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2)
892화 밀고 당기기
엽소의 장검이 번쩍 빛을 뿜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내력의 검강이었다. 그러나 다운자와 수진자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진기에는 지극히 굳센 양의 기운이 한 가닥 서려 있었다. 무공 수련을 통해 생긴 게 아니고 타고난 내력의 근원에 담긴 힘이었다.
다운자와 수진자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하지 않은가.
‘이건 하늘이 내린 기재가 아닌가! 순양도문에 가장 적합한 하늘이 내린 기재!’
다운자 같은 순양도체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엽소가 펼치는 내력의 속성은 순양도문의 순양에 딱 어울리는 힘이었다.
‘지금 저 정도라면 순양도문의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하면 하루에 천 리씩 실력이 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기쁨과 놀라움을 느꼈다. 엽소에 비하면 방가 제자는 쓰레기로 보일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방가에 와서 마음에도 없는 간판 노릇을 해 주는 것이 못마땅했는데, 이런 의외의 수확이 생길 줄이야.
다운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강호 정보원 말에 의하면 저 젊은이는 낭인 출신이랍니다. 낭인 출신으로 저 정도 경지까지 수련했다는 것은 무도에 대한 오성과 자질이 비범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좋은 건 낭인 출신이니 잡다한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겁니다.”
그간 순양도문이 북연에서 거둔 제자 중 낭인 출신은 일할 정도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방가처럼 군소 세가에서 길러낸 자들이었다.
일단 전승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부모가 모두 무사면 후손 역시 좋은 자질을 타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기초를 쌓기 때문에 그 기초가 좋건 나쁘건 잠재력을 틔워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배경이 초라한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있어도 평생 무도를 접해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 기초를 잘 다져 두지 않으면 경맥이 점차 막히고 만다. 결국, 타고 난 좋은 자질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순양도문으로서는 아무 배경도 없는 낭인 무사들을 입문시키고 싶었다. 골치 아플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군소 세력들은 별 실력도 없으면서 온갖 일을 벌였다. 먼젓번 벌어진 초휴와의 충돌이 좋은 예였다. 아무 배경이 없는 제자가 훨씬 통제하기가 쉬웠다.
수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지켜보자꾸나. 평판은 괜찮은 모양이다만, 심성이 어떤지도 봐야 하니까.”
그때 진오교는 이미 엽소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채였다. 사실 그것도 엽소가 봐 준 것이었다. 엽소가 청룡회에서 단련한 살인 기술을 사용했으면 진오교는 삼 초 안에 죽었을 것이다.
“방 가주! 살려주시오!”
진오교가 갑자기 방가 가주를 향해 악을 썼다.
방가 가주의 낯빛이 살짝 변하더니 음침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느닷없이 나서서 진오교를 붙들었다.
“엽 소협이라 했는가? 이자는 상망산의 도적으로 그간 적잖은 상단을 약탈했네. 우리 방가도 이자와 원한이 있다네. 이자를 죽이는 데 굳이 엽 소협이 나설 것까진 없네. 나중에 내가 이 악한에게 해를 입은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심판해서 처결토록 하지.”
엽소가 냉소했다.
“나를 멍청이로 아는 거요? 진오교가 이미 다 말했소. 자신이 거느린 교룡채는 당신과 힘을 합쳐 만든 것이라더군. 그간 당신네 방가가 교룡채를 암암리에 후원해 온 걸 모를 것 같소! 방가와 원한이 있거나 경쟁할 만한 상대는 이 악당을 시켜 모두 죽여 버렸지 않은가!”
그 말에 누구 할 것 없이 안색이 변했다. 방가 가주를 쳐다보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오교라고 약탈할 때마다 사람들을 몰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몰살해 버린 사람들은 모두 방가의 경쟁 상대들이었다.
그러니 진오교가 방가의 사주를 받은 것일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방가가 정말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산양부 전체를 배신한 것과 진배없었다.
방가 가주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방가가 왜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엽소가 냉소했다.
“진오교가 방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내가 추격했을 때 왜 상망산으로 도망치지 않고 산양부 방가로 왔겠소? 그리고 어째서 진오교가 당신더러 살려 달라고 고함을 친 거요?”
