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77)
877화 강산각
이처럼 삼자 간의 경직된 분위기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강산각 사람들이 다가왔다. 사실 조원풍은 초휴와 인사를 나누고 자시고 할 마음이 없었다.
당금의 강호를 들어다 놨다 한다는 진무당 대도독을 그가 왜 몰라보겠는가. 모르기는커녕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강호에 초휴를 모르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강산각이 줄곧 해외에 주안점을 두어왔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중원 무림의 동향에 무심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강산각은 모든 관심을 위군에만 쏟고 있었다. 위군만 잘 다스릴 수 있다면 북연이 어떤 꼴로 돌아가건 알 바 아닌 것이다.
해서 초휴를 비롯한 도문과 불문 사람들이 성문 입구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그들은 슬며시 한옆에 있는 쪽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씨 장로가 눈치도 없게 인상을 팍 쓰며 떠들어대는 게 아닌가.
“여러분, 들어가지 않을 거면 우리라도 들어가게 물러서구려. 보란 듯이 길을 막고 민폐 끼치지 말란 말이오.”
이 말이 튀어 나가기가 무섭게 조원풍은 내심 ‘아뿔싸!’를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산각 사람들 쪽을 향했다.
“강산각 분들이시오?”
초휴의 질문에 조씨 장로가 목에 힘을 주며 답했다.
“그렇소. 정확히 말하자면 조씨 황족이오. 잠시 후 그대의 폐하를 알현하면 우리나라가 재건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 보아하니 그대가 도문이나 불문과 해결을 봐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구려. 하지만 그런 일은 한구석에 비켜서서 할 일이지, 이렇게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통행을 방해하면 어쩌자는 건가?”
조씨 장로가 세상에 태어났을 당시는 망국의 아픔을 겪기 전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직도 황족의 기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느 정도는 몸에 남아 있었다.
조원풍 형제의 사고방식과 행동거지가 강호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과는 크게 달랐다. 여기로 오는 길에 조원풍은 그가 항륭 앞에서 불손하게 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단단히 주의를 환기하였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황족 간에 응당 갖춰야 할 예법을 그가 잊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조원풍이 까먹고 미처 그에게 당부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북연에 가면 항륭 앞에서만 조심할 게 아니라, 초휴처럼 막강한 실세를 거머쥔 중신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 옛날 조씨가 황족이던 시절에야 그들의 말 한마디에 천금의 무게가 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그들의 나라는 워낙 소국이어서 국내에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한 큰 세력이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황족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리는 게 가능했고 오만한 태도가 몸에 뱄던 것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조씨 장로의 눈에 비친 초휴는 북연의 많고 많은 신하 중 하나에 불과했다. 반면, 강산각은 황족 출신이니 항씨 황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실력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신분상으로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 존재인 자신이 한낱 타국의 신하한테 이 정도 항의쯤이야 왜 못 한단 말인가. 심지어 이것도 나름 항륭의 체면을 생각해서 많이 봐준 셈이라고 할 터였다.
초휴가 강산각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돌연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띠었다.
“길을 막았다고? 패가망신한 파락호들 주제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고만장이냐? 연경성은 당신들이 꼴값 떨 만한 곳이 아니다. 폐하를 알현한다고 하였는가? 흥! 누가 당신들에게 성문을 열어주기라도 해 준다던가?”
조씨 장로가 격분하여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엄하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북연 조정에는 법도도 없다더냐?”
“법도? 폐하가 여기 계셨다면 그분의 말씀이 곧 법도일 테지. 그러나 폐하께서 여기에 없는 이상, 내 말이 곧 법도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휴가 일신에서 매서운 기세를 터뜨리는가 싶더니 장로를 향해 일권을 내지르고 있었다.
허언과 다운자는 노련하게도 일찌감치 한옆에 비켜나 있었다. 초휴에 대해 이미 알 만큼 아는 그들이 아닌가.
초휴, 이 미치광이를 여기서 맞닥뜨리기 전만 해도, 그들은 이처럼 중차대한 시점에 그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청해서 매를 맞을 자가 나타났으니 그들은 흐뭇하게 구경이나 할 참이었다.
