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8)
918화 일장춘몽
독고유아가 남긴 흔적을 보자 초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독고유아의 흔적을 쫓다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지형이 계속 변한다지만 독고유아 같은 강자가 남긴 흔적은 땅바닥에 낙인처럼 찍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 파! 독고유아가 남긴 표지를 찾아봐라.”
육강하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는 혈마당 당주고, 곤륜마교의 중요 간부였다.
‘초휴 이 자식은 내가 무슨 막일꾼인 줄 아나?’
그러나 초휴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그는 계속 팔 수밖에 없었다. 혈신마공처럼 범위가 넓은 무공으로 땅을 파니 효과가 보통 좋은 게 아니었다. 피의 선이 한 가닥씩 떠올라 육강하를 휘감고 돌며 땅속으로 파고들더니 거대한 흙더미를 뒤집어냈다.
수백 년 동안 원시마굴의 지형은 끊임없이 변했다. 그러나 독고유아쯤 되는 강자라면 가만히 있어도 천지 원기가 그 주변을 맴돌기 마련이었다.
상천량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발아래 몇 장에 이르는 깊이까지 그의 힘이 스며들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써서 지하에 위험이 없는지를 탐색해 본 행동에 가까웠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으나, 수백 년간 쌓인 흙먼지 너머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거대한 토층을 모두 들어내자 발자국이 하나씩 나타났다. 초휴 일행은 일제히 그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른 무사들도 그 모습을 보았다. 초휴 일행이 뭘 하는 건지 모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얼른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지금 초휴를 따라가서 정말 대단한 걸 발견한들, 그걸 초휴에게서 빼앗을 수도 없을 거 아닌가. 반면 다른 쪽으로 가면 다른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터였다.
물론 대광명사와 순양도문 등은 여전히 초휴 일행을 따라갔다. 그들의 목적은 보물을 찾아내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초휴의 보물찾기를 막는 것이니까.
평범한 거라면 몰라도, 정도와 마도의 세력 균형에 영향을 줄 만한 흉물이라면 절대 마도 일맥의 손에 들어가는 걸 방관할 수 없었다.
독고유아의 청춘우처럼 말이다.
한때 강호에는 무수한 사람을 쓰러뜨려 선혈로 흠뻑 젖은 마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독고유아와 함께 사라졌다. 정도 종문은 그런 것이 다시 마도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았다.
* * *
초휴 일행은 독고유아의 발자국을 따라 거의 한 시진을 걸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황무지만 펼쳐졌다.
발자국 외에 육강하는 기괴한 형상의 해골도 여럿 파냈다. 아마 흉수인 듯했다.
그러나 모조리 독고유아의 일장에 맞아 죽은 흔적이 있지 않은가. 원시마굴 안의 흉수쯤은 그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러나 동물로 쳐야 할지 식물로 봐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나무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독고유아가 여기 왔을 때, 살아 있는 것을 모조리 죽여 없앤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 요사한 나무만 생명력이 좀 질긴 덕분에 박살이 나고도 뿌리부터 다시 자란 게 아닐까.
“이 원시마굴은 대체 얼마나 큽니까?”
초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위서애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구체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아주 기이한 곳이니까. 내부 공간이 왜곡되어 있어서, 한쪽 방향으로 아무리 많이 걸어도 끝에 다다르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나오게 될 게다. 이번만큼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다들 다른 방향으로 간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한데 모이게 될 가능성이 있지.”
초휴가 다시 뭐라 말하려는데 느닷없이 육강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에 뭔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하고 깊은 산골짜기였는데 몹시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육강하가 말했다.
“발자국은 저 골짜기 안으로 쭉 이어진다. 하지만 본좌의 인격을 걸고 보장하는데, 저 안에는 오묘한 뭔가가 무조건 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것이 있다고. 교주는 저기서 나올 수 있었지만, 우리도 그럴 거라는 장담은 못 하지. 안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돌아서 갈 방법을 찾을지는 네가 결정해라.”
초휴는 아주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들어간다.”
사실 그에게 원시마굴의 보물은 둘째 문제였다. 초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독고유아에 관한 정보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흔적까지 포함한 그에 관한 모든 것!
육강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초휴를 따라 골짜기로 들어섰다. 다른 무사 일부는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정도 무사 대부분은 그들 뒤를 따라왔다. 벼락을 맞아도 초휴가 먼저 맞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천지통현인 능운자가 있는데 왜 겁을 내겠는가.
골짜기에 들어서자 초휴 일행은 일순간에 어둠 속에 휩싸였다.
그것은 진정한 어둠,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마치 골짜기가 모든 빛을 삼켜 버린 것 같았다.
일행 중 실력이 약한 사람은 없었고 감지력도 모두 대단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디가 길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걸어갈수록 감지력이 점점 약해졌다. 백 장에서 십 장, 다시 몇 촌 이내까지 줄어들었다가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서 곁에 있는 사람의 기척도 못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각이 마비된 것처럼 앞으로 걸어가고만 있었다.
초휴의 눈앞은 온통 어둠이었다. 그는 불편한 기분이 들어 있는 힘을 다해 손을 휘저었다.
* * *
‘그’는 온몸을 덮고 있던 실을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머리를 이리저리 주무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급스러운 유럽식 침실 안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몹시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느낌이었다.
