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25)
925화 지보(至寶)의 출현
모든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일보 만에 한추홍의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코앞에 서서 짓눌러오는 살벌한 기운에 한추홍은 고개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이에 견디다 못해 체면이고 뭐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초 대인, 부디 목숨만 살려주시오! 사도기, 저 잡놈이 간교한 혀를 놀려 내 심지를 어지럽혀서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소. 저자가 아니었으면 내 어찌 대인에게 맞설 생각을 했겠소이까!”
“자기 주관도 없이 남의 꼬임에 함부로 놀아났으면 곧 폐물이 아닌가. 그런 자가 더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초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멸세의 화염이 한추홍의 몸에 옮겨붙었다. 그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이로써 원시마굴에 진입한 이래로 첫 번째 진화련신 희생자가 나왔다. 무려 진화련신이나 되는 존재가 간단히 자기편에게 참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초휴가 한추홍을 파리 잡듯 해치워버린 광경에 정도 무사들은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초휴의 살성이 짙고 손속이 독한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편 사람도 이렇듯 가차 없이 죽여버릴 줄은 상상도 못 한 때문이었다.
정도 측도 이럴진대 마도 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곤륜마교가 멸망하면서 기댈 곳을 잃게 된 마도 일맥은 자기들끼리라도 똘똘 뭉쳐 의지해왔다.
서로 어떤 앙금이 있건 간에 적어도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칼끝을 겨누진 않았다. 설령 뒤에서는 싸울지라도 정도 무사들 앞에서는 최소한의 체면은 갖추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초휴는 그간의 암묵적 관례를 보란 듯이 깨고 자기편을 무지막지하게 죽인 것이다.
이때 초휴의 시선이 사도기에게로 향했다. 그 살기로 번뜩이는 눈빛에 사도기는 모골이 다 송연해졌다.
그가 초휴의 다리를 걸고넘어진 게 한두 번이던가. 예전에야 사소한 시비에 그쳤기에 초휴도 귀찮아서라도 죽이진 않고 넘어갔지만, 이번만큼은 초휴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분명히 넘었다.
초휴가 그의 명줄을 끊어놓으려던 순간, 저 멀리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파동이 전해져왔다. 그 파동에 실려 온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하늘가까지 그 영향이 미치면서 천공을 흐르던 어둠의 강이 군데군데 갈라지기 시작했다.
잇따라 막강한 기세가 충격을 가해오더니 종국에는 허공에 한 줄기 거대한 용오름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곧이어 구중천을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로 마기가 솟구치더니 광대무변한 마기의 한가운데에 신형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그자는 야소남이었다!
그는 허공에 반쯤 몸을 걸친 상태로 한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 순간, 말 그대로 하늘이 두 쪽이 난 듯한 기함할 광경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그 단순한 손짓 한 번에 머리 위를 흐르던 어둠의 강줄기가 갈라 터지더니 성난 해일이 덮치는 것처럼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흉악하게 생긴 어류들이 노도(怒濤)에 휩쓸리지 않으려 몸부림치다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몸뚱이가 으스러져 나갔다.
이 명실상부한 마도 최강 고수의 출현으로 천지 간 질서가 순식간에 뒤틀리고 말았다. 이 하늘의 힘과 신의 위엄을 훔친 절세의 고수에게 누가 감히 대적할 것인가.
그때 하늘을 집어삼킨 거친 물결 사이로 청아한 염불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허자의 몸 뒤에 맺힌 불타의 허상이 이 엄청난 물벼락의 충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불력에 힘입어 음침하던 공간 전체가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환히 밝아졌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백의 승려 하나가 물 위를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연꽃 송이가 봉오리를 틔우고 있었는데, 금련 송이 속에서 또 다른 금련이 활짝 피어났다.
순식간에 수면 전체를 금빛으로 물들인 무수한 금련들은 미친 듯 쏟아져 내리던 강물을 흠뻑 머금기 시작했다. 겨자씨 한 알이 수미산을 품는다는 게 이런 걸까? 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꽃송이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들어있기라도 한 듯 한량없이 강물을 삼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강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한복판에서 좌망검려의 심포진이 종문의 비보인 만검도록(萬劍圖錄)을 펼쳐 들었다.
삽시간에 무수한 검기가 창공을 가르며 뻗어 나가니, 그 위세에 모든 사람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운검총 연지의 손에는 거대한 강철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그가 이것을 열자 부러진 검, 한 자루가 떠오르더니 강력한 검기가 솟구쳐 하늘의 물길을 갈라버렸다.
만약 사무애 등이 이 광경을 보았으면 분명 그 부러진 검의 정체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당금의 강호에서 공인받은 검도계의 최강자는 삼대 검파를 무릎 꿇린 동해검성 강동명이다.
그리고 오백년 전에도 그와 같은 검도 일인자가 있었으니, 스스로 검혼이 되어 독고유아마저 다치게 했던 검성 고경성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옛날로 가면 천년 전에도 검도로 천하를 제패했던 자가 있었다. 별호가 검성(劍聖)을 넘어 검존(劍尊)으로까지 불린 엽비어(葉飛魚)라는 인물이었다.
고작 반 토막 난 검으로 당시 오대 검파를 홀로 상대하여 굴복시켰으니 검도의 지존이라는 표현을 제외하면 무슨 말이 어울리겠는가!
엽비어의 검은 처음부터 반 토막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한낱 고철처럼 보이는 검이 그를 당대 지존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사무애가 활약했던 그 시대에 엽비어의 위상은 단연코 고경성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엽비어의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인제 보니 그의 선택도 대부분의 검객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풍운검총에 자신의 검과 벗하여 묻힌 걸 보니 말이다.
