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54)
854화 깨진 옥이 될지언정 온전한 기왓장은 되지 않겠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장로마저 초휴의 일도를 버텨내지 못하고 혈무로 흩어졌을 때, 정정산의 정신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장검산장 검진에서 검이 사람보다 중요한 존재라고는 하나, 사람이 다 죽으면 누가 검진을 제어한단 말인가?
그는 붉게 물든 두 눈으로 크게 외쳤다.
“검제(劍祭)!”
검진을 조종하던 무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동귀어진의 초식이었다.
신병의 모든 힘을 끌어내고 검령을 으깨 부숨으로써 막대한 힘을 폭발시킨다. 그 초식을 쓰면 검은 깨지고 사람도 죽는 것이다.
“장검산장이 사라지는 판에 검을 남겨서 무엇에 쓴단 말이냐? 초휴, 유광사월을 가져가겠다고? 우리 장검산장은 이 자리에서 신검을 다 부숴버릴지언정 네놈에게는 주지 않겠다!”
정정산은 본래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자 그의 마음은 광기에 가까운 살의로 달아올랐다. 부서지는 옥이 될지언정 기왓장으로 살아남지는 않으리라!
초휴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정산과 장검산장의 기백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때 백잠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잠깐.”
초휴가 백잠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요, 검왕성도 끼어들 셈이오?”
그는 방칠소를 힐끗 보았으나, 방칠소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백잠이 뭘 하려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백잠은 고개를 저었다.
“검왕성에서는 우리 둘만 왔소. 끼어들려 해도 그럴 실력이 없지. 초 대인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을 뿐이오. 원하는 것이 유광사월이라면 장검산장을 멸문시켜 버릴 필요는 없잖소. 오대 검파의 사이가 매우 긴밀하지는 않다고 해도, 두 곳이나 멸문당한다는 걸 보는 건 유쾌한 일이 못 되오. 초 대인,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좋게 넘어갑시다. 내가 장검산정이 유광사월을 내주게 할 테니 장검산장의 명맥은 남겨 주시구려. 어떻소?”
이러다간 검왕성은 기껏 와 놓고 장검산장의 멸문을 모르는 척 외면했다는 말을 들을 위험이 있었다. 방칠소가 제법 잘 해주었으나, 저쪽에서 싫다고 한 바에야 어쩔 수도 없지만 말이다.
백잠이 중재인 노릇을 하고 나선 것은 검왕성의 체면치레 외에 장검산장의 멸문을 막아보려는 마음에서였다.
오대 검파는 모두 천년이 넘는 전승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 경쟁이나 암투를 벌이기는 했으나 다른 세력들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부옥산 정마대전 역시 오대 검파가 함께 일으켰다. 다른 세력이었다면 그만한 규모의 일을 벌이려고 손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장검산장은 이미 반쯤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절반일지언정 이름값이라도 남게 해주는 편이 전멸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장검산장에 기회를 주었소. 그러나 저쪽에서 그 기회를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일이 닥쳐서야 후회하고 있구려.”
백잠은 한숨을 쉬더니 정정산에게 말했다.
“정 장주, 검은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러나 꺾인 검은 다시 벼릴 수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장검산장이 장주 대에 무너져도 괜찮겠습니까? 정말 장검산장의 마지막 장주로 남고 싶으신 겁니까? 이만 패배를 인정하시지요. 설령 여기서 옥쇄한들 초 대인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못 됩니다. 부디 장검산장을 위해 미래의 희망을 남겨두십시오.”
정정산은 처연하게 웃었다. 그는 검진 속에서 공황 혹은 불안한 표정이 가득한 장검산장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어쩌면 장검산장은 처음부터 막다른 골목으로 무작정 들어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중요한가, 검이 중요한가? 장검산장은 후자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검 한 자루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처음부터 숙이고 들어갔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초휴의 말이 옳았다. 일이 모조리 다 벌어지고서야 후회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백잠의 마지막 한마디는 정정산이 가장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을 두드렸다.
수천년 이어져 온 장검산장이다. 그는 장검산장 최후의 장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야 무슨 낯으로 저승에 가서 선조를 본단 말인가?
더군다나 초휴의 실력은 이미 전율이 일 정도로 강했다. 그들이 동귀어진한들 초휴가 유광사월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백잠이 다시 말했다.
“정 장주, 오대 검파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엇을 원해 왔는지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평소에는 오대 검파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우리끼리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검을 익힌 자로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검수 일맥의 창성과 번영입니다. 다른 잡스러운 문파에서 오대 검파 중 하나로 올라서는 것보다는, 장검산장이 계속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단 말입니다.”
“정정산, 이만 물러나시지요. 장검산장은 이번 일로 원기가 상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검왕성에서 보장하지요. 만일 하찮은 자들이 장검산장을 건드리려 한다면 우리 검왕성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무림에서는 오대 검파의 지위가 가장 특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통을 두고 싸우지 않았다. 그저 검도 일맥에 집착할 뿐이었다. 지금의 검도 일맥은 이미 도불마 삼맥과도 다른 형태인 강호 최대의 분파라 할 만했다.
물론 검을 익히는 무사들의 이상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꿈은 도불마 삼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꿈꾸는 검도의 성세였다. 그러므로 오대 검파는 줄곧 다퉈오면서도 항상 검도 일맥 전체의 이득과 미래를 위해서 움직였다.
칠종팔파 중에도 검을 쓰는 종문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가장 약한 월녀궁 대신 오대 검파가 되지 못했는가? 왜 육대 검파를 이루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의 검도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월녀궁과 장검산장이 아무리 약해도 그들의 검도 전승은 다른 검파의 인정을 받았다.
