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1)
941화 서초 황족
한옆에 있던 항숭은 너무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배월교부터 가자고 우기는 초휴의 고집에 넘어가 주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디 얼마나 잘 풀리나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초휴가 얼마나 간교한 혀를 잘 놀려 야소남의 지원을 받아내는지 지켜볼 참이었다.
물론 실패할 때 내뱉어줄 독설도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초휴는 그저 본론만 간결히 말했고, 야소남은 대번에 이를 승낙했다. 설마 이걸로 끝이란 말인가? 이렇게나 쉽게?
일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줄 알았으면 굳이 초휴까지 대동할 필요 없이 자기 혼자 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야소남이 보인 화끈한 반응은 항숭뿐 아니라 같은 편인 동황태일 및 대제사로서도 심히 의외였다. 하여 교주의 의중을 거듭 확인하려는데 야소남이 탁자 상판을 손가락 끝으로 치며 네 글자로 답을 대신했다.
“순망치한!”
야소남이 초휴의 요청에 즉답했던 건 머릿속에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고 초휴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순망치한’ 이 네 글자가 이유 전부였다.
배월교는 이미 몇 차례나 정도 무림의 공적으로 낙인찍혀 협공을 받았었다. 그런데 부옥산 정마대전 당시에도, 그리고 야소남이 출관하자마자 정도 측과 생사결을 벌였을 때도, 은마 일맥이 명마를 도왔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 와중에 그들이 자기 실속도 일부 챙겼다고 해도 말이다.
당시 두 세력이 연합할 수 있었던 건 운명 공동체라는 공감대에 힘입은 결과였다. 명마도, 은마도 결국은 다 같은 마도가 아닌가. 이번에 은마의 고초를 나 몰라라 한다면 다음번은 자연히 명마, 즉 배월교의 차례가 될 터였다.
야소남이라는 사람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초휴도 난감했다. 그는 마도 제일 대파인 배월교를 오늘날의 최정상 자리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하지만 정작 야소남 본인에게는 마인 특유의 기질이 별로 없었다. 적어도 초휴의 눈에는 야소남이란 인물이 그렇게 음험하지도, 악랄하지도, 비열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일 처리에 있어 우유부단하거나 옹졸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또한, 배월교 교주로서의 그는 감정에 휘둘리는 법 없이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종문을 운영해 왔다. 그리고 그는 교주가 아닌 인간 야소남으로 돌아오면 대마두와도 거리가 멀어지곤 했다.
그저 한 사람의 무사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말이다. 물론 명실상부한 절대 강자의 경지에 오른 그를 단순히 무사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그는 무도에 미친 사람은 아니어도 꾸준히 강한 힘을 추구해왔다. 그러니까 보천심경을 대성하여 마도 제일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이런 자를 적으로 두면 골치 아파진다. 약점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실력으로 완패시킬 자신이 없다면 그를 무릎 꿇리는 건 요원한 일일 터였다.
그러나 이런 자와 연맹을 맺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너무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각자의 이익을 우선에 두기만 한다면, 그는 당연히 배월교에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테니까.
사실 서초로 오기 전 초휴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야소남의 성격상, 명백하게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준다면 승낙할 확률이 높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초휴의 분석과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야소남이 뜻밖의 말을 덧붙이는 게 아닌가.
“배월교도 출수하겠다. 단, 서초 밖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항숭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서초 밖으로 안 나갈 바에야 지원을 수락한 거와 안 한 것이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야소남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물론이고 서초 내의 정도 종문 역시 개미 새끼 하나 서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자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합니다.”
이에 항숭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제야 야소남의 말뜻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서초에 정도 종문의 수는 실로 적지 않았다. 당장 천사부만 해도 최대 난적이라 할 만했다. 거기에다 좌망검려와 풍운검총 등도 있지 않은가.
이번 도발은 순양도문과 진무교가 벌인 짓이긴 해도 사마외도 척결의 기치를 내세운 만큼 다른 정도 종문들의 가세는 필연적이었다. 초휴가 비열한 협박을 동원해서까지 대광명사의 사전 약속을 억지로 받아냈던 이유도 다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배월교가 서초 무림 세력만 막아주어도 초휴에게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초휴는 말을 덧붙였다.
“또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 서초행은 배월교에 도움을 청할 목적이 가장 컸으나 서초 황실과 연락을 취할 필요도 있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요즘 서초 황실과 배월교 간 사이가 어떠한지요? 황실이 어떤 입장인지가 궁금합니다.”
