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8)
898화 정이란 독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숨이 끊어지자 이추적은 완전히 광기에 빠져들었다.
대흑천마교에서 교전했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초휴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이마에서 홍련의 표지가 피어나더니 온몸이 불꽃 같은 강기로 뒤덮였다.
비할 바 없이 눈부시고 찬란한 그 빛은 세상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듯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한 가닥 생기가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정화하는 힘, 세상 만물을 가장 순수한 생기로 정화해 버리는 힘이었다.
“홍련업화! 가장 순수한 홍련업화잖아!”
오랫동안 조용하던 육강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파리라도 삼킨 듯한 말투였다.
옛날 홍련마존만이 썼던 홍련업화를 이 여자가 구사하다니,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원래 이추적은 제 기혈까지 쓰고서야 억지로 홍련인과 업화의 힘을 다루는 수준이었는데, 고작 정부 하나 죽었다고 홍련업화를 쓸 수 있게 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휴는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나섰다. 몸의 절반은 불광, 다른 절반은 기이한 멸세지화에 둘러싸인 채였다.
그 역시 홍련업화에는 경악한 것이다.
옛날 곤륜마교의 사대 마존은 과연 비범했다. 홍련마존이 쓰던 힘은 대흑천마교의 멸세지화와 다소 닮았다. 모두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힘이었다.
홍련업화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불사른다. 그러나 그 황무지에서는 여전히 무궁한 생기가 피어난다. 절멸은 새로운 탄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초휴는 그 힘에 담긴 뜻에 놀랐을 뿐, 이추적에게는 놀라지 않았다. 아무리 홍련업화를 쓴들 이추적은 초휴를 똑바로 마주 볼 자격조차 없었다.
무궁한 불광과 흑염 속에서 기이한 법상이 떠올랐다. 왼쪽은 위엄 있는 부처의 법상이요, 오른쪽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마존이었다.
왼쪽의 부처가 불인을 맺어 이추적을 땅에 짓누르려 했으나, 홍련업화가 격렬하게 타오르며 저항했다. 광기에 휩싸인 이추적은 진화련신이면서도 출수에 아무 절도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홍련업화를 불사를 뿐이었다. 그러나 부처의 한 손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오른쪽의 마존도 인결을 날리자 거대한 멸세지화가 작렬했다. 적멸의 힘이 스며들고 불사르며 검붉은 화염이 뒤엉켜 아름다운 색으로 타올랐다. 그것은 죽음의 색이었다.
대흑천마교의 멸세지화와 홍련마존의 홍련업화 중 무엇이 더 강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마 백중지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무공의 수준은 같을지언정 사람의 실력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추적의 힘은 초휴보다 한 수 아래였다. 불인의 위세와 멸세지화가 뿜어내는 힘이 이추적의 홍련업화를 조금씩 밀어냈다.
바로 그 순간 이추적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몸에서 확 퍼져 나온 피안개가 홍련업화로 불타오르는 한 자루 검으로 변했다. 그 검은 초휴의 사악한 마불 법상을 찢어 가르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일격에 맞선 초휴는 그저 한 손가락을 세워 내밀었다. 내력진화가 손끝에서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새빨간 핏빛이 그의 손에서 박동했다.
이추적의 혈검은 그 일지를 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기혈의 힘을 쓴들 헛수고일 뿐이다.”
말과 함께 한 걸음을 내디딘 초휴는 이미 이추적의 눈앞에 와있었다. 금은색의 내력진화가 뿜어져 나오며 칠흑의 멸세지화와 섞이고, 두 가지 불꽃이 그의 몸에 어렸다. 극한에 달한 파멸의 힘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추적은 그대로 초휴의 일권에 나가떨어졌다. 순간 피안개가 흩어지고 그녀는 엄청난 선혈을 토했다.
강호에서 육신의 강도로 초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뒤에서 보던 당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우리 대인께선 여자를 아낄 줄 모르시는군요. 저렇게 거칠게 다루시다니.”
