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8)
938화 대광명사를 괴롭히다
지금 초휴의 운명은 북연과 직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이익기반이 북연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침공은 초휴를 노리고 감행되는 게 확실한지라, 그로서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물러나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북연 혼자서 동제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손잡을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끌어모으는 게 급선무였다.
항려의 머리 회전이 기민한 편은 못 되어도, 그리 우둔한 것도 아닌지라 그의 뜻을 알아먹었다.
“혹시 서초를 말함인가?”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순망치한의 이치는 누구나 알지요. 서초 황족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런 때 자기들이 어찌 처신해야 할지는 잘 알 겁니다. 게다가 선황께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있으셔서 강산각에 위군을 넘김으로써 동제를 막을 교두보로 삼으셨지요. 이제 삼자(三者)가 손을 잡으면 수십 년 전, 전쟁을 치를 때보다 훨씬 더 막강해진 위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항려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산각 쪽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부황께서는 다 훌륭하셨지만 단 한 가지만은 실책을 범하셨소. 강산각의 후안무치함을 간과하셨으니까. 조금 전에 소식이 들어왔는데 강산각은 이미 위군에 정식으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위국(衛國)’이라 지었다 하오. 그런데 그 위국이 우리 북연을 지켜줄 위국이 아니라 동제를 지켜줄 위국이었단 말이오. 그 육시랄 놈들이 배은망덕하게도 동제 쪽에 붙을 모양이라는 거요!”
그 말에 초휴도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경악하지는 않았다. 강산각 입장에서야 그런 선택을 할 만도 하지 않은가.
새도 나무를 봐가며 둥지를 짓는다고 했다. 게다가 북연의 꿍꿍이속을 그들이라고 왜 눈치를 못 챘겠는가.
북연이 왜 하필 위군 땅을 내주었겠는가. 지리적 위치만 보더라도 자기들을 동제의 침공에 대항하는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였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북연보다 더 강대국인 동제 역시 건국과 관련된 약속을 제시했다고 치자. 같은 값이면 동제가 내민 손을 잡는 게 강산각으로서는 훨씬 더 이득이지 않겠는가.
어쩌면 항륭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위군에 발을 디딜 때, 이미 이럴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항륭이 갈 날을 앞두고 머리가 흐려졌던 탓인지, 아니면 자국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계산을 잘못한 셈이 된 것이다.
초휴가 호쾌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 붙을지 선택할 권리는 있으니까요. 강산각이 눈 딱 감고 동제 편에 서기로 했을 때는 그들도 나름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강산각 하나쯤이야 판세에 별 영향도 못 미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모름지기 합종연횡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를 도모하는 동안 북궁 대장군께서 잘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에 북궁백리가 결연한 자세로 말했다.
“진국오군은 언제든 전선으로 진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으니 염려 놓으시오. 내가 이래 봬도 동제군에게 맥도 못 추고 무너질 정도로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외다.”
항숭이 묵묵히 듣고 있자니 초휴가 제멋대로 군령을 남발하는 꼬락서니가 탐탁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견을 내세울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야 워낙 이런 일에는 젬병이고 북궁백리야말로 전쟁에 가장 적합한 인재가 아닌가. 게다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항려는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르는 판이니, 그가 친히 군령을 내린다 해도 되레 항숭 쪽에서 미덥지 못할 판이었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 중 실질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발언권을 가진 자는 초휴인 셈이었다. 그러니 암묵적으로나마 당분간 그에게 지휘를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격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중량감도 충분하고 언변도 능한 누군가를 서초로 보내서 연합을 논의해야겠군요. 예전에 북연과 서초가 연맹을 결성했을 때는 누가 그 소임을 맡았습니까?”
항숭이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독룡사’ 양공도였소.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지 않소?”
이에 초휴의 표정도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설마 그가 양공도의 죽음을 모를 리 있겠는가. 그것도 바로 자기 눈앞에서 죽지 않았던가.
양공도가 정세를 읽는 능력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기름칠을 한 것 같은 유려한 혀 놀림은 일품이었다. 당시 그가 나서자, 서초를 설득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초휴가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그럼 왕야께서 한번 다녀오시지요. 이번 차사 임무는 왕야의 신분을 내세우기만 해도 쉽게 성사될 겁니다.”
이 말에 항숭의 얼굴이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본왕은 언변이 능하지 못하오. 만에 하나 말실수라도 해서 대임을 망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이오?”
항숭은 평소 황실 공봉당 내에 틀어박혀 수련만 하면서 지내곤 했다. 따라서 이처럼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 책략을 펼치는 임무에 곤란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항려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럼 이번 한 번만 초 대인이 황숙과 동행하는 건 어떻겠소? 황숙은 북연 조정을 대표하고 초 대인은 무림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여러모로 그럴듯한 조합인 듯한데······. 순망치한은 서초 내부적으로도 통하는 이치가 아니겠소? 서초 조정이 망하면 서초 무림도 더는 호시절을 보장받지 못할 테니 저들도 협조하겠지. 필경 작금의 서초는 무림 세력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으니 그곳 무림인들도 현 상황에 변화가 생기는 건 원치 않을 거요. 그곳만큼 무림에 대한 관리가 느슨한 곳도 없으니 말이지. 더욱이 초 대인은 야소남과는 마도 동도 관계이기까지 하니, 배월교가 우릴 돕도록 설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초휴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항려가 의외로 그리 둔치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나를 가르쳐놓았더니만 그새 열을 깨우쳤지 않은가.
사실 서초에 소재한 웬만한 마도 세력들의 출수를 유도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다만 상대가 배월교라면 일이 성사될 가능성을 섣불리 장담할 수 없었다.
