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9)
949화 해외 무림
동해와 남해는 다른 점이 많았는데 가장 큰 차이는 사람 수였다. 남해에는 폭풍우가 심하고 기후도 너무 뜨거워 사람이 살기에는 환경이 열악했다.
남해지역에 뿌리박고 살아온 세력들은 제육천마종처럼 기본적인 실력이 강했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거주하는 사람 수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동해는 일단 기후가 사람 살기에 적당한 데다 천지 원기도 풍족했다. 크고 작은 도서들이 무수히 많아서 일반인과 무사가 많이 살았다.
심지어 오래전에는 동해에 나라를 세운 자들도 있었다. 도서국에는 워낙 변수가 많은지라 얼마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긴 했지만.
현재 동해 세력의 일부는 종문이나 세가에, 또 일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강자들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통상 도서 하나를 장악하면 그곳에서 틀어박혀 우두머리를 자처하는데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삼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삼대 이상 내려간 다음에야 종문이나 세가로 굳어져 확고히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초휴와 이파순은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해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제육천마종의 배는 진법으로 보강되어 있어서 항해하는 속도가 진화련신 무사가 전력 질주할 때의 빠르기보다 더했다.
무엇보다도 힘을 아낄 수 있어서 도중에 쉬어갈 필요가 없다는 게 최대 이점이었다. 이런 배의 덕을 보지 않는다면 진화련신 무사가 수시로 천지의 힘을 끌어다 쓴다 한들, 장시간 수면을 밟고 이동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동해가 가까워질 무렵 초휴가 물었다.
“이 종주, 당금의 동해에서 실력이 가장 강하고 세력도 제일 큰 자는 누구입니까?”
“초 대인은 세력이 가장 큰 자부터 찾아가 볼 생각인 거요? 나쁜 생각은 아니외다. 동해에는 섬들이 소의 터럭 수만큼이나 많은지라 세력의 수도 그 정도로 많소이다. 그러니 차라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려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는 하오. 다만 동해의 최강 실력자가 반드시 세력이 가장 크지는 않다오. 이 점이 중원과는 좀 다르지.”
“아니, 그건 왜 그렇습니까?”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소만 여하튼 오래전부터 그래왔소. 내 짐작에는 아무래도 동해의 무사들은 태어나자마자 대하는 게 망망대해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마음이 권세보다는 천지 쪽으로 향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소. 역대 동해 최강자들은 대부분 무도에만 심취한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도 않았다오. 예컨대 당대 천하제일이라는 대자재천 천주 종신수만 해도 그런 경우이니 말이오. 사람들은 그가 동해 어딘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산다고만 알 뿐, 평생 한 번도 그를 본 일도 없으니까. ‘동해검성’ 강동명도 그런 경우인 셈이오. 초 대인도 그자와 겨뤄보았으니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지 않소? 하지만 그자도 세력을 구축하진 않았단 말이오.”
그 말에 초휴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동해에서 권세가 크기로 손꼽히는 자 중 천지통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입니까?”
이파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그리고 동해는 대략 두 개 해역으로 나뉜다고 보면 되오. 한 곳은 동제 육지와 연접해 있는 ‘청풍해(淸風海)’인데, 섬 개수가 많고 풍랑도 잔잔해서 백성들과 무사들이 살기에 좋은 곳이오. 바다 쪽으로 더 들어간 해역은 ‘열풍해(裂風海)’라고 하는데, 툭하면 풍랑이 거세게 몰아쳐서 일부 작은 섬들은 바닷물에 잠기는 곳이지. 거기는 거친 풍랑에도 끄떡없는 큰 섬들과 진정한 강자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셈이오. 환경이 열악하기가 우리 남해보다도 더 심할 거요. 그러니 열풍해 쪽 세력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외다. 대부분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들인 데다 동제와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원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자들이니까. 청풍해 쪽이 세력의 수도 많소. 대부분 동제와도 무역 교류가 있고 심지어 중원과 해외 지역을 넘나들며 무역을 하는 자들도 있으니 이들한테 접근해보는 게 좋을 거요.”
“그러면 청풍해에서 실력 최강자는 누구입니까?”
