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7)
907화 혈홍제(血紅提)
황보 노야가 그렇게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황위 쟁탈전이 죽기 아니면 살기라지만 그렇다 한들 항충과 항려 간의 일일 뿐이다. 황보세가의 예비 사위를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공을 들인단 말인가?
기혈의 힘까지 써서 혈창을 복원하는 대가는 너무 컸다. 거의 목숨을 던지고 달려드는 수준이었다.
사실은 초휴의 짐작이 맞았다. 황보 노야가 갑자기 돌변해서 지금까지의 신중한 처세 방식을 버리고 위험천만한 황위 쟁탈전에 뛰어든 것은 그리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보 노야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젊었을 적에도 심하게 설치고 다니지는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줄곧 황보씨 집안만 지키며 살았다.
근 백 년 동안 그가 출수한 전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장 최근은 항무와 교전한 정도였고, 그때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는 격이 될까 봐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황보 노야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니라 젊은 시절의 묵은 상처가 도진 것이었다. 내상은 그의 몸에 이백 년 가까이 잠복해 있었으나 줄곧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켰고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했던 것이다.
이미 남모르게 무수한 강호 명의를 불러 진찰을 받았으나, 그 어떤 약으로도 고치는 게 불가능했다. 내상은 완전히 그의 몸에 뿌리를 내렸으니, 한 번만 더 발작하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어서 앞으로 황보씨 가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황보세가는 후임이 나타날 때까지 신중하게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죽으면 황보씨의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물론 황보씨와 원수진 사람이 거의 없긴 했다. 그러나 강호에서 한평생을 보낸 황보 노야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강호란 까닭 없는 사랑은 없어도, 아무 이유가 없는 미움은 있는 곳이다. 남의 집안을 멸문시키고, 사람을 쳐 죽이고 도륙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필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초휴란 존재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초휴가 줄곧 보여온 그 가차 없는 성격과 손속을 생각하면, 북연 무림은 항려를 황위에 올린 초휴를 받들어 모시게 되지 않겠는가.
그때가 되어도 초휴가 황보씨를 그대로 가만 놔둘까?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 내상이 두 번째로 발작하기 전에, 그는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했다. 황보세가의 앞날을 위해서!
황보씨는 오랜 세월을 안일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옛날 황보씨의 영광 역시 위험해 보이는 일에 뛰어들어 얻어낸 것이었다.
황보 노야는 선홍색으로 빛나는 마창을 꽉 쥐었다. 기혈의 힘으로 복원된 마창에서는 흉흉한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창 자체가 선혈을 벼려 만들어낸 듯했다.
창에서 전해지는 무수한 원혼과 악귀가 울부짖는 소리가 황보 노야의 귀에 들려왔다. 이 마창의 날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스러졌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창은 그가 옛날 젊었던 시절 얻어낸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남에게 기습을 당해 그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이 창을 얻기 위해 그는 절친한 벗마저 배신했다. 형제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오랜 세월에 걸쳐 한 번도 이 마창을 쓴 적이 없었다.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처음으로 쓰게 되었는데, 동시에 마지막으로 쓰는 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황보 노야에게 쏠렸다. 그때 육강하가 혈혼주 속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혈홍제(血紅提)! 혈홍제다! 저걸 저 늙은이가 갖고 있었다니! 도대체 누가 저 창을 부러뜨린 거야?”
초휴는 멈칫했다.
“혈홍제? 그게 저 창의 이름인가? 저 창을 알아?”
육강하가 얼른 말했다.
“알다마다! 저건 성교의 삼대 신병 중 하나야. 정확히 말해 삼대 마병(魔兵)이라고 해야겠군. 삼대 마병은 교주의 마도 청춘우(聽春雨), 홍련마존의 마검 장상사(長想思), 그리고 전무마존(戰武魔尊)의 마창 혈홍제였어. 혈홍제는 사람의 뼈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지. 상고 시대 천지통현 강자의 뼈로 만들어낸 것이라 수정처럼 빛나는 순백색이었고 말이지. 하지만 전무마존의 손에서 무수한 살육을 겪으며 선혈이 백골을 붉게 물들이고, 결국은 뼈에 스며들어 핏빛이 된 거야. 삼대 마병 중 혈홍제가 가장 많이 피를 봤다고 할 수 있지. 아마 교주의 청춘우보다 많을 거야. 평범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에는 교주가 나설 필요도 없었으니까. 최소한 청춘우를 볼 자격은 있어야 교주가 손을 쓸 게 아닌가.”