방가 가주가 뭔가 변명을 생각해 내려는데 엽소 벌써 달려들고 있었다. 가주의 낯빛이 변했다. 그는 즉각 방가 사람들에게 엽소를 막으라고 명했다.
그러나 엽소는 마치 마귀에라도 씐 것 같았다. 수십 명이 나섰으나 그를 막지는 못했다. 그는 달려드는 자들을 떨쳐버리고 그대로 진오교를 베어 죽였다.
방가 가주는 화가 치솟아 온몸이 떨렸다. 그러나 엽소는 진오교의 머리를 들고 당당한 자세로 등을 돌려 떠나려 했다.
구경하러 왔던 무사들의 방가 가주를 보는 낯빛이 달라져 있었다. 저 젊은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 보듯 훤하지 않은가. 군중들이 지금 여기서 대놓고 공격하지 않아도, 앞으로 방가가 산양부에서 편안히 지내지는 못할 터였다.
다운자와 수진자는 시선을 교환한 후 즉각 엽소를 따라나섰다. 방가 가주는 순양도문 사람들을 붙들려 했으나 다운자와 수진자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방가 밖에서 수진자가 엽소를 불렀다.
“거기 소협, 잠시 이야기 좀 하세나.”
엽소는 고개를 돌리더니 무표정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수진자가 빙긋 웃었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가?”
엽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삼대 도문 중 하나인 순양도문의 진인이시지요. 방가에서 며칠 전부터 오늘 치르는 의식을 떠들어댔죠. 산양부가 아니라 임중군 전체가 다 알 겁니다.”
수진자가 자상한 얼굴로 웃었다.
“소협, 내가 보니 자네의 자질이 아주 빼어나더군. 우리 순양도문의 제자로 삼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엽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만.”
수진자와 다운자는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간 북연에서 제자를 모집하는 동안, 낭인 출신이건 군소 세력 출신이건 일단 순양도문이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하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응했다.
그러나 이 애송이는 단번에 거부 의사를 표한 것이다. 자기가 뭘 거절한 건지 알기나 할까?
“어째서인가? 순양도문에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는가?”
수진자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묻자 엽소는 담담히 답했다.
“당연히 알지요. 순양도문에 입문하면 남보다 뛰어난 무사가 되어 강호에서 행세하고 다니게 되겠죠. 하지만 옛날 제게 무도를 가르친 사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사의 검은 세상의 바르지 못한 일을 베는 데 써야 한다, 자신의 양심과 손에 쥔 검 앞에 떳떳해야 한다고요. 방가 가주는 진오교와 결탁해서 무고한 상단 사람들을 해쳤습니다. 그야말로 비열하고 악랄한 짓을 저질렀지요. 저 하나의 힘으로는 진오교를 죽였을 뿐 방가를 멸문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순양도문은 이 일에 관여할 힘이 있음에도 수수방관했을 뿐 아니라 방가와 함께 어울려 그들의 낯까지 세워주지 않았습니까. 소위 명문정파라면서, 방가와 의기투합하여 개나 파리처럼 이득을 위해 달려든 것 아닙니까. 그런 문파는 아무리 실력이 강하고 위세가 대단해도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이 엽 아무개는 말씀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 자리에는 다운자와 수진자 외에도 순양도문 무사 몇 명이 함께 와 있었다. 엽소가 순양도문을 모욕하자 다른 무사들은 대로해서 엽소에게 덤비려 했다.
그러나 수진자가 그들을 말렸다. 그의 얼굴에는 노기는 아니라 만족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 젊은이는 참으로 바른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비록 성격이 불같은 외골수긴 하지만, 의기를 품고 악을 원수 보듯 하는 인물인 것이다. 이토록 곧은 성품의 청년을 어디 가서 얻겠는가.
수진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의 사부님은 진정한 협객이셨군. 지금은 어디 계시는가?”
엽소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낭인 무사셨고, 실력은 지금의 저보다도 약하셨지요. 다른 낭인 무사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도와주려다 어느 문파의 협공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그의 명분상 사부는 초휴였다. 그러나 초휴가 시킨 대로 말한 것이었으니 엽소가 불경한 소리를 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수진자가 말했다.
