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4)
904화 동해검성의 공포
먼젓번 진무당에서 상천량은 초휴에게 한 손으로 생기를 응집하는 비법을 보여주었다. 초휴의 집무실 바닥을 망가뜨린 그 수법은 확실히 놀라웠다.
무수히 많은 강호의 무사들을 하나씩 헤아려 보아도, 그들의 힘은 모두 파괴에 치우쳐져 있었다. 대광명사의 무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더러 사악한 힘을 쓸어버리게 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살려내라고 한다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상천량은 천지의 생기를 응집해서 땅속에 얼마나 묻혀 있었는지 모를, 진작 생기가 사라진 씨앗을 새로이 피어나게 했었다. 생기를 그만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천지에 대한 깨달음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구룡인의 위력은 과연 비범하군요. 그러나 이제 왕야의 상대는 제가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상천량을 보았다.
“상 성주, 구룡인을 막아낼 자신이 있소?”
상천량은 언짢은 듯이 말했다.
“없네.”
그가 초휴와 협정을 맺고 나선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초휴는 정말이지 그의 잉여 가치를 최대한 뽑아먹었다. 상천량이 출수할 때마다 초휴가 붙여주는 상대는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제일 처음에는 나마였다. 상천량은 거의 내내 압도당하기만 했다. 그다음에는 좌망검려와 풍운검총이었다. 아직 부상이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초휴에게 끌려 나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연경성까지 와서, 그것도 황성에서 용맥의 힘을 지닌 구룡인을 상대하라는 것이다. 더더욱 성가신 상대가 아닌가!
게다가 구룡인은 지금껏 거의 제대로 쓰인 일도 없었다. 북연이 제일 위급했던 때에도 황성까지 공격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룡인의 진정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초휴가 또 이런 상대와 싸움을 붙여주고 있으니 상천량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상천량은 자신이 없다고 말했으나 초휴는 그의 실력을 믿었다. 지금의 상천량은 진짜배기 천지통현이었다. 반면 항숭은 구룡인을 쥐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도구라는 것은 제대로 쓰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정상적인 천지통현 강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옛날 검왕성의 인왕검도 얼마나 강했던가? 물론 결국은 야소남의 일장에 날아가 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상천량도 말로는 자신 없다고 하면서도 출수에는 추호도 망설임이 없었다.
본래 상천량의 무도는 근접 전투에 편향된 탓에 격렬하고 강맹했다. 사실 일부러 그런 무도를 익혀서가 아니라, 녹도 같은 환경에서는 그런 무도 외에 다른 것을 쓸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지금 상천량은 이미 옛 선조들이 남긴 무도를 되찾았다. 게다가 그 자신의 깨달음까지 더해져서 위력이 삼 할은 강해진 상태였다.
구룡인에서 흑룡이 울부짖었다. 항숭의 인결이 내리꽂히자 천지간에 흑룡이 응집되더니 원기의 폭풍을 휘감고 상천량에게 달려들었다.
상천량은 허공에 선 채로 인결을 맺었다. 일순간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장대비가 흩날렸다. 그것은 진짜 비였다. 상천량이 자신의 힘과 깨달음을 이용해 날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그 비는 빗방울의 형상을 띠지 않고 가느다란 바늘처럼 짙은 검기를 두르고 있었다. 쏟아지는 검의 비에 흑룡이 두르고 있던 원기의 폭풍이 찢겨나갔다.
다음 순간 상천량이 손을 젓자 무수한 검의 비가 손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백 장은 될 듯한 장검으로 변하더니 그의 손짓을 따라 흑룡을 베어 버렸다. 용의 비명이 울리더니 광포한 천지 원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자리에는 평생토록 천지통현 지존 강자의 출수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의 격전은 너무 놀라워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천지통현은 정말 지상의 신선과도 같았다. 일거수일투족으로 천지를 제어하여 산을 옮기고 바다를 기울일 것 같으니 말이다.
두 사람 모두 힘을 자제하며 흩어지는 천지 원기를 허공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성 전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항가 황족 일부가 항가 노야한테로 모여서 그를 둘러쌌다.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던 것이다.
태자는 항충이지만 항려 역시 항륭의 적통 황자가 아닌가. 그 둘이 황위를 놓고 다투는데, 누구를 도와야 할까? 혹은, 어느 편에 서는 게 좋을까?
항가의 웃어른인 노야가 나직하게 말했다.
“무얼 걱정하느냐? 초휴가 아무리 강해 봐야 외부인이 아닌가. 우리 항씨 일맥 사람을 황위에 올려야 하는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계선이다. 만약 초휴가 황위를 찬탈이라도 하려 들면 북궁백리나 다른 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항숭도 마찬가지다. 폐하가 남기신 것은 유조일 뿐이다. 따르는 것이 최선이지만, 따르는 자가 없고 다른 자들을 막을 수도 없다면 황좌의 주인은 바뀔 수밖에 없지 않으냐. 당황하지 말고 얌전히 구경이나 하자. 항씨 황족의 뿌리는 우리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저들이 싸워서 가지게 두어라. 이기는 자가 지존의 제왕이 될 테니!”
항씨 노야는 이미 살 만큼 살았다. 그가 몇 살인지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오래 살았다. 벌써 몇 번이나 새로운 제왕의 등극을 지켜봤다.
항륭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격렬한 혈투가 벌어졌었다. 그의 눈에 저도 모르게 옛 기억이 서렸다.
옛날 항륭이 즉위할 때는 어땠던가. 누구나 그의 큰형이 황좌에 앉으리라 생각했었다. 항륭은 큰형이 깊이 믿던 아우였던지라 항숭처럼 왕으로 봉해져 북연 권력의 일부를 쥐고 근사하게 살게 될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즉위식 당일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항륭이 송곳니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남몰래 북연 여러 세력의 절반 가까이를 제 편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한바탕 살육을 벌여 그대로 판을 뒤집었다.
