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2)
942화 황궁에서의 전초전
맹운성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서초의 황제인 그는 강호의 분쟁에는 으레 관여치 않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안이 변질되어 동제 조정마저 끼어들게 되고 일의 양상이 복잡해진 것이다.
특히나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은 연신 조정의 입장에 대해 따져 묻고 있다. 황제 본인도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는 판국에 저렇듯 답을 재촉해대면 어쩌자는 건가.
맹운성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에둘러 말했다.
“여러분이 여기 온 뜻은 짐도 잘 알겠소. 그러나 이런 일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소. 이럴 게 아니고 일단 여독부터 푸는 게 좋을 듯한데······. 그러면 내가 신하들과 논의를 해서 결론을 내린 후에 연통할 테니 말이오. 어떻소?”
그러자 심포진이 담담히 받아쳤다.
“폐하, 이런 일을 찬찬히 논의할 필요가 무에 있습니까? 저희는 그저 폐하의 의중을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희 쪽에 서실 건지 아니면 마도 놈들의 편을 드실 건지 그것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폐하께서 가장 옳은 선택을 하시리라는 것은 소인들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맹운성이 뭐라 응대하기도 전에 동황태일의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 쪽에 서면 옳은 선택이라니, 별 웃기는 소리를 다 듣겠군. 심포진, 본인이 답을 미리 정해놓고 폐하께 선택을 강요하면 그게 어찌 폐하의 선택인가? 당신이 폐하의 선택을 강압하는 작태가 아닌가!”
동황태일과 초휴가 대전에 들어서자 이미 와있던 자들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느새 마도 쪽에서도 발 빠르게 서초까지 왔단 말인가. 초휴가 다음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사실 이번 일은 여러분과는 무관한 일이오. 순양도문과 진무교는 천하 만민들이 겪게 될 고초는 생각지도 않고 덜컥 전쟁부터 일으키고 보겠다는 수작이오. 이로 인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면 그 업보는 고스란히 여러분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 업보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서로 짊어지지 못해 안달하는 거요? 좋게 피해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심포진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초휴, 너야말로 천하 만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네가 북연에서 행한 일들을 설마 북연 이외의 강호에서는 모르는 줄 알았더냐? 네가 너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살육과 탄압을 일삼는 통에 북연 강호가 벌벌 떨며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안단 말이다. 북연은 이미 마도 소굴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온 강호가 다 알고 있다! 금일 잠시 도탄에 빠져도 후일 내내 평안할 수만 있다면 그 희생은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이에 초휴가 냉소를 날리며 받아쳤다.
“웃기는 소리 작작 하시오! 북연 사람도 아닌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북연 강호가 어쩌고저쩌고 참견질이오? 내가 질서를 다잡지 않았으면 그들은 분명 서로 어지러이 죽여댔을 테고, 어쩌면 내 손에 죽은 숫자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지도 모르지. 영웅이 충동적으로 빼든 칼날에도 백성들의 고초는 십 년을 이어지기 마련이오. 여러분 모두는 이미 영웅이거나 영웅이 되고 싶겠지. 그러나 정작 백성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 장본인은 바로 정의로운 영웅이라 자처하는 당신들이란 말이오!”
그러자 이번에는 용호산 경 선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타이르듯 말했다.
“원래 음양은 비등하게 어우러져야만 하네. 어느 한쪽만 강해서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는 거지. 그대는 도가 무공에도 정통하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걸세. 같은 이치로 정·마 간에도 세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하거늘, 근자에 들어 부쩍 마도의 세가 커지면서 균형이 깨지고 말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최근의 몇 차례에 걸친 정마대전에서 마도는 번번이 우세를 점했네. 원시마굴에서도 마도가 보물을 싹쓸이하지 않았나? 이렇듯 마도의 우세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곤륜산에 올라 마교를 재건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아니 그런가?”
잠이 쏟아지는 듯한 경 선배의 반쯤 감긴 눈을 쳐다보던 초휴는 하마터면 ‘맞소이다!’라고 답할 뻔했다. 하지만 동황태일의 반응이 한 발 더 빨랐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다 듣겠군! 이보시오, 노도사 양반! 일전에 우리 교주님이 용호산을 일 년간 봉문토록 조치하신 거로 아는데 이번 일에 또 끼어들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봉문 조치를 착실히 이행 중인지 우리 교주님께서 점검차 한번 방문하셔도 되겠소?”
