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46)
846화 강호의 풍파
다운자는 문득 뭔가 떠올린 듯 낯빛이 확 변했다.
“사형,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습니까?”
순양도문에서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다운자뿐이었다.
능운자는 왜 장문이 되자마자 폐관하고 두문불출했던가?
순양도문 내 세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때 주화입마에 들었던 것이다. 수련하다 생긴 문제가 아니라 심마 때문이었다.
그때 능운자는 혼자서 마도 종문 하나를 멸망시켰고, 살아 있는 생명은 개 한 마리 남겨두지 않았다. 그 일은 정도 종문에서 미담으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능운자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그는 죽여서는 안 되는 자들까지 죄다 죽였다. 마도라고 해서 전부 악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도 종문이야말로 위선자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진정 선량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인과가 너무 심하게 얽힌지라 일일이 흑백을 가릴 수가 없었다. 능운자는 죽여야 할 자들을 죽였고, 죽여서는 안 되는 자들도 죽였다. 모조리 다 죽여 없앤 것이다.
그는 그 싸움으로 막대한 명성과 영예를 얻었으나, 떨쳐낼 수 없는 심마도 함께 갖게 되었다. 그는 순양도문을 맡은 후 기나긴 폐관에 들어갔다. 명목은 수련이었으나 실제로는 심마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다운자는 그리도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사형이 심마를 완전히 부숴버렸으리라 생각했었다.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능운자는 심마를 완전히 제압하기는 했다. 심지어 그 힘의 일부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천지 만물에 양이 있으면 음도 있는 법이다. 순수한 양이 정(正)이라면 절정의 음은 사(邪)일까?
능운자로서도 알 수 없었다. 만일 그것을 깨달았다면 순양도문에 대한 그의 믿음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심마는 자신으로부터 탄생한 것이었다. 그 힘 역시 그 자신의 부정적 힘에 속했다. 정과 사, 음과 양,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기본이 되는 대도(大道)가 아니겠는가.
능운자와 심마는 동시에 검을 뽑았다. 두 검이 온 천지의 힘을 끌어당기며 가장 순수한 음양의 힘으로 변했다.
일순간 바람이 휘몰아치며 구름이 천변만화했다. 멀리 선 사람들에게는 허공에서 먹구름과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태극도를 이루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그 검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천지통현이나 발휘할 법한 경지였고 심지어 나마조차 얕볼 수 없는 위력이었다.
그 순간 초휴의 몸에서 붉은빛이 확 터져 나왔다. 핏빛이 온 천지를 가득 채울 듯했다. 거대한 피의 기둥이 십여 리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혈혼주 속의 육강하는 얼어붙고 말았다.
혈마변천대법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으나 자신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초휴는 꽤 자주 썼다. 불멸마단이 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심지어 목숨을 내거는 무공도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써댔던 것이다.
무궁한 핏빛 마기 아래 초휴의 도가 떨어지는 순간 하늘마저 멈추어버린 듯했다. 마치 천지를 그대로 꿰뚫어 버릴 듯한 도세였다.
홍진표묘참의 위력을 들어 본 사람은 많았다. 옛날 독고유아가 남긴 도법이 아닌가.
일도와 함께 능운자의 온몸에서 도온의 빛이 거세게 일었다. 그는 극한까지 힘을 발휘한 끝에 그 일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초휴의 도세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았다. 그 힘은 음양의 틈새를 파고들어 그대로 능운자의 심마를 베어 버렸다.
음양의 힘은 천지의 대도로서 극에 다다른 평형을 상징한다. 그러나 능운자 자신은 진정한 평형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심마는 그 자신보다 현저히 약했다.
표묘참을 맞은 심마의 몸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순양검기에 강타당한 초휴의 몸도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불멸마단의 힘을 이용해 무너지는 몸을 끊임없이 회복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먼저 무너지는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같았다.
초휴와 능운자가 이렇게 격렬한 상황까지 간 것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부활한 초휴와 장운자의 싸움을 직접 본 사람은 얼마 없었다. 물론 소문은 퍼졌으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싸움의 전말을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호인이면 누구나 부활한 초휴의 실력이 크게 늘었다는 것을 알았고, 진화연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도 알았으나, 진화연신이라는 경지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초휴가 대체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된 것이다. 정말로 생사결을 벌인다면 풍운방 십 위에 드는 사람이라도, 목숨 걸고 달려드는 초휴의 손에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표묘참을 맞은 능운자의 심마 화신은 굉음과 함께 터져서 가루가 되고 말았다. 능운자는 선혈을 울컥 뿜어냈고 얼굴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마라고는 하지만 능운자 자신의 심마였으니 거기에 들어간 힘도 그의 것이었다. 부서진 것은 심마의 화신이라 해도 능운자 자신이 중상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초휴의 상황은 능운자보다 더 나빴다. 그의 몸은 불멸마단 덕분에 순양검기의 공격을 버텨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혈마변천대법과 불멸마단이 온몸의 힘과 기혈을 거의 다 빨아먹어 버렸다.
지금 초휴가 능운자 앞에 서 있는 것은 순전히 의지의 힘이었다. 만일 지금 쓰러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헛고생이 될 터였다.
입가의 선혈을 닦는 능운자의 기운은 지극히 쇠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미약한 기색은 도리어 천지와 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초휴를 보던 능운자는 기침을 하더니 다시 선혈을 울컥 토하며 말했다.
“나의 심마를 베었군. 중상을 입었으나 내 소원을 이루어준 것이기도 하지. 그 누군들 시비와 인과를 제대로 가릴 수 있겠는가. 초휴, 이 시간부로 우리 사이의 인과는 잠시 미루어 두세나. 완전히 끊어질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다시 싸우게 될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네.”
