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2)
902화 배반자
자리에 모인 무장과 원로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마다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항려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 알았다. 다들 후계자는 항려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항려에게 충성을 다하지는 않더라도 그와 가까이 지내려고 햇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략이나 수단 혹은 능력 면에서 항려는 항륭보다 십만팔천 리쯤 뒤떨어져 있었다. 북연 황제 노릇을 탁월하게 해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저 아주 멍청이는 아닌 정도였다.
따라서 다들 그에게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황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황자였기 때문에 가까이 지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항충과 비교하니 확실히 항려에게도 장점이 있었다. 별 뛰어난 점이 없긴 했지만, 자신이 지레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모략이나 수단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는 줄곧 자신을 북연의 후계자라 여겨왔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북연 후계자의 예에 따랐다. 뛰어난 구석은 없었으나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항충은 그와 정반대였다. 일을 벌일수록 잘못을 크게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잠시 침묵하던 북궁백리가 말했다.
“나는 황실의 다툼에 끼어들지 않겠소. 동산군은 영원토록 북연과 폐하께 충성할 거라는 점만 분명히 밝히겠소.”
북궁백리의 그 말에 초휴는 속으로 그가 영리하다고 찬탄했다.
‘광도’ 북궁백리의 명성은 작금 삼국에서 가장 대단했다. 절대적인 전쟁과 살육의 신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북궁백리는 결코 경솔한 자가 아닐뿐더러, 그 반대로 아주 영리했다. 항씨끼리 황위를 놓고 다툰다면 그것은 황실 내부의 싸움이다. 배후에 누가 있건 자신은 끼어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즉위하는 사람이 항씨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동산군은 북연 조정에 충성하고, 그는 북연 황제에 충성할 것이다. 그 북연 황제가 과연 누가 될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북궁백리의 말에 항충은 등골이 차게 식었다. 다른 진국오군 대장군들 역시 북궁백리와 행동을 함께하겠다고 태도를 밝히자 식은땀은 더 많이 흘렀다.
항충은 자신도 모르게 항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같은 항가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장군들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항무는 허허 웃을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황제를 고를 때면 꼭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까요. 다들 익숙할 법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마음대로 실컷 싸우십시오. 그러다 아무나 이기면 지고무상의 군주가 되는 거지요. 우리는 결과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항무는 전에도 주루에서 항충에 대해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그는 항씨이기는 했으나, 애석히도 자신을 항씨 황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무는 별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강호 바닥에서 기고 구르며 살아온지라 자신의 고기를 지키려는 들개 같은 기질이 있었다. 누군가 감히 그의 접시에 놓인 향초를 건드린다면, 상대가 항씨라 할지라도 미친개처럼 물어뜯을 터였다.
진국오군과 원로 장군들이 사실상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자 항충은 속으로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역시 이것들은 믿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 두었으니 망정이지!’
“오앙도인!”
항충이 성난 소리로 외치자 오앙도인이 뒤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그의 실력과 지위로는 이런 의식의 앞줄에 설 수 없었으므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오앙도인은 두 손을 받들었다. 항충을 바라보는 눈에 놀리는 듯한 기색마저 어려 있었다. 그러나 항충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명령했다.
“태자궁 휘하 전원에게 출수를 명하시오. 본궁의 영패로 진국오군을 움직이시오! 역적을 모조리 주살하겠소!”
그는 진국오군에 제 사람을 적잖게 심어두었다. 이제 드디어 그들을 써먹을 순간이 온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북궁백리 쪽 사람들의 낯빛은 더욱 일그러졌다. 자신들이 철통처럼 다스려온 진국오군이었다.
남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항충의 태도는 여러 대장군의 분노와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앙도인은 항충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서서 냉소를 지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항충은 미간을 찡그렸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뭘 하는 거요?”
초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뭘 하긴요. 당연히, 제 명령을 기다리는 거지요.”
오앙도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초휴 곁에 서더니 초휴와 항려에게 공수를 올렸다.
“초 대인, 이황자 전하.”
항충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항충은 오앙도인의 배반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이 증오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이 오앙도인을 둘도 없는 심복으로 총애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오앙도인이 배반하다니!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다가 다소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오앙도인이 어쩌다 초휴와 한 편이 되었단 말인가?
북궁백리 같은 이들은 오앙도인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이쪽도 북연에서 수십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예전 초휴가 막 북연에 왔을 때만 해도 오앙도인과 그는 진무당의 주도권을 놓고 한바탕 싸우지 않았던가. 오앙도인이 크게 한 방 먹기까지 했는데, 어쩌다 저 둘이 손을 잡게 된 것일까?
항충은 뭔가 생각난 듯 오앙도인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네놈이 데려온 자들도 모조리 간자(間者)에 배신자겠구나!”
오앙도인은 담담히 말했다.
“배신자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지요. 애초부터 충성심이 없었고 충성을 하지 않았는데 배신을 하고 어쩌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항충은 이를 악물더니 북궁백리 쪽을 향해 말했다.
“북궁 대장군, 내가 경솔했소.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전부 오앙도인이 꼬드겨서 그랬던 거요! 이제 다들 보셨겠지요. 내가 여러분의 세력에 심어놓았던 자들은 내 심복이 아니오. 모조리 초휴 저자가 보낸 간자였소!”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항씨 황족들마저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항충은 완전히 당황했고, 당황한 사람은 길을 고를 줄 모른다.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고 있지 않은가.
