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3)
903화 전모가 드러나다
초휴가 꾸민 간계 때문에 항충은 북연 군대 및 원로들과 완전히 척을 지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 항충이 보인 모습 또한 사람들을 크게 실망하게 했다.
제왕 된 자가 평범할 수는 있다. 동제 여호창 수준으로 별 볼 일 없어도 상관없었다. 한 왕조에는 분야마다 비범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제왕이 권력을 남용하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
항충의 문제는 평범하다는 게 아니라, 잔꾀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결함도 아주 명확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황제가 되면 나라를 기울게 하기에 십상이었다.
지금 유일하게 초휴 일행에 대항할 만한 실력이 되는 이들은 황실 공봉당이었다. 그들은 북연 황실의 최정예 역량이었다.
황실 공봉당 외에 북연 황궁의 고수들 역시 지금은 항숭이 거느리고 있었다. 심지어 구룡인까지 그의 손에 있는 것이다.
항륭이 죽기 전 유일하게 잘한 일은 자신이 쥐고 있던 힘을 모두 항숭에게 넘긴 것이었다. 항숭은 자신의 형인 항륭을 깊이 원망해 왔다. 그러나 북연 황족 중 항륭이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은 항숭뿐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항숭은 엄청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충이 극도로 긴장한 채 그를 바라보았고 초휴도 그를 응시했다.
사실 어느 편을 선택하건 항숭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는 북연 공봉당을 장악하고 있었다. 항륭이 그에게 넘겨준 권력도 있었다.
지금 그는 북연 황족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인 것이다. 항가 노야는 배분만 높아 의식이나 주관할 뿐, 권세로 따지면 항숭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니 누가 황위를 계승하건 그는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항숭 역시 항충에게 다소의 불만이 있었다. 그가 저지른 여러 가지 일이 항숭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륭이 임종하면서 한 부탁을 떠올리자 항숭은 도저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한참 후 항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항려, 초휴, 그만둬라. 지금까지 황위를 둘러싼 싸움에서 충분히 피를 보았다. 형님이 황위에 오를 때도 참혹하기 그지없었지. 다음 세대에서까지 그런 광경을 보고 싶지는 않다. 항려, 네 걱정은 이해한다. 항충이 즉위하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 점은 안심해도 좋다. 항충은 네 터럭 한 올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보증하겠다.”
“그리고 초휴. 진무당이 북연을 위해 해온 일도 잘 알고 있다. 형님은 의심이 많으셨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권모술수를 부리셨고, 온갖 힘을 다해 진무당을 억누르려 하셨다. 진무당이 북연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만 보증한다면, 황형이 진무당을 억압하기 위해 하셨던 모든 일은 중지될 것이다. 항충이 즉위하더라도 진무당의 이익은 내가 보증하겠다.”
항숭의 말에 초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즉위식 전까지 초휴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사람들이 제각기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자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은 초휴의 예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놓친 것은 항숭의 선택이었다.
초휴가 보기에 항숭은 정이 깊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항륭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그는 항륭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항충이 황실 공봉당에 자기 사람을 심어 넣은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항숭이 직접 불러서 나무랐는데도 항충은 대놓고 무시했다. 완전히 척을 쳤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휴는 항숭이 정말 이렇게까지 정이 깊고 성실할 줄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항륭이 정한 후계자를 지키려고 하다니.
항숭의 선택은 다소 초휴의 예상 밖이기는 했으나, 놀랄 일은 전혀 아니었다.
원래 그의 계산에는 온갖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숭은 항륭의 유조를 이행하기 위해 항충을 황좌에 앉히려 할 것이다, 이것까지도 헤아려 보았다.
해결 방법이야 간단했다. 실력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게 아닌가. 황위 쟁탈전치고 피가 흐르지 않고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있던가?
초휴는 항숭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왕야, 상황을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시는군요. 왕야께서 정말 항려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여기십니까? 즉위한 뒤의 항충이 어떻게 변할지, 얼마나 막대한 권력을 쥐게 될지 왕야는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입니다. 진무당에 대해 하신 약속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저와 항충은 이미 원수지간입니다. 만약 왕야께서 황제 자리에 앉는다 칩시다. 자신의 원수가 코앞에서 어슬렁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시겠습니까? 저라면 절대로 못 할 것 같습니다만.”
항숭이 침중하게 말했다.
“초휴, 정말 북연 황실의 내분에 끼어들기로 작정한 것이냐? 그리고 항려, 이 황숙을 믿지 않고 남을 믿겠다는 말이냐?”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황실 다툼에 끼어들려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저는 진무당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게 둘 순 없지요.”
항려는 항숭을 바라보고 그다음은 초휴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초휴 뒤편으로 가서 섰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목숨의 보전뿐이었다. 항숭이 그의 목숨을 지켜주겠노라는 약속을 좀 더 빨리했더라면, 그도 초휴와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늦었다. 쌍방은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꼴을 지금까지 톡톡히 맛보았다.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황숙도 믿기 힘들었다.
자기편은 이미 속셈을 다 드러냈고, 항충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실력도 갖추고 있다. 항숭은 인제 와서야 마지못해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전에는 일언반구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만사는 실력에 달린 것이다.
수하들이 떠나고 흩어진 지금의 항려는 별 힘이 없었다. 그가 기댈 곳은 초휴뿐이었다. 초휴에게 바싹 붙지 않으면 누구에게 붙는단 말인가?