그렇게 말한 능운자는 손을 내저어 순양도문과 도문 일맥 무사 전원에게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능운자는 이미 중상을 입었다. 여기서 계속 싸우려다가 자칫 순양도문이 정말 청룡회에게 무너지면 우스갯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나 정작 다른 사람들은 낯빛이 괴이했다. 진화련신에 오른 사람 몇몇은 이미 눈치챈 것이다.
능운자가 이제 곧 경지를 뚫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옛날의 능운자는 순양도문에서 가장 재능이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수십년간 좀처럼 진보하지 못한 데에는 심마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초휴가 능운자의 심마를 베어 버렸으니 그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중상을 입었으나, 부상만 회복된다면 천지통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이번 싸움에서 순양도문은 초휴를 죽여 장운자의 복수를 하지는 못했으나, 간접적으로 능운자가 경지를 돌파하는 기연을 얻은 셈이 되었다.
밑진 것인지, 이득을 본 것인지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물론 초휴로서는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능운자의 실력은 너무나 강해서 이미 반 발짝은 천지통현에 들어선 상태였다. 초휴가 능운자의 본체를 공격했더라도 중상은 입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이어진 심마 화신을 베는 것은 훨씬 쉬웠고, 심마 화신이 사라지면 능운자도 다치게 될 터였다.
그러니 초휴로서는 능운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화신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문 일맥이 공세를 멈추고 철수하자 초휴 측의 부담은 급감했다.
나마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한마디를 뱉었다.
“가자.”
나마가 이끌고 온 수보리선원과 불종 일맥의 무사들도 물러갔다. 초휴 측 사람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몇 배나 되는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청룡회의 호종대진이 열세를 보충해 주고는 있었으나 그래도 전력의 열세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만일 순양도문이 물러서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버텼다면 초휴 편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도불 양맥이 모두 물러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초휴가 이겼나? 아니, 이겼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버텨냈다고 밖에.
수보리선원과 순양도문을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놀라게 할 결과를 만든 셈이었다.
* * *
멀리 작은 산 위에서 방칠소는 독고이를 향해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노야, 제가 뭐랬습니까? 이번 내기는 보기 좋게 제가 이겼습니다. 하하!”
그러나 독고이는 무표정했다.
“검왕성에 돌아가면 검각에서 반년간 폐관해라. 검도만 수련할 게 아니라 네 성격을 다듬어야 한다. 장문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희비의 감정도 감추지 못하고 촐싹거리다니, 그게 무슨 꼴이냐?”
방칠소는 입을 쩍 벌렸다.
“노야, 제가 이겼다니까요? 약속을 지키셔야 할 거 아닙니까!”
독고이는 그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그리고 노부는 약속을 어긴 것이지. 한 가지 더 가르쳐 주마. 강호에서 굴러먹으려면 남보다 강하거나 남보다 낯짝이 두꺼워야 하는 법이다. 너는 노부보다 약하고, 노부보다 낯이 두껍지도 못하다. 그러니 돌아가거든 입 다물고 폐관 수련이나 해라!”
방칠소는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한, 그것도 씹었다가 뱉은 것을 다시 삼킨 듯한 표정이 되었다.
* * *
초휴는 자신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치지 않은 이가 거의 없었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진무당과 관중형당의 정예들이 그리 많이 죽은 것을 보니 속이 쓰라렸다.
그러나 지금은 원통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산문을 봉쇄하고, 단목천산과 무상마종 임 선생에게 즉각 철수하라고 전해라.”
수보리선원과 순양도문은 수세에 몰린 본거지를 구하려고 서둘러 돌아갔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오는 길에 귀환하는 적들과 마주쳐 전멸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황당한 일은 피해야 했다.
싸움의 뒤처리를 하나하나 분부한 초휴는 사람들을 이끌고 청룡회 안으로 돌아갔다. 다들 산문을 봉쇄하고 부상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매경령이 무척이나 지친 낯으로 다가와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초휴가 그녀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매경령은 깜짝 놀라서 그를 부여안고 흔들었다.
“이봐요, 설마 또 죽는 건 아니죠?”
매경령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지금 초휴의 상태는 정말 겁이 날 정도였다. 기운은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몸에서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위서애가 얼른 다가와 살펴본 다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찮다. 힘을 너무 소모했을 뿐이야. 보통 사람이라면 폐인이 되었겠다만, 이 녀석은 몸에 불멸마단이 있어서 진령 한 조각만은 사라지지 않게 지켜주고 있느니라. 시간이 좀 지나면 알아서 회복될 게다.”
위서애의 말에 모두가 한시름 놓았다.
지금 초휴는 그들의 기둥이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초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찌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지 않겠는가.
* * *
청룡회는 일단 봉문했지만 강호의 풍파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도불 양맥이 이만큼 큰 판을 벌여서 몰아쳤으나 초휴는 싸워서 버텨냈다. 그것도 상당히 불가사의한 방식을 써서 위기를 탈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초휴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도박에 이긴 셈이었으나, 다른 세력이었으면 초휴처럼 목숨을 내걸지는 못했을 것이다.
순양도문과 수보리선원에도 죽고 다친 사람은 있었으나 엄중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진법에 다친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왔고 초휴 측도 제 때에 물러났다.
그 외에 풍운방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제일 눈에 띈 변화는 풍운방 일 위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영삼서가 내려가고 순양도문의 능운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초휴와의 일전에서 능운자는 실력을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반 발짝만 더 나아갔으면 천지통현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초휴가 심마의 화신까지 베었으니 그가 천지통현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그러니 명실상부한 풍운방 일 위라고 해도 좋았다.
그리고 어차피 그는 그 자리에 오래 있지도 않을 것이다. 천지통현을 뚫고 나면 지존방으로 옮겨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