“그런데 왜 혈홍제라고 부르는 거지?”
육강하가 흐흐 웃었다.
“홍제(紅提, 포도)는 뭔지 알지? 전무마존의 창끝에 구멍이 나면, 그 창이 너무 빨라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그대로 굳어 버렸거든. 수정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게 핏빛을 뿜는 포도 같았단 말이지.”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옛 곤륜마교의 전설 속 마병이 지금 황보 노야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마검 장상사는 본 적이 있었다. 원래는 장검산장에 있었으나 지금은 무상마종의 소유였다. 마창 혈홍제도 나타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독고유아의 ‘작은 누각에서 밤새 듣는 봄비 소리(小樓一夜聽春雨)’, 청춘우뿐이었다.
황보 노야는 혈홍제를 쥔 채 무겁게 말했다.
“마도 병기로 마도를 상대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하늘의 뜻이겠군.”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난 아니올시다. 황보씨도 참 마음이 착한 사람들이군. 우리 성교의 삼대 마병이 흩어진 걸 알고 일부러 이렇게 가져와 주다니 말이오.”
황보 노야는 콧방귀만 뀌었을 뿐 초휴와 입씨름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황보 노야의 손에 들린 혈홍제가 마병이기는 했으나, 그 자신의 선혈로 복구한 것이기에 부작용 같은 건 없었다. 사실 마병이건, 신병이건 병기는 병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손에 쥐여 있느냐였다.
황보 노야의 몸에서 금빛 강기가 번쩍였다. 혈홍제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창이 휘둘러진 순간, 그 흉악한 기세는 피의 바다처럼 초휴를 향해 덮쳐왔다.
이미 부러진 마검 장상사와 비하면 혈홍제의 손상은 훨씬 가벼웠다. 창 자루가 부러졌을 뿐이었고, 심지어 기령도 아직 살아 있는 듯했다. 그 창의 흉흉한 위력은 초휴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확실히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위세였다.
“혈홍제에 약점 같은 건 없나?”
초휴가 육강하에게 묻자 그는 눈을 치켜떴다.
“병기에 약점 같은 게 어디 있어? 옛날 전무마존은 곤륜마교 제일의 장수로 불렸는데, 요즘의 진청제라는 자와 좀 비슷했지.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단련한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건 병기만 쓰려 하고, 주먹 쓰는 건 싫어했지만 말이지. 혈홍제는 위력을 정면으로 맞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초휴는 아래쪽을 힐끗 보았다. 황보씨 사람들이 난입한 후로 상황은 더 혼란해졌다. 위서애는 지금도 사력을 다해 강동명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즉각 내력진화와 타오르는 불광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패도적이기 그지없는 두 가지 힘이, 손에 쥔 무이천도로 흘러들었다. 폭풍같이 사나운 파해의 도의가 휘몰아쳤다. 일순간 강대한 힘이 허공을 찢어발길 듯했다.
황보 노야의 심신은 이미 혈홍제에 스며들어 있었다. 자신의 기혈을 더했으니, 혈홍제에 대한 장악력은 원래의 주인 다음가는 수준이었다.
사나운 창이 초휴의 파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쌍방의 힘이 폭발하면서 하늘까지 울릴 듯한 굉음이 터졌다.
그들의 발아래에서 진법의 문양이 흔들리며 떠올랐으나 곧이어 하나씩 꺼졌다. 조금 전 강동명의 일검 때와 마찬가지였다.
수호 진법이 가동되었으나 그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일격은 이미 강동명의 일검에 비견할 만한 위력이었다.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지자 항씨 황족들도 당혹했다. 원래 항씨 노야는 그래도 개중 침착한 편이었다.
