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2)
952화 축수(祝壽)
초휴는 고개를 젓더니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배반자라 혐오스러워 그런 게 아니오. 사실 강호에는 나를 후레자식이라는 둥, 냉혈한이라는 둥 욕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요. 섬기던 주인을 저버리는 일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말이오. 배반자가 싫은 게 아니라, 어리석은 멍청이와 합작하기가 싫었던 거요. 임종업은 너무 쓰레기요. 자신이 잘난 줄만 알고 탐욕이 도가 지나쳤소.“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장협도의 크고 작은 일은 그가 맡아 왔고, 소자기는 수련에만 전념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비록 도주는 아닐망정, 그의 명망이 소자기보다 높아야 정상이오. 안정적으로 하나씩 천천히 처리하면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을 거요. 몰래 계략과 수단을 써서 소자기가 장협도의 인심을 잃게 하고, 그의 명성을 무너뜨리고, 임종업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도주가 되는 방법을 쓰면 완벽했을 테지.“
”하지만 임종업은 굳이 중인환시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했소. 그렇게 억지로 힘으로 빼앗으려 한 것을 보면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자라는 것이 명확하오. 사람은 누구나 탐욕이 있는 법이긴 합니다. 나는 탐욕을 용인할 수 있고, 탐욕스러운 사람과 합작을 할 수도 있소. 하지만 탐욕스러운 머저리는 참아줄 수 없소이다.“
초휴의 말을 들은 이파순은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임종업이 지금까지는 소자기처럼 무도 실력만 있고 암투 따위는 해본 적 없는 자를 상대해서 다행이었다. 만일 일찌감치 초휴 같은 상대를 만났으면 오래전에 그에게 뼛가루도 남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뼛가루가 안 남기는 했지만.
그때 홀연히 누군가 말했다.
“동해 땅에서 명성이 쟁쟁한 초 대인과 제육천마종의 이파순 종주를 만나 뵐 줄은 몰랐구려. 참으로 영광입니다.”
초휴와 이파순은 다소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런 곳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말을 건 사람은 자주색 옷을 입은 비범한 기세의 중년인이었다. 그 역시 진화련신의 실력자로, 흐트러짐 없이 응집해 있는 기세는 대단히 심후했다.
그는 초휴와 이파순을 향해 공수를 올렸다. 일거수일투족이 시원시원하고 기품이 있었다. 그는 초휴와 이파순이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백동래(柏東來)라고 합니다. 동해에서 활동하는 작은 장사꾼에 불과하니 두 분이 저를 모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말에 이파순이 웃으며 답했다.
“천일수각(天一水閣) 각주, ‘자기동래(紫氣東來)’ 백동래같이 대단한 분을 누가 모르겠소이까? 게다가 천일수각이 작은 가게라니, 그러면 동해 땅의 상점은 전부 길바닥 노점이 되지 않겠소.”
이파순의 말은 은근슬쩍 초휴에게 백동래가 누구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백동래는 초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배 여러 척을 이끌고 보물과 기연을 찾아서 열풍해로 떠났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재산이 모이자 동해의 여러 섬에 천일수각을 세웠다.
천일수각에서는 기이하고 진귀한 여러 가지 보물과 병기, 단약, 무공 비급 등을 팔았다. 동시에 낭인 무사들이 가져오는 같은 품목의 자원을 사들이기도 했다.
백동래의 천일수각은 가격이 공정하여 노인이나 아이라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았다. 낭인 무사들의 물건을 사들일 때도 될 수 있으면 값을 후하게 쳐주었다. 그래서 동해 땅에서 백동래의 평판은 아주 좋았다.
사람됨도 의리가 있었다. 어려운 일에 부닥친 사람이 천일수각에 도움을 청하면, 너무 엄청난 일만 아니면 여러 섬의 천일수각 지점이 모두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에게 빈대 붙으려는 자도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그가 베푸는 은덕에 고마워했다. 한마디로 여기 해외에서 백동래는 대단한 걸물이라 할 수 있었다.
백동래가 물었다.
“두 분은 중원 무림의 거물 아닙니까. 동해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초휴가 웃었다.