이미 양측이 협력하기로 합의를 본지라 동황태일과 대제사는 초휴 일행에 대해 한결 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황태일이 술술 설명에 들어갔다.
“서초 황족의 입장이라면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긴 하군. 자네도 알다시피 서초 강호에는 무림 세력들이 난립해 있고 조정은 별 힘을 못 쓰는 처지이지. 요즘은 강호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잃다시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네. 툭하면 우리를 찾아와 강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청할 정도니까 말 다 한 셈이 아니겠나. 그러니 현재 조정과 강호 사이가 긴장 국면인 건 아니라네. 강호의 그 누구와도 그런 셈이지.”
“서초 황실의 흠천감은 천사부 도사가 맡고 있네. 매년 황제가 천사부로 친히 행차하여 천제를 지내고 복을 기원하지. 우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천사부를 서초 국교로 삼았을 거야. 아, 물론 우리 배월교라고 해서 특권이 없는 건 아니라네. 황궁 내 어의 중에는 배월교 제자들이 적지 않거든.”
초휴가 놀라 물었다.
“배월교 제자들이 어의를 맡는다고요?”
그러자 여태 묵묵히 있던 대제사가 허허 웃으며 대신 답했다.
“우리 초 대인이 모르는 것도 있으시구먼. 고충(蠱蟲)은 주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긴 하지만 살릴 수도 있다오. 무릇 생사의 도는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이니,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는 오롯이 사람이 제 심보를 어찌 써먹느냐에 달린 거라고 할까.”
그러자 동황태일이 같잖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또, 또, 시작이구먼! 그쯤 하게.”
대제사에게 면박을 준 동황태일이 초휴를 쳐다보며 말했다.
“서초 황실을 방문하고 싶다면 우리가 동행해줄 수도 있네. 그러면 그들은 배월교의 체면을 봐서라도 자네를 박대하지야 않겠지. 물론 구체적인 논의가 어찌 흘러갈지는 자네 하기에 달린 문제겠지만.”
“그럼 대인께 폐를 끼치겠습니다.”
의논을 마친 초휴는 그길로 곧장 동황태일과 함께 서초의 도성, 강도성(江都城)으로 향했다. 서초가 삼국 중 최약체이니만큼, 강도성은 확실히 동제의 대량성 및 북연의 연경성보다 여러모로 못했다.
도성이라지만 여느 서초 도시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었다. 다만 앞의 두 도성보다 아기자기한 맛은 있었다.
자기를 데려가면 체면은 살릴 수 있을 거라던 동황태일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들이 입성하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상부로 보고가 올라갔다. 그리고 황성 내로 들어서기도 전에 비단옷 차림의 작고 뚱뚱한 노인네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다가왔다.
“동황태일 대인, 한동안 모습을 안 보여주시더니 오늘은 웬 행차십니까? 모처럼 시간이 나셨나 보군요. 기왕에 오셨으니 천천히 놀다 가시지요. 마침 근자에 제 수하 놈이 십만대산에서 칠채금계(七彩錦鷄)를 잡았는데 이놈이 별미 중에서도 별미지 뭐요. 이따가 버섯 넣고 푹 고아서 우리 맛나게 한번 뜯어봅시다.”
껄렁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노인이었으나 초휴는 그가 진화련신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진화련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감히 동황태일과 호형호제까지 해가며 친한 척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노인의 시선이 초휴를 향했다.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멈칫하는 모습으로 봐서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치미를 뚝 떼며 떠보듯 물었다.
“이 두 분은 뉘신지······?”
동황태일이 답했다.
“당대 우리 마도의 청년층에서 최고의 고수라오. 진무당 당주이자 북연 강호를 관장하는 초 대인의 함자를 설마 아직 못 들어보았소? 그리고 또 한 분은 북연 황실 공봉당의 당주로 계신 북연 진북왕 항숭 왕야이십니다.”
동황태일이 이번에는 그 노인을 가리키며 초휴와 항숭에게 말했다.
“이분은 서초 랑야군(琅琊軍)의 대장군인 ‘옥면비룡(玉面飛龍)’ 우문복(宇文復)이라는 분이오.”
그 별호를 듣자 초휴와 항숭의 안색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랑야군에 대해서라면 그들도 알고 있었다. 서초 군부 최강 부대로서 북연으로 치면 진국오군에 해당했다. 물론 진국오군이 다섯 부대로 구성된 것과는 달리 서초에는 랑야군 달랑 하나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인네가 랑야군의 대장군이라니,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별호가 ‘옥면비룡’이라는 게 웃기지 않는가.
