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64)
864화 시바
초휴가 막가를 구하려고 천문 신장 임창룡과 일전을 치른 후, 둘이서 대흑천마교에 관한 정보를 갖고 떠났다는 소문은 이미 강호에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그 둘이 하필 이곳에 함께 나타난 걸 보니 이곳이 목적지인 건 묻지 않아도 뻔하지 않은가.
임창룡은 애당초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우려해 그 많은 목격자를 죄다 죽여 입을 봉하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만 명도 넘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다 죽여 입을 막는단 말인가.
막가 및 하후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비밀을 지켰을 리가 없다. 그리고 대흑천마교의 유적에 관심을 보일 자가 비단 초휴와 임창룡 두 명에 그칠 리도 없는 것이다.
소문이 퍼져나가는 즉시 적잖은 경쟁자들이 보물의 쟁탈에 나서리라는 건 이미 예견된 바였다. 소마가, 허정, 이파순, 이 몇 명은 고작 시작에 불과한 셈이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테냐?”
소마가가 되받아치자 이추적이 기세등등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이곳에 있는 걸 차지해야지! 보물은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이니까! 다들 보다시피 내가 제일 먼저 와 있었잖아? 최소한 내게도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이지.”
사실 그녀도 대흑천마교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나 그 틈바구니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남만 땅이 이렇게나 넓건만, 거기가 어디인 줄 알고 찾아간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가 바로 그곳이라 하니, 이것이 그녀를 위해 준비된 기연이 아니면 무엇일까. 하늘이 내린 선물을 왜 마다하겠는가.
소마가는 정말이지 이추적마저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다. 지금 모인 사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불문 계통 사람이 적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초휴와 이파순부터가 마도 일맥이다. 천문 사람인 임창룡은 정파와 사파 이전에 너무 극단적이고 살성이 짙은 인물이다. 그런 판에 이추적까지 추가된다면 불문 일맥은 절대적인 약세에 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마당에 절대 못 깨 주워주겠다며 대놓고 싸움을 걸기도 뭣했다. 아직 안쪽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모르는데 서로 낯부터 붉히는 건 견식이 얕고 생각 짧은 말단 강호인이나 할 행동일 터였다.
더욱이 지금 그녀를 배제하려고 출수할 경우 초휴가 누구를 편들고 나설지도 미지수였다. 초휴는 갚아야 할 은원은 절대 잊지 않는 성격이다.
일전에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녀도 가세한 바 있었다. 원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그녀 편을 들고 나설 리는 없겠지만, 속단하기 힘드니 일단 그녀의 합류를 묵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일을 초휴가 기억하는 건 물론이려니와, 이추적도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맞닥뜨리자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추적이 은마 일맥의 선배라고는 하나, 지금 초휴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봐주는 셈이었다. 그러니 먼저 인사를 건넬 리 없었다. 이추적도 이런 자리에서 불손한 후배를 혼내줄 수는 없는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일행은 산골짜기 안쪽을 향해 일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골짜기 안으로 진입하자 모종의 강력한 기운이 그들을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덮쳐왔다. 그 기운에 담긴 힘은 초휴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파멸과 적멸. 바로 멸삼련성전과 똑같은 속성의 힘인 것이다. 다만 그 속성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적어도 초휴와 같은 수준의 실력자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골짜기는 일년 내내 이 죽음의 기운에 뒤덮여 있기라도 한 듯, 생기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푸릇푸릇한 푸성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앞서 들어갔다가 살아 나오지 못했다던 부락민들은 아마도 이곳을 뒤덮은 적멸의 힘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부락민들 대다수가 무도를 수련한 경험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도망쳐 나온 후 죽었다는 자들은 몸이 상대적으로 강건해서 한순간에 소멸하는 대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적멸에 몸이 침식된 탓일 터였다.
그러나 멸삼련성전도 그렇듯이 적멸의 힘은 근본적으로 소실되지 않고 남는다. 육신의 힘을 다해 저항하지 않는 이상, 내내 공간 내 잔류해 있다가 조금만 닿아도 무한대로 그 힘이 증폭해서 퍼져나가는 것이다.
평범한 부락민들이야 몸에 진기가 없을 테니 당연히 그 힘을 이겨내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적멸의 기운에 잠식되면 재 가루로 화하는 거야 뻔하지 않겠는가.