그러자 경 선배의 축 늘어졌던 눈꺼풀이 졸지에 위로 당겨지며 서릿발 같은 예기를 뿜어냈다.
“동황태일, 우리 천사부가 정말로 배월교를 두려워하는 줄 아는가? 먼젓번에야 노천사께서 살생이 벌어지는 걸 피하려고 양보하셨다는 걸 왜 모르나. 당시 진검승부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정녕 야소남이 천하 최강자라도 되는 줄 아는가?”
“흥! 그렇게 알면 또 어때서? 우리 교주님이야 천세, 만세 대대로 천하에 마위를 떨치실 테지만, 당신네 용호산이야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모르는 노천사와 당신, 두 사람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 두 노인네가 뒈지길 기다렸다가 본좌가 조만간 천사부를 싹 쓸어드리지. 용호산(龍虎山)을 졸지에 사묘산(蛇猫産)으로 만들어 주겠노라 그 말이요!”
명실상부한 정도 최강인 천사부와 마도 최강인 배월교는 같은 서초 하늘 아래 있으면서 이미 앙금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하여 동황태일은 천사부 사람을 대함에 있어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여차하면 출수할 기세인 걸 보자 맹운성이 다급히 나섰다.
“두 분, 이러지들 마시오. 좋은 말로 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이런단 말이오!”
하지만 황제의 존재감이 너무도 미약했다. 두 사람 다 그의 만류 따위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가 아닌가.
급기야 분을 못 참은 경 선배가 수중의 지팡이를 내던졌다. 그의 온몸에서 뇌광이 번뜩이는 가운데 뇌신진군(雷神眞君) 법상이 떠올랐다.
“동황태일, 이놈! 정녕 죽고 싶으냐? 어전(御前)이라고 좀 봐주려 했더니 끝끝내 기어올라? 좋다! 내가 뒈질 때 뒈지더라도 네놈과 함께 뒈지련다! 어디 한번 내 손에 죽어봐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 선배가 동황태일에게 달려들었다. 손에서 연신 자소신뇌가 번쩍이니, 그 위세는 어디로 봐도 곧 관 속으로 들어갈 사람으로는 전혀 안 보였다.
“나는 아직 저승에 갈 생각이 없으니 노친네를 우대하는 의미에서 먼저 보내드리지.”
동황태일이 냉소를 머금는가 싶더니 마염이 그의 전신에서 끝없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분천보감의 위력이 극한치까지 발현된 것이다.
원시마굴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 다 낫지도 않았건만, 그의 전투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싸움에 돌입했으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나름 선을 넘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었다.
황궁이 손상될지 모르니 아예 황궁 밖으로 몸을 날려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현룡자가 초휴를 바라보더니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초 대인이 참 많이도 크셨더군. 먼젓번엔 끝장을 내지 못했고 마침 우리 둘 다 진화련신에 올랐으니 이참에 나도 초 대인의 진정한 실력을 한번 맛봤으면 좋겠군.”
일전에 현룡자는 초휴와 한판 붙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초휴는 진단경을 앞두고 있었고 그는 이미 진단경이었던지라 공평한 대결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초휴를 제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무기가 끼어들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얼마 전 그는 진화련신에 올랐다. 그러나 후발 주자였던 초휴가 그보다 더 일찍 진화련신에 오른 것이다. 지금 초휴와 재대결을 하려는 것은 순전히 그에 대한 호기심의 차원일 뿐, 시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룡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한줄기 번갯불로 화하니, 그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를 방불케 했다. 먼젓번에 천자망기술로도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없어 초휴를 당황케 했던 바로 그 속도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속도로는 전혀 초휴에게 두려움을 줄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멸세의 화염이 응집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일장을 내갈겨 현룡자를 날려 버렸다.
하지만 현룡자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뇌광이 작열하며 그의 전신에서 액상 고리가 응집되더니, 거머리처럼 따라붙어 그를 괴롭히던 멸세의 화염을 꺼뜨렸다. 낭패 끝에 간신히 수습한 셈이지만, 그래도 현룡자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거 참 통쾌하구나!”
