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9)
939화 비열함의 극치
이 문제와 관련해서 대광명사 스스로는 하등 거리낄 게 없어도 십중팔구는 도문의 비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한마디로 대광명사의 위명에 심각한 오점이 될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눈치껏 동참해야 할까? 하지만 도문은 여태 아무 요청도 해오지 않고 있지 않은가. 평소 불문과 도문의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어찌해야 좋을까? 다들 골머리를 앓던 그때, 밖에서 사미승 하나가 허둥지둥 뛰어와 고했다.
“방장 어른! 상좌 어른! 큰일 났습니다! 초휴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방금 산문을 지났다고 합니다. 이미 산을 오르고 있어요!”
그 바람에 화상들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졌다. 자고로 오만방자한 행동에도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감히!
‘아무리 네놈이 사고 치는 재간을 타고났다지만, 우리도 아직 네놈을 건드릴지 말지 결정을 못 내린 마당에 네놈이 자진해서 먼저 여기를 찾아와?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어찌 이토록 광오하다는 말인가!’
화상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해서 다들 나가서 그 잘난 낯짝을 보려는데 허정이 버럭 소리쳤다.
“방장 사형, 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정이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그도 알고 있었다. 사실 지금 초휴 수중의 세력을 모두 합쳐봤자 대광명사를 위협할 정도는 못 된다.
그런데도 하필 동제의 침략을 앞둔 이 중차대한 시점에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왔다는 건 실성한 게 아니라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평소 초휴의 작태로 보건대 후자에 해당할 공산이 컸다.
* * *
대광명사 입구에는 이미 초휴 무리가 진을 치고 서 있었다. 하지만 무슨 산수 구경을 나온 유람객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하긴 말로만 들어온 북불종 대광명사를 이처럼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흔한 기회이겠는가.
하지만 한껏 신이 난 그들과는 달리, 대광명사 앞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은 잔뜩 경계의 날을 세운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만에 하나 초휴 무리가 난입이라도 시도하면 목숨 걸고 싸울 기세였다.
이윽고 대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허자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전혀 초휴 무리를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허언이 제일 먼저 냉랭히 입을 열었다.
“초휴, 우리 대광명사에 무슨 용무로 왔는가?”
이에 초휴가 해맑게 웃으며 받아쳤다.
“여기가 무슨 사람 잡아먹는 곳도 아닐 텐데,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소이까?”
“초휴, 흰소리 작작하고 본론을 말해라. 도문과 동제의 연합군이 접경지까지 들이닥쳤다고 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그대가 유람이라도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자 초휴가 짐짓 정색하는 척하더니 꼬리를 내리고 실토했다.
“허언 대사 말씀이 맞소이다. 바로 그 일 때문에 여기 온 거요.”
이 말에 화상들은 어이가 없었다. 동제의 침공이 대광명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허언이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받아쳤다.
“설마 도·불 간 사이가 나쁜 것에 착안하여 우리가 당신들을 돕게끔 부추길 작정인가? 만에 하나 그런 꿍꿍이로 왔으면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걸세. 우리가 온종일 불경이나 읽고 있다고 해서 자네 속내도 짐작 못 할 정도로 앞뒤가 꽉꽉 막힌 건 아니니까!”
이에 초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귀측에서 그래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왜 없겠소이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그보다는 내가 한창 정신없는 틈을 타서 귀측이 진무당을 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래서 내가 선수를 치러 온 거요. 아무래도 넋 놓고 있다가 당하는 것보다는 먼저 치는 게 훨씬 낫지 않겠소?”
초휴의 말에 대광명사 측은 그의 면상에 대고 내심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너희가 뒤에서 칠까 봐 내가 먼저 너를 치겠다니, 세상천지에 이처럼 기괴한 논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과대망상이나 피해의식도 이 정도면 불치병이 아닌가. 뒤통수치기는 다름 아닌 초휴의 전매특허인 것이다. 자기가 툭하면 그런 짓을 하다 보니 남도 으레 그럴 줄 아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어이없는 것이, 이번 사달은 대광명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심지어 자기들도 합세해야 할지 말지를 두고 지금까지 한창 논의하던 중이었다.
그러고도 아직 결론을 못 내렸건만, 초휴가 오지랖 넓게도 대신 결론을 내려준 셈이었다. 이번엔 허자가 근엄히 입을 열었다.
