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
악씨 가문을 멸하는 임무를 선택했을 때, 초휴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이 일을 해낼 생각은 아니었다. 매일 수십 명씩 꾸준히 일 년 동안 죽인다 해도 악씨 가문을 몰살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일 년이 되기도 전에 신무문의 지원군이 당도할 터였다. 따라서 남은 시간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악가 문중들이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일으켜 종국에는 사분오열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초휴는 악동행의 마음속에 ‘원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심었다. 그 씨앗은 오래지 않아 싹을 틔우게 될 것이다. 악동행은 주막에 마련된 방에 혼자 앉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주인이 방문을 벌컥 열고 음식을 내오는 바람에 그만 생각의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썩 꺼져!”
악동행이 홧김에 호통을 쳤다. 깜짝 놀란 주인은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하며 놀라서 물러갔다. 평소 삼노야의 태도가 그다지 점잖지는 않았다 해도, 이처럼 포악하게 군 적은 없었다. 설마 내가 삼노야께 잘못이라도 한 걸까. 주인은 분탕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생각이 끊겨버린 악동행의 눈빛에 독기가 감돌았다. 청룡회 살수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불공평하다!’
지금 자신에 대한 가문의 처사가 얼마나 불공평했으면 외부인까지도 그렇게 느꼈을까. 아홉 방 가운데 그의 삼방은 단연 공로가 가장 컸던 방 중의 하나였다. 가주 자리도 물 건너간 마당에 남의 방패막이나 하고 있다니. 그래 봤자 결국 방계로나 밀려날 처지인 판에 말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그래, 반란을 일으키자!’
살수도 말했듯이 지금 가문의 세력이라면, 절반이 죽어 없어진다 해도 임중군 내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혼대법은 수련자의 의도대로 상대의 정신과 심경에 영향을 미치는 무공이다. 그러나 초휴의 수련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상대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과 숨겨진 욕망을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초휴가 슬며시 뿌려놓은 씨앗이 싹을 틔운 순간, 악동행은 그간의 냉정함을 잃고 최후의 도박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악동행 자신은 그 씨앗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자신의 본심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예전에는 생각으로 그쳤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결행할 결심이 섰다.
결심이 선 이상,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일단 자신의 거사에 동조할 만한 친족들과 문객 등을 규합하기로 했다. 물론 대방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초휴에게 내강경 두 명, 즉 사노야와 오노야가 당하는 바람에 지금 문중에는 내강경 고수가 여섯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세 명이 직계 혈통에 속했다. 거기서 대방의 악동림과 삼방의 악동행을 제외하고 나면 구방의 구노야가 악동행의 편에 서 있었다. 그도 대방을 감싸고 도는 부친의 행태에 우회적으로나마 불만을 토로해오던 참이었다.
직계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세 명 중 하나는 악씨 가문의 고참 집사로서 악학년에 대한 충심이 남달랐다. 따라서 악학년을 배반할 리 만무하니, 처음부터 그는 부르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명인 악평(岳平)은 방계 출신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약한 인물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악동행이 강호에서 사귄 절친 진정무(陳定武)로, 악동행이 영입해서 이곳
문객으로 들어온 자였다. 따라서 당연히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구노야와 악평, 그리고 진정무는 악동행의 느닷없는 호출에 또 뭔 일이 생겼나 싶어 달려왔다. 악동행이 서재의 문을 닫아걸더니 그 세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러분, 지금 우리 가문의 상황을 잘 알 것이오. 일이 이 지경이 된 게 누구의 책임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소. 욕심만 많고 머리에는 똥만 가득 찬 악노천, 그 새끼가 혼약만 깨면 되는 일을 굳이 목씨 가문의 씨를 말려버렸소. 결국, 이 일 때문에 청룡회의 살수까지 불러들이게 된 게 아니오. 그런데 정작 대방은 안채에 숨어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고, 애먼
우리 사람들만 죽어 나가고 있소. 신무문에서 지원군이 당도하고 악노천이 저들의 사위가 되고 나면 우리는 끝났다고 봐야 하오. 그날이 오면 우리 가문은 대방의 수중에 떨어지는 건 물론이요, 우리 같은 떨거지들은 방계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오.”
이에 구노야가 맞장구를 쳤다.
“셋째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진작부터 저들이 못마땅했소. 하지만 아버님이 대놓고 큰형님 편을 드시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악동행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들고 일어나야지. 이젠 아버님도 연로하셔서 그런지 예전의 총기는 진작에 잃어버리셨어. 가문을 발전시킬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든 신무문에 빌붙을 생각뿐이니 말이다. 거대 문파에 기대어서 득이나 볼 생각이라면, 장차 우리 가문은 어찌 되겠느냐? 우리 후손들은 나태해지다 못해 갈수록 우매해질 것이고, 결국 퇴물들만 양산
하게 되겠지. 그러니 잠시 아버님이 물러나 계시도록 할 수밖에 없다. 살수가 말끝마다 임무만 완수하면 끝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살수에게 악노천과 대방 것들을 내어주면 될 일이야. 살수가 그것들만 죽이고 나면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 더 없을 거다.”
그의 말이 끝나자 진정무 외 두 사람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구노야는 원래부터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지라 덜 놀란 눈치였다. 물론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뿐이지, 악동행처럼 감히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악평은 벌떡 일어서며 단호히 말했다.
