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6)
886화 충돌
항무는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나더니 다시금 아까의 그 우울한 얼굴로 돌아가 향초를 우적우적 씹어댔다.
“그럼 앞으로 어쩌실 거요?”
“어쩌긴 뭘 어째? 항충은 태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었고 폐하는 간당간당하시니 이제 와 또 태자를 바꿀 수야 없지 않겠소. 항충을 건드리면 폐하를 힘들게 하는 셈이 되니 일단은 참을 만큼 참아 봐야지.”
초휴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나리야 참고 넘긴다 쳐도 그렇지, 북궁 대장군과 황실 공봉당 측도 역시 인내심이 좋을까요?”
그 말에 항무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북궁 대장군이 평소에는 쉰내 나는 유생처럼 보여도 사실은 성질머리가 나보다도 불같소. 그래도 참아야 하면 참아야지 어쩌겠소? 설마 그 정도 일로 이런 때 태자와 반목할 수도 없으니까. 북궁 대장군은 오랜 세월 동산군을 지휘해왔지. 동산군이 한낱 밖에서 굴러들어온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뒤흔들릴 만큼 허접한 군대가 아니란 말이오. 그건 우리 서릉군도 마찬가지고.”
“암튼 당분간은 별일 없을 거요. 일단은 분을 삭이고 나중에 기회 되면 녀석한테 얘기나 해봐야지. 황실 공봉당 쪽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하오만······. 듣자니 항숭도 엄청 열을 받은 모양이더군. 하지만 그 나리는 온종일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처럼 앉아계시는 분이니까. 이권 다툼 같은 것엔 별로 관심도 없으신 데다, 인제 와서 태자를 폐할 것도 아니니 역시나 참을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그분은 항충의 황숙이시니, 작작 좀 설쳐대라고 주의를 주긴 하신 모양이더군. 항충이 말로는 알았다고, 조심하겠다고 했다지만, 그 후에도 하는 꼴을 보니 달라지긴 뭘 달라져!”
초휴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얼추 계획대로 되어가는 셈이었다.
사람에 대해서건 사물에 대해서건 간에 한번 첫인상이 굳어지면 좀처럼 바뀌기 어려운 법이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군부 및 공봉당 측에서 항충을 어찌 생각하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항충이 부황의 말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양이 아닌가. 심지어 황숙의 말까지 제대로 먹히지 않는 걸 보면 알조인 것이다.
그리고 항륭에게 항충을 단속할 기운이나 있겠는가. 아직 숨은 붙어있어도 그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항충이 각처에서 지탄받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항무 등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그때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하늘만이 알 터였다. 초휴가 작금의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순간 진무당 제자가 황급히 뛰어와 보고했다.
내용인즉슨, 진무당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심비응과 대광명사 화상 간에 충돌이 빚어졌고 이미 진무당 사람들이 지원하러 달려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대치 국면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항무가 초휴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자고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지. 내 보기에 초 대인 쪽도 하루하루 지내기가 녹록치는 않은 모양이구려.”
항무가 동정하자 초휴는 좀 답답해졌다. 갑작스레 엉뚱한 일이 벌어져 그의 계획을 엉클어 놓았으니 말이다.
밥은 한 입씩 먹어야 하듯, 골칫거리도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본래 초휴의 계획은 먼저 항충을 처리하고, 그다음은 항려를 황위에 앉히는 것이었다.
도불 양맥을 불러온 것은 항륭이었다. 새 황제가 등극하면 성지를 내려서 그들을 쫓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반발해서 못가겠다고 버틴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북연 백성들에게 도불 양맥의 공양을 엄금하면 대광명사와 순양도문이라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들이 강호 일에야 개입할 수 있다지만 북연 백성 전체를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연 항씨 일족을 전멸시켜 황실의 성을 바꿔버린다면 모를까.
그러나 항충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도 전에 승려와 도사들이 이렇게 빨리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도불 양맥이건, 진무당이건 그간은 출수를 자제하고 있었다.
도불 양맥은 포교가 주목적이었다. 천부적 자질과 재능을 타고난 제자들을 최대한 끌어모으려고 했다. 그리고 초휴는 일단 항충을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도불 양맥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도불마 삼맥은 원래 서로를 싫어하니 아무리 성질을 죽이고 있다 한들 충돌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초휴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당아에게 그만 먹으라고 손짓했다. 그는 항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무당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실례해야겠군요.”