* * *
세상에는 자신의 직감이 꽤 정확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강산각의 이 장로 어르신도 그런 부류였다.
초휴의 위명을 자신도 들어는 봤으되, 그에 대한 관점이 조원풍과는 사뭇 달랐다. 조원풍이 본 초휴는 은마 일맥의 승계자인 동시에, 이미 북연 강호에서 진무당이라는 자신만의 독립 세력을 구축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쉽게 보고 상대했다가는 큰코다칠 위인인 것이다.
하지만 조씨 장로가 보기에 초휴는 어디까지나 북연의 신하 나부랭이일 뿐이었다. 자고로 군신 관계가 애들 장난 같았던 적이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초휴가 감히 황족을 상대로 다짜고짜 출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항륭이 없는 이상 자기 말이 곧 법이라는 대역부도한 언사까지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지 않은가.
상대의 일권에 실린 위압감에 노출된 순간, 장로는 심장이 졸다 못해 멎는 듯했다. 그 역시 진화련신 무사였고, 심지어 이 경지에 오른 지도 오래되었다.
지난날 조씨 황가가 상갓집 개처럼 적국의 추격에 쫓길 당시, 황족 출신의 고강한 실력자들이 황가의 마지막 남은 혈맥을 호위하며 동해로 도주했다. 이 장로는 당시 호위를 맡았던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도주하는 내내 그들이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압박감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았을 정도의 실력자라면 결코 약체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젊은 시절 얘기고, 장로회의 일원이 된 뒤로는 존장 대접받는 데만 익숙했지, 남과 싸울 기회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사람이 초휴의 무지막지한 일권을 마주하게 되자, 그 옛날 끝도 없이 이어지던 추살의 위협과 그로 인한 공포, 그리고 절망감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그는 당시의 악몽을 떨쳐버리려는 양 힘차게 노호성을 내지르더니 일신에서 옅은 남색 강기를 응집시켜 내갈겼다. 그러자 강력한 장력(掌力)이 망망대해의 노도처럼 거칠게 덮쳐감과 동시에, 고막을 찌를 듯한 폭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하지만 초휴의 일권은 힘의 극치가 무언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내력진화로 담금질 된 철통같은 육신에 현무진공 중 산해권경의 권의가 합쳐지자 태산도 가루로 만들 위력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장력이 초휴의 일권에 속절없이 무위로 돌아가자 장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의 저 젊은이가 무슨 경천동지할 절기를 익혔건 간에 얼마든지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순전히 힘으로 압도해 오는 공격은 그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무릇 어떤 기공과 비법이라 해도 약점과 빈틈은 다 있기 마련이다. 다만 유일하게 극강의 힘만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때 한옆에서 지켜보던 조원풍이 돌연 출수했다. 그도 일장을 내갈긴 건 장로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그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삽시간에 반경 수백 장 내의 수증기가 응집되는가 싶더니 허공에 속속 물방울들이 응결되며 초휴의 일권 앞에 쫙 깔렸다. 한마디로 완충지대가 형성된 셈이었다.
건드리면 금세 터질듯 그 물방울들에는 건곤의 힘이 실려 있었다. 놀랍게도 초휴의 힘이 닿는 족족 이를 흡수해서 방어막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게 아닌가.
물론 물방울 대부분은 막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물안개로 화하여 흩어졌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간에 파죽지세와도 같던 초휴의 철권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었다.
초휴가 불쑥 끼어든 그 훼방꾼을 힐끗 보더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물의 형태는 고정된 바가 없으니, 극도의 강함과 유함이 한데 공존하지. 강산각 각주, 과연 비범한 실력이구려. 하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아랫것들 단속은 하셔야겠소. 개나 소나 함부로 날뛰는데도 각주께서는 아무 제지도 하지 않으시니, 강산각에서는 상하 간 법도도 없답디까?”
이 말은 누가 들어도 조씨 장로를 겨냥한 말이었다. 장로가 분을 견디다 못해 얼굴이 시뻘게졌으나 조원풍은 이미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초 대인, 우리 강산각이 오랫동안 해안에서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중원 무림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오. 뭣도 모르고 함부로 나서 대인의 심기를 어지럽힌 걸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구려.”
