면 깎일 짓을 한들 대광명사의 명성에는 큰 손해가 없을 터였다.
결국, 허운은 허도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허도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자니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정말 그냥 대광명사 밖으로 나가서 술이나 마시고 놀다 오고 싶은 건 아닐까?
* * *
한편 진무교는 순양도문의 제의를 거절했다.
육장류는 먼젓번 배월교 정마대전에도 나선 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진무교 장문 신분 이전에 정도 문파의 일원으로서 빠질 수가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두 문파와 초휴 간의 일이었고, 아무리 봐도 사적인 은원이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진무교로서는 가급적 그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인과에는 덜 얽힐수록 좋으니 말이다.
용호산 천사부도 비슷한 시각에 전갈을 받았다.
지금 용호산의 일을 맡아 보는 사람은 ‘어소진인’ 장도령으로, 장승정의 아버지였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서 이제 갓 오십을 넘겼다. 우아한 생김새에 성격도 반듯하고 엄격했으며, 조금 고지식하기는 해도 일 처리가 매우 꼼꼼했다.
장도령이 천사부 일을 맡아 본 지 십 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천사부 전체를 질서정연하게 정돈해 놓을 정도의 수완을 발휘했고, 노천사가 나설 만큼 중대한 일만 아니면 혼자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었다.
천사부에서 그의 인망은 대단히 높았다. 현룡자처럼 그보다 훨씬 실력이 강한 사람조차 존중의 표시로 장도령을 사형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안이 중대하니 장도령이 혼자 결정할 수 없었고, 노천사에게 물어봐야 했다.
노천사는 천사부 뒷산의 작은 초가집 뜰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곁에는 현룡자와 장승정이 함께하고 있었다.
장승정은 도가 경전을 들고 진지한 얼굴로 노천사와 토론 중이었다. 현룡자는 옆에서 잣 껍데기를 까다가 한 무더기가 쌓이면 아무렇게나 노천사의 찻상에 올려놓았다. 그야말로 대우가 천양지차였다.
장도령은 뜰에 들어서자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노천사, 순양도문에서 수보리선원과 손을 잡고 온 천하 불종과 도문에 초휴를 토벌하자고 호소해 왔습니다. 이참에 아예 은마권과 일전을 불사할 모양입니다. 우리 천사부도 참가해야 할까요?”
편안하게 긴 의자에 누워 있던 노천사는 눈을 반쯤 감았다.
“너는 천사부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장도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자는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젓번 배월교 정마대전에서 우리 천사부는 나서지 않았지요. 야소남이 선수를 쳤던 데다 배월교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휴와 은마의 실력은 배월교와 야소남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집니다. 이번 싸움에서 공을 이루면 천사부의 명성도 높아질 테니 싸울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자 노천사가 느긋하게 말했다.
“도령아, 오랫동안 나이를 먹은 이 늙은이가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강호에서 행세깨나 하던 노인네들이 모두 죽어 고꾸라진 지가 오래인데도 말이다.”
장도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을 극한까지 수련하신 데다 도문의 비전인 까지 융합하셔서 우리 천사부 조사님의 경지마저 초월하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노천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다.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장도령은 놀란 눈치였다.
노천사 옆에서 잣을 까고 있던 현룡자가 히죽 웃었다. 노천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작은 번개가 현룡자의 머리를 때렸다.
현룡자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노천사는 눈을 부릅뜨며 코웃음을 쳤다.
“껍데기를 제대로 안 까고 뭐하느냐!”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담담히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천사부가 도문의 우두머리이자 정도의 으뜸이라고들 말하는 모양이더군. 하지만 그런 말은 한 귀로 듣고 넘겨야 하는 거지, 진지하게 여기면 안 되느니라. 역대로 정도와 마도를 막론하고 두목 노릇을 하려던 자들은 좋게 끝난 적이 없었다. 곤륜마교가 한때 으뜸이었지만 결국 멸망했지. 진무교도 으뜸이었지만 몇십년쯤 휘황찬란했을 뿐이다. 순양도문은 여 조사의 전인으로서 천년 넘게 우쭐거렸지만, 근래로 올수록 윗세대만 못한 꼬락서니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잡스런 일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너는 네 시야가 누구보다도 넓어 강호 전체의 대세를 살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기실 제 발아래의 땅만 볼 줄 알아도 남보다 오래 사는 법이다.”
장도령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가 뜰에서 물러나자 노천사는 장승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아비는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고지식해서 임기응변에 서툰 것이 흠이란 말이지.”
현룡자가 비웃었다.
“노천사, 아들 앞에서 아버지의 흉을 보시다니 너무하십니다.”
그 소리에 노천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금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이번에 떨어진 것은 물동이만 한 굵기의 자소신뢰였다.
강호에 풍운이 일고 있다는 소식은 초휴 쪽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첫 번째 골칫거리는 뜻밖에도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은마권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초휴는 은마권의 태도가 어떤지를 잘 알았다. 위서애 일맥을 제외하면, 은마권을 통틀어 초휴 편에 설 세력은 무상마종 정도밖에 없었다.
적련마종이나 유마애, 무마교 같은 세력은 거의 중립이었다. 은마권 공통의 이익으로는 그들을 끌어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또 한 무리가 있었다. 은마의 이익을 따지기는커녕, 은마를 이용해 제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이었다.
