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4)
894화 도불대전 (1)
선일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암묵적인 약속일뿐, 사실 어느 쪽이든 그런 걸 정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 제자를 데려가고야 말겠다는 것이오?”
흰옷 승려는 담담히 대꾸했다.
“우리 대광명사의 제자를 데려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선일의 장검에서 삽시간에 순양강기가 불타올랐다. 그는 검으로 흰옷의 승려를 겨누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디 누가 데려가게 될지 두고 봅시다! 순양도문에서 데려가지 못한다면 대광명사 역시 마찬가지요!”
그간 도불 양맥이 충돌한 것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운자와 수진자도 당부한 바 있었다. 대광명사 무사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지만, 물러날 이유도 없다고 말이다.
강약과 승패는 결국 실력에 달린 것이다. 비록 얼굴은 좀 못생긴 선일이었으나 그는 진짜배기 천인합일 무사였다.
그를 상대하는 승려는 겉보기에는 젊어 보였으나 역시 대광명사 명 자 항렬의 무사로 천인합일에 오른 지 오래였다. 그래서 젊은 용모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천인합일 무사 둘이 좁은 응접실에서 싸우려니 아무래도 움직이기 거치적거려,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순간 엽소는 뭔가를 눈치챘다.
다른 대광명사 무사들도 경계태세를 취하며 무의식중에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젊은 승려 하나를 뒤에 놓고 보호하고 있었다.
엽소는 그것을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젊은 승려는 대광명사에 원래 있던 제자가 아니라 새로 뽑은 제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체도를 치르기는 했지만, 머리통에 아직도 푸른 기가 남아 있던 것이다. 그것은 머리를 방금 깎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른 승려들이 그들 자신도 모르게 젊은 승려를 뒤에 세워 보호하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 약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아주 중요한 사람인 때문인 듯했다. 적어도 대광명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확실해 보였다.
엽소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장검을 뽑아 들며 일갈했다.
“대광명사는 참으로 오만하구나!”
그는 그렇게 일갈하며 대광명사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순양도문 무사들은 순간 멈칫했으나 그가 출수한 것을 보자 일제히 뒤를 따랐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었다. 선일과 대광명사 무사 간에 승부가 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엽소가 대뜸 앞장서 나선 데다 그의 신분이 있으니 다른 순양도문 제자들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모두 대광명사 무사들과 한 덩어리로 엉켜 들었다.
본래 엽소는 도를 썼기 때문인지 검을 쓰려니 아직은 좀 어색했다.
그러나 청룡회에서 살수 노릇을 하던 때 단목천산은 이렇게 가르쳤다. 무슨 병기를 쥐고 있는지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떤 병기든 그걸 사용하는 최종 목적은 단 하나, ‘살인’인 것이다!
엽소의 장검에서 타오르는 순양강기가 번쩍였다. 그에게는 순양강기건 마기건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위력만 충분하면 그만이었다.
대광명사 쪽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천인합일이 없었다. 오기조원은 몇 명 있었고 실력이 썩 괜찮은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실전 경험과 살육으로 단련된 엽소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다. 몇십 초 만에 엽소는 대광명사 무사들을 여럿 물리쳤다.
한가운데서 보호받고 있던 젊은 승려의 실력은 외강경에 불과했다. 엽소가 검을 쥐고 달려드는데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온몸의 기혈과 강기를 양팔에 주입하더니, 엽소가 찔러오는 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순양강기로 가득한 검을 잡은 손에 뼈가 드러날 지경이 되긴 했으나 그는 결국 엽소의 검을 막아냈다.
“사형! 지금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신이 엽소의 병기를 잡은 틈에 해치우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돌연 가슴께가 서늘해졌다.
어느 틈인지 순양강기로 빛나는 칼집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나가 선혈을 흩뿌리고 있었다.
엽소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병기인 것이다.
“연광 사제!”
대광명사 무사들은 눈을 찢어질 듯 치켜떴다.
그들은 연광이 대광명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잘 알았다. 연광은 허언이 연남 땅에서 찾아낸 기재였다.
대광명사의 노목금강심경을 수련하기에 알맞은 자질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이 지극히 냉정하여 노목금강심경의 부작용에 영향을 받을 염려가 전혀 없었다.
본래 대광명사에서 모집한 제자는 모두 북지의 대광명사로 가서 한 번에 체도를 치르지만, 연광은 자질이 워낙 대단했다. 따라서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일단 연광 혼자 체도를 치르게 했다.
가는 길에 제자 하나를 더 받으려고 이곳에 들렀건만, 대광명사에서 가장 눈여겨보았던 제자를 잃게 될 줄이야.
밖에서 격전 중이던 흰옷의 승려도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는 미친 듯이 선일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광명사 승려들이 다들 발작하듯 공격해대자 선일도 이제 제자를 빼앗긴 것 따위는 고려할 틈이 없었다. 그는 얼른 엽소와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임가에 남은 대광명사 승려들은 연광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깊게 팬 미간에 노기가 가득했다. 점잖고 고상해 보이던 흰옷의 승려조차 격노했다.
“순양도문!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다!”
임가 가주도 이제 자기 제자를 대광명사에 보낼지 순양도문에 보낼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일이 너무 커진 것이다.
지금까지도 대광명사와 순양도문 간에 충돌이 있기는 했으나 말 그대로 충돌이었다. 격전이 벌어진 적은 없었고, 사람이 죽어 나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엽소가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대광명사에서 그리도 소중하게 여기는 제자를 죽였다. 대광명사로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허언마저 불같은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곧장 정 자 항렬의 노승 둘에 대광명사 제자들까지 데리고 순양도문으로 향했다.
