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3)
883화 한껏 들뜬 항충
초휴의 느닷없는 방문이 제원례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당금의 북연 조정과 강호에 풍운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풍만루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초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초휴는 북연에서 도불 양맥 및 북연 황족들과 박 터지게 암투를 벌이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풍만루에는 웬 행차란 말인가?
심중에 의혹이 가득함에도 제원례는 내색은 하지 않고 정중하게 초휴를 맞이했다.
“초 대인, 이번엔 또 어떤 용무가 있기에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셨소?”
초휴는 변죽을 울리는 대신, 맞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내가 제 루주를 찾아온 이유야 뻔하지 않겠소이까? 뭘 좀 사러 왔소이다. 그뿐이오.”
“이번에도 정보가 필요하신 게요?”
“아니! 신분이 필요하오.”
무슨 소린가 싶어 제원례가 멀뚱히 쳐다보자 초휴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귀측에서 새로이 신분을 만들어 줘야 할 사람들이 몇 명 있소이다. 단순히 신분 날조가 아니라, 아예 신분 자체가 없는 사람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야겠소. 이깟 일쯤이야 귀측에는 아무 일도 아닐 듯한데?”
이에 제원례가 매몰차게 거절했다.
“초 대인, 내가 돕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보나 신분의 날조는 풍만루의 금기에 해당하는 사안이외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말씀이오. 강호에는 온갖 정보와 자료가 난무하오. 개중에 더러는 풍만루가 모르는 것도 있을 테지. 우리가 신이라서 삼라만상을 다 꿰뚫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외다. 이처럼 잘 모르는 정보에 관해서는 확인된 사항이 아닌 바에야 섣불리 기록하지 못하게 되어 있소. 하물며 날조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절대 불가 하외다!”
초휴가 담담히 응수했다.
“이런 일이 귀측을 난처하게 만들 거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드리는 말씀이오. 내가 또 그런 일을 거저 해달라고 요구할 만큼 후안무치한 자는 아니오. 나한테 귀측에 제공할 만한 값진 정보가 있으니 서로 맞바꿉시다. 거래라고 해도 좋소.”
“초 대인, 이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켜야 하는 우리의 원칙에 관한 문제요. 대인이 그 어떤 정보를 디밀건 간에······.”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초휴가 입을 열었다.
“상고 대겁난 당시의 종문들 향방에 대한 정보라면 어떻겠소?”
이 말을 듣는 순간 제원례의 머릿속에 한가득 들어있던 거절의 명분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까지 더듬었다.
“자,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이런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루주께 여쭤보고 오리다.”
말과 함께 그는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초휴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여유롭게 차향을 음미했다.
그의 생각이 들어맞았다. 그럼 그렇지. 철칙은 개뿔!
어차피 사람은 거기서 거기다. 철칙을 지킨다는 소리는 죄다 가식적인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저 눈앞의 이익이 그 철칙이라는 것을 무너뜨리기에 부족할 뿐인 것이다.
잠시 후 방비범이 헐레벌떡 달려와 정중히 인사를 건네더니 애써 흥분을 누르며 물었다.
“초 대인, 정말로 상고 대겁난 당시 종문들의 행방을 알고 계시오?”
천하제일의 정보조직으로서 풍만루는 무력도, 세력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이 세상 모든 정보와 소식을 갖고 싶어 했다.
어쩌면 남들이 모르는 일을 자기네만 알고 있다는 쾌감을 즐기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독 상고 대겁난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는 풍만루도 여느 수많은 강호 종문과 비슷했다.
알고 있는 게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다. 그간 모은 단서들을 조각 그림 맞추듯 맞춰나가다 보면 뭔가가 나올 듯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초휴가 이런 말을 했으니 루주가 침을 흘리며 득달같이 달려올 만도 했다. 초휴는 뜸을 들이지 않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죄다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내용에 대해 아는 사람이 이미 여러 명인지라 굳이 숨기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수보리선원과 대광명사 측에서도 진작 다 듣고 간 내용이 비밀 축에나 들겠는가. 게다가 풍만루가 그 정보를 확보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싹 닦고 협조하지 않을 걱정 또한 없었다.
풍만루가 여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칼같이 신용을 지킨 덕에 강호에 원한 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호도 풍만루처럼 시시각각 소식과 정보를 제공해줄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풍만루를 건드리지 못했다. 물론 이는 풍만루가 알아서 눈치껏 군다는 걸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다.
초휴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들이 모를 리 있겠는가. 그 후과는 풍만루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 리가 없었다.
초휴의 얘기를 다 듣자 방비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라천이라는 곳에 상고 종문이 여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를 기함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경악과 흥분은 당분간 방비범 자신만의 몫으로 그칠 가능성이 컸다. 적어도 그에게는 이런 엄청난 정보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배짱이 없었으니까. 허정 무리가 진작 그 정보를 알았음에도 여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방비범은 이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초휴의 말대로라면 이 사실을 함께 들은 자들만도 이미 여러 명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자기 종문에서 중량감이 적지 않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들을 찾아가 확인해보면 금세 확인될 일을 가지고 초휴가 굳이 장난질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초휴가 다시 원래의 주제로 들어갔다.
“방 루주, 이 정도 정보라면 신분 날조를 요청하는데 충분하겠소?”
“물론······ 충분하다마다요.”