비룡까지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몸이 땅딸하다고 해서 속도를 못내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옥면이라는 게 무슨 소린가? 저 면상이 대체 어디로 봐서 옥 같다는 말인가.
우문복은 초휴와 항수의 떨떠름한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고 난감한 듯 손바닥을 비벼댔다.
“여러분 모두 폐하를 뵈러 오신 겁니까?”
이에 동 황태 일이 눈을 부릅뜨며 받아쳤다.
“폐하를 뵐 게 아니라면 이 늙은 몸뚱이를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왜 왔겠소?”
그러자 우문복이 크게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했다.
“근자에 폐하께서 격무에 시달리시셔서 만나 뵙기가 마땅치 않을 때라서 말이죠. 그러니 이리합시다. 일단 제 처소로 가서 하룻밤 묵고 피로를 풀고 계시지요. 그러면 제가 내일 폐하께 보고드려 알현을 청해보겠습니다.”
그러자 동황태일의 눈빛이 돌연 무섭게 가라앉았다.
“우문복, 우리 둘 간의 오랜 교분을 봐서라도 이리 나오면 곤란하오. 다른 사람이야 얼렁뚱땅 속여 넘길 수 있어도 나한테 이러기요? 내게는 그런 수법이 안 통한다는 걸 알잖소. 솔직히 말해보시구려. 지금 폐하께서는 대관절 어쩌고 계신 거요?”
우문복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공연히 나한테 화풀이십니다그려. 이거 원······, 좋습니다. 뭐, 대인이 말하라니 말해야지 어쩌겠소. 지금 천사부, 좌망검려, 그리고 풍운검총까지 죄다 여기 와 있소이다. 지금 들어가 봤자 싸움밖에 날 일이 없을 거란 말이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일단 여러분을 돌려보내려 했던 거지요.”
그의 설명에 초휴와 항숭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강호에는 똑똑한 사람이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자기들이 생각한 것을 다른 이들도 똑같이 생각했으니 말이다.
우문복이 입에 올린 종문들은 죄다 서초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설령 저들이 한발 늦게 그 생각을 했더라도 지리적 이점을 살려 선수를 치고 나선 것이다.
동황태일이 냉랭히 웃었다.
“오호라, 그렇소? 다들 모여 있다니 더 잘됐군. 그럼 우리 중 한 명만 알현하면 어떻겠소? 우 형, 안심하시오. 이래 봬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개차반들은 아니요. 감히 황성 내에서 무분별하게 무력을 쓰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오.”
동황태일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우문복은 그들을 황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조정 입장에서는 정도 무림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마도 측에 찍히는 건 더 꺼림칙했다.
이때 황궁의 대전에서는 용포 차림의 중년인이 상석에, 그리고 아래쪽에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천사부 경 선배였고, 그의 곁에는 현룡자의 모습도 보였다.
사실 천사부는 이번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제 쪽 움직임이 갈수록 격렬함을 더해가는 게 심하거니와, 삼대 도문 중 무려 두 도문이 사마외도 척결의 기치를 높이 쳐들었으니 천사부라고 해서 가만히 있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무슨 시늉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할 게 아닌가.
다른 두 사람은 풍운검총의 연지와 좌망검려의 심포진이었다. 그들이 여기 온 목적은 단 하나, 서초 황족의 의향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만약 서초 조정이 정도 측과 한 편에 서려고 한다면 그들은 범이 날개를 얻은 격이 될 터였다. 하지만 반대로 마도 측에 서겠다고 하면 초장에 그 생각을 말살시켜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서초 황제 맹운성(孟雲晟)은 얼핏 온화한 중년의 유생처럼 보였다. 제왕으로서의 패기는 별로 없고 서책 냄새가 풍기는 듯한 풍채였다.
그러나 겉의 인상이 이렇다고 해서 당대 제왕들 가운데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 해야 할 터였다. 그에게도 황륭 못지않은 웅대한 이상과 포부가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북연은 그나마 얼마간의 저력이라도 있는 편이지만, 서초의 국력으로는 맹운성의 능력이 아무리 빼어난들 마음만 앞설 뿐, 여건 자체가 받쳐주질 못했다. 그러니 그로서도 용뺄 재간이 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