야소남과 여러 강자가 싸운 여파로 마굴 전체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뒤흔들렸다. 백 리 밖에서도 그 극강의 파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에 초휴와 대치 중이던 사람들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초휴도 이제는 사도기를 손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 파동을 감지하자 강자들이 교전 중인 방향을 향해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애당초 정도 측은 마도 일맥이 너무 큰 재미를 보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생각이었다. 여기서 또 한 차례의 정마대전을 치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마도 무리가 마굴로 들어갈 때도 허자 등은 굳이 막지 않았던 것이다. 심포진 등도 자신들이 지닌 비장의 패를 노출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나마마저 마굴 내로 들어왔고, 심포진 등도 가진 모든 걸 동원하면서까지 야소남과 격전을 불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의 반전은 무얼 의미하는가? 십중팔구 야소남이 대단한 무언가를 발견한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정마 양측은 서로 관망하는 것에 그칠 뿐, 딱히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랬던 국면이 단번에 허물어졌다는 것은 엄청난 지보가 나타났거나, 또는 이미 야소남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말이 아닌가. 어떻게든 그게 그의 소유로 확정되는 걸 막으려고 저 많은 강자가 너도나도 다급히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지보를 앞에 두고 예전의 자질구레한 은원 따위를 따지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심지어 능운자도 초휴는 내버려 둔 채 야소남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은 어떻게든 야소남을 저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초휴가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인 건 사실이나 정도 무림 전체에 대한 위협의 크기로 따질 때, 지금의 초휴는 야소남과 비교가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당대의 마도 최강자로서 야소남은 장차 독고유아의 입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인 것이다.
* * *
다들 허겁지겁 교전 중인 방향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느릿느릿 마굴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초휴와도 안면이 있는 천문 신장 황사월과 임창룡이었다. 황사월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찌 된 게 이곳 기운이 심상치가 않군그래. 문주께서는 특별한 열쇠가 여기 있으니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렇게 마기가 짙은 곳에 통천 열쇠가 있을 턱이 있나? 혹시 문주께서 착각하신 게 아닐까?”
그러자 임창룡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거칠게 대꾸했다.
“황사월, 그러길래 여기는 왜 쫓아왔나? 애당초 나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일인데 굳이 같이 가겠다고 문주께 사정사정해서까지 따라온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야. 그리고 내가 열쇠를 못 찾을까 봐 걱정해주는 척,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날 도우러 온 거라는 둥, 그런 속 보이는 말도 집어치우고. 당신이 좋은 마음에서 나를 따라나섰을 리가 없잖아?”
천문의 구대 신장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물이 없었다. 그나마 임창룡이 비교적 정상에 가까운 편이라고 할 터였다. 적어도 임무를 수행할 때는 정상적으로 굴었으니 말이다.
나신군은 매사에 난폭하기만 해서 머리라고는 아예 쓸 줄을 몰랐고, 황사월은 머리가 있긴 하되 시도 때도 없이 광기가 발작하여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쳐댔다.
임창룡은 더러는 보는 사람 말문이 막힐 짓도 저질렀으나, ‘성가신 걸 싫어하는’ 그 성격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 맡은 임무를 최우선 순위에 둘 줄은 알았다.
일전에 대흑천마교에서도 그의 목표는 시종일관 뚜렷했다. 내내 통천 열쇠만 노리고 있다가 그것을 발견하자 칼같이 확보한 후, 즉시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임무 수행에 있어 이보다 더 확실하고 완벽할 수는 없을 터였다. 이번에 원시마굴에 들어와서도 그는 괜히 남들과 얽혀 싸워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열쇠만 확보하면 끝날 일에 왜 굳이 둘씩이나 필요하다고 꾸역꾸역 따라나선단 말인가. 특히 황사월은 데리고 다녀봤자 일을 성가시게 만들기 딱 좋은 인물인데 말이다.
그러나 황사월은 임창룡이 짜증을 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실거렸다.
“우리야 수십년도 더 된 형제 사이가 아닌가. 그런 말은 듣기에 좀 서운하군그래. 원시마굴의 출현에 각 대문파의 천지통현 강자들도 죄다 나선 마당에 자네 혼자 보내자니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아서 그러지.”
그러나 임창룡은 묵묵히 황사월을 쳐다보기만 했다. 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천문 신장들 사이에 무슨 얼어 죽을 형제애 같은 게 있단 말인가. 엄밀히 말해서 사형·사제지간이라고 하기도 뭣한 사이들인데 말이다. 바깥사람들이야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천문 내부의 경쟁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제자들이 선발되어 들어오면 초반에는 통일된 공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 수련 과정을 통과하면 피차 살인이 허락되는 비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긴 자에게는 비경으로 들어가 수련도 하고 각종 임무에도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임무 도전 중에도 서로 임무를 완수하려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건 물론이다.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면 자기가 원하는 공법을 골라 가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 그 공법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린 후, 또 비경에 들어가 임무를 놓고 경쟁하는 식이 거듭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다 거쳤다고 해서 천문 구대 신장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장은 천문에서 오직 아홉 사람에게만 허락된 자리다.
다시 말해 천문에서 가장 강한 아홉 명이 된다는 얘기다. 자신이 천문의 모든 인원을 통틀어 가장 강한 아홉 명 축에 든다고 자타 공인받은 다음에야 구대 신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천문 무사들이 같은 사문 출신이면서도 제각기 다른 공법을 구사하는 데다,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보유하는 것도 이런 까닭인 것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험이 그들을 이렇듯 강한 존재로 담금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