“동해 지존도 곽오야의 대명을 들은 지 오래인지라, 곽오야의 생신을 축하드릴 목적으로 왔습니다.”
백동래는 그 대답에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되었군요. 저도 곽오야의 축수연에 갑니다. 거기서 또 뵙게 되겠군요. 괜찮으시다면 잔치가 끝난 뒤에는 저희 천일수각의 손님이 되어 주시지요.“
별 의미 없는 인사말을 몇 마디 나눈 뒤 백동래는 떠났다. 그가 사라지자 이파순이 물었다.
“초 대인, 저 사람을 어떻게 보시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범하고 호쾌한 것 같지만, 사실은 심계가 깊소. 그리고 자제력이 대단하군요.”
피차 머리 굴리는 데에 도가 튼 사람들이 아닌가. 백동래가 남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초휴는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백동래가 초휴를 알아보았다면, 초휴가 임종업을 죽였을 때 이미 눈치를 챘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초휴가 그를 죽이고 풍 옹까지 왔다 간 뒤에야 등장해서, 우연한 만남에 놀란 척을 했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었던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단지 곽오야의 축수연 때문에 동해에 왔다는 초휴의 말은 머저리도 믿지 않을 터였다. 백동래가 정말로 대범하고 호쾌한 사람이라면 당장 그 자리에서 불쾌하게 소매를 떨치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그 말을 믿는 것처럼 일 점의 의구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백동래는 초휴가 자신에게 경계심을 품은 것도 알아보았다. 인사말 몇 마디를 나눈 뒤 더는 붙들고 늘어지지 않고 금세 가 버렸다. 그래서 초휴는 그가 자제력이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파순이 웃었다.
“백동래는 청풍해에서 명성이 꽤 대단하지요. 그렇게 평하면 믿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 같소.”
초휴는 무표정했다.
“백동래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강호초출이거나, 진짜 머저리겠지요. 지금 백동래의 실력이나 천일수각의 세력을 보시오. 심계가 깊지 않았다면 진작에 남의 손에 죽거나 망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초휴는 백동래가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는 초휴와 이파순에게 적의가 없었다.
그저 호기심으로 떠볼 겸 안면이나 트려고 접근한 것이었다. 두 사람, 특히 초휴는 중원 무림의 대단한 거물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갑자기 동해에 나타났으니 그들의 신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하게 생각할만했다. 백동래가 떠본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백동래 같은 사람에게는 인맥을 쌓는 것은 습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초휴와 이파순처럼 자신과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 강자를 만났으니 버릇처럼 다가와서 안면을 트려고 한 것이다. 당장 도움은 안 되더라도 친분이 생겨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 * *
두 사람은 소자기를 따라 호천도에 있는 그의 거처로 갔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려서 곽오야의 축수연가 시작될 무렵 밖으로 나섰다.
소자기 역시 초휴와 이파순이 왜 곽오야의 축수연에 가려는지 궁금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엉뚱한 일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런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초휴가 아니었으면 그의 가업은 이미 임종업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초휴가 임종업을 가볍게 죽여 버렸다는 점이었다. 마치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소자기는 자신이 어설픈 수작을 부렸다가는 임종업과 같은 말로를 맞이하리라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소자기가 아직 진단경에 오르지 못했을 때 아버지가 말한 적이 있었다. 진단경만 돌파하면 한 지역의 패주가 되어 섬에 군림할 수 있게 된다고.
이제 그는 진단경이었다. 그러나 초휴 같은 수준의 강자 앞에서는 진단경 역시 약간 센 개미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소자기는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 * *
큰 배가 지존도에 거의 닿을 무렵, 주변에 해역에서도 수많은 배가 지존도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 곽오야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섬에 상륙한 초휴는 지존도를 훑어보았다. 아주 큰 섬은 아니었으나 경치가 수려했다. 천지 원기도 풍족하여 풍수적으로는 보물 같은 땅이었다.
건물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초휴가 보기에는 북연보다도 화려해 보였다. 섬 한가운데의 저택은 저택이 아니라 작은 궁전 수준이었다.