순양도문에서는 다운자와 수진자 역시 골이 아파 머리를 싸쥐고 있었다.
다운자가 언짢은 기색으로 엽소를 노려보았다.
“어쩌다 대광명사 사람을 죽인 것이냐?”
수진자에 비하면 다운자가 아무래도 더 예민했다.
지금까지는 엽소가 마음에 대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손이 이만저만 독한 게 아니잖은가. 대의를 품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엽소는 속이 뜨끔했다. 그 역시 자신이 다소 조급하게 출수했음을 알고 있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렇지 않았다. 초휴가 지시한 건 대광명사와 순양도문 간에 은원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언제까지라고 시한을 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원래 엽소는 조금씩 갈등을 격화시키는 방법을 쓰려고 했다.
그가 연광을 죽인 것은 그가 너무 티 나게 보호받고 있는 게 눈에 띄어서였다. 그러나 연광이 이렇게까지 대광명사에서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을 줄은 그도 몰랐다. 한 사람이 죽은 일로 대광명사가 거의 발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마음은 불안했으나, 엽소는 늠름하고 정의로운 표정을 지었다.
“적과 싸우다 보면 자연히 죽이기 마련입니다. 두 분이 저를 가르치실 때도 종문에 들어온 이상 종문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광명사는 우리의 적인데 어쨌어 죽이면 안 됩니까? 대문파 간의 얽히고설킨 곡절을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제가 그자를 죽인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듯하군요. 제가 한 일이니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그 승려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운다면 제가 나가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수진자는 한숨을 쉬더니 다운자에게 만류하는 손짓을 했다.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낭인 출신이니 대문파 사이의 이해관계를 잘 모를 수도 있지. 처음 봤을 때도 그랬잖느냐? 모두 우리 탓이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미리 잘 설명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수진자가 그렇게 말하자 다운자도 처음 엽소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혼자서 교룡채에 쳐들어간 데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진오교를 베어 버렸지 않은가.
게다가 순양도문에 들어오라고 회유했을 때도 엽소는 무슨 물건처럼 진오교의 머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악을 원수 보듯 한다고는 하나 엽소 역시 강호 밑바닥을 좌충우돌하던 자였다. 손에 무수한 선혈을 묻혔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은 대문파 간의 균형이나 여러 가지 암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적은 그저 적이고, 가서 죽이면 그만인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다운자는 한숨을 쉬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네가 나설 것 없다. 너는 이미 우리 순양도문의 제자다. 순양도문은 어떤 경우라도 제자를 화살받이로 내던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닥치든 방법이야 있기 마련이지. 기껏해야 그 중들과 한바탕 싸우면 끝날 일이다. 너는 이만 가 봐라.”
엽소가 물러난 후에야 다운자는 수진자를 바라보았다.
“사숙, 중들이 정말 올까요?”
수진자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알겠느냐? 대광명사에서 다른 무원이 왔으면 말로 해결해볼 수도 있겠다만. 하필 금강원이니 좀 까다롭게 되었다. 금강원 인간들은 성질이 아주 불같으니까. 이제 사람까지 죽었으니, 설령 허언이 그냥 넘기려 해도 아랫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게야.”
다운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싸우는 거야 겁날 게 없지요. 대광명사 작자들이 정말 오면 초휴만 신날 테니 그것이 약오르지 않습니까.”
수진자 역시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우리 쪽에서 그쪽 사람을 죽였으니, 이번 일은 대광명사의 태도를 지켜보는 수밖에.”
* * *
수진자의 대광명사에 관한 판단은 정확했다. 허언은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순양도문 쪽에서 먼저 대광명사 제자를 죽인 것 아닌가.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하면 다른 누구라도 참고 넘길 수 없을 터였다.
허언은 본래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확인한 후 움직이고 싶었으나, 결국은 다 함께 순양도문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제자를 모으던 이들도 모조리 불러들였다. 인원이 모두 집결한 금강원은 순양도문 북연 분타로 싸움을 걸러 갔다.
항륭이 친히 불러서 온지라 순양도문의 북연 분타 역시 항륭이 준비해 준 곳이었다. 성 동쪽에 마련하고 그 주변을 모두 비워 순양도문이 쓰고 있었다. 대광명사 제자들이 순양도문 분타를 완전히 포위하자, 다운자가 허허 웃으며 걸어 나왔다.
“여러분, 누굴 겁주려고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요?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좋게 말로 합시다.”
허언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물론 말로 할 수 있지요. 초휴의 말 그대로요.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고 빚을 졌으면 돈을 갚아야 하는 거 아니겠소. 대광명사 제자를 죽인 자를 내놓으면 이번 일은 그걸로 끝날 거외다.”
다운자는 살짝 눈썹을 치켜세웠다.
살인자가 엽소처럼 중요한 제자가 아니라 평범한 제자라 할지라도 순양도문으로서는 내줄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다른 제자들의 마음도 돌아설 테니까.
순양도문 정도 되는 대문파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버티기는 가능할지언정,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허언 대사, 그 말씀은 틀렸소. 출가한 사람이라면 자비를 베풀 줄 알아야지요. 불종에서는 칼만 내려놓으면 백정도 부처가 된다고 가르치지 않소? 우리 순양도문 제자는 이미 칼을 내려놓기로 했으니 그냥 이대로 넘어가 주면 안 되겠소?”
허언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칼을 내려놓았다? 그거 잘되었군. 그자를 우리 대광명사로 보내시오. 대광명사에서 그자의 살기를 없애고 천도하여 성불시켜 줄 테니!”
다운자는 미간을 찡그렸다.
“정말 타협할 여지가 없겠소?”
허언은 싸늘하게 말했다.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