* * *
일행이 계속 앞으로 나가자 거대한 석문(石門) 하나가 나타났다. 온통 칠흑빛 일색인 그 석문은 이곳 골짜기의 돌들을 가져다 만든 것이리라.
겉면에 적멸의 힘이 짙게 어린 걸 보니, 누군가 비법을 써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문 위에 기이한 부호, 어떻게 보면 문자 같기도 한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부호건 문자건 간에 보통 사람이 봐서 그 뜻을 해독할 수 있을 만한 건 아니었다.
초휴가 눈살을 찌푸리며 운을 뗐다.
“조악하군. 아마도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만든 모양이오.”
모름지기 일개 종문의 입구라면 세심한 장식이 기본적으로 있으련만, 눈앞의 이 석문은 덩그러니 문짝 두 개가 전부였다. 조악하다 못해 초라한 꼴인지라, 밖에서만 봐서는 전혀 종문의 입구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기 새겨진 문자를 알아들 보시겠소?”
시력을 잃은 소마가는 묵묵히 감지력에만 의지해 문자를 느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멀쩡한 사람보다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허정이 골똘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상고 불경에 나오는 범어 종류 같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문자 같기도 한 게 알아보기가 어렵소. 하나하나 떼서 보면 그나마 조금은 알겠소만 연결해서 보면 긴가민가한 것이······.”
이때 이파순이 끼어들었다.
“이건 대흑천마교의 주문이오. 훼멸, 적멸, 파괴, 대흑천(大黑天, 암흑의 밤) 등등 여러 의미가 실려 있지.”
“이것들을 알아볼 수 있단 말이오?”
초휴가 의아하여 묻자 이파순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했잖소. 나를 데려가면 꽤 유용할 거라고. 제육천마종의 전승은 대흑천마교와 흡사한 면이 많소. 한 뿌리에서 분리된 두 지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심지어 사용하는 범어도 죄다 같으니까. 이 상고의 범어는 우리 제육천마종만이 알아볼 수 있소.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종문 내에 전승되던 자료들도 죄다 요즘 문자로 번역이 된 지라, 우리 측에서도 실제로 상고 범어를 알아볼 자는 손꼽을 정도요.”
제육천마종을 뼛속까지 혐오해온 소마가와 허정은 그가 뭐라건 간에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이때 임창룡이 성큼성큼 입구로 다가서더니 냅다 일권을 내질렀다. 그러자 강력한 강기가 용조(龍爪)로 화하여 문과 세게 부딪혔다. 무력으로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행 중 그의 목적이 가장 단순한 만큼 거리낄 게 없었다. 대흑천마교에 어떤 내력이 숨겨있건 간에 원하는 물건만 확보하면 그만인 것이다.
초휴는 이미 임창룡의 괴력을 겪은 바 있다. 그의 육신이 발하는 힘은 초휴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대문을 한번 흔드는 데 그쳤을 뿐, 손상은 고사하고 아무 흔적도 내지 못했다. 이쯤 되자 싸한 기분이 엄습해왔다.
이파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용없소. 이 문에 새겨진 범어에는 적멸의 힘이 실려 있으니까. 강력한 힘을 가할수록 문을 열기는커녕 고스란히 흡수되고 말 거요.”
말과 함께 이파순이 불인을 결하자 그의 수중에서 별빛 같은 불광이 점점이 터져 나와 대문의 범어로 스며들었다.
이 광경에 소마가와 허정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역력했다. 이파순 같은 마도인이 가장 정통적인 불문의 힘을 쓰다니, 불문 일맥으로서는 수치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파순의 힘이 흘러들자마자 정말로 대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일순간 강력한 적멸의 기운이 훅하고 덮쳐오는 바람에 일행은 본능적으로 힘껏 강기를 터뜨려 방어를 해야 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거대한 신상(神像)이 모셔진 웅장한 궁전이 그들을 맞이했다. 남녀 구분이 모호한 신상은 팔이 네 개요, 눈이 세 개였고 팔마다 각기 삼지창, 도끼, 곤봉, 장검이 들려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자태에서는 우아함의 극치가 느껴졌다.
