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4)
884화 사리 분별도 못하다
“전하, 이 많은 사람이 전하의 휘하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떼를 지어 들이닥친 게 다소 의심스럽습니다만······.”
이번에도 임풍옥이 오앙도인을 깎아내리려 드는 이유는 먼젓번과 같았다. 오앙도인한테서 정말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해서가 아니라, 항충의 총애를 그에게 뺏길까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오앙도인이 준엄히 호통을 쳤다.
“의심스럽다니? 네놈 따위가 무얼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지금 빈도와 이분들 간의 깊은 우정을 의심하는 것이냐? 다 같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장이기 때문에 빈도는 신세 가련한 강자들과 적잖이 알고 지내왔느니라. 전하께서는 인재를 필요로 하시고 이분들은 의탁할 곳이 필요하니, 피차간에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것뿐이다. 그런데 대체 뭐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냐? 설마 전하의 세력이 커지는 게 불만인 게냐? 네놈의 그 개미만도 못한 실력으로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라면 여기서 얼쩡대지 말고 썩 물러가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앙도인의 일신에서 음산하고 사악한 한기가 크게 일었다. 순간 임풍옥의 심장은 바짝 오그라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앙도인은 진단경 무도종사 중에서도 실력이 상위에 속했다. 고작 선천경에 불과한 임풍옥 같은 자는 애초에 그의 기세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남자가 욕먹는 꼴을 본 이추적이 두 눈에 쌍심지를 붉히더니 크게 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강력한 기세가 뻗어 나와 오앙도인을 단숨에 제압했다.
“누가 죽고 싶어 환장했다는 거야? 네놈이야말로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는구나! 오앙도인, 왕년에 도문과 은마 일맥에 상갓집 개처럼 쫓겨 다니던 주제였지. 그때는 왜 지금처럼 당당하게 굴지 못했느냐!”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최측근 심복 두 사람이 격렬하게 대립하자 항충이 다급히 중재에 나섰다.
항충은 확실히 오앙도인을 자신의 오른팔처럼 여겼다.
급기야 임풍옥보다 더 신임하고 있는 것이다. 임풍옥이 측근 중 가장 먼저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건 사실이나, 실력과 능력의 한계가 뚜렷했다.
그가 유일하게 항충에게 제공해줄 만한 이점이라고 해봐야 이추적밖에 더 있겠는가. 어차피 항충이 아니면 받아줄 사람도 없는 자가 아닌가. 그가 마음 상한 나머지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조차도 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오앙도인은 오랜 세월 부황에게 충성을 다해온 인물이다. 실력과 세력 면에서도 나름 인정받은 지 오래였다.
게다가 자신을 도와 이렇듯 많은 고수까지 영입해왔으니, 그가 종전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경사가 벌어졌다고 해서 항충이 이성이 흐려진 건 아니었다.
임풍옥이 오앙도인의 공적에 흠집을 내려는 기색이 다분하긴 했으나,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항충은 풍만루로 사람을 보내서 이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강호에서는 어떤 정보나 자료를 점검할 필요가 생기면 으레 풍만루를 찾아가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만큼 풍만루의 정보는 공신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앙도인이 소개한 내용이 모두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오앙도인에 대한 항충의 신임은 한층 더 깊어졌다.
이제 항충의 휘하는 인재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정작 일 처리에 능한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예컨대 임풍옥의 경우 충성심은 봐줄 만하나 본연의 능력과 견식에 한계가 있었다.
뒤에서 이 추적이나 보좌하면 모를까, 단독으로 써먹기엔 깜냥이 모자랐다. 강동명 그 어용 사부는 명성도 있고 실력도 있지만, 대외적인 기선 제압용으로 한번 써먹은 뒤로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한마디로 진정한 능력자와 실력자는 하나같이 오앙도인이 데려온 사람들뿐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중용하지 않으면 누구를 중용한단 말인가.
* * *
하지만 그가 그토록 신임하는 오앙도인은 정작 그 시간에 진무당 내 비밀거점에서 초휴를 만나고 있었다.
