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승냥이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다
악씨 저택은 이미 피가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본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내강경 무사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한 악동림과 만감이 교차해 보이는 악동행, 이렇게 둘만 남았다.
악학년이 결국 절명하고 말았지만 악동행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의 친부가 숨졌다. 악동행 자신이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그가 기회를 제공한 건 분명했다.
반란을 도모해 친부를 시해했다······. 이 엄청난 죄목은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로 남을 판이었다. ‘패륜아’라는 오명을 임중군 전체가 두고두고 기억하며, 앞으로 그의 이름 석 자 대신으로 부를 터였다.
이런 생각에 악동행은 심경은 착잡해졌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악동행의 마음속에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악동행이 초휴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떼려는 순간, 초휴도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초휴가 철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악동행은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 봐도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악동행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초휴의 칼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칼에 뚫린 악동행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악동행은 가슴에 꽂힌 도신을 움켜잡고 죽일 듯이 초휴를 노려보았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 자기는 살수와 사전에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기를 죽이려 든단 말인가. 초휴가 악동행의 가슴에서 홍수도를 거칠게 뽑아 들더니, 그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깜박 잊고 당신한테 알려 주지 않은 게 있었소. 사실 내가 받은 임무는 악노천을 죽이는 것뿐 아니라, 악가 전체를 멸문시키는 거였거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악동행의 두 눈에 하염없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처음부터 잘못 넘겨짚었다! ‘목(穆)’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그리고 목씨 가문의 얼마 남지 않은 재력을 가늠한 순간, 악동행은 목가 잔당이 그저 악노천 한 명만 제거할 살수를 고용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잔당이 악가의 멸문을 청탁했을 줄이야!
살수가 어처구니없는 객기를 부려 그 임무를 수락했다는 건, 더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작 내강경의 실력으로 이 거대한 악씨 가문을 궤멸시키려 했다니.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것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친도 죽었고 문중 내강경들도 거의 몰살 당하고 말았다. 가문 내 암투에만 눈이 벌게진 나머지 눈앞에 있는 흉수의 손에 가문을 송두리째 넘겨버리지 않았는가. 그렇게 된 데는 악동행 본인의 이적행위가 절대적이었다. 부친은 눈을 감기 전 살수와 결탁한 자신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니, 피 맛에 환장한 승냥이를 집안으로 들여놓은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후회할 시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점점 흐릿해지는 의식과 함께 눈앞이 칠흑같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결국 악동행의 숨은 끊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악동행의 시신을 바라보는 초휴의 마음도 개운치만은 않았다. 악동행의 인생역정(人生歷程,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온 과정)이 자신과 상당히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초씨 가문에서 초휴는 발군의 능력을 보였었다. 그러나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아비는, 단 한 번도 그를 차기 차지 가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초종광이 유리금사고에 미쳐있던 특수한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그게 없었더라도 초휴가 나머지 세 형제를 제거하지 않는 한, 가주 자리는 절대로 그의 차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목자의가 넘겨준 자료에 의하면 악동행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중 아홉 방 가운데 단연 실력과 능력이 출중했던 그였다. 그러나 악학년은 큰아들과 큰손자만 줄곧 편애했다.
바로 이 때문에 초휴는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악동행을 돌파구로 삼을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죽이는 게 사람을 죽이기보다 더 어렵다. 악동행의 마음속에 분란의 씨앗이 자리 잡지 않았더라면, 초휴는 그의 마음을 파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날 초휴가 용기금군을 끌어들였을 때도 초종광은 흉수를 끌어들인 아들을 저주했었다. 하지만 양측이 용호상박의 혈전을 벌였기에, 초휴는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악동행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그가 믿고 손잡은 승냥이가 가문 전체를 삼켰을 뿐 아니라, 본인마저도 그 승냥이의 이빨에 물려 죽고 말았다. 참으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이런 결과가 된 것이, 악동행의 실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모질지 못한 탓이 더 컸기 때문이다.
초휴는 애당초 악씨 가문의 멸문까지 염두에 두고 행동했었다. 그러나 악동행은 반란을 일으킨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체면을 생각했다. 그 때문에 부친에게 감히 강수도 못 두고 점점 휘둘려만 갔다. 초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거사는 실패로 끝났을 터였다.
단전이 파괴된 구노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휴는 전혀 망설임 없이 단칼에 그의 숨통도 끊어놓았다. 그다음 차례는 악동림 및 기타 등등이었다. 현장에는 중상을 입은 악동림 외에도 아홉 방의 집사들과 문객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 중 더러는 좀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반대로 처음부터 구석 자리에 숨어 있었던 자들도 있었다. 악씨 가문의 내분에 제삼자인 자기들까지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이번 거사의 생생한 목격자인 셈이었다. 악동행이 주도한 하극상인 줄로만 알았던 이번 거사에 실은 청룡회의 살수가 개입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 악동행이 반기를 들기로 했던 것 자체가 살수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이 대단한 가문이 일개 살수의 손에 놀아나다 결국 망하는 꼴이 되었다. 그들은 이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쥐고 초휴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들의 몸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까 악학년과 악동행이 맞붙었을 때에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쪽이 이기건 간에 가문은 건재할 것이고, 자신들은 여전히 가문에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저 살수는 가문 자체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려 하고 있다. 그런 자가 악씨 가문과 피가 섞였는지 확인해가며 사람을 죽일 리 만무했다.