무릇 약자는 강자의 심리를 함부로 넘겨짚는 걸 피해야 하는 법이다. 실제로 자신이 그런 위치에 올라보지 않고서야 그런 경지의 강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한번 시도해보지요. 다만 서초로 가기에 앞서 북연 쪽에 해결할 일이 있습니다.”
“북연에서 뭘 또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항려가 긴장한 기색을 내비치자 초휴가 힘주어 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광명사 땡중들이 북방에 버티고 앉아있으니 문제가 아닙니까. 만에 하나 동제 때문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저들이 우리 등에 비수라도 꽂으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그러니 우선 대광명사를 좀 눌러놓아야 서초에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일이라면 초 대인이 알아서 하시구려. 조정의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말하고. 내 힘껏 협조하리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대광명사와 목숨 걸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니, 단시간 내에 일을 마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계획 전반에 걸쳐 세부적인 지침이 내려지자 북연 조정은 즉시 이행에 들어갔다. 자칫 망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전투를 앞에 두고 감히 태만할 수 있는 자는 없을 터였다.
고위직은 물론이고, 말단의 병졸들도 신경이 팽팽히 곤두세웠다. 초휴도 대광명사 화상들을 손보러 가기 위해 상천량 등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초휴의 설명을 들은 상천량은 바짝 경계의 날부터 세웠다.
“아니, 아직도 안 끝난 게야? 이 노부의 마지막 고혈 한 방울까지 쥐어 짜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대광명사의 그 허자란 늙은이는 나도 못 이겨. 자네가 아무리 번드르르한 말로 나를 꼬드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란 말이네.”
엄살을 피우는 상천량에게 초휴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상 성주, 왕년의 패기는 다 어디로 갔소이까? 대단하신 천지통현의 강자께서 싸워보지도 않고 지레 못 이긴다고 엄살을 떨다니, 이거 듣기에 영 거북스럽구려.”
하지만 상천량은 보란 듯이 똥배짱을 내밀었다.
“못 이기니까 사실을 말한 거 뿐인데 부끄러울 건 또 뭔가? 대광명사의 전승만도 두려울 판에 허자의 실력은 우리 상가의 선조들도 능가할 정도란 말일세. 내가 그자를 이기는 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라고.”
녹도에서만 살아온 탓인지는 몰라도 상천량은 명성이나 체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신경도 안 썼다. 먹지도 못할 그런 것들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에 초휴가 혀를 끌끌 찼다.
“사람도 참, 지레 겁부터 먹기는······. 염려 붙들어 매시오. 이번엔 성주더러 목숨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라, 내가 허장성세 부릴 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 하필 도문과 동제의 연합군이 변경을 위협하고 있는 이 판국에 내가 성주더러 대광명사에서 가서 사생결단을 내라고 할 리가 있겠소? 정작 힘쓸 데는 따로 있구먼.”
그러나 상천량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초휴를 쏘아보았다. 여태 그와 함께 가서 한 번이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상천량은 눈빛으로나마 항의성 질의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초휴 저자는 사주에 살이 낀 게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살기가 짙을 수 있을까. 조만간 원길을 한번 찾아가 확인해봐야겠다 싶었다.
물론 원길의 성격상 점괘가 나온 걸 곧이곧대로 말해줄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십중팔구 초휴가 천하에 둘도 없는 영웅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지껄여댈 게 뻔하지 않은가.
이윽고 초휴가 일행과 함께 대광명사에 당도했을 때는 대광명사 측에서도 동제의 동향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한 뒤였다. 이건 자그마치 삼국 중 두 나라 간의 전쟁이다.
이에 비하면 그간 강호에 심심찮게 몰아치곤 했던 풍파 정도는 산들바람이라 해야 할 터였다. 대웅보전(大雄寶殿)에 마련된 자리에서 허운이 미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가 능운자와 육장류 그자들을 너무 얕잡아 본 것 같습니다. 둘이서 손잡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러자 옆에 있던 원광이 말했다.
“내 보기에 이는 두 장문의 결정과는 무관하지 싶네. 아무래도 운몽자와 한구사가 손발이 맞아 저지른 짓인 것 같으니까. 운몽자는 왕년의 순양도문 호전육진인의 수장으로, 차기 장문으로 지목받았던 자였지. 그리고 한구사는 팔백년 전 진무교의 장문이었고. 하나같이 성질이 불같기는 해도, 일 처리에 있어 결단이 빠르고 정세를 읽고 판을 짜는 능력도 출중했던 자들이라네. 둘 다 기개가 말도 못 하게 당당한 자들이지.”
원광의 설명을 들은 허자와 허운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도 무려 팔 백년 전의 대선배가 있어 이렇듯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욱이 원광은 헛된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두고두고 골치가 아팠을 것이니 이래저래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는 허정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대광명사는 어찌 처신해야 좋을지요? 도문 측에서는 여태 가타부타 아무런 언질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까.”
이에 원광이 씁쓸히 웃었다.
“내가 아는 운몽자와 한구사는 무슨 언질을 주고 자시고 할 위인들이 아닐세. 특히 운몽자 그자는 순양도문의 위세가 한창 절정일 때 살았던 인물인지라, 남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데는 아주 도가 튼 자라네. 지금 동제 측에서는 사마외도 따위나 섬기는 이 썩어빠진 북연 조정을 칠 준비가 이미 다 되었을 걸세. 정·마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지. 이런 상황이니 우리 불문이라고 해서 마냥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대웅보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 도문 쪽에서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자면, 아마도······ 당신들 불문은 줄곧 정도 무림의 지존을 자칭하지 않았나? 그러나 지금은 우리 도문이 솔선수범하여 사마외도를 척결하러 나섰다. 그것도 바로 당신들 앞마당에서 말이다. 이런 판국에 당신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 텐가? 그러고도 창피하지 않나? 대충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