하지만 이도 잠시. 현룡자가 이내 출수를 속개하면서 두 사람은 아예 대전 밖으로 자리를 옮겨 싸우기 시작했다. 심포진과 연지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벌써 두 패가 싸움이 붙었으니 그들이라고 해서 구경만 할 순 없지 않은가.
하여 그들은 일제히 항숭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두 사람은 항숭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황실 공 봉당을 관장하는 북연의 왕야가 자국 내에서야 위명을 날릴지 몰라도 북연을 벗어나면 일개 무명지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초휴 및 동황태일과 같은 자들과 이렇게 가까이 어울려 다닐 정도면 마도 흉수일 게 틀림없잖은가. 그러니 그 역시 처단해야 마땅했다.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항숭은 미친 듯이 방어를 하면서도 내심 쌍욕이 절로 나왔다. 자신은 여기에 와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건만 뭣 때문에 공격을 받는단 말인가!
게다가 동황태일과 초휴는 일대일로 싸우고 있건만 왜 하필 자신에게만 둘이 달려드는 걸까? 협공 상대를 사람 얼굴 봐가며 정하는 것도 아닐 텐데.
강자 여러 명이 동시에 궁 밖에서 격전을 벌이자, 그 위세에 놀란 황궁 내의 고수란 고수는 죄다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들 중 감히 싸움을 말려보려는 자는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라 자체가 워낙 실력이 보잘것없는지라 황실 및 조정을 통틀어 가장 강한 고수라고 해봐야 우문복 같은 평범한 진화련신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항숭과 별 차이 없는 수준으로, 초휴 및 동황태일 수준의 강자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렇게 수 합을 겨루자 혼란한 와중에도 누가 우위에 있는지, 누가 패색이 짙은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다. 일단 동황태일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가 봐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용호산 노인네가 자신의 진면목을 과시하자, 그 심후한 저력과 실력에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무수한 실전을 통해 축적된 출수의 정교함과 신묘함은 더없이 위협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동황태일은 마굴에서 정혈을 태우느라 당한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지라 이래저래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초휴 쪽은 얼추 승세가 굳어지는 듯했다. 현룡자는 천사부 중견 세대 중 자질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툭하면 발작하는 미친 성격만 아니었어도 지금 천사부의 수장은 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화련신에 오른 뒤로 그의 실력은 더욱 급속도로 일취월장했다. 급기야 진정한 천지 뇌정으로 몸이 화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사람 몸체가 소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속도가 가능한 경지였다.
대충 손을 뻗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손끝에서 오뢰정법(五雷正法)이 우레처럼 잇따라 떨어지면, 그 위세에 오금이 저리지 않을 자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 떨리는 위세라 할지라도 극강의 힘 앞에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초휴 입장에서는 무이천도의 훼손 정도가 심각한 데다 사월도를 부리려면 필히 심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니, 시간을 길게 끌 수가 없었다. 해서 그는 육신의 강도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현룡자의 신법이 제아무리 빨라 봤자 초휴의 일신에서 타오르는 멸세의 화염에 살짝 닿기만 해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화염의 위력에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접근을 못 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초휴가 일권을 내지르기만 해도 현룡자는 필히 전력을 다해 막아야 했다. 그는 진화련신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힘의 축적량에서 초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셋 중 가장 낭패를 보고 있는 건 항숭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더는 못 버틸 성싶었다. 일단 연지도 진화련신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건 현룡자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워낙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데다, 소싯적부터 신병 연지와 한 몸처럼 지내온 터라 오대 검파 내에서도 그의 실력은 유명했다.
게다가 심포진은 이보다 더 대단했다. 이 좌망검려 종주 양반은 장년의 한창나이로 아직 젊은 축에 들었다. 따라서 오대 검파 전체를 통틀어 장차 천지통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크게 점쳐지는 인물이기도 했다.
외물의 힘을 빌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천지통현 강자와 맞대결이 가능한 실력이었다. 그러니 구룡인도 지니지 않은 항숭 하나를 상대하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이런 강자 둘이서 협공을 퍼부어대니, 항숭은 몇 합 만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