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44)
844화 내기
둘이 싸움을 시작하자 어지간한 진화련신마저 진땀을 흘리게 할 위력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자 결국 우세를 점한 사람은 여봉선이었다.
다운자의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신병 순양이 무쌍보다 못해서도 아니었다. 다운자의 전의가 여봉선과 비교할 바가 못 되는 탓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신병 무쌍을 휘두르며 마신무쌍극의 위력을 극한까지 발휘하는 여봉선의 수려한 얼굴은 끝없는 마기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결국, 다운자는 연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두 손이 저릿했으나 그저 쓴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여봉선은 전의가 엄청났지만 다운자는 싸울 마음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싸우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순양도문이 어떤 상황인가? 수천 년 이래 가장 쇠약해진 시기다. 뛰어난 인재가 씨가 마르다시피 한 상태라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때에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힘을 쌓아 앞날을 도모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호전육진인의 수장인 장운자는 필요하지도 않은 원한을 맺고 다니더니, 결국은 남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순양도문 사람들을 자극해서, 초휴 주살을 목표로 이번 정마대전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능운자는 분별 있는 사람이었고 다운자 역시 총명했다. 그들은 순전히 끌려서 이 싸움에 나온 것이었다.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초휴 측은 자신의 세력을 지키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 있었다. 특히 여봉선과 초휴는 서로의 목숨도 맡길 수 있는 벗이었다. 여봉선이 죽기로 덤비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싸우는 자세는 완전히 다른 층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다운자로서는 여봉선처럼 격렬한 전의를 끌어올리기 어려웠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여봉선의 실력에 다소 놀랐다.
과거 여봉선은 청년 세대 중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여온후의 전승을 받기는 했으나, 초휴와 여봉선 세대에는 괴물이 너무 많았다.
초휴, 장승정, 종현 세 사람이 거의 모든 강호인의 이목을 독차지했다. 얌전한 영백록마저 무쌍공자로서 명성이 드높았고, 검도 천재인 방칠소까지 있었다.
그러나 여봉선은 억지로 명성을 얻으려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명성은 자연스레 쌓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금에 와서야 그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된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슬쩍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이렇게 놀라운 천재를 물건처럼 이용하려 들었으니 월녀궁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진심으로 대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어야 했건만.
그러나 여봉선은 초휴의 절친한 벗이었다. 초휴가 이번 위기를 버티지 못하면 여봉선 역시 큰 피해를 당할지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 * *
싸움을 지켜보는 인파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황량한 산이 하나 있었다. 편하게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지간해서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곳에는 검왕성의 검남왕 독고이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옆에는 방칠소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열심히 싸움을 보는 척했다.
그는 독고이가 자신을 보지 않을 때마다 조그마한 호리병을 꺼내 한 모금씩 홀짝이는 중이었다.
“칠소, 어찌 보느냐?”
독고이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방칠소는 깜짝 놀라는 바람에 술을 엎고 말았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이걸 핥아서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까 용변 보고 손을 안 씻었던 것 같은데.’
방칠소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뭘 어찌 봅니까. 눈으로 보지요.”
독고이가 눈을 부릅떴다.
“이 싸움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게야!”
방칠소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고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말이 안 되는 싸움입니다. 애초에 정선지장 그 노승이 왜 초휴를 죽이려고 했는지 지금까지도 아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수보리선원은 싸움을 시작하면서도 뚜렷한 명분이 없었어요. 그냥 사마외도를 주살하자는 구호만 외쳤을 뿐이죠.”
“어쨌건 저는 그들이 하는 말을 안 믿습니다. 정말 사마외도를 주살하려면 배월교는 왜 지금까지 놔뒀답니까? 모든 일이 그 영문 모를 싸움에서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초휴의 성격을 생각해 보세요. 참을성이 강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남에게 맞아 멀쩡한 이가 빠졌는데 피만 삼키고 있을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그로서는 복수하는 게 당연한 거죠. 지금 싸우는 것도 그럴 만하고요.”
독고이가 잠깐 멈칫하다가 말했다.
“지금 네 말은 초휴 편을 드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물론 네가 초휴와 사이가 좋은 것은 안다. 칠소, 명심해라. 너는 검왕성의 후계자다. 만일 초휴가 은마권의 후배에 불과했다면 너희 둘이 붙어 다니는 것쯤이야 그러려니 하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게다. 네가 엉터리 같은 짓을 한두 번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지금 초휴의 위세를 봐라. 저게 어디 무림 후배라 하겠느냐? 이미 마도의 거물 수준이다. 곤륜마교 멸망 이래, 배월교와 옛 구천산 오대천마를 제외하면 초휴만큼 위세가 대단했던 자도 없을 게다. 그러니 지금 같은 때에 초휴와 연루되면 정도 종문들의 원성을 사게 될 거란 말이다.”
그 말에 방칠소가 미간을 찡그렸다.
“노야, 그 연세에도 아직 순양도문 호랑말코 도사들처럼 만사를 흑백으로 나누십니까?”
독고이는 담담했다.
“내가 그리 고지식한 사람은 아니다. 강호에 갓 출도했을 무렵에도 그런 멍청한 소리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강호에 정도가 있으면 마도가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아야지. 흑백을 나누지 않을 수도 있고, 정마를 따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 한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건 검의 양날과 같다. 결국, 남을 벨 때 쓰는 것은 한쪽 날 뿐이지. 지금은 정도의 칼날이 더 예리하니, 검왕성이 곧 정도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정도 무림 편에 서야 하는 게다. 독고유아라도 다시 나타나 이 국면을 뒤엎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검왕성이 어디 서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는 말이다.”