아래에서 사고를 쳤으니 윗전이 수습하는 건 당연했다. 초휴가 북연에서 어떤 위상과 입지를 가진 존재인지는 그도 잘 알았다.
나라 재건이 우선인 그들로서는 초장부터 초휴와 사이가 틀어져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더 큰 화를 부르기 전에 서둘러 수습하는 게 상책이었다.
물론 조원풍이 이렇듯 매사에 저자세를 취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사과는 확실히 하되, 당당한 기개는 여전했다. 그가 도불 양맥 사람들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초 대인, 강산각은 그저 북연 황제 폐하를 뵙기 위해 온 것뿐이오. 어차피 알현을 마치면 곧장 위군으로 향할 것인즉, 북연 조정이건 강호건 간에 그 어떤 분쟁에도 휘말리길 원치 않소이다. 보아하니 지금 당장 대인이 처리해야 할 문제는 우리 쪽은 아닌듯하오만······? 물론 앞으로도 우리와 적대할 일은 없을 거외다. 서로 협력할 일이라면 또 모를까.”
초휴가 지그시 그를 응시했다. 이 강산각 각주가 중원에서의 명성은 별 볼 일 없을지 몰라도, 좀 전에 행한 출수와 지금 건넨 말만 놓고 봐도 확실히 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다 밖 삶이 중원 무림보다 만만할 거라고 막연히 넘겨짚어선 곤란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강호인 셈이 아닌가. 강호에 몸을 둔 이상 무수히 이어지는 살육과 마찰을 피해갈 수 없으며, 바다 밖에서는 그럴 일이 훨씬 더 잦았다.
중원은 땅덩어리라도 넓으니 싸우다 지더라도 도망갈 여지가 있다. 눈앞의 위험에서만 벗어나면 어디서든 자리 잡고 상세를 돌보며 훗날을 기약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자고로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바다 밖에서는 섬을 벗어나려고 하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한마디로 패자에게 남는 건 죽음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듯 잔혹하리만치 처절한 환경 속에서 강산각이 도서를 몇 곳이나 복속시켰다는 것은 조원풍의 수완과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바로 이때 항숭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다급히 달려왔다. 항륭이 도·불·마 모두를 한 지붕 아래 욱여넣은 목적이 초휴를 견제하기 위함인 건 사실이나, 서로 만난 첫날부터 싸워대는 건 여러모로 이롭지 못했다. 해서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말리러 온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구룡인까지 들고 왔다. 자칫 초휴가 발작하여 상천량이라도 끌어내는 날엔 그 둘을 제압할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초휴가 섣불리 상천량을 내세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닌 바에야 함부로 천지통현의 전투력을 동원하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초휴는 지금까지 아무런 노림수도 없이 무의미하게 광기가 발동한 일은 없었다. 미친 척하고 뭔가를 도모하려 들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해 두어서 나쁠 건 없을 터였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살벌하긴 해도 제대로 맞붙을 낌새는 없는지라 항숭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여러분,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속히 저와 함께 입성하시지요.”
그는 말끝에 초휴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한마디 던졌다.
“초 대인, 폐하께서 이분들을 기다리고 계시오. 개인적인 용무는 나중으로 미뤄두는 게 어떻겠소?”
초휴가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진북왕께서는 걱정도 팔자이십니다. 저는 그저 옛 벗들과 인사나 나누고자 한 건데 못 미룰 건 또 뭐겠습니까?”
“흥! 부디 그래 주길 바라겠소.”
항숭이 그들을 데리고 사라진 다음에야 한옆에 박혀있던 당아가 입을 열었다.
“강산각이 바다 밖에서나 대단했지, 인제 보니 사리 분별도 못 하는 꼬락서니들이군요. 허당도 저런 허당이 없을 듯합니다.”
“이 세상에 총명한 자들만 있으면 우둔한 자들에게 기회는 전혀 없겠지. 수백년을 살고도 여전히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별 못 하는 자들도 많으니까. 그건 꼭 나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남 얘기할 것도 없지. 우리 은마 일맥에만도 비싼 밥 처먹고 헛소리나 내지르는 늙다리들이 좀 많은가?”
자기가 봐도 확실히 그런지라 당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