그러나 초휴가 하나씩 하나씩 패를 계속 꺼내 들더니 결국 난데없이 황보씨까지 난입하지 않았는가. 이번 후계 쟁탈전에 끼어든 세력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규모도 이미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만일 좀 더 기다려도 결과가 정해지지 않으면 항씨 황족, 자신들도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창을 쥔 황보 노야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혈홍제를 써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옛 곤륜마교 사대 마존의 신병답게 정말 강해서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초휴 역시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방금의 공격은 얼핏 양측이 비등한 것 같았으나 사실 애를 먹은 쪽은 황보 노야였다. 그는 기혈의 힘을 억지로 끌어내어 혈홍제를 복구했다.
일격을 날릴 때마다 기혈의 힘이 크게 소모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 수십 초를 주고받도록 초휴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냥 자살하는 꼴이 되어버릴 터였다.
그러나 대책을 생각할 틈도 없이 초휴가 다시 덤벼들었다. 끝없는 마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돌며 변하더니, 한 팔은 활을 쥐고 세 팔로 시위를 당겼다.
멸삼련성전이 굉음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적멸의 힘으로 물든 화살은 순식간에 황보 노야의 코앞까지 닥쳐들었다.
황보 노야는 코웃음을 치며 혈홍제를 내질러 화살을 맞받았다. 굉음이 울렸다. 화살은 부서졌으나, 끝없는 멸세지화가 터져 나오며 사정없이 황보 노야를 집어삼키려 했다.
멸세지화에 둘러싸인 황보 노야가 인결을 맺었다. 일순간 천지 전체가 빙글 도는 것처럼 무궁한 천지 원기가 위아래로 협공해 들어갔다. 힘으로 짓눌러 멸세지화를 꺼뜨렸으나, 초휴는 이미 그의 눈앞에 쇄도해 오고 있었다.
초휴에게 황보 노야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가 마병 혈홍제를 들었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도구에 의존해야 간신히 자신과 비등해지는 상대를 상대로 목숨을 걸 필요가 있겠는가? 초휴가 전력으로 출수할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급했다. 아래쪽 전세는 교착 국면이었고 위서애는 지금도 강동명을 막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황보 노야와 길게 어울려 줄 틈이 없는 것이다.
멸삼련성전이 소멸한 순간 초휴는 이미 황보 노야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휘두르는 일도마다 거의 절정의 힘을 발휘했다.
한번 부딪칠 때마다 황보 노야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강대한 힘을 버텨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육강하가 혈혼주 속에서 하찮다는 듯이 냉소했다.
“옛날 전무마존은 곤륜마교의 으뜸가는 장수였다. 육신을 엄청나게 단련했지. 대광명사의 불타금신도 으깨 버릴 정도였으니까. 저 늙은이는 좀 있으면 땅속에 들어가게 생겼으니, 혈홍제를 휘둘러 봐야 십 분의 일만큼도 위력을 내지 못하는군.”
육강하의 지적이 신랄하기는 했으나 틀린 건 아니었다. 황보 노야는 본래 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무도는 근접전에 특화된 것도 아니었다. 억지로 혈홍제를 쓰자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사실 황보 노야 자신도 그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진화련신이었고 젊은 시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황보 노야는 이를 악물었다. 이 상태로 계속 싸우다가는 초휴가 결정타를 날리기도 전에 기혈을 모조리 소모하게 될 터였다.
황보 노야는 초휴의 일도를 창으로 가로막은 뒤 재빠르게 물러섰다. 그는 손을 내뻗어 허공에 기이한 부적 문양을 그렸다. 몸을 둘러싸고 떠오른 원신이 한 가닥씩 율동하기 시작했다.
금빛 원신의 빛이 혈홍제를 감쌌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초휴는 다시금 멸삼련성전을 폭발하듯 쏘아냈다. 그러나 황보 노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혈홍제가 홀로 떠올랐다. 장창이 허공을 휩쓰는 순간 광포한 혈기가 터져 나오더니 멸삼련성전을 부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