항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보셔야지.”
초휴 일행이 떠난 후, 항무는 당아가 거의 다 먹어치운 빈 접시 무더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치들이 계산은 하고 간 건가?”
* * *
거령방 앞, 심비응은 거령방 제자들을 이끌고 승려 무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지금 거령방은 완전히 진무당의 종속 세력이었고 심비응은 초휴의 수하 중 가장 충성스러운 개라 할 만했다. 혹은 미친개라고 할 수도 있었다.
초휴가 물라고 하면 아무나 서슴없이 물었기 때문이다. 물론 심비응이 진심으로 초휴에 충성해서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하극상을 저질렀다. 초휴와 결탁해 전임 방주 방대통을 죽이고 거령방주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무당의 수련 자원과 무공 비급에 의지해 진단경에 올랐다. 결국, 그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은 초휴 혹은 진무당과 얽혀 있는 것이다.
쌍방은 손해와 이득을 모두 공유하는 사이였다. 그러니 초휴를 배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눈앞의 대광명사 무리는 본래 그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던 승려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심비응은 반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대사님, 대광명사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이리 횡포를 부리실 수는 없소이다. 거령방에 쳐들어와 사람을 내놓으라니, 진무당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오? 초 대인이 우습게 보인다는 말씀이오?”
대광명사 무리의 우두머리는 온화해 보이는 중년 승려 허녕(虛寧)이었다.
그는 허 자 항렬 제자 중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사람으로 상좌도 아니었다. 그러나 금강원 상좌인 허언을 도와 갓 금강원에 들어온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무공이 아니었다. 제자들의 마음속 고집과 빈틈을 없애 주는 일을 했다. 금강원의 노목금강심경은 마음속의 분노를 키우기 쉬웠기 때문이다.
허녕은 낯빛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심 방주, 대광명사가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니라 거령방에서 도를 넘은 거요. 우리 대광명사에서 왕가 제자를 거두려 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왕가를 멸문시켜 버리고 왕가 제자를 데려가기까지 했잖소. 이건 대광명사와 적대하겠다는 소리가 아니오?”
대광명사와 거령방이 부딪친 이유는 단순했다.
대광명사는 북연에서 포교하는 한편, 북연 강호 전체를 돌아다니며 적합한 제자 감을 찾고 있었다. 사실 대광명사는 강호에서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광명사가 너무 제멋대로인 데다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광명사도 이번은 태도를 바꾸었다. 북연의 군소 세력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무도에 관해 가르침을 주고 동시에 불종의 도리도 설파했다.
후자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어쨌건 수많은 군소 세력이 경계심을 내려놓았고, 대광명사는 조건에 들어맞는 제자를 적잖이 찾을 수 있었다. 왕가 제자 역시 개중 하나였다.
왕가는 연경성 주변의 작은 세가였고 가주 역시 외강경에 불과했다. 아들이 대광명사 제자가 될 거라는 말에 왕가의 가주는 몹시 들떴다. 이제 기댈 뒷배가 생겼으니 왜 흥분되지 않겠는가.
그의 아들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고, 강호에 나서 본 일도 없었다. 대광명사에 가서 승려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저 아버지보다 몇 천, 몇 만 배는 더 힘이 센 뒷배가 생긴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나 대광명사의 승려가 되려면 체도(剃刀, 정식 승려가 되어 머리를 깎는 의식) 등 여러 의식을 행해야 했다. 대광명사는 왕가 사람들에게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기다리라고 전했다. 제자를 거둘 만큼 거두면 모두 한꺼번에 체도를 행할 참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일이 터진 것이다.
왕가는 마침 거령방의 세력 범위에 있었다. 진무당의 규칙에 따르면 매월 수입의 일부분을 거령방에 바쳐야 했다.
뒷배가 생긴 왕가는 그 돈을 바치기 싫어졌다. 심지어 거령방 사람들과 충돌하기까지 했다.
문제를 일으킨 왕가 제자는 너무 젊었다. 일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고 홧김에 거령방 제자 하나를 기습해서 죽인 것이다. 심비응은 격노했다.