“지존도(至尊島) 도주인 ‘신안(神眼)’ 곽행존(霍行尊), 곽오야(霍五爺)라고도 불리는 자이외다.”
이파순의 입에서 전혀 망설임 없이 석 자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실력이 가장 강하다면 세력은 어떻소? 그 또한 막강합니까?”
자신의 섬 이름으로 감히 ‘지존’을 갖다 쓸 정도라면 혹시 해외 지역의 맹주로 군림할 야망을 품은 자는 아닐까?
그러나 이파순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진화련신이지만 사실 실력은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고 봐야 하오. 늙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젊은 시절에도 동급 무리 중에서 평범한 축이었거던. 적어도 나는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소.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그자의 세력 자체도 그렇게까지 강한 축은 아니오. 그의 휘하에 든 세력도 절대 많은 수는 아니고 말이지. 다만 그와 간접적으로 연계된 세력이 하나같이 청풍해의 맹주라 불릴 만해서 그런 거요.”
초휴는 부쩍 곽오야라는 사람에 대해 흥미가 일었다.
“해외 세력들의 구성이 참으로 흥미롭군요. 종주께서 보시기에 그자가 청풍해의 광대한 해역을 지배할 만한 깜냥을 가졌던가요?”
“곽행존이 지금의 위세를 지니게 된 데에는 사실 그의 안목이 가장 주효하게 작용한 셈이오. 그의 별호가 ‘신안’, 즉 신의 눈이라는 게 그걸 말해주는 거요. 그가 눈에다 무슨 귀신도 울고 갈 대단한 비술을 익혀서가 아니라, 사람 보는 안목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외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곽오야’라고 부르는 데도 이유가 있소. 집안 내 서열이 다섯째라서가 아니고 그에게 양아들이 다섯 명 있기 때문이란 말이지.”
여기까지 말한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감탄을 금치 못했지. 곽오야가 정말로 점술에 통달한 대종사이든지, 아니면 무슨 기이한 보물이라도 몸에 지니고 있어서 그의 눈이 신묘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 곽행존의 친자식 중에는 쓸 만한 놈이 하나도 없다오. 해서 양자 다섯을 거두었는데 훗날 하나같이 군계일학이라 할만한 인재들로 성장했더란 말이지.”
“첫째 양아들 ‘검치(劍痴)’ 구천애(仇天涯)는 검도의 강자요. 이미 오십년 전에 진화련신에 들어섰고 청풍해 전역에 걸쳐 그의 적수가 없었소. 강동명이 오십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동해 검성’이란 별호를 차지하지 못했을 거요. 구천애는 워낙 검에 미쳐 사는 데다 비무까지 즐겼는데, 청풍해에서는 더 적수를 찾을 수 없으니 열풍해로까지 건너갔다지 뭐요. 듣자니 큰 섬 몇 곳의 도주들을 연이어 격파하더니 급기야 종신수한테 도전하러 갔다더군. 하지만 그 뒤로 종적이 묘연합니다. 종신수에게 패해 죽었거나 아니면 그곳 망망대해 어딘가에 수장된 것이 아닐까 다들 생각하고 있소.”
“둘째 양아들은 신병도(神兵島) 도주로, ‘동해제일전장(東海第一戰將)’이라 불리는 백리파병(百里破兵)이라는 자요. 진화련신 중에서도 정상급 기량을 가졌고 육신의 강도가 신병에 버금갈 정도라더군. 신병도는 신병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고 신병을 매장하는 곳이라오.”
“셋째 양아들은 동해 최대 함대인 창룡함대(蒼龍艦隊)의 주인, 부용소(傅龍嘯)라는 자요. 역시나 진화련신 중에서도 절정급 실력자요. 청풍해 전역을 통틀어 그의 함대만이 백이면 백 안전하게 청풍해와 열풍해 사이를 오갈 수 있소. 지금까지 사고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더군.”
“넷째 양아들은 납란해(納蘭海)라는 자로, 역시나 진화련신인데, 이자는 팔자가 좀 사나운 편이지. 일찍이 강동명과 겨뤘다가 그의 일검에 양다리를 잃었으니 말이오. 지금은 작은 섬에 은거 중이라 들었소. 다리가 없으니 아무리 진화련신의 실력이라 한들 전투력은 시원찮고 말이오.”