“초휴,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내세워, 그리도 기세 흉흉하게 여기까지 들이닥친 건가?”
초휴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허자 방장, 이게 어째서 궤변이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외적을 막기에 앞서 내 집안부터 단속하라고 선현들이 말씀하신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우리가 동제를 막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그 누군가 등 뒤에서 칼을 꽂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 있소이까? 그렇게 칼침을 맞는다면 어디 가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겠소?”
초휴가 뺀질뺀질 어깃장을 놓자 허자는 화가 치민 나머지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내가 묻지 않는가? 설마 등 뒤에서 칼 맞을 게 겁나서 아예 대광명사를 쓸어버리겠다는 심산인가?”
“물론 그건 아니지요. 대광명사 보리원에 은거 중인 고수 영감님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나도 잘 압니다.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대광명사를 쓸어버리겠다면서 고작 이 정도 인원만 데려왔겠습니까? 강호 전체를 탈탈 털어도 감히 대광명사를 쓸어버릴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지 않겠소. 내가 온 건 그저 귀측으로부터 약속을 하나 받고 싶어서올시다.”
“무슨 약속?”
“이번 일에서 대광명사가 반드시 중립을 지킨다는 약속 말입니다. 절대 출수하면 안 됩니다. 이왕이면 불전에 대고 맹세도 해주시면 좋겠소이다. 무릇 출가한 불자는 허언을 내뱉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불전 맹세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겠지요.”
허자가 노하여 언성을 높였다.
“불가하다! 우리 대광명사는 그대에게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겠다. 초휴,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우리를 몰아세우면 우리도 못 이기는 척 몸을 사렸을지 모르지. 그러나 이번엔 눈도 깜박하지 않겠다! 출수할지 안 할지는 순전히 우리 의지에 달려있다!”
비록 이번 일에 개입할지를 두고 아직 결정을 못 내린 상태이긴 하나, 설령 개입하지 않기로 해도 그렇지, 어떻게 초휴에게 섣부른 약속을 해준단 말인가. 북방 불종을 대표하는 대광명사의 체면이 달린 문제인데 말이다,
어떻게 일개 마인 따위의 겁박에 못 이겨 약속을 남발할 수 있겠는가! 초휴의 마지막 발언은 허자를 단단히 격노케 했다.
그가 일보를 내딛자 찬란한 불광이 일신을 물들이며 막강한 위세를 토했다. 급기야 허공에서 불음 영창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듯했다.
초휴의 수중에도 어느샌가 사월도가 들려있었다. 심마도 제때 사월도의 힘을 억제했다.
순간 광포한 마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만 리 밖까지 청명하던 하늘에 어느덧 달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은가.
그것은 혈월(血月)이었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대치한 모습에 상천량은 내심 폭포처럼 욕설을 쏟아냈다.
‘저 간교한 녀석의 말을 믿고 또 따라온 내가 미친놈이지, 미친놈이야!’
출발에 앞서 초휴는 맹세까지 했었다. 이번 출행에서 출수는 단연코 없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당도하자마자 시비를 걸더니 결국 또 사달을 빚고 있는 것이다. 출수할 필요가 없기는 개뿔! 그러나 뜻밖에도 초휴는 곧장 도를 휘두르는 대신, 사월도의 위세를 잠재우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자 방장, 우리 피차 이러지 맙시다. 이렇게까지 으르렁거리며 성질을 부릴 필요가 무에 있습니까? 일전에 원시마굴에서 이미 대사께 한 차례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걸로 족하외다. 설마 내가 그 약속을 거저 해달라고 요구할 줄 아셨소? 당연히 거래에는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초휴가 도세를 거두자 허자도 기세를 반쯤 갈무리하며 물었다.
“무엇으로 거래를 하자는 건가?”
초휴가 두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북연 경내 이만칠천삼백구십육 명의 불문 승려들의 목숨을 살려 주리다!”
“뭣이라!”