소자기에게 초대장이 있었으므로 들어가기는 아주 쉬웠다.
초휴 일행은 몰랐지만, 궁전의 다른 쪽에 그들을 주시하는 눈이 있었다.
며칠 전에 초휴와 맞닥뜨렸던 곽가 공자였다. 그의 곁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갑옷 차림에 사나운 생김새로, 가만히 있는데도 두려운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른 한 사람은 더 기이했다.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떠서 온몸을 강기로 지탱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기이한 자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두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몰래 초휴를 관찰하는 자들은 곽행존의 둘째 양자인 신병도주 백리파병과 넷째 양자 납란해였다.
백리파병은 한 손으로 곽가 공자를 끌어당기더니 큰 소리로 물었다.
“애송아, 저 녀석이 의부님 생신에 오려고 일부러 사람을 죽여서 초대장을 손에 넣었단 말이냐?”
곽가 공자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바로 저 둘입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중원 무림의 거물이라는 것 같았어요.”
백리파병이 납란해를 바라보았다.
“넷째, 자넨 평소에 온갖 잡다한 정보 찾아보기를 즐기잖나? 그러니 중원 무림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저 두 놈은 대체 누군가? 의부님의 생신 같은 경사를 저들이 망치게 둘 수야 없지 않나.”
납란해는 겉으로 보면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 같았다. 머리칼은 풀어헤쳤고, 눈빛에서는 음침하고 사나운 기운이 가득했다.
곽오야의 양자는 하나같이 인중용봉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납란해도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폐물로 전락한 인중용봉이었다.
강동명의 실력은 천지통현 아래로는 적수가 없을 정도인지라 상대하는 자들에게 절망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강했다. 곽오야의 양자 다섯이 함께 출수해도 그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곽오야의 양자들은 제각기 속셈이 달랐다. 모두 곽오야의 양자였으나, 그들끼리 꼭 형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막내 조원풍만 해도 그랬다. 강동명이 그를 불구로 만든 것을 알면서도 강동명을 문객으로 삼지 않았는가. 곽오야의 양자 중 납란해와 그나마 가까운 사람은 백리파병뿐이었다.
옆에 있던 곽가 공자는 조심스레 납란해를 힐끔 보았다. 곽오야의 양자 중 그가 함부로 건드려도 될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곽오야는 그들을 제 친아들보다도 아꼈다.
그러나 정작 흉악하게 생긴 백리파병은 겁나지 않았다. 곽가 공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말수가 적은 납란해였다.
납란해가 담담히 말했다.
“검은 옷에 가면을 쓴 자는 엄밀히 말하면 중원 무사가 아니오. 남해 제육천마종의 종주 이파순이라는 자니까. 그리고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그 옆의 젊은이는 지금 은마권 최강인 동시에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는 진무당 당주 초휴 같군. 현재 중원 무림의 대단한 걸물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지. 은마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북연 무림 전체가 그를 지존으로 섬기는 판이오. 관중형당 역시 현 당주는 그의 꼭두각시고 그가 실질적인 주인이오. 사령 중 하나인 청룡회의 대용수 보천남도 그의 손에 죽었소. 그런데 청룡회는 복수는커녕 오히려 보천남을 죽인 그를 새로운 대용수로 추대했지.”
납란해가 말한 정보는 중원 무림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지라 놀라울 게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해외에서 초휴에 대해 이 정도의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납란해의 설명을 들은 백리파병은 혀를 찼다.
“젊은 놈이 대단하군. 은마권은 좀 경솔하지 않은가. 그 큰 세력을 저런 젊은이에게 넘기다니.”
납란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호에서 나이는 배분을 따지는 데나 쓰일 뿐이지, 다른 의미가 뭐가 있겠소? 실력만 있다면 손에 넣지 못할 것도 없을 테지.”
“넷째, 저놈이 의부님 생신에 좋은 마음으로 왔을 것 같지가 않네. 중원의 마도 거물이 동해 땅에 굳이 왜 왔겠는가 말이네. 난 중원 무사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못 봤어. 잔치가 시작되기 전에 적당한 핑계로 두드려 패서 내쫓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