“형님, 오늘 하신 말씀은 안들은 걸로 하지요.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절대 발설하지 않을 테니 염려는 놓으십시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악씨 가문 사람이긴 하나 방계에 불과했다. 이런 직계 혈통끼리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날벼락을 맞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게다가 가문의 최고 어른을 밀어낸다고 하니, 더더욱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등을 보이며 서재를 나서려 하자 악동행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자네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자네가 나와 함께 해준다면, 자네의 후손들은 장차 직계가 될 걸세.”
악평은 그 말에 흠칫 멈춰 섰다. 지금의 방계도 사실 백 년 전에는 어엿한 직계였다. 권력다툼에서 밀려나거나 핏줄이 분산되면서 방계로 전락하게 됐을 뿐이었다. 직계와 방계를 불문하고 악씨 가문의 피를 나눠 가진 건 마찬가지고, 뿌리도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방계가 당하는 차별대우는 너무도 부당한 점이 많았다. 악동행이 그 점을 건드린 것이다. 악평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악동행이 확인사살에 나섰다.
“아버님은 많이 늙으셨어. 사고방식도 일 처리도 지나치게 고루하단 말이지. 만약 내가 가주가 되면 우리 가문의 규율도 뜯어고칠걸세. 한 집안 자손끼리 직계면 어떻고 방계면 어떻단 말인가. 굳이 이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내가 가주가 되면 출신 따위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 볼 것이네. 실력만 있으면 직계가 될 수 있게끔 규율을 싹
바꿔버리겠다는 말이야.”
악평은 뭐에 홀린 듯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형님, 지금 하신 말씀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설마 공개적으로 한 말을 번복이라도 할까 봐서 그러느냐?”
악동행이 웃으며 대꾸하자, 이번에는 구노야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형님, 하지만 아버님을 물러나게 하려면 문제가 많을 거요. 아버님 하나만도 우린 대적하기 어려울 거란 말이지요. 노인네가 정말 제대로 열 받으면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할 거요. 게다가 대방 놈들을 우리가 손봐주는 날엔······. 특히, 악노천 그놈이 문제가 될 겁니다. 신무문에는 뭐라고 설명을 한단 말이오?”
“일단 반기를 들기로 한 이상 다른 건 차차 생각해도 늦지 않아. 어떻게 아버님을 물러나게 할 건지에만 집중을 하자고. 나한테 천촉 땅에서 가져온 강력한 독극물이 있다. 무색무취에다 아무런 맛도 없지. 당가보에서도 그 독물로 암기를 만든다고 들었다. 하지만 외강경에게는 치명타를 주지 못해. 대신 잠시 힘을 못 쓰게 억누를 수는 있지. 우린 그저 아버
님을 물러나게 하려는 것일 뿐, 아버님을 시해하거나 가문 전체를 무너뜨릴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신무문 쪽도 문제없어. 그들이 따지고 들면, 청룡회의 살수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될 테지.”
“대방을 멸하는 게 원래 살수의 임무였잖아. 신무문이 목가 잔당한테 따지든, 청룡회한테 따지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우리만 입단속을 철저히 하면 이 계획이 새어나갈 리는 없으니까. 어쨌든 악노천만 없어지면 아버님도 신무문에 빌붙으려던 생각을 접으실 거야. 그때가 되면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한테 가문을 맡기실 수밖에 없어.”
악동행은 이미 모든 걸 머릿속으로 계획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미처 못한 사람들은 섣불리 대답도 못 하고 고민에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진정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악동행 옆으로 가서 앉았다. 말은 안 했어도 행동으로 보여 준 셈이었다. 처음부터 악동행과의 친분으로 영입된 사람이니, 그의 편을 드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장차 악동
행이 가주가 되면 본인에게도 이득일 테니,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마침내 구노야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일은 결코 우리가 대방에 죄를 짓는 게 아니오. 저들이 먼저 우리한테 잘못했기 때문에 이리된 것이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대방 놈들은 무사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살수의 손에 죄다 죽게 될 거요. 그건 피해야 합니다.”
방계 무사 악평도 결국 고개를 끄덕여 동조의 뜻을 표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직계로 올라설 수 있으니, 감히 도박을 걸어볼 만했다. 모두가 찬성하자, 악동행이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졌다.
“다들 마음을 모아준 이상, 질질 끌 거 없이, 내일 밤 행동에 들어갑시다. 아홉째 너는 사방과 오방 사람들을 끌어들이거라. 넷째와 다섯째가 대방으로 인해 살수에게 죽었으니, 그 빚을 갚는 데 있어 저들을 빼놓을 수야 없지 않겠느냐. 악평 자네는 방계 친족들을 맡아줘야겠네. 아무래도 자네가 방계에서 가장 명망이 높으니, 설득도 자네가 적임자네. 진
(陳)형은 문객들 가운데 단연 실력이 출중하니, 적어도 문객의 칠 할은 장악할 수 있을 거요. 재물이든 수련 자원이든 지위이든 간에 아끼지 말고 주겠다고 하고, 최대한 많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오. 여러분, 이 일이 성공만 하면 우리 가문은 새롭게 태어나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가문을 재건해서 다시는 이런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폭풍 전의 고요’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미 밖에서는 계획대로 반란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악학년과 대방 사람들은 안채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그런 낌새를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리깔릴 무렵.
본채에서는 악학년과 아홉 방의 주요 인사들, 방계에서 존재감 있는 무사들, 그리고 중요한 문객과 집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악씨 가문의 오랜 전통이었다.
평소 각자의 일이 바빠 모이기가 힘드니, 적어도 열흘에 한 번씩은 본채에서 회식 자리를 가지면서 얼굴이나 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에 가문의 중대사를 의논하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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