초휴가 대놓고 항려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으나, 항충은 여전히 후계자요 북연의 태자였다. 일국의 태자가 제 신하를 향해 사과하고 애걸하다니 꼴사나운 추태였다.
북궁백리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는 항륭도 정중히 대하기는 했다. 그러나 항륭은 제왕이었고 북궁백리와 이익을 놓고 거래했을 뿐, 신하인 그에게 간청한 것이 아니었다. 항씨 황족들은 다급해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항충의 모습이 낯부끄러웠다.
그리고 항충은 자신이 심은 사람들이 모두 초휴의 간자라 그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 우습지 않은가.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일이었다. 정말 오앙도인이 그를 꼬드긴 것이고, 첩자가 모두 초휴의 사람이라고 친들, 항충은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그들을 심복으로 삼은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남이 부추긴다고 그들이 간자인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에 심어 넣었다지만, 결국 남의 권력을 빼앗을 속셈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이 간자가 아니고 항충의 심복이었다면 남의 세력에 심어서 권력을 빼앗아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항충이 그 말을 안 했으면 모르겠으나, 제 입으로 실토하자 북궁백리 무리의 그에 대한 인상은 더 나빠졌다.
초휴가 항려에게 말했다.
“전하 차례입니다. 한 말씀 하시지요.”
항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심호흡하더니 곧장 앞으로 나섰다.
“황숙, 저는 줄곧 그 자리가 제 것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러니 부황께서 항충에게 양위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항충이 어떤 자인지는 황숙께서도 잘 보셨지요. 부황은 영명하고 위대한 분이셨으나 그분도 신은 아니셨습니다. 부황도 실수를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항숭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황위를 네게 넘겨주어야 마땅하다는 말이냐? 항려, 황위 찬탈에 초휴의 도움을 받으려고 얼마나 많은 북연의 이익을 팔아넘겼느냐? 너는 나를 머저리로 아느냐?”
항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숙, 저는 그 어떤 북연의 이익도 팔지 않았습니다. 저와 초 대인은 합작했을 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부황이 하신 일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고요. 특히 마지막에는 여러 세력이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수법을 쓰셨습니다. 수십년 전부터 쓰셨던 방법이지만 이제는 효과가 없습니다.”
“초 대인의 실력, 그리고 배후의 세력은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겁니다. 초 대인을 궁지에 모느니 차라리 합작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나라는 우리 항의 것이고, 강호는 초 대인의 것인 셈입니다. 양측이 손을 잡고 초 대인이 북연 강호를 이끈다면, 설령 동제가 다시 쳐들어와도 우리 북연은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초휴가 약속을 어길 것은 두렵지 않으냐?”
항숭의 차가운 반문에 항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 위험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옛날 부황께서 북연 무림과 손잡기로 하셨을 때도 반대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될지 안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황숙, 어르신들, 여러분이야말로 항씨 황족의 기둥이요 주춧돌이십니다. 제가 황제가 된 다음에 잘못을 저지르면 여러분은 구룡인(九龍印)으로 언제든 저를 폐위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됩니까?”
항려는 꽤 간절하고 성의 있게 말했다. 황제가 된 다음의 자신을 폐위하는 일까지 입 밖에 낸 것이다.
북연에서는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 세울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구룡인이란 북연의 숨겨진 패 중 하나였다. 황제는 용맥의 힘을 구룡인에 부여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위세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즉위 전에는 무도의 기초가 있었던 사람도 황제로 즉위한 후에는 수련할 시간이 없어지는지라 구룡인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해서 구룡인은 줄곧 항씨 황족의 강자가 관리해 왔다.
만약 황제가 혼군이나 암군이라서 왕조를 쇠약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항씨 황족은 황제 폐위를 표결에 부쳤다. 그렇게 되면 구룡인은 잠깐 효력을 잃고 새 황제가 등극한 후에야 다시 쓸 수 있었다. 다만 새 황제는 반드시 항씨의 적통이어야 했다.
이 규칙은 옛날 북연의 개국 선조가 정한 것으로, 구룡인을 주조한 그 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어리석은 후손이 북연을 쇠약하게 만드는 불상사를 방지하려 함이었다.
이것은 역대 북연 제왕들의 속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평소에는 입 밖에 꺼낼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항씨 황족들 역시 이 힘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다 같은 황족이니 성공도, 실패도 함께하는 처지가 아닌가.
합당한 이유도 없이 황제를 폐위시켜 구룡인의 힘을 잃게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 꼴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다.
항려는 이미 막다른 길까지 몰렸다. 황제가 되지 못하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북연 강호 전체를 초휴에게 팔아넘겼다. 자신의 생사와 앞길을 항씨 황족에게 넘기지 못할 이유 또한 없었다.
초휴가 항숭을 바라보았다.
“왕야, 항충은 황실 공봉당에까지 자기 사람을 심어놓아 권력과 이익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 속셈을 알 만하지 않습니까? 내 편과의 싸움에만 능하고 외부와의 다툼에는 무능한 자의 전형입니다. 제왕 된 자는 제 발아래 세 마지기 땅만이 아니라 온 천하를 눈에 담아야 합니다! 이런 자를 북연의 후계자로 삼을 가치가 있습니까? 유조는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북연의 황위는 새 주인을 맞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항숭을 바라보았다. 초휴의 말이 옳았다. 지금 북연 황위의 결정권은 사실 항숭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