방칠소는 드물게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합니까? 우리 검왕성만의 길을 갈 순 없는 겁니까? 노야, 깜박하셨나 봅니다. 검은 찌르는 것입니다. 꼭 어느 한쪽 날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독고이가 그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말대꾸야! 보라고 하면 입 다물고 얌전히 보란 말이다. 좌우간 초휴의 수단이 묘하긴 하더군. 먼지 하나 안 남고 사라졌는데 되살아나다니. 하지만 이번에는 나마까지 나선 이상 패할 게 분명하다. 혹 어찌어찌해서 부활한다 해도 굴리던 사업은 모두 망하고 말게야.”
방칠소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아는 초휴는 절대 충동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이렇게 대놓고 맞서는 이상 뭔가 방법을 마련해 두었을 겁니다.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간단히 패할 리는 없어요.”
“노야, 저랑 내기하시렵니까? 만일 초휴가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 앞으로 일년 동안 저를 가두지 마세요. 그리고 서역 월지국에서 나는 취월 포도주를 열······ 아니! 백 단지를 주시고요! 반대로 제가 지면 일년 동안 검각에서 착실하게 검법만 수련하겠습니다. 어때요?”
독고이는 다소 괴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초휴를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 촐싹대는 녀석이 얌전하고 착실하게 수행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자진해서 착실하게 수련한다면야 당연히 좋은 일일 터였다. 해서 독고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기하자꾸나.”
방칠소는 초휴와 능운자가 겨루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초 형! 아니, 초 형님, 내 일년의 행복이 전부 형에게 달렸다네. 제발 이겨주게!”
방칠소는 초휴를 믿었으나,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초휴가 이미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몰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초휴는 천지통현에 반쯤 발을 걸친 능운자의 강대한 실력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초휴 편 사람들 역시 일부는 우세를 점하고 있었으나, 상대보다 수가 적은 게 치명적이었다.
청룡회 진법의 도움을 받고는 있었지만, 경지가 낮은 무사들은 이미 패퇴하거나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었다.
능운자의 몸에서 순양의 별빛이 반짝였다. 그가 휘두른 일권의 강대한 힘에 초휴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를 바라보며 능운자가 침울하게 말했다.
“아직도 버틸 셈인가? 이제 싸움을 끝내는 게 어떨까? 더 버텨 봐야 양패구상을 할 뿐이야. 우리 순양도문은 손실이 클 테지. 하지만 자네는 부하들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셈인가? 자네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여봉선이 다쳐도 상관없는가?”
능운자는 자신이 우세를 점했는데도 승자의 자세로 초휴를 내려다보고 말하지 않았다. 승리 선언을 하듯 투항을 권하지도 않았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번 싸움의 승패가 어찌 되건, 계속 이렇게 싸우다가는 둘 다 패하는 꼴이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초휴를 죽여 순양도문의 체면을 살린다 한들 장운자가 살아 돌아올 리가 없었다. 제 삼차 정마대전에서 죽은 무사의 숫자 또한 이미 많지 않은가. 그러니 한발 앞서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손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휴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더는 못 버틸 것 같소? 능운자 장문, 정작 못 버티는 쪽은 당신이 될 거요. 이곳의 내 세력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소?”
그 순간 능운자는 뭔가를 떠올린 것처럼 처음으로 낯빛이 변했다.
* * *
그 시각 하동군 호일봉.
검은 옷에 검은 철가면과 검은 삿갓을 쓴 청룡회 살수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청룡회 총타 무사의 구 할과 천강 삼십육 분타의 정예가 전부 집결한 것이다. 그 숫자는 천 명에 달할 듯했다.
이 자리에 모인 청룡회 살수들은 모두 백여 명 이상을 죽여 본 자들인지라 살기가 농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자들이 이렇게 떼로 모이자 날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본래 구름 없이 맑던 호일봉에 먹구름이 가득 몰려들어 흉흉한 느낌을 주었다.
순양궁 앞에 선 중년 도사는 빽빽하게 모여든 검은 그림자들로부터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를 느꼈다. 그 강대한 기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분명 장문이 제자들을 이끌고 청룡회를 궤멸하러 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청룡회 정예가 이곳에 모였다는 말인가?
중년 도사 뒤에는 젊은 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산문을 열고 나가서, 저 흉악한 도적들을 쳐 죽이자고 저마다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중년 도사가 노호성을 질렀다.
“다들 입 닥치지 못하느냐!”
풋내기 도사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으나, 그는 청룡회 정예 살수의 공포를 잘 알았다.
능운자는 이번 싸움에 종문의 정예를 거의 다 데리고 떠났다. 지금 종문에 남은 사람은 그처럼 전투력이 시원찮아서 도동들에게 경문이나 가르치는 반쯤 폐물 같은 자들뿐이었다.
물론 순양궁, 혹은 호일봉 전체에 무수한 진법이 펼쳐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청룡회 살수가 상대라면 자동으로 운행되는 진법의 위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터였다.
중년 도사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당장 대진을 가동해라!”
제자들이 헐레벌떡 진법을 가동하러 달려갔다. 호일봉 전체가 진법의 광휘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년 도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순양궁 내의 진법 역시 제대로 가동하려면 사람이 직접 제어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순양궁에는 자신처럼 전력이 되지 못하는 도사들과 산문을 나서본 적도 없는 풋내기 제자들만 가득했다.
진법 같은 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진법이 가동되자마자 즉각 비법을 써서 능운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산기슭에 선 단목천산은 호일봉을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설마 청룡회가 순양도문의 본거지를 공격하다니.
물론 청룡회에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보천남이 단신으로 대광명사에 쳐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순전히 보천남이 혼자서 벌인 미친 짓이었고, 이번에는 초휴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 싸움에서 꼭 이기기라는 자신은 단목천산에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