이번에는 비단 허자 뿐 아니라 대광명사 모든 무사가 일제히 살벌한 기세를 터뜨렸다. 당장 초휴를 찢어 죽이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러나 초휴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대사님들, 이러지들 마시라니까! 당신들은 평소 나를 어찌 불러왔소? 사마외도나 마도 흉수, 뭐 그렇게 부르지 않았소? 어차피 그런 호칭으로 불린다면 거기에 걸맞게 행동해야 억울하지는 않을 거 아니오. 마도라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드시오? 비열하고, 뻔뻔하고, 잔인하고, 툭하면 죽이고, 나쁜 짓이란 짓은 골라서 하는, 아주 악에 찌들어 사는 족속이 아니겠소? 아니 그렇소? 그러나 이번만큼은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정작 나는 도문에 지은 죄가 조금도 없건만, 저들이 나를 핍박하려 드는 건 물론이고 오랜 세월 내가 북연에 닦아 놓은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뜨리려고 광분이란 말이지! 나 초휴의 원칙은 누구든 나를 건드리는 자는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지. 해서 나는 온 힘을 다해 동제와 도문에 맞서 싸울 생각이오. 그러니 내가 전선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후방에는 그 어떤 문제도 생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오.”
“따라서 그 약속은 대광명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무조건 해줘야겠소. 정녕 약속을 못 하겠다면 난들 별수 없소. 당장 북연에 잠복 중인 청룡회 살수들 전원에게 명령을 내려, 북연의 이만칠천삼백구십육 명 화상의 목을 죄다 치라고 하는 수밖에! 일이 그렇게 되어도 절대 내 탓이 아니오. 순전히 약속에 응하지 않은 당신들 잘못이니까! 북연 조정 측에서도 응분의 조치가 뒤따를 거요. 최소한 북연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불문 탄압이 있을 테니까! 무릇 부처를 믿는 자들은 모조리 북쪽 끝 극한의 땅으로 쫓겨날 거고, 몰래 불경을 숨기는 자들을 반역죄로 다스리게 될 거요. 허자 대사, 일이 그렇게 되면 귀하가 믿건, 안 믿건 간에 한 달 내로 북연 전역에서 불문의 흔적은 깡그리 사라질 거요. 그때가 되면 불문 일맥 모두가 반역죄인으로 취급받게 될 테니 신중히 대답하셔야 할 거외다!”
초휴가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대광명사 사람들은 그를 당장 산 채로 껍질 벗겨 죽이고픈 충동을 참느라 낯빛이 말이 아니었다. 급기야 상천량마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내내 그의 입만 쳐다볼 정도였다.
이번 수법이 어찌나 악랄했던지 같은 편도 기함케 했다. 그 나이 먹기까지 별의별 악독한 자들을 봐왔지만, 이건 악독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인간말종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광명사가 북연에 인접해 버티고 있다 보니 북연 내에는 이렇다 할 도문 세력이 없었다. 대신 소규모 불가 사찰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나름 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록 대광명사 소속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같은 불문 일맥 제자들로서 근원은 같았다. 그러니 대광명사가 이만 명도 넘는 불가 제자들의 목숨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북연 조정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불문 탄압을 벌이는 날엔 수천 년에 걸쳐 북연에 다져온 대광명사의 기반이 한 달 내로 연기처럼 사라질 터였다.
한참 숙고 끝에 허자는 악다문 잇새로 가까스로 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초휴, 네놈이 감히!”
초휴가 도를 다시 고쳐잡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가 감히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켜보면 자연히 알 일이요! 허자 대사, 그럴 배짱이 있으면 당장 나를 대광명사에 억류해 보시구려. 선택권은 귀하에게 있소이다.”
웬만해선 희로애락을 표정에 드러내는 법이 없는 허자도 이번만큼은 격노하여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또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빈승이 부처님 앞에 맹세컨대, 동제와 도문이 공격해오는 동안 대광명사는 봉문(封門)에 들어갈 것이다. 개미 한 마리도 하산하지 않게 하겠다는 말이다. 이제 만족하는가?”
그러자 초휴는 잽싸게 도를 거두더니 아까의 그 해맑던 얼굴로 돌아갔다.
“만족하다마다요. 당연히 만족합니다. 허자 대사의 용단에 소생은 탄복을 금치 못하는 바이오. 이로써 원만한 합의를 보았으니 불청객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요.”
초휴는 손짓으로 일행을 불러모으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허언은 분을 못 이겨 말문이 막혀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허정이 제일 먼저 침묵을 깨고 나섰다.
“더러운 놈!”
허운도 한마디 보탰다.
“찢어 죽일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