수보리선원과 순양도문이 손을 잡았고, 천하 불종과 도문이 함께 초휴를 향해 출수하려는 판이다. 어쩌면 은마 전체가 말려들지도 모르는 이때, 은마권 원로 몇 사람이 청룡회로 초휴를 찾아왔다. 마치 죄를 묻기라도 하겠다는 태도로 말이다.
초휴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는 위서애의 전갈을 받고서야 왔지만, 이번에는 저들이 알아서 온 것이었다.
위서애는 청룡회 의사청, 상석 옆에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곁에는 두 사람이 앉았는데, 하나는 적련마종의 진조선이었다. 그는 따지러 온 게 아니라 양측을 화해시키러 온 것이었다.
적련마종은 옛날 곤륜마교에 예속되어 있던 종문 중 하나였다. 곤륜마교가 멸망한 후 적련마종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훗날 적련마종은 제자를 대거 정리해서 자질이 평범한 자들은 모두 내보냈다. 적련마종에 남을 수 있었던 자는 하나같이 정예 중의 정예였다.
사람이 제일 적었을 때는 백 명이 못 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적련마종이 제일 강성했던 것 은 바로 그 시기였다.
오랫동안 적련마종은 조그마한 자신의 텃밭을 지키는 데만 집중했다. 위서애의 말을 빌리자면, 진조선과 적련마종이 은마에 소속감을 느끼기는 했다.
그러나 은마 전체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적련마종은 후자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은마권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심지어 내분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었다. 진조선은 어느 편을 도울 생각은 없었으나, 일단 양쪽을 중재할 생각으로 왔다.
위서애 맞은편에는 검은 장포로 온몸을 감싼 사람이 앉았다. 머리에 두건을 썼는데 얼굴 쪽은 줄곧 안개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니 나이 또한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가 바로 무상마종의 종주 ‘천면무상(千面無相)’ 임천추(任千秋)였다.
이자의 경력이나 실력 등은 모두 신비에 싸여 있어서 위서애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은마권에서의 명성은 대단했다. 구대 세가에 속했던 남궁세가를 혼자 힘으로 멸문했기 때문이다.
물론 초휴도 가문을 멸문시킨 적이야 많았다. 그러나 음모나 계책을 썼건, 대놓고 싸웠건, 결국은 죽였다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임천추는 달랐다. 그는 무상마종답게 은밀히 움직였다. 가짜 신분으로 남궁세가에 잠복한 뒤, 객경 군사가 되어 남궁씨의 신임을 얻은 것이다.
그는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남궁씨를 구대 세가의 가장 끝자리에서 중견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다른 세력과도 손을 잡아 줄곧 구대 세가 사이에 분쟁을 일으켰다.
중간에 뜻밖의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임천추는 정말 혼자 힘으로 온 강호에 풍파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국은 상수 영가가 나서서 남궁씨의 세력 확장을 막았고, 나머지 세가가 연합하여 남궁세가를 멸문시켰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남궁세가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멸문당할 때도 죽을힘을 다해 그만은 탈출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가 남궁씨를 위해 복수해 줄 거라 믿었던 것이다.
임천추가 온 것은 향후 대책을 초휴와 상의하기 위해서였고, 초휴와 위서애 편을 들어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지금 초휴 앞에 있는 세 사람은 은마권 진화련신 원로들이었다. 초휴는 그들의 목소리를 얼핏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초휴 뒤에 선 저무기가 낮은 소리로 그들을 소개해 주었다.
“방금 무덤에서 파낸 송장 같은 얼굴을 한 늙다리 보이나? 귀명종 종주 사도기(司徒棄)일세. 귀명종은 곤륜마교 시절에는 이름을 내세울 처지도 못 되었지. 그때의 귀명종 선조도 진화련신에 불과했네. 지금 귀명종은 다 합쳐도 열 명이 되지 않네. 숨만 붙어 있는 셈이지. 하지만 근래 자질이 썩 괜찮은 제자를 거두더니 우쭐대고 있는 판이야.”
“저쪽 핏빛 장포에 머리에 붉은 연꽃을 꽂은 노인은 이추적(李秋荻)이라고 하네. 홍련마존의 전인을 자칭하지만 사실 제 얼굴에 금칠하려는 수작일 뿐이지. 원래는 몰락한 가문의 소저에 불과했지. 우연히 홍련마존의 전승을 약간 얻어서 마도에 들어온 거라네. 지금 경지에 이를 때까지 수련한 무공 중, 홍련마존의 전승은 아마 십 분의 일도 안 될 걸세. 그러고도 전인이라 자칭하니 우습지. 옛날에 남자에게 차인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고집이 세고 과격한 데다 성격도 날카롭고 각박하다네. 은마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편일세. 진화련신의 실력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은마권에 인물이 이렇게 부족하지 않았으면 저런 여자는 받아주지도 않았을 걸세.”
“경극 배우 같은 복장에 중원 밖에서 온 듯한 마지막 늙은이는 ‘화마존자(火魔尊者)’ 곤막(昆莫)이라네. 저 사람이야말로 정통 곤륜마교의 전인이지. 곤륜마교 서극 사막 분타의 후예니까. 하지만 그 분타는 위기에 빠졌을 때, 나찰교 잡것들이 습격하는 바람에 멸망했네. 다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지만 곤막의 선조는 동문을 버리고 도망쳤지. 역시 민족이 다르면 속도 다른 거야. 이민족은 믿을 게 못 되네.”
저무기의 인물소개를 모두 들은 초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딱 한 단어였다.
‘콩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