“다섯째 양아들은······ 초대인도 아는 사람일 거요. 다름 아닌 강산각 현임 각주인 조원풍(趙元豊)이니까. 최근에 듣자니 위국의 섭정왕이 되었다더군. 강산각이 갓 해외로 왔을 때 상갓집 개만도 못한 처지로 발버둥 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해외 세력들과도 마찰을 빚었는데, 그 세력들 가운데 곽오야의 세력도 있었던 게지. 당시 조원풍은 젊어서 강산각을 대변할 만한 인물도 아니었지만, 대담하게도 혈혈단신 지존도로 가서 곽오야와 담판을 벌였다더군. 그때 곽오야의 눈에 딱 든 것이지. 그간의 앙금을 청산하고 조원풍을 양자로 삼은 거요. 강산각이 오늘날 해외에 떡하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조원풍 본인의 노력도 컸겠지만 곽오야의 후광 덕도 꽤 본 셈이오.”
이파순의 입에서 곽오야에 관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초휴도 들으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처음 들어보는 얘기가 아닌가.
대단한 인물을 한 명쯤 양자로 두는 거야 운이 좋아서 그렇다 쳐도, 자그마치 다섯 명이라니! 이것이 정말로 운에 기인한 것이라면 곽오야의 운은 인간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왜 ‘신안’이라 불리는지 이제는 알 듯했다. 그의 사람 보는 재주는 이미 천상계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초휴가 불쑥 의문을 표했다.
“내 기억으로는 강동명이 강산각의 객경으로 있었다고 들었소이다. 말씀대로라면 강동명은 넷째 양아들의 다리를 자른 자가 아닙니까? 쌍방 간에 원한이 깊을 수밖에 없을 텐데 강산각이 그를 객경으로 받아들였다니 의외구려?”
이파순이 웃음을 터뜨렸다.
“초 대인도 강동명과 겨뤄본 적이 있으니 잘 알겠지만, 그는 당대 천지통현 아래에서는 최고의 강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겠소?”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초휴가 접해본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명명백백히 천지통현에 오를 실력이 되면서도 굳이 오르지 않고 버티는 ‘별종’이었다.
이파순의 설명이 이어졌다.
“청풍해 전역을 통틀어 강동명은 거의 천하무적인 셈이오. 곽오야의 다섯 양아들이 대단한 실력자들인 건 사실이지만, 단연 최강자를 자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니 어쩌겠소. 적자생존의 이치가 지배하는 세상이거늘, 애당초 강동명과 그런 격전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더욱이 조원풍은 곽오야의 친아들도 아니잖소. 그러니 납란해라는 의형과 딱히 혈육의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닐 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판 남이었던 의형과 청풍해 천하무적 객경 중 하나를 고르라면 솔직히 누굴 택하는 게 이득일진 뻔하잖소? 그리고 당시로서는 청풍해에서 감히 강동명을 객경으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조원풍뿐이기도 했소. 조원풍은 곽오야의 양아들이니 별 고민 없이 선뜻 그를 받아들였지만, 다른 세력들은 납란해와 곽오야에게 죄를 짓게 될까 봐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거요. 해서 강동명이 나를 써달라며 제 발로 찾아왔어도 아무도 감히 그를 들이지 못했던 게지.”
초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거함은 이미 동해 해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동해에서 가장 큰 섬인 호천도(昊天島)를 향해 마지막 속도를 냈다. 호천도는 청풍해와 열풍해를 비롯한 동해 전역을 통틀어 가장 큰 섬으로, 그 자체로 작은 육지와도 같았다.
호천도는 어느 특정 세력의 소유가 아닌지라 누구라도 자유롭게 상륙하여 장사 같은 상행위를 할 수 있었다. 열 명 남짓한 강호 유명 석학들과 각 주요 세력에서 파견한 정예 무사들이 연맹을 결성하여 공동으로 호천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파순이 초휴를 데리고 호천도부터 들른 것은 동해 쪽 정보를 염탐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남해 사람인지라 오래전 몇 차례 동해에 와 본 경험만으로는 모르는 게 많았다. 그간 동해의 상황이 어찌 변했는지를 모르니 이래저래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