매경령이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
“여자를 아껴줘? 당신이었으면 일각 안에 열 번은 죽였을 거 같은데? 그리고 여자도 여자 나름이지, 저런 할망구를 아껴줘서 뭐하게?”
당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속성끼리는 배척하는 법이라 했던가. 그는 현명한 사람인지라 매경령과 이 화제를 더 논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당아의 말이 옳기는 했다. 초휴는 여자를 아껴주는 법 같은 건 몰랐다.
물론 평소에는 그도 성별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긴 했다.
그러나 격렬한 싸움에서는 죽여도 되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성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추적은 이미 여러 번 그를 귀찮게 굴었다. 은마 사람이면 무슨 소용인가. 별 쓸모도 없으면서 발목만 잡는데 말이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살려뒀다 설이라도 쇠란 말인가?
일권을 날려 이추적을 토혈하게 만든 초휴는 다시 한 발짝을 다가섰다. 또 이추적의 코앞이었다.
이추적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초휴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에 이미 원한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러나 그 암흑 속에서 새빨간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죄업을 불사르는 홍련업화였다.
이추적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홍련업화는 실체가 없었다. 그 불꽃은 단숨에 초휴의 머릿속으로 옮겨붙더니 원신을 불태우려 들었다. 초휴에게 살해당했던 무수한 원혼과 악귀가 나타나 그의 원신을 물어뜯었다.
그러나 정작 초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싸늘하게 웃었다.
“단죄의 업화라고? 웃기는 소리! 천하에 감히 누가 내 죄를 심판한단 말인가?”
홍련업화는 세상의 모든 죄업을 불사른다. 평범한 사람의 원신이 이만큼 불탔으면 주화입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휴는 누가 봐도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눈곱만큼도 죄책감이 없었다.
세상에 정과 마가 있다지만 초휴에게는 선악의 구분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니 단죄의 업화로는 그를 단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초휴는 손끝으로 이추적의 정수리를 살짝 눌렀다. 일순간 그녀의 온몸이 떨리더니 끝없는 홍련업화가 되돌아와 그녀를 불살랐다. 그녀의 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홍련업화의 힘은 기이하고도 강력했으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지를 갈고 닦는 것이었다. 이추적은 성격이 편협하고 괴팍했다. 그런 성품으로 홍련마존의 전인을 자칭했으나 오백년 전이었으면 홍련마존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추적이 죽은 것을 보고 매경령이 다가와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추적도 가련한 사람이라니까. 젊은 시절 정겁을 겪어 고생을 많이 해서 편협한 성격이 되었는데, 수련을 대성했으니 정겁에서 벗어났으리라 강호인들은 생각했죠. 하지만 사실은 전혀 헤어나오지 못했던 거예요. 임풍옥의 행실을 보면 뻔하잖아요. 이추적이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것은 그자를 다른 누군가로 생각한 때문일 거예요.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던 그 남자 말이죠. 정이란 이름의 독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은 셈이네요. 당신 손에 죽었지만 정 때문에 죽은 셈이기도 하죠.”
옆에 있던 당아는 매경령을 힐끔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이추적을 잔뜩 깎아내리시더니, 이제 죽으니까 동정을 하시다니? 쯧쯧, 역시 마도의 성녀다워. 정말 위선적이군.’
초휴는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애정 따위 칠정육욕만큼 번거로운 게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매경령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무정도(無情道)라도 수련해 볼 셈인가요?”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인(聖人)처럼 감정을 잊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더군다나 칠정육욕이 없으면 그게 사람입니까. 신일 테지요. 사람이 언제나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한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입니까.”
“그것도 그래요. 어쨌건 이추적을 죽인 이상 골치가 좀 아플 거예요. 아, 항충 쪽이 아니라 은마권 말이에요. 이추적이 인덕이야 없지만 그래도 은마 원로 중 하나였잖아요. 죽인 것은 확실히 좀 지나쳤어요. 누가 트집을 잡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은마권은 상호 간 다툼을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었고 물밑에서는 온갖 암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일을 들춰내려 하지 않았다.