이때 악동림의 눈빛에 어떤 결심이 선 듯, 독기가 어렸다. 그는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저것 잴 겨를도 없이 초휴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어서 도망쳐!”
그 외침은 문객이나 집사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악노천을 향한 마지막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악씨 가문의 멸문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악노천이 신무문에 몸을 의탁하기만 하면 그만은 살릴 수 있다. 그리된다면 설령 청룡회의 타주가 나선다 해도 섣불리 악노천을 죽이지는 못할 터였다.
악동림은 평생토록 변변찮은 인생을 살아왔다. 대단한 가문의 적장자로 태어난 순간부터 차기 가주로 예정되었고, 가문의 특별한 후광 속에서 자라났다. 그가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려 나름 애써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칠고 험한 강호행(江湖行)을 하며 잔뼈가 굵은 악동행 앞에서 늘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 아우와 비교당하며 사는 인생도 결코 만만한 건 아니었다. 주눅 들고, 눈치 보고, 전전긍긍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러나 악동림은 지금 진정으로 차기 가주에 어울리는 결단을 내렸다. 죽음도 불사하고 어떻게든 초휴를 붙잡고 늘어져, 이 가문의 장손만은 구할 작정이었다. 가문의 맥을 보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문의 적장자로서 목숨을 던져 끝마쳐야 할 소임이었다.
뒤에 숨어 있던 악노천은 부친의 외침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냅다 밖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악노천의 몸놀림이 단연 빨랐다. 그는 부친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본인만 살고 볼 생각에 필사적으로 뛰었다.
한창 전성기 시절이었어도 초휴의 상대가 아니었을 악동림이 중상까지 입은 마당에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악동림을 초휴는 대기자금나수로 상대했다. 먼저 그의 두 팔을 처리한 다음, 머리를 단칼에 쳐내었다. 그러고는 악노천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악노천은 이미 담장을 뛰어넘어 죽자사자 골목을 내달리고 있었다. 피를 말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속으로 이 말만 되뇌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죽을 순 없다고!’
그는 아직 젊었다. 하고 싶은 일도, 누리고 싶은 것도 아직 한가득 존재했다. 어렵사리 신무문 여식의 마음을 샀으니, 앞으로는 꽃길만이 열릴 터였다. 여자 덕이나 보려는 자신을 무림에서 비웃고 있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그들은 결국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신무문의 사위가 되면 섭동류 따위에게 절절맬 필요도 없어진다.
‘아니, 섭동류와 대등한 입장에서 당당히 맞먹을 수 있게 된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니 절대로 지금 죽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무작정 내달리던 그의 앞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 길을 막고 섰다.
악노천은 그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곳에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더럭 겁을 집어먹은 악노천이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내가 이렇게 빌겠소.”
“악 공자는 뭐가 그리 두려우실까? 일전에 그대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야. 그때 분명히 끝난 게 아니라고 했잖은가. 그래서 끝을 확인하려고 온 것인데, 뭔 호들갑이 이리 거창한지 모르겠군.”
살수의 말을 듣는 순간 악노천은 그 음성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번쩍 고개를 쳐들며 부르짖었다.
“초휴! 당신은 초휴로군!”
지난날 임중군 고수들에게 쫓기던 초휴가 청룡회 살수가 되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문을 풍비박산 내버렸다.
‘이것이 꿈이라면 깨자, 빨리 깨자!’
하지만 초휴의 핏빛 도광이 번쩍인 순간, 악노천은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를 이룬 그 도광은 유난히도 핏빛이 선연했다.
“바로 맞췄어. 그래도 우리가 안면이 있는 사이니까,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게 아닌가. 자기가 누구 손에 죽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덜 서운할 테고 말이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 머리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초휴는 악노천의 머리 없는 시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도로 악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악씨 가문은 이미 철저히 붕괴된 상태였다. 그 난리 통에 족히 팔 할이 넘는 수가 죽었다. 물론 이미 도망친 생존자들까지 일일이 뒤쫓아가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은 도망가고 없었으나, 그 대신 임중군의 오랜 세력가로서 악씨 가문에는 적잖은 재물과 수련자원이 남아 있었다. 초휴는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그것들을 챙겼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남긴 했다. 직계 혈족을 하나쯤은 살려뒀어야 했다. 예컨대 이미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게 된 구노야 정도는 서둘러 죽일 필요가 없었다. 악씨 가문의 가장 알짜배기 수련자원들이 특수 제작된 밀실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 밀실은 여러 겹의 보안장치로 층층이 둘러싸여 있었다. 밤새도록 그걸 부수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직계 혈족을 살려 두었더라면 그자의 입에서 밀실을 열 방법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성급했다.
그래서 이 날 초휴가 챙긴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악씨 가문 내 숨겨진 수련자원의 십 분지 일이나 될까. 그러나 점점 동이 터오자, 손에 넣은 것들만 챙겨 들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