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4)
944화 전장으로 변한 관중형당
삼국 접경지대에 위치한 관중형당은 삼국 대전이 발발할 때마다 으레 엉뚱한 피해를 입는 상황에 놓이곤 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불똥이 튀는 정도가 아니라 뚜렷한 공격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휴만 아니었어도 동제가 딱히 관중형당을 가로질러 진격할 필요는 없었다. 양국 간에는 여기 말고 다른 접경지가 수두룩했으니까.
현재 관중형당의 표면적인 당주가 초원승이라지만, 그가 초휴가 내세운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익히 강호에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따라서 관중형당은 자연스럽게 동제의 삼대 진격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침공받은 지 사흘도 안 되어 절반이 함락된 관중형당은 이미 관중성까지 밀려난 상황이었다.
이때 관중성 주위는 이미 수만 마리의 군마가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성의 동쪽으로 가장 많은 군사가 배치되었고 그 정중앙에는 거대한 전차 한 대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전차 안에는 갑옷을 입고 수염을 양 갈래로 기른 중년인이 늘어지게 반쯤 몸을 누인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봐선 전쟁이 아니라 무슨 연극 구경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사내의 내력을 들춰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금방 알게 된다. 그는 동제 우림군(羽林軍)의 대장군인 남궁위우(南宮衛羽)라는 자로, 동제 구변강군(九邊强軍) 중 우림군의 실력을 상위 삼 위 안에 들게 한 인물인 것이다.
동제의 군제는 북연과 비슷했다. 다만 북연에서 실질적으로 내세울 만한 전투력이 진국오군에 한정된 것과는 달리, 동제는 구변강군이라는 아홉 부대이니, 총체적인 전투력에서는 북연의 곱절에 가까운 셈이다.
다만 동제의 국토가 워낙 넓은 탓에 구변강군은 동제 아홉 개 주요 변경지대마다 하나씩 배치되어 주둔했다. 따라서 일국의 존망이 걸린 큰 전쟁을 제외하면 한곳에 모일 일이 드물었다.
남궁위우와 북궁백리는 오랜 숙적 관계였다. 이름만 봐도 마치 태어날 때부터의 적수인 것처럼 서로가 극한의 대립 관계라는 사실이 와닿지 않는가.
지난날 동제가 북연과 서초를 침공할 당시, 남궁위우는 북궁백리와의 교전에서 패배를 맛본 바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당시의 치욕을 만회해야만 했다.
그러나 상부에서 관중형당으로 진격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그는 기분이 언짢았다. 이렇게 손쉬운 일에 굳이 자기가 나서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남궁위우 옆에는 순양도문의 수진자와 백호당 당주 혁련장봉이 있었다. 진화련신 강자 세 명에다 우림군까지 가세한 것만 봐도 동제 측에서 관중형당 진격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만했다. 이윽고 수진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남궁 장군, 이제 공격 명령을 내려야 하지 않겠소이까? 기껏 진세는 다 갖춰놓고 이렇게 술만 드시면 어쩌자는 거요? 장군의 의도가 무언지를 모르겠구려.”
하지만 남궁위우는 슬쩍 그를 곁눈질만 했을 뿐, 일언반구 대꾸가 없었다. 이것이 수진자를 더욱 격분케 했다.
“장군, 내 말이 안 들리시오? 대체 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었소이다!”
그러자 남궁위우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냉랭히 한마디 내뱉었다.
“도장께서는 나한테 불만이 있는 듯하구려?”
“당연히 있을 수밖에! 순양도문이 빈도를 보내온 건 장군을 도우라는 뜻이오. 하지만 장군은 여기서 질질 시간만 끌고 있지 않소! 마도 놈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벼락처럼 치고 들어가 숨통을 끊어야 할 터. 그런데 이렇게 질질 시가만 끌다가 만에 하나 변수라도 생기면 어쩔 작정이오?”
“흠, 듣고 보니 도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그럼, 좋소이다. 까짓것 아예 도장이 대장군을 하시면 되겠군. 내 지휘권을 도장께 넘겨드리리다. 어디 한번 잘 해보시오.”
이 말을 끝으로 남궁위우가 벌떡 일어나 가려 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만 보던 혁련장봉이 다급히 그를 만류했다.
“남궁 형, 도장의 말뜻이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시지 않소?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지오만.”
수진자는 분을 못 이긴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살아생전 이토록 제멋대로에다 말도 안 통하는 자는 처음 보지 않는가.