항충 쪽의 모든 정보에 대해서 세밀한 종합 보고를 올리는 자리였다.
한동안 듣고 있던 초휴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결론인즉슨, 이제 항충이 도장을 신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까?”
이에 오앙도인이 조소를 머금었다.
“항충이 데리고 있던 자들이라고 해봤자 어느 하나 쓸 만한 놈들이 있어야 말이지. 나를 신임하지 않으면 누굴 신임하겠소?”
사실 항충의 중용을 받게 되면서 오앙도인에게도 초휴를 배신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는 초휴의 수하가 아니라 협력자인 것이다. 그때그때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도 가능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그는 이미 항충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거기에 더해 초휴의 검은 속내까지 고스란히 밀고한다면 항충이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어쩌면 그를 평생 은인으로 떠받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오앙도인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초휴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전에 초휴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휴의 실력은 아직도 다 드러난 게 아니며 여전히 감춰진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그를 지레 떨게 했다. 당금 강호에 있어 초휴의 실력을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간파한 자가 과연 있기나 할까?
이번만 해도 초휴는 하루아침에 정체불명의 진화련신과 진단경 강자들을 대거 데려왔다. 그들의 실력을 다 합치면 적어도 강호에 일류급 종문 하나는 세우고도 남으련만, 그들은 가짜 신분조차 없지 않은가.
오앙도인은 심지어 그중 단 한 명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쌓여 그에게 두려움을 안긴 것이다.
애당초 오앙도인도 그들이 어딘가 수상쩍다고 느끼기는 했었다. 신분도 없는 고수들이라니! 그것도 무려 여덟 명씩이 아닌가.
하지만 다들 워낙 실력자들인지라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아 혼자 의문만 품다 말았다. 초휴의 실력이 이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그의 두려움은 더 커졌다.
물론 그동안 순간이나마 초휴를 배신하고픈 유혹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초휴가 항충을 이길 승산이 더 커 보였다. 적어도 그가 보기엔 그랬다.
“초 대인, 이제 빈도는 항충의 신임을 충분히 얻었고, 대인이 보낸 자들도 항충이 믿고 일을 맡길 핵심 역량으로 자리를 잡았소. 그다음 계획은 무엇이오?”
초휴가 이렇듯 강력한 역량을 항충에게 안겨준 이유가 단지 그의 실력이 증강되고 지위를 공고히 다지라고 벌인 일은 아닐 터였다. 누구 좋으라고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그의 질문에 초휴가 소리를 낮춰 답했다.
“뭐, 별 어려운 건 없소, 항충이 탐욕스럽게 자기 수중에 권력을 더 긁어모으도록 꼬드기기만 하면 됩니다.”
“권력이라니? 어느 쪽 권력을 말함이오?”
초휴가 눈꼬리를 치켜떴다.
“당연히 그가 아직 장악하지 못한 쪽의 권력이요. 이를테면 군부 쪽 진국오군이나 황실 공봉당 등등······. 도장은 내가 보내준 자들을 그런 곳에 꽂아 넣도록 항충을 부추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 항충의 그런 개입에 반발하는 기존세력을 탄압하고 권력 다툼을 벌이는 거죠. 아니, 이런 것까지 다 일일이 내가 알려줘야 합니까?”