상황을 본 항숭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너희도 나를 탓하지 말아라. 북연 황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초휴, 이번 싸움이 끝나면 너와 진무당은 북연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항려, 황좌를 놓고 다투는 싸움에서 패배하면 어찌 되는지는 잘 알겠지. 그때는 내가 너를 지키고 싶어도 아무런 방법이 없다. 모두 쳐라!”
항숭이 명령을 내리자 황실 공봉당의 강자 수백여 명이 대전 전체를 포위했다.
“한 공공, 장 장군!”
한쪽에 서 있던 한 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짓하자 온몸에서 싸늘한 음기를 발산하는 늙은 태감들이 나섰다. 하나같이 진단경 이상의 실력이었다.
황궁 내 태감은 황실 공봉당과 북연 황족,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륭 개인한테만 충성했었고 지금은 항숭만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금빛 갑옷을 입은 정예 병사들이 뛰쳐 들어왔는데 그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황성을 호위하는 어림군으로, 이들 역시 항륭의 명령만 듣던 자들이었다. 태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항숭의 명을 받들었다.
항숭은 항륭이 남기고 간 힘을 전부 움직인 셈이었다. 초휴 하나가 아니라 모두가 떨쳐 일어나서 항충의 계승을 반대해도 막을 자신이 있었다.
북궁백리 쪽 사람들은 모두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용상에 앉는 사람을 폐하라 부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 그들의 실력은 들쑥날쑥했다. 개중 나은 축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세력의 중견급 인물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즉위식에 참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초휴가 항숭을 보며 냉소했다.
“왕야. 폐하가 넘겨주신 그 힘은 북연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지, 내분을 일으키라고 주신 게 아닐 텐데요.”
항숭은 코웃음을 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룡인은 그의 손아귀에 있었고, 황실 공봉당과 황궁 전력, 어림군까지 모두 초휴와 진무당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즉위식이니만큼 초휴도 진무당 인원을 전부 이끌고 올 수는 없었다. 즉위식에 참가할 자격이 되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진무당의 고위층 아니면 화노 같은 중견급 인물이었다.
초휴 일당의 숫자가 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항숭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항려가 기댈 자는 초휴뿐이니, 초휴와 진무당만 해치우면 황위 쟁탈전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초휴 역시 차갑게 외쳤다.
“쳐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러서 있던 무사들이 황실 공봉당을 향해 달려들었다. 초휴가 각 세력에 심어두었던 상성 무사들도 함께 나섰다.
상성 사람들의 실력은 동급 무사들보다 약하기는 해도 경지가 높았다. 진화련신이 두 명, 진단경이 여섯 명이었다. 즉 동급 무사에 비해 힘이 약하다고는 해도 그 수가 수인지라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항충은 낯빛이 변했고 다른 사람들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초휴가 어느 틈에 이들을 자신의 세력에 끼워 넣었단 말인가?’
사실 초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수를 생각해 왔다. 처음 항륭과 충돌했을 때부터 말이다.
천자망기술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점술도 아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항륭이 이리 빨리 죽을 줄은 몰랐다.
해서 당시에는 그저 유비무환으로 준비해 둔 것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날은 올 테니 말이다.
해서 초휴는 항려의 인맥을 빌려 은마권, 정확히는 위서애 일맥의 마도 무사를 북연 조정의 여러 세력에 심어 두었다. 그때 항려는 차기 황제가 유력한 황자였으므로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많았다.
초휴도 권력을 빼앗아 오기 위해 사람을 대뜸 꽂아 넣지 않았다. 제일 아래부터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지금에 이르러서야 정체를 드러낸 셈이었다.
“승냥이 같은 놈!”
항숭이 노호했다. 손에서 구룡인이 빙글 돌자 일순간 대전 내의 천지 원기가 모두 집어 삼켜지는 듯했다. 황성 상공에 거대한 흑룡의 형상이 나타나더니 초휴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흑룡의 일격은 번개처럼 빨랐다. 심지어 공간을 찢어 버릴 만한 힘까지 담겨있지 않은가. 초휴가 막 출수하려는데 벌써 눈앞에 용의 꼬리가 덮쳐왔다.
내력진화와 불광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러나 초휴는 그 일격에 얻어맞고 건물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지금 초휴의 육신은 대단한 수련을 쌓은 만큼, 황급히 막기는 했어도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러나 내장이 뒤흔들려 기혈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구룡인의 힘에 적잖게 놀랐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지극히 거대한 천지의 힘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듯했다.
초휴가 그 일격에 맞았을 때, 천지 자체와 싸우는 착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과연 북연의 첫째가는 패라 할 만했다. 방금 보인 위력만으로도 천지통현 강자와 능히 맞설 수 있을 듯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룡인이 북연의 용맥을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연경성이다.
초휴는 용맥이 어디 있는지 몰랐으나 연경성에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구룡인이 최강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그때 황성 밖에서 강대한 기세가 홀연히 강림했다.
상천량이 하늘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실체가 있는 땅을 밟는 것처럼 물결치는 파문이 일었다.
나마와 싸울 때와 비교해서 지금 상천량의 기운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사람 자체가 천지와 융합한 듯했다. 한마디로 조화롭기 짝이 없어서 자연 그 자체로 보였다.
천지통현은 과연 달랐다. 그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력의 강약은 둘째 치고 천지에 대한 깨달음도 이미 괴물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상천량은 이미 이곳 천지의 법칙에 적응하여 자신의 무도를 새롭게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