만일 왕가에서 아들이 대광명사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만 했어도 거령방은 굳이 그 푼돈을 억지로 받아내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초휴는 항충을 먼저 상대해야 하니, 진무당에도 작은 일은 도불 양맥에 적당히 양보하라고 분부를 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말았다. 이건 거령방의, 진무당의, 그리고 초휴의 따귀를 갈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심비응은 명령을 내려 왕가를 멸문하고 그 제자를 잡아 온 것이다.
“스님, 사실을 곡해하면 곤란하오. 왕가 제자가 우리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거령방이 그들을 멸문한 거요! 우리 거령방은 지금 초 대인 밑에서 일하고 있소.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초 대인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단 말이외다!”
허녕은 합장하더니 염불을 읊었다.
“은혜와 원한, 옳음과 그름에 대해서는 빈도도 길게 말할 생각이 없소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 봐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요. 왕가 사람 수십 명이 거령방에 죽었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이까?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소. 빈도 역시 왕가의 사망자 수십 명 때문에 거령방 수십여 명을 죽여 복수하려는 건 아니오. 그저 심 방주께서 왕가 제자를 빈도에게 넘겨주기를 바랄 뿐이오.”
심비응은 단칼에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애송이가 먼저 우리 사람을 죽였소. 이번 사태의 수괴인 셈인데 그냥 넘겨달라니, 북연 무림에서 우리 진무당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소? 그리고 거령방이 왕가를 멸문시켰으니 그놈은 필경 우리 거령방을 뼛속 깊이 원망할 거요. 그런 자를 놓아주어 후환거리를 만들라고? 그건 절대 아니 되오!”
허녕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구려. 심 방주가 내주지 않겠다면 빈도는 빼앗는 수밖에!”
허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에서 강맹하고 광포한 금빛 강기가 폭발했다. 사마외도를 주살하는 노목금강의 힘이었다!
허녕은 금강원에서도 보기 드물게, 자신의 의지로 노목금강심경의 부작용을 제압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매우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평온해도 그 역시 금강원 사람이었다. 노목금강심경을 극한까지 펼치자 기세가 광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항마인이 작렬하는 순간, 심비응은 그 일 초에 나가떨어졌다. 내장이 뒤흔들려 피를 토할 것 같았으나 간신히 참았다. 눈에 경악의 기색이 가득했다.
심비응은 진단경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자신의 실력이나 자질 역시 뛰어난 편은 못 되었다. 그저 진무당의 수련 자원에 의지해 진단경이 되었을 뿐, 그의 실력 자체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같은 경지 안에서도 전투력은 천지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심비응 정도면 진단경 중 가장 약한 축에 속했다. 심지어 바깥세상의 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상성 출신 무사만도 못했다.
적어도 그쪽은 육신이 강해서 맷집이라도 좋았다. 심비응처럼 일 초에 나가떨어져 피를 토할 지경까지 몰리지는 않을 테니까.
허녕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시 항마인을 날렸다.
허언이 그에게 말하기를, 북연에 가는 주목적은 포교니까 은원이나 기타 골칫거리는 가급적 피하라고 했다. 해서 그는 독한 초식은 쓰지 않았다. 그저 심비응을 잠시 싸우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만 빼내서 떠날 생각이었다.
순간 느닷없이 광포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그 강대한 힘에 허녕의 낯빛이 변했다.
항마인이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 다른 쪽으로 터져나갔다. 폭발음과 강기의 파동이 연이어 울렸다.
허녕은 거대한 힘이 닥쳐오는 것을 느꼈다. 금빛 불광의 강기가 크게 일며 그 힘을 막기는 했으나, 결국은 뒤로 몇 걸음 나가떨어졌다.
연기가 흩어지자 거대한 검을 쥐고 선 안불귀가 보였다. 그는 무표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방금 부딪친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심비응이 얼른 말했다.
“안 대인, 마침 잘 오셨소이다. 안 대인이 제때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거령방은 저 승려들을 막을 수 없었을 거요.”
안불귀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비응 역시 초 대인의 심복 안불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본래 언변에 서툴렀다. 그러나 싸움만 잘한다면 언변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허녕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속으로 골치 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안불귀는 강호에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연, 특히 진무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는 초휴가 재야에서 거두어 심복으로 삼은 수하였다. 실력이 강대했고 독한 성품에 말수가 적으니,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