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
사람을 죽이려면 검이나 도같은 무기보다 혀를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게 더 빠르고 효과적일 때가 있다.
지난 며칠간 초휴는 수고를 무릅쓰고 백 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였다. 그것은 악씨 가문에 숨이 막힐 듯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마지막 단계에서 악동행의 마음에 원망의 씨앗을 뿌렸다. 이것은 바짝 말라 있던 화약의 심지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초휴는 본채에서 멀지 않은 건물의 지붕 위에 서서 광란의 살육전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악씨 가문의 무사들은 살인귀나 다름없었다. 눈이 벌겋게 뒤집힌 채,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지금 그들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원래 그들은 한 가족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처럼 피 맛에 취해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은 단순히 대립 관계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감정을 발산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도 오래도록 그들을 짓눌려왔던 공포감과 위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죽여서 그간 쌓인 감정들을 해소해야만 했
다.
요 며칠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해 왔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내일 아침에 뜨는 태양을 볼 수나 있을지, 한 치 앞도 모른 채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명줄이 얼굴도 모르는 자에게 내맡겨진 채, 시시각각 생사를 넘나드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미칠 것 같았던 그 압박감과 울분이 오늘에서야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의 병기에 맞아 상대가 쓰러질 때, 그들은 선혈과 함께 뿜어져 나온 체온의 온기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피 맛에 취하고 나니 더 많은 피를 맛보고 싶어졌다. 상대를 죽일 때 느끼는 쾌감은 더 강한 쾌감을 갈구했다. 그래서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미쳐 갔다. 자기가 누구를 왜 베고 찌르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초휴는 두 눈을 감은 채 바람을 타고 번져온 짙은 살기와 피비린내에 온몸을 맡겼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에 띤 핏빛이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이 광란의 살기에 휩쓸리는 걸 막아주었다.
초휴가 익힌 무공은 선천공처럼 정도에 속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의 무공은 대부분 출처가 마도였다. 이런 까닭에 체내에 살기와 혈기(血氣)가 응축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살육의 기운까지 더해지면 상승효과를 일으켜 그의 수련에 유익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악한 기운들이 그의 마음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일전에 여봉선은 이 점을 경계하라고 충고했었다. 살기에 휩쓸린 나머지 마음과 정신까지 잠식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이다. 이 점을 초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수련에 도움이 되는 그 기운들을 굳이 배척할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 기운들을 온몸으로 체화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왜냐면 그는 장
차 마교 교주가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게 살기라도 좋고 다른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의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쓰레기들 또는 패배자들이나 그깟 도구에 휘둘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니까.
이때 본채 쪽에서도 한창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악동행은 다른 사람들만큼 미쳐 날뛰지는 않아도, 상대가 눈에 띄는 족족 사정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본채 내에서 악동행의 편은 진정무, 구노야, 악평, 이렇게 세 명이었다. 악동림은 실력이 평범했고, 노집사는 이미 연로해서 실력이 내리막길이었다. 따라서 반대 진영에서 유일하게 악동행 등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악학년 하나뿐이었다.
악학년이 악동행의 흉계에 빠져 삼충삼화산에 중독되긴 했으나 외강경의 저력만은 여전했다. 잠시 외강경의 위력을 발출할 수는 없어도, 실전 경험으로나 무예로 보나 악동행이 넘볼 수 없는 상대인 건 확실했다.
악학년은 밀리기는커녕, 악동행과 구노야를 동시에 제압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반기를 들긴 했으나 정말로 부친을 어찌할 생각은 없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자신들의 친부였다. 그들에게는 부친을 시해할 용기가 없었고, 도의적으로도 그리해서는 안 되었다. 정말 부친을 죽인다면 반란이 성공해도 임중군에서 패륜아로 낙인찍혀 마도의 일파로 배척
당할 게 뻔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들의 출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둘이서 하나를 상대하는 싸움인데도 밀리는 게 당연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악동행의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오늘의 거사에 만전을 기했다고 생각했건만, 외강경의 강력한 저력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외강경이 강기를 못 쓰면 내강경이 맞먹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건 착각이었다. 악동행 등이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동안, 충직한 노집사도 연신 밀린 끝에 중상을 입었다.
진정무는 악동행의 절친으로서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데다, 악씨 가문과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관계였다. 그러니 사정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맹공을 펼쳐 노집사를 거침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초를 주고받은 끝에 노집사는 그만 진정무의 만도(彎刀, 칼날이 굽은 칼)에 두 팔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결정타를 맞
아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자신을 한평생 보좌해온 노집사가 처참히 쓰러지는 모습을 본 순간, 악학년의 두 눈이 터진 실핏줄로 벌겋게 물들었다. 이 패륜아들이 정말로 나를 죽일 작정이로구나! 악학년은 자신의 몸이 중독되었다는 사실 따위는 이미 잊었다. 그가 온몸의 진기를 운용하자 ‘펑’하고 푸른빛 강기가 터져 나오면서 수중의 장검에 태산과도 같은 무게가 실렸다. 곧이어
검에 실렸던 강기가 철퇴처럼 발출되어 악동행을 저만치로 날려버렸다. 정통으로 강기에 맞은 악동행의 가슴에 처참한 검흔이 새겨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악학년이 한 손을 쭉 뻗자, 주위 공기의 흐름이 진득하게 변했다. 구노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자신의 몸이 악학년에게 끌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악학년이 그 기세를 몰아서 일장을 내리쳤다. 야차가 바닷속을 헤집기라도 하듯 허공에 무수히 물결이 일더니, 곧바로 구노야의 단전을 세게 후려졌다. 그 바람에 구노야가 피를 토하며 저
만치 튕겨 나갔다. 악학년이 그의 단전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악학년의 입장에서는 천하의 몹쓸 패륜아 자식을 죽이지 않은 것만도 많이 봐준 셈이었다. 순식간에 악동행은 중상을 입고 구노야는 단전이 파괴되고 말았다. 악동행은 두 눈이 뻘게진 채 가슴의 상처를 움켜쥐며 부르짖었다.