오앙도인은 순간 심장 한쪽이 싸해짐을 느꼈다. 초휴의 계책은 얼핏 항충의 세력을 키워주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그의 명망과 평판을 깎아내리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항충은 아직 황제가 아니다. 설령 황제가 되었어도 이렇듯 막무가내로 북연 각 부문의 권력을 탐하려 들었다가는, 기존세력의 반발을 초래함은 물론이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예컨대 진국오군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군부 장로들 개개인이 소유한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진국오군 요직의 고수들은 하위 계급에서 상위 계급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장로들이 직접 발탁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항륭이 첩자 삼아 직접 군부에 꽂아 넣은 항무가 유일했다. 하지만 항무가 서릉군 대장군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출중한 실력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를 들자면 그가 황족의 신분이긴 하나, 실제로는 강호에서 성장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항륭이 그를 발탁했으나 사실 항무는 황족들과 소원한 관계였다. 따라서 진국오군에서도 그의 특수한 처지를 감안하여 과도히 경계하고 배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충은 항무의 경우와는 엄연히 다르다. 항충이 진국오군에 개입하여 권세를 탐하려 드는 순간, 군부는 그를 적으로 간주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항충 자신이 먼저 그런 우려를 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오앙도인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자기 무덤 파는 격인데 과연 항충이 내 말대로 하려 들겠소? 초 대인, 내 그냥 까놓고 말하리다. 그간 항충 옆에 있어 보니 그자가 심성이나 능력이 그리 빼어나진 못해도, 그렇다고 바보 멍청이는 아닙디다. 자기가 군부에 손을 대면 어떤 후과가 생길지 가늠 못 할 것 같진 않단 말이오.”
이에 초휴가 당당히 소맷자락을 날리며 받아쳤다.
“당연히 뭔 일이 날지 알고도 남겠지요. 하지만 결국 그리하려 들 겁니다. 항충이 왕년에 얼마나 멸시당하고 살았는지는 도장도 잘 아시지 않소. 특히나 군부 측 거물급치고 항충을 지지하거나 도운 자는 아무도 없었소. 되레 항려 쪽에 붙어 그를 괴롭혔으면 모를까. 이런 홀대를 받으며 살아온 항충이 군부 쪽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잖소? 칼을 갈며 인고해온 세월만도 벌써 스무 해에 가깝소. 이제 모두 태도가 돌변해 태자가 된 항충의 휘하로 들어온다 해도 그는 여전히 묵은 악감정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거요. 도장은 그저 적당한 때를 봐서 항충에게 간언이나 해주시오. 나머지는 그자가 스스로 다 할 게 틀림없소이다.”
초휴는 사람 보는 눈이 꽤 정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항충을 처음 봤을 때는 판단 착오가 있었다.
나중에 항충의 심리 상태를 곰곰이 연구해보고서야 태자가 된 후, 그가 이렇게까지 돌변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삐뚤어지게 한다. 항충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살다가 하루아침에 천하를 손에 넣었다. 이렇듯 엄청난 인생 역전을 겪고도 매사에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현재 항충도 자신의 격상된 신분에 적응이 안 되어 갈피를 못 잡는 중인 것이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황위에 오른 제왕은 세상인심의 무상함에 익숙하다. 내게 권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세상이 나를 대하는 눈빛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에 그러려니 웃어넘길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처지가 어두워도 사람의 잠재력은 알 수 없는 법이니 도박을 하는 셈 치고 손을 내미는 자들도 있기야 하다. 하지만 저 아래 밑바닥에서 참담히 버둥대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흔쾌히 걸어보는 게 쉽겠는가.
사람들은 권세의 향방을 봐가며 충성하기 마련이다. 내게 권세가 있다면 충성심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준비된 제왕은 이런 이치를 잘 알기에 나를 저버리고 냉대했던 자들도 여유롭게, 그리고 현명하게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항충처럼 준비라곤 없이 졸지에 황제가 되는 경우는 과거에 당했던 홀대와 무시를 좀처럼 잊지 못한다. 대접받아본 일 자체가 없으니 위안 삼을 만한 과거도 없어서 가슴에는 울분이 가득한 것이다.
자기가 당했던 일들이 억울하고 분하여 어떻게든 고스란히 갚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따라서 항충이 군부의 반발을 살 게 겁나 감히 저들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오앙도인의 염려는 기우에 불과할 터였다. 오히려 항충은 내심 저들의 반발을 핑계로 더 세게 때려주려고 벼르는 중일지도 몰랐다.
오앙도인은 초휴의 분석에 여전히 의구심이 일었다. 하지만 이미 초휴의 편에 서기로 한 이상, 그 앞에서 잘난 척, 아는 척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닐 터였다.
초휴의 말대로 기회를 엿봐 항충을 부추기면 결과는 자연히 알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