하지만 신상의 하단에는 화염 속에 무너져가는 무수한 도시들이 조각되어, 춤사위를 방불케 하는 상단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신상의 표정이 매우 온화해서 사악한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자아내는 분위기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파순이 설명했다.
“이건 대흑천마교에서 모시는 주신(主神) ‘시바’로, 파괴의 신이라고도 불리지. 한번 춤을 추기 시작하면 세 번째 눈에서 멸세(滅世)의 화염이 솟구쳐 모든 걸 태워 없애거든. 우리 측 선조들은 제육천마종이 섬기는 제육천마왕도 시바의 화신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소. 한마디로 근원이 같은 셈이지.”
“사악한 이단 같으니라고!”
소마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내지른 금빛 불광이 시바 신상을 향해 날아갔다. 수보리선원과 대광명사는 도통의 전승이란 점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당대의 양대 불종으로서 불법의 핵심에 대한 이해는 별 차이가 없었다.
불종이 무수히 많은 부처와 보살을 섬겨왔다지만 그중 어느 하나 사악한 존재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자료를 통해 대흑천마교와 불문 간의 연관성이 입증되었다 해도, 소마가가 보기에 시바는 절대적으로 사악한 존재였다. 어디 감히 존엄한 부처와 동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순간 이변이 생겨났다. 신상이 불광으로 훼손되기는커녕, 되레 이를 흡수하기가 무섭게 기민한 춤사위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세 번째 눈에서 검은 화염이 터져 나와 대전 전체를 뒤덮었다.
너무도 갑자기 벌어진 일에 소마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둔하고 모자란 사람은 아니니, 제아무리 신상이 역겨워도 뭔가 미심쩍은 기운이 느껴졌더라면 무모한 출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감지력에 의하면 그 신상은 평범한 돌덩이를 조각해서 만든 것에 불과했다. 다만 바깥의 대문과 마찬가지로 미약하게나마 적멸의 힘이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불광을 흡수한 것만으로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생긴단 말인가!
여하튼 그 검은 화염이 실내를 비춘 덕에 일행은 그제야 대전 내의 다른 모습들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대전의 사면을 둘러싼 석벽에는 양각 벽화가 잔뜩 조각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시바의 화신이 세상을 멸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었다. 여기에 적멸의 화염이 더해지자 실제로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생생함이 일행을 엄습하여 파괴의 현장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이처럼 괴이하게 사악한 것은 그들도 난생처음 겪었다. 이 모든 걸 작동케 하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면 그것부터 해제하면 되련만, 진도의 광채라곤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은 별 방도가 없으니 일행은 재주껏 그 괴이한 것의 공격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무언가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몹시 익숙한 힘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사실 양각 벽화의 내용은 초휴에게 익숙했다. 시바가 멸세의 화살로 성채 세 개를 동시에 꿰뚫어 버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유심히 그 장면을 들여다보자 어느샌가 수중에 멸삼련성전이 응집되어 나타났다. 그 적멸의 화살이 돌연 양각 벽화를 향해 발사되더니 순식간에 파고드는 게 아닌가!
곧이어 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이 초휴를 덮치며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손에 마궁(魔弓)을 쥔 시바가 나란히 세 개로 이어진 아수라족의 성채를 공격하고 있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극강의 파멸과 죽음의 기운이 실렸고, 영원토록 공략되지 않을 것 같던 성채 세 개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지금의 느낌은 독고유아가 철황보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고 멸삼련성전을 깨우칠 당시 느꼈던 느낌과 확연히 달랐다.
독고유아의 멸삼련성전에는 그만의 독특한 기운이 실려 있었던 반면, 시바의 멸삼련성전은 전설을 바탕으로 지어진 서사시의 한 대목처럼 지극히 원초적이고 단순했다. 처음부터 초휴는 자신의 모든 정신력을 시바가 일으킨 환영 속에 쏟아부은지라, 그 마전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깊숙이 그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일련의 모든 것이 초휴의 뇌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해서 본인이야 길게 느껴졌으나 실제로는 찰나의 시간이 흐른 데 불과했다.
이제야 뭐가 뭔지 알겠다는 듯 본능적으로 초휴의 시선이 여전히 검은 화염을 발하고 있는 시바 신상 쪽으로 향했다. 다음 순간, 그는 냅다 신상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