‘그’ 다시 머리를 문지르다가 문을 열었다. 정장 차림에 머리를 깔끔히 빗어넘긴 중년 남자가 다가오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도련님, 게임회사에 주문하셨던 VR 게임 헬멧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가보지.”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게임 헬멧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었다.
“도련님, 지금 사용해 보실는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일단 뭣 좀 먹고.”
중년 집사는 조금 의아했다. 도련님은 원래 이런 것을 제일 좋아하지 않았는가. 게임 헬멧이 갖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 놓고, 드디어 바라던 물건이 왔는데 왜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걸까? 잠이 덜 깨기라도 했나?
그러나 집사인 그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주인을 만족스럽게 해주는 것이었다. 십 분이 못 되어 스테이크가 ‘그’의 식탁에 놓였다.
레어로 구워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를 씹고 있자니 퍽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손에 쥔 테이블 나이프가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어제 너무 늦게까지 게임을 해서 수면 부족이라도 온 건가?”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침대에서 일어난 뒤 지금까지 뭔가 초조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뒤 중년 집사가 삼십 세 정도로 보이는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고 금테 안경을 썼으며,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빗어넘긴 청년이었다.
‘그’는 희미하게 기억이 날 듯했다. 그 청년은 둘째 형에게 꽤 신임을 받는 심복이 아닌가.
‘이름이 뭐더라?’
분명 얼마 전에 봤던 사람인데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청년은 식탁 앞으로 다가오더니 오만한 자세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임가의 도련님한테 갖춰야 할 존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막내 도련님, 임 선생님의 전언입니다. 밖에서 뭘 하고 노시든 상관없지만, 임가 사람으로서 남과 척을 진 것은 잘못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젓번 선상 파티에서 이 선생님과 다투셨죠. 이 선생님의 아버님은 임 선생님의 비즈니스 파트너입니다. 이 선생님은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막내 도련님 때문에 몇백억짜리 큰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임 선생님도 대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하지만 도련님도 임씨 가문 사람이시니. 이번 일은 임 선생님이 막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한동안은 밖에 나가지 마십시오. 임가에서 폐물을 참아줄 수는 있습니다만, 가풍을 망치고 같은 집안사람의 발목을 잡는 일은 용인할 수 없습니다.”
‘임엽’은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끝까지 듣더니, 갑자기 청년을 향해 손짓했다.
“가까이 와 봐.”
청년은 미간을 찌푸렸으나 의아한 얼굴로 두어 걸음 다가섰다.
“무슨 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엽’은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머리를 식탁에 사정없이 처박았다.
“나는 남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해.”
머리가 짓눌린 청년이 몸부림을 치려는데, ‘임엽’이 들고 있던 나이프를 내리꽂았다.
나이프는 푹 소리와 함께 청년의 목을 꿰뚫었다. 선혈이 확 뿜어져 나와 ‘임엽’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중년 집사는 놀라서 넋이 다 나간 듯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임엽’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 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청년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상대방이 더는 버둥거릴 힘을 잃고 경련조차 못 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런 뒤에야 시체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는 얼굴에 가득 튄 선혈을 손끝으로 더듬더니 입에 넣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점은 모두 아주 비슷했어. 그런데 피 맛, 하나만은 실패했군그래.”
넋이 나간 듯했던 중년 집사의 낯빛이 확 변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틀렸다는 거지? 네 기억 속에 있는 맛인데.”
‘초휴’는 담담했다.
“내가 기억하는 피의 맛이기는 하지. 하지만 이건 내 기억 속, 무사의 피다. 평범한 사람의 피에 이렇게 강대한 힘이 담겨 있을 리가 없잖아?”
중년 집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하지만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이상한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기억을 가진 사람은 네가 처음이니까.”
초휴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뭐라고? 나한테 두 개의 기억이 있다고?
전생은 기억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 만일 그에게 두 개의 영혼이 있다거나 영혼과 육신이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초휴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사는 두 개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전생의 모든 일이 아무 흔적도 없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단 말인가? 옛날 원길이 그에게 설명했던 가능성과 퍽 닮은 이야기가 아닌가.
“넌 대체 무엇이지?”
초휴는 기억에 관한 고찰은 일단 접기로 했다. 당장은 눈앞의 존재에게 큰 호기심이 들었다.
지금 초휴의 정신력과 원신은 강대하기 그지없어서 그를 속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지불식간에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다. 심지어 처음에는 그저 어색하고 초조한 기분만 느꼈을 뿐,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완전히 정신이 들게 해준 것은 역시 피었다.
전생의 ‘임엽’과 이번 생의 ‘초휴’는 성격상 완전히 별개의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전생의 일들은 기억이 그렇듯이 연기처럼 흩어져 가고 있었다.
힘든 일에는 꽁무니를 빼는 것밖에 모르고 남에게 폐물 취급을 받으며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던 전생의 도련님은 이미 죽었다. 지금의 초휴가 언제 이런 모욕을 받아봤던가?
잠재의식 속의 성격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사실적인 환영이라도 잠재의식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눈앞의 이 존재는 초휴가 갑자기 폭발해서 사람을 죽일 줄도, 피의 맛이 다르다고 깨어나 환영에서 완전히 벗어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말했다.
“나는 무엇도 아니다. 심마(心魔)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