파산검파나 예전 창란검종 같은 종문은 검파나 검종의 이름을 걸기는 했으나, 기실 그들의 검도 전승은 다른 검파한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니 장검산장이 이만큼 몰락했어도, 이들을 대신할 만한 검파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검왕성은 그들을 감쌀 터였다.
백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정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순간에 그는 십년은 더 나이를 먹은 듯했다.
정정산이 손을 휙 내저었다. 흐르는 별빛처럼 번쩍이는 장검이 검진에서 날아와 초휴 앞에 꽂혔다.
“유광사월은 초휴 당신 것이오.”
간신히 그 말을 뱉어내면서, 정정산은 자신한테 남은 모든 힘을 다 써 버린 것 같았다.
검은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법이건만, 정정산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장검산장의 체면은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이다.
그 역시 본래는 장검산장의 여섯 장로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살아남는 것이 죽기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유광사월을 손에 넣은 초휴는 상천량을 불러세워 곧장 떠났다.
초휴는 신용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지금 그는 누가 뭐래도 강호에 풍운을 일으킬 만한 거물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명성을 쌓아 나가야 했다. 선행까지 베풀지는 않더라도 그의 신용을 좀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그는 충분히 기고만장하게 굴었다. 지금 장검산장까지 멸문하면 그의 악명은 더 심해지는 것이고, 다른 삼대 검파와도 완전히 원수가 될 것이다.
* * *
일이 마무리되고 초휴가 떠나자 풍운검총 노인도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심포진은 장검산장의 처참한 모습에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옛날 부옥산 정마대전 때의 장검산장은 그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가. 그런데 이렇게까지 몰락할 수가 있는 것일까?
장검산장의 손실은 엄청났다. 유광사월을 잃은 것은 둘째 치고, 수검각 장로들이 전부 죽었으니, 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수검각에 들여보내야 했다.
이것은 막대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검왕성은 십 년 안에는 다시 강호에서 행세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심포진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실력이 모자란 자의 말로라는 것 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 되었다. 강호에서는 실력이 약한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없는 것이다.
* * *
유광사월을 손에 넣은 초휴는 꾸물대지 않고 곧장 경호산장으로 갔다. 그가 가는 동안 장검산장과의 일전에 관한 소문도 널리 퍼졌다.
초휴가 좀 조용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옳았다. 이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초휴는 다시 한번 강호의 초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초휴가 기고만장하고 패악스럽다고 떠들었다. 수보리선원과 순양도문에 맞서더니 눈을 돌리자마자 오대 검파를 건드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뭐라고 형용할 말조차 찾기 힘들 지경이 아닌가.
적잖은 종문이 걱정했다. 초휴가 이렇게까지 방약무인한 미친놈처럼 군다면 언젠가는 자신들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겠는가. 초휴는 이번 싸움에서 별 명성을 얻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한 원성과 악명만 쌓았다.
물론 지금의 그는 그런 것에 관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는 막야자가 신병을 만들어 주는 동안 경호산장에 머물기로 마음을 정했다. 신병을 기다릴 겸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기 위해서였다.
초휴에게서 유광사월을 받아들었을 때는 막야자 본인마저 놀랐다. 이미 강호 정보원에게서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초휴가 정말로 장검산장에 가서 신병을 가져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장검산장은 검을 목숨처럼 여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막야자가 신병각 각주였던 시절, 장검산장의 명검을 직접보고 영감을 얻으려고 빌리고자 했을 때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초휴는 무력시위를 서슴지 않으며 위협한 끝에 결국 장검산장에서 유광사월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은 사람 목숨이 검보다는 중요하다는 게 입증된 셈이랄까.
막야자가 말했다.
“유광사월은 본래 신병인지라 이것을 녹이려면 힘이 좀 든다네. 그러니 완전한 천도전갑을 만들어내려면 시간이 걸릴걸세. 적어도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습니다. 그동안 저도 경호산장에서 지내면 되지요.”
그는 지금까지는 좀 심하게 설쳤다. 대규모 세력을 형성하기는 했으나, 아직 무림의 공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도불 양맥과 오대 검파가 연이어 당했다. 지금 초휴의 기세에 맞설 사람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이러다 야소남처럼 수많은 강자의 협공을 불러오게 된다면? 아무리 강해도 등줄기가 서늘해질 터였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직하학궁(稷下學宮) 소백우의 방문을 알렸다.
소백우는 막야자에게 병기를 만들어 달라고 온 것이었다. 지금 그는 진화련신에 올랐고 동제 조정에서도 위세가 대단했다. 직하학궁은 동제 조정의 가장 중요한 조직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소백우도 조정에서 재료를 많이 얻어 병기를 만들려 했다. 동제 조정에도 병기 주조 대사가 적지 않았으나 눈에 차지 않았고, 신병각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러니 경호산장은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소백우는 낙비홍의 선생이었고 막야자는 그녀의 의부인지라 두 사람은 꽤 사이가 좋았다.
초휴를 본 소백우는 잠시 놀랐다.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던 듯했다.
“소 제주, 오랜만입니다.”
초휴는 공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상대는 낙비홍의 스승이었다. 그와 친분은 없었으나 원한도 없었다.
소백우 역시 답례했다.
“초 대인도 여기 계신 줄 몰랐구려. 막야자 대사께 병기를 맡기러 왔소?”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장검산장에서 신병을 하나 얻어왔습니다. 그걸 써서 제 병기를 좀 더 개선해 볼 작정입니다.”
소백우는 저도 모르게 입가가 비틀렸다.
신병을 써서 다른 신병을 개선하겠다니, 그렇게 사치스러운 일을 할 사람이 강호에서 초휴를 빼면 또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장검산장에서 신검을 얻어왔다고? 칼로 위협해서 빼앗은 것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