“이건 탐해신장(探海神掌)이 아닙니까! 제가 가르쳐달라고 그리 부탁드렸건만, 단 일 초식도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흥! 그걸 배웠다가 나한테 쓸 작정이었더냐?”
악학년은 이딴 후레자식 놈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저쪽에서는 진정무와 악평이 합세하여 악동림에게 중상을 입힌 상태였다. 악동림이 피를 토하며 수세에 몰린 것을 본 악학년이 지원에 나섰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진산검결일지라도 악학년이 시전하니 비할 데 없이 막강한 검망이 터져 나왔다. 진산(鎭山), 그야말로 산도 평평히 짓누를 검세에 진정무의 양손이 파열되고 악평의 장검이 갈라졌다.
악학년의 장검에서 강기가 연신 발출된 끝에 진정무는 결국 그 자리에서 참살당했다. 자신의 친아들도 간신히 목숨만 붙여놓은 마당에, 생판 남한테까지 인정을 베풀 이유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돌봐준 은혜도 모르고 자기한테 칼끝을 겨눈 놈이 아닌가. 진정무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악학년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간 먹여주고 재워준 세월이 아깝구나. 내 덕에 그만한 수련을 이룬 주제에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오체분시(五體分屍)를 할 놈 같으니라고.”
악평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이내 절망으로 가득했다.
‘졌다. 실패했다. 우린 끝났다!’
계획 자체는 아무 차질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분하게도 악학년의 실력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외강경 고수의 실력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극독에 중독된 몸인데도 불구하고 강기의 폭발력만큼은 여전했고, 악평은 이를 견뎌낼 수 없었다. 게다가 한 가문의 최고 어른에게 살수를 쓸 수는 없다는 도의심이 그들의 손발을 어지럽게 했다.
이 모든 것이 패인이 되어 일을 망치고 말았다.
악평은 영민한 자였다. 대세가 기운 게 확실해지자, 악학년 앞에 바짝 엎드려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조부님, 삼노야가 감언이설로 부추기는 바람에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제가 제정신으로야 조부님께 감히 맞설 리가 있겠습니까? 가문의 법도대로 벌을 달게 받을 터이니, 제 혈통만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악학년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무표정하게 악평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일장이 악평의 천령개(天靈蓋, 머리뼈 윗면의 뒤쪽의 한 부분을 이루는 네모꼴의 편평한 뼈)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악평은 방비도 못 한 채 한순간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친아들도 아닌 한낱 방계 혈족에 불과했다. 이미 혈연관계도 희미해져 버린 허울
뿐인 친족인 셈이다.
‘반란을 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벌을 달게 받겠다는 둥, 자기 혈통을 용서해달라는 둥 뱀의 혀 같은 주둥이를 놀리다니. 같잖지도 않은 놈!’
그때 악평에게 일장을 날린 후 악학년이 돌연 피를 뿜어냈다. 얼굴도 흑색 기운으로 뒤덮였다. 삼충삼화산이 비로소 효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이 극약은 수백 가지도 넘는 배합 방식에 의해 제조된다. 약효도 배합 방식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타났다. 본디 악동행에게는 독성이 더 지독한 독물이 있었지만, 감히 쓸 수 없었다. 자칫 악학년이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졸지에 부친을 시해한 패륜아로 낙인찍힐 게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진기만 억누르는 독을 쓴 것이었다.
그런데 악학년이 저리도 독하게 버틸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몸이 상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기를 운용해 순식간에 전세를 뒤바꿔놓고 말았다. 악학년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기를 향해 걸어오자, 악동행의 눈에 절박한 광기가 어렸다.
부친이 자기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작정인 게 분명해 보였다. 무사에게 있어 사지를 잃는다는 것은 죽는 거나 진배없는 형벌이다. 특히나 악동행처럼 유난히 야심이 큰 사람일 경우, 무공을 잃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물론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안 나오고 뭘 기다리는 거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지 않았소?”
악동행이 뜬금없이 소리치자 악학년이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저놈이 대체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임무는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순간 악학년은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존재에게 생각이 미쳤다. 이때 본채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밖에서 사람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비린내로 흠씬 물든 밤안개 사이로, 허리에 칼을 차고 흑의를 입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금색 문양의 검은 철삿갓, 얼굴에는 표정을 가린 검은 철가면을 쓴 채였다.
그가 성큼성큼 그들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말로는 표현 못 할 기괴함, 그리고 섬찟함이 밤공기를 살벌하게 적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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