방비범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지못해 수락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초휴가 오늘 나타나지 않아서 상고 종문에 대한 정보도 듣지 못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초휴가 그간 일관되게 행해온 방식과 강호에 자자한 악명을 감안할 때, 그 신분 날조가 누구를 위해 행해지는 것인지는 영영 비밀에 부쳐질 공산이 컸다. 방비범부터가 감히 알아볼 엄두를 못 내려니와, 알아낼 능력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보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는 건 싫었다. 모르고 살기에는 너무 엄청난 정보가 아닌가. 이미 들은 내용을 도로 귀 밖으로 파낼 수도 없으니 순순히 초휴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상성 사람들 앞으로 날조 신분 하나씩을 만든 그는 풍만루 진법을 통해 한 시진 내로 이 신분 내용을 풍만루의 모든 분타에 전송했다. 과연 이런 쪽에 있어서라면 풍만루는 최고라고 칭송받을 만했다.
강호가 이토록 넓건만, 단순히 인력에만 의지해 정보를 강호 전역으로 퍼뜨리자면 대체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어야 가능하겠는가. 먹고 자고 싸는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내달려도 하세월에 될지 모를 일을 그들은 금세 해치운 것이다.
이렇듯 신속함과 정확성은 정보조직에 있어 생명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강호 각지의 풍만루 정보원들에게는 정보의 중요도를 판별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다. 중요하다고 판단된 정보일수록 신속히 본부에 알려야 본부의 진법을 통해 강호 전역에 빨리 전달되기 때문이다.
북연으로 돌아온 초휴는 오앙도인을 통해 상성 사람들을 항충 곁에 박아넣기 전에 그들을 바깥세상에 적응시키고 생경한 발음도 교정해주는 것부터 하게 했다.
상고시대의 발음이 아무래도 당대의 발음과 다른지라 어색하게 들렸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강호가 워낙 넓은 탓에 북연, 동제, 서초, 이 삼국의 발음 간에도 상이한 점이 적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서초 쪽은 마을마다 발음이 제각각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 많은 고수가 하나같이 같은 발음 일색인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겠는가.
상성에서야 같은 마을 출신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서도 그러면 누가 봐도 미심쩍게 생각할 터였다. 해서 발음 교정은 시급한 일이었다.
* * *
그로부터 보름 후, 드디어 오앙도인은 항충에게 인사시키러 상성 고수들을 데리고 갔다. 항충 앞에 선 그는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
“전하, 그간 빈도가 전하를 위해 찾아낸 고수들입니다. 하나같이 빈도와 오래도록 교분을 나눠 온 사이랍니다. 그간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버텨오다가 빈도를 통해 전하가 과거는 따지지 않는, 마음이 하해와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듣더니 감격을 금치 못하며 이렇듯 득달같이 모여든 겁니다. 물론 더러는 세상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평생 깊은 산속에서 은거할망정 강호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겠노라 고집부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건 실패했나이다.”
오앙도인은 마지막 대목에서 애석한 표정을 한껏 지었다. 그간 워낙 거짓말로 단련된 몸이라 그런지, 마치 자기가 정말로 그 많은 고수를 알고 있기라도 한 양 한마디 한마디가 자연스럽고도 절절했다.
그러자 항충은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임풍옥을 통해 이추적을 영입한 것만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급기야 오앙도인이 음산파를 통째로 바쳤을 때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쳐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앙도인이 진화련신 두 명과 진단경 여섯 명까지 데려오자 항충은 배짱이 두둑해진 나머지 지금 당장 대광명사와 한판 해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한동안 허공에 붕 뜬 듯한 기분에 젖어있던 항충은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지금 당장 본궁에게 저분들을 소개해주시오.”
그간 오앙도인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술술 읊어댈 정도로 이들의 신상을 세밀하게 외워두었다.
항충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씩 가리키며 일일이 장황한 소개를 늘어놓았다.
“이분은 선대 팔파(八派) 중 하나였던 건원파(乾元派)의 유일한 생존자로, ‘건원신장(乾元神掌)’ 장곤일(張昆一)이라 합니다. 백 년 전 건원파가 멸문당한 후 장형은 십 년도 넘게 추살에 쫓기다가 십만대산 깊숙이 숨어들었더랬지요. 절치부심 복수의 일념으로 버티다가 얼마 전 나왔으나, 과거의 원수도 진작 멸문당했음을 알았지 뭡니까.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이분은 왕년의 도문 비주류 출신 강자였던 광릉도인(廣陵道人)의 유일한 제자인 진옥생(陳玉生)이라 합니다. 광릉도인이 은마 일맥의 장로인 ‘십방노마’ 원천방에서 살해당한 후 진형도 그자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지요. 그 후로 내내 남해 지역에 몸을 숨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또 이분은······.”
오앙도인은 전혀 버벅거리지 않고 초휴가 일러준 대로 거짓 신분들을 잘도 읊어댔다. 개개의 신상이 상세하고 명확하면서도 일관된 공통점이 있었으니, 하나같이 그 진위 여하를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원천방의 추살에 시달렸다는 진옥생의 사례만 봐도 광릉도인이라는 사람이 확실히 존재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괴팍한 성질머리로 과연 제자를 거둔 적이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그리고 원천방과 도문 일맥 간에 원한이 깊은 것도 맞긴 했다. 그가 도문 사람들을 적잖이 죽였고 그 와중에 광릉진인도 그에게 죽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원천방마저 이미 초휴에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진옥생이 광릉진인의 제자가 맞는지, 또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게 맞는지 죽은 자에게 무슨 수로 확인을 해보겠는가.
이렇게나 많은 강호 강자들이 한꺼번에 충성심을 피력하며 신하가 되겠다고 하자 항충은 가슴이 벅차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나같이 명실상부한 진화련신 및 진단경의 종사들이 아닌가.
게다가 출신 내력과 경력이 평범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줄곧 항충 뒤에 서서 지켜보던 임풍옥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