언제나 착실하게 지내왔고 여러 계책을 내면서 큰형을 도왔던 항륭이 황위를 빼앗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항가 노야조차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때의 싸움은 지금보다 훨씬 참혹했다. 그야말로 피가 냇물처럼 흘렀다. 지금은 그저 소소한 수준일 뿐이었다.
그러나 항씨 노야가 보기에는 소소한 수준일지 몰라도, 초휴 휘하 진무당 사람들은 황실 공봉당 및 황궁 고수들과 뒤엉켜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초휴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그 역시 나서려 했다.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항충이 아니었다. 그는 일단 상천량을 도와 항숭을 제압하려 했다.
항충을 죽여 봐야 별 의의도 없었고 오히려 항씨 황족 전체를 자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항충은 별 것 아니었다. 유조를 쥐고 그를 지지하고 있는 항숭이 사태를 해결할 진정한 열쇠였다.
항숭만 패배시키면 항충은 항려가 즉위한 뒤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를 죽이건 삶건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 항숭이 갑자기 외쳤다.
“강동명(康洞明)! 네 차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해검성’ 강동명이 신출귀몰하게 등장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항숭을 바라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말했다.
“한 번뿐입니다.”
항숭은 고함을 질렀다.
“나도 안다! 초휴를 막아······ 아니! 초휴를 죽여라!”
강동명은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강산각에서 객경 노릇을 할 때도 늘 받을 돈만큼만 일을 해 주다가, 약속한 돈을 받으면 사라져 버렸다.
본래 강동명은 성격상 북연에 와서 항충의 스승 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여기 나타난 것은 항륭이 작심하고 그를 북연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대가는 옛날의 검성 고경성이 남긴 한 가닥 검흔이었다. 독고유아와의 싸움에서 남은 검흔말이다!
그때 고경성은 검혼으로 변해 독고유아와 필사의 싸움을 벌였다. 독고유아에게 상처를 입히기는 했으나 그는 영혼도 육신도 사라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싸움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낭떠러지가 하나 있었다. 고경성의 일검은 힘이 거의 다했기 때문에 거기에 검흔을 남겼고, 후세인에게 그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북연 조정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저 검흔 하나일 뿐이었으나 그래도 무려 검성 고경성이 남긴 것이었다. 어떤 검사에게든 값을 따지기 힘든 보물일 수밖에 없었다.
옛날 강동명의 실력을 알게 된 항륭은 검흔을 조건으로 내걸고 그를 부리려 했다. 그러나 강동명은 항륭에게 딱 한 번만 출수하겠노라고 답했다. 고경성의 검흔은 그에게 한번 출수하는 값어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륭은 잔꾀를 하나 부렸다. 강동명의 조건을 받아들이되, 일년 동안 항충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는 일년 중 아무 때나 쓸 수 있다고 했다.
강동명은 그 기회를 써 버리거나 일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떠날 수 있었다. 강동명처럼 ‘착실한 사람’이 그 잔꾀를 눈치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그는 조건을 승낙했다.
항숭이 드디어 그 기회를 써버리자 강동명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끊임없이 검도를 갈고 닦아 검도 강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항충 곁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였다.
초휴를 힐끗 보는 강동명에게는 아무런 살의도, 심지어 한 점의 적의조차도 없었다.
일평생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검도뿐이었다. 그는 인생에 적이라고는 없었고,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적으로 삼은 적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귀찮게 구는 인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을 죽일 때 강동명에게는 아무 살의가 없었다. 그에게 살인은 쓰레기를 버리고 장애물을 치우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맇다고 지금 그의 눈에 초휴가 쓰레기나 장애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완수해야 하는 임무의 목표였다. 저자를 해치우면 이 재미없는 곳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상어 가죽으로 된 칼집에 숨겨져 있던 칼이 뽑혀 나왔다. 일순간 검광이 백 리를 종횡하며 곧고 날카롭게 구름을 뚫고 치솟았다.
지극히 평범한 삼 척, 삼 촌 길이의 장검이었다. 군대에서 쓰는 보통의 검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날의 예리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이 시릴 정도였고 속이 오싹 떨릴 듯했다.
그가 휘두르는 일검에는 특별한 점도 휘몰아치는 검기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초휴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의 종소리가 맹렬하게 울렸다.
천자망기술을 수련한 그의 감지력은 동급 무사 중 최강까지는 아니어도 절정 급에 속할 만했다. 분명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엄청난 위험이 사면팔방에서 그를 향해 덮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순간 초휴의 눈에서 일월성신이 빙글 돌았다. 그는 정신력을 극한까지 발휘해 전력으로 천자망기술을 펼쳤다.
다음 순간 그는 미친 사람처럼 맹렬하게 왼쪽으로 물러섰다. 동시에 주위의 공기가 검의 울음과도 같은 떨리는 소리를 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속까지 진동하는 듯했다.
초휴가 방금 서 있던 위치에 허공에서 생겨난 듯한 검기가 저절로 맺히더니, 백 장은 족히 될 검흔을 남기며 지면을 베었다. 다음 순간 공격을 당한 황성에서 진법이 가동되었다. 그러나 진법은 차례차례 빛을 발하더니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강동명의 일검은 그 여파만으로 황성의 진법을 가동하게 했고, 심지어는 아예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초휴의 눈에 경악의 기색이 스쳤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귀신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이게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이란 말인가? 강동명은 진화련신인가, 아니면 천지통현인가?
초휴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또 그가 헤아리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
‘강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