하지만 순양도문을 대표해 여기 온 이상, 종문의 대계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되레 남궁위우가 독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오. 뭘 잘 모르면 잠자코 있으면 됩니다. 본관이 가장 질색하는 게 누군지 아오? 바로 그대처럼 뭣도 모르면서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지적질을 해대는 자요. 경문 읽고 부적 쓰는 일이야 내가 당신네 도사들만 못하겠지만, 전쟁이라면야 그야말로 내가 더 도사라고 할 수 있을 거요. 지금 관중성 내에 몇 명이나 집결해 있는 줄 아시오? 자그마치 십만 명에 달하는 관중형당 무사들이 죄다 저 안에 모여 있단 말이오. 저렇듯 규모가 큰 병력은 나도 처음 겪는 거요. 관동, 관남, 관서, 관북, 이 네 지역의 정예 무사들이 모조리 관중성으로 집결했으니 저 숫자가 된 거란 말이오.”
“그리고 그 십만에 가까운 병력이 하나같이 손에 허다하게 피를 묻힌 경험이 있는 강호 포졸과 포두들이란 말이지. 비록 군 출신은 아니라지만 그런 자들의 실력이 약할 것 같소? 물론 본관은 저들을 제압할 자신이 있소. 그러나 제압한 후에는 어찌 될까? 자그마치 십만에 달하는 무사들이오. 돼지 십만 마리가 아니란 말이오! 저들과 격전을 치르면 우리 우림군은 손실이 없을까? 우림군은 본관이 형제처럼 아끼는 전우들이오. 그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도 당신들이야 눈 하나 깜박할 일이 없겠지. 그러나 본관의 마음은 찢어질 거라 이 말이외다! 이만하면 알아듣겠소!”
분위기가 갈수록 격앙되자 혁련장봉이 유들유들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허허, 그런 고충이 있으셨구려. 우린 그걸 또 미처 몰랐지 뭐요. 그러면 지금 시간을 끄는 건 무슨 계책인지 여쭈어도 되겠소?”
이에 남궁위우가 눈에 힘을 주며 답했다.
“매를 지치게 만들어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았소? 대군이 자기 진영을 압박해올 때의 그 위압감은 그대들은 겪어보지 못했으니 모를 거요. 아무리 심지가 강한 사람도 쉽게 버티기 힘들 정도지. 만약 우리가 지금 공격하면 저들은 그 압박감을 불쏘시개 삼아 용기백배해져서는 죽기 살기로 저항할 테고, 우리 우림군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거란 말이오. 반면, 저들의 사기가 끓어 오를 대로 끓어오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 어떨까. 그 사기는 식어서 가라앉고 두려움만이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한다면 일은 훨씬 더 쉬워질 거요. 이미 빼든 도검은 두렵지 않으나, 검집 속에 도사리고 있는 도검이야말로 더 두렵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남궁위우의 설명을 다 듣고서야 혁련장봉과 수진자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강호의 무사들은 전쟁에 대한 이해가 군영 출신들보다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종문 간의 생사결인 경우, 설령 이만 명도 넘는 대형 종문일지라도 으레 떼로 우르르 달려들어 싸우기 마련이다. 제각기 자신의 모든 실력을 총동원하여 죽기 살기로 상대를 이길 생각만 할 뿐, 그 안에 책략이고 전술이고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때 수진자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다 죽이더라도 초원승만은 살려두는 게 좋겠소. 그자는 본의 아니게 초휴의 꼬임에 넘어가 놀아난 것뿐이니, 관중형당은 무고한 셈이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초휴 그 마두 놈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니 말이오.”
‘거협’ 초광가의 명성은 여전히 강호에서 매우 확고했다. 수진자와 같은 도문 노장들조차 초광가의 생전 행적에 대해서는 깊은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다.
강호에 초광가보다 강한 인물들이야 널렸지만, 감히 ‘거협’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뿐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는 자는 없었다.
초원승은 바로 그런 존재의 외아들인 것이다. 지금이야 초휴 편에 서서 그들을 적대하는 처지라지만, 수진자는 선친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 아들의 목숨은 살려주고 싶었다.
남궁위우가 혼잣말로 뭐라 중얼대더니 귀찮다는 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거 참, 알았소.”
수진자는 남궁위우가 입속말을 눈치 못 챘지만, 곁에 있던 혁련장봉은 똑똑히 들었다.