초휴 손에 죽은 은마권 무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추적 정도 되는 사람은 첫 번째였다.
엄격히 말하면 허도와 손을 잡고 원천방을 죽인 것이 첫 번째겠지만, 그때 초휴는 원천방 살해의 공로를 허도에게 넘겼었다. 이번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여 버렸으니 남에게 떠넘기려 해도 불가능했다.
초휴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시비를 건다고요? 누가 감히 저한테 그러는지 두고 보죠.”
그는 지금 단순히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있는 것이었다.
은마권에서 위서애와 무상마종은 무조건 그의 편이었다. 진조선의 적련마종과 일부 낭인 무사들은 혹 불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초휴와 사이가 틀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따지고 들지는 않을 터였다.
본래 초휴를 못마땅해하던 자들은 더더욱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안 오면 그만이고, 오면 다 죽일 테니까.
초휴에게 은마권이 필요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지금은 은마에 초휴가 필요했다.
그와 함께 일하려 하고 도와주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배요, 윗사람이었다. 초휴도 그들의 체면은 세워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형세도 볼 줄 모르는 인간들을 왜 대접해 준단 말인가.
* * *
초휴가 이추적을 죽이고 수하들에게 뒤처리를 시키려 할 때였다. 소식을 들은 항충이 오앙도인과 함께 다급히 달려왔다.
지금 그의 휘하에는 강자들이 구름처럼 많았다. 그렇다 해도 임풍옥은 그의 심복이었고, 이추적 역시 어엿한 진화련신 강자였으니 그냥 넘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사실 항충은 늦지 않았다. 오히려 딱 맞게 왔다고 하는 게 맞을 터였다.
그가 조금 일찍 도착했으면 초휴가 이추적을 죽이려는 것을 막아야 했을 테니, 그 역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땅에 널브러진 임풍옥의 시체와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재가 된 이추적의 흔적을 본 항충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초휴에게 고함을 질렀다.
“초휴! 간도 크구나!”
초휴는 담담했다.
“저는 원래 간이 큽니다. 전하께서 왜 새삼스러운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항충은 초휴를 손가락질하며 몸을 다 떨었다.
“감히 이추적을 죽이다니!”
초휴는 뒷짐을 지고 서서 태연자약 반문했다.
“그게 왜 안된단 말입니까?”
초휴의 당당한 태도에 항충은 완전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왜 안되느냐고? 하긴 초휴가 간덩이가 크다 못해 불어터진 짓을 한두 번 저질렀던가?
그러나 이추적은 그의 수하였고, 임풍옥도 마찬가지였다. 항충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건 똑똑히 알았다. 수하가 남의 손에 죽었는데 그냥 넘어가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그가 거칠게 반박하려는데 오앙도인이 잡아끌더니 낮은 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전하, 지금은 초휴와 부딪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항충은 의혹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하가 초휴 손에 죽었으니 얼굴에 먹칠을 톡톡히 당한 셈인데, 초휴와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고?
오앙도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하, 즉위하신 뒤에는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세가 민감하지 않습니까. 화를 내신들 무슨 소용입니까? 진무당을 해산하거나 초휴를 죽이실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폐하도 못 하신 일입니다. 지금 전하가 그리하겠다고 나서시면 북연은 더 어지러워질 뿐입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늦지 않다고 했습니다. 전하는 큰일을 하셔야 할 분입니다. 그 짧은 시간쯤이야 못 참을 게 무엇입니까?”
항충은 오앙도인에게 퍽 의지하고 있었다. 오앙도인은 차분하고 노련하며 침착했으니, 지금 하는 이야기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항충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초 대인, 잊지 마시오. 여기는 북연이오! 당신이 강호인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북연 진무당의 대도독이오. 북연의 신하란 말이외다. 당신에게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음을 명심하시오!”
항충은 그 말을 남긴 후 수하들을 이끌고 떠났다. 오앙도인은 가면서 초휴를 힐끗 보고 지나쳤다. 눈길에 뭔가 다른 의미가 담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