“우리더러 방가와 한통속이라고 말한 것은 오해일세. 우리 순양도문은 방가 제자 하나를 거두었을 뿐이네. 만일 방가가 순양도문의 명성을 빌려 악행을 저질렀다면 순양도문이 제일 먼저 나서서 그들을 징벌했을 것이야. 그러나 방가와 진오교의 일은 분명 우리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네. 그러니 그 방가 제자를 거두지 못하게 되더라도 방가를 엄격히 조사해 볼 생각이네.”
“자네가 의협심이 강하고 의기를 품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일세. 하지만 세상에는 옳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고, 실력이 없으면 악을 뿌리 뽑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하네. 자네 사부는 혼자 몸이었기 때문에 협공당해 돌아가신 것이네. 자네가 우리 순양도문에 입문한다면 순양도문 전체가 자네의 뒷배가 되어줄 걸세. 젊은이, 순양도문에 들어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네. 만약 언제가 되더라도 정말로 후회하게 된다면 언제든 자네를 내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지.”
어떤 사람이든지 무언가 엉뚱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갖기 어려운 것을 어렵게 얻었을 때야말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청년 무사들은 순양도문이 받아 준다고 하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수진자와 다운자는 그런 젊은이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엽소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심지어 순양도문이 명성만 좇는다고 비난하자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엽소가 조금 머뭇거렸다.
“방금 하신 말씀이 정말입니까?”
수진자가 웃었다.
“당연히 정말이지. 단편적인 사실만 보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순양도문 역시 정도 무림의 대문파일세. 오늘 일은 어쩌다 있을 수 있는 부주의일 뿐이었네. 강호에 두루 알아봐도 좋네. 강호에서 우리 순양도문의 평판이 특별히 좋지 않을 수는 있어도, 순양도문더러 사마외도와 결탁했다고 말하는 자는 전혀 없을 걸세.”
다운자도 옆에서 말했다.
“그리고 자네의 자질은 순양도문 무공을 수련하기에 매우 적합해. 세상의 수많은 악을 제거하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 해도 실력이 없으면야 불가능한 일이지. 오늘도 방가 하나 어쩌지 못했으면서, 앞으로 자네보다 훨씬 강한 악인들을 어떻게 상대할 텐가? 우리 순양도문에 들어온다면 진단경 무도종사 이상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을걸세.”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엽소를 설득하고 권유하며, 무수한 조건을 내걸면서 꼬드겼다. 다른 순양도문 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그들이 순양도문에 입문할 때는 아직 순양도문의 전성기였다. 지금처럼 청년 세대의 씨가 마르지 않았던 것이다.
해서 그 당시의 순양도문은 제자를 엄격하게 가려 받았다. 그들은 몇 번의 도태를 거쳐 살아남은 정예였다.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은 다운자와 수진자가 나서서 필사적으로 달래며 꼬드기고 있지 않은가. 마치 그를 순양도문에 데려가지 못하면 무슨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간절하게 권한 끝에 엽소는 ‘마지못해’ 순양도문에 입문하기로 약속했다.
엽소가 드디어 승낙하자 안도의 한숨을 쉰 수진자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순양도문에 입문한 이상, 더는 낭인 무사가 아니다. 대문파의 규율을 알아야 해. 종문에 입문하면 종문은 네게 무도를 전하고 너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종문의 이익을 위해 나서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너는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야. 너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순양도문이 움직이는 것이다. 순양도문은 너의 방패가 되어주겠지만, 너도 순양도문의 이름에 먹칠을 해선 안 된다.”
엽소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압니다. 사부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천지와 임금과 부모와 스승이 있다. 천지에는 절하지 않아도 좋고, 임금에게 무릎 꿇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부모와 스승의 은혜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요.”
수진자와 다운자는 서로 마주 보더니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될성부른 싹이 아닌가. 이 젊은이는 필경 순양도문의 대들보로 자라날 것이다. 지금 단언하는 건 이른 감도 있으나, 심성과 잠재력만 보면 장차 대단한 무사가 될 것 같았다.
순양도문이 북연에 제자를 거두러 오기는 했지만, 능운자조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의 수확을 얻었으니 참으로 보람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