‘젠장, 그 등신 머저리 놈이 뭐 대단하다고 특별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거야?’
* * *
그 무렵 관중형당 내.
과연 남궁우의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들 오랜 대치 국면에 지친 나머지 분위기가 뒤숭숭하기 그지없었다. 상석에 앉은 초원승이 억지로 담담한 척 해 보이며 말했다.
“저들은 아직도 공격해 올 조짐이 없는가?”
관동 장형관 소습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직입니다. 보아하니 우리가 지레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싸울 의욕이 한 점도 남지 않을 때까지 피를 말리고 난 다음에야 공격할 것으로 보입니다.”
초휴가 관중형당에 있을 때의 소습은 사대 장형관 중 최강 실력자였고, 이젠 진단경에도 올라 있었다. 그러나 밖에 구름처럼 모여 있는 우림군을 상대하려면 진단경 한 명 갖곤 어림도 없었다. 초원승이 다른 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 선배, 지원군을 기대해도 되겠소이까?”
질문을 받은 이는 저무기였다. 그도 진화련신으로 크게 한몫 보탤 만한 실력을 갖췄으니, 관중형당이 포위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이때 위서애는 위군 쪽을 도우러 가서 없었다. 하지만 관중형당 측은 고작 진화련신 한 명이고 그나마도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진에는 진화련신이 무려 세 명이나 버티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저무기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만만하다고는 하나, 지금은 그로서도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소이다. 사람은 진작 보냈으니 이제 연경성 쪽에서 전갈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요. 하지만 너무 심려 마시구려. 혹여 북연 조정에서 지원군을 못 보낸다면 진무당이라도 대신 나서주지 않겠소.”
저무기가 말은 이렇게 했으나 사실 그도 확신이 없었다. 이곳의 위급한 상황을 이미 알리기야 했다. 하지만 관중형당과 북연 간에는 소식을 전하는 진법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지라 인편으로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북연이 뒤늦게 소식을 받고 지원군을 보낸다 치더라도 제때 당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의 말에 초원승은 적잖이 위안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죽어라 버텨보지요. 오늘날까지 어떻게 일궈온 관중형당인데, 그냥 허망하게 무너지게 만들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야 없지요!”
세인들은 그를 아비만 못한 자식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확실히 초광가에 비해서 잘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급기야 어쩌면 저렇게까지 철두철미 평범할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용렬해도 초광가의 자식인 것이다. 범의 몸에서 어떻게 고양이 새끼가 나올까. 그는 절대 머저리가 아니고 소인배도 아니었다.
이번 동제의 침공을 놓고 관중형당 내부적으로 원성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이게 다 초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만 아니었으면 관중형당이 남의 전쟁에 휩쓸렸을 리가 없었을 거란 소리였다. 하지만 초원승은 뚝심 있게 이런 원망의 소리를 초장에 눌러버렸다.
초휴가 비록 관중형당의 실질적인 수장이라고는 하나, 그는 분명 초원승이 당주 자리에 오르도록 힘을 썼고 당주의 권한도 고스란히 넘겼다. 현재의 관중형당은 초휴가 돌봐준 덕분에 지난날보다 한층 더 강성해진 상태였다.
초휴가 그를 저버리지 않은 이상, 그 역시 초휴를 배반하지 않을 결심이었다. 더욱이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 따위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관중형당은 자신의 선친이 남기신 유업(遺業)이다. 관중형당은 그의 평생에 걸친 유일한 집념이 된 지 오래였다.
본인은 실력이 미약하고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관중형당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없을지라도 다른 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초휴였다.
따라서 그는 초휴가 배후에서 관중형당을 통솔하는 것에 아무런 반감도 느끼지 않았다. 관중형당이 건재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한층 더 번창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니까.
그러나 그런 관중형당이 지금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의 실력이 아무리 하잘것없다지만 맨주먹으로 혈투를 벌여서라도 끝까지 지켜낼 각오였다.
그의 부친은 거협이었고 생이 다할 때까지 협행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인 자신은 그 근처에도 못 가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기꺼이 관중형당을 위해 싸우다 죽을 결심을 한 것이다.
바로 그때, 밖에서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저무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동제가 공격을 개시한 모양이오. 초 당주, 일단 전투는 모두 나한테 맡기고 그대는 여기에 남으시오.”
그러나 초원승이 결연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같이하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