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6)
956화 백동래의 야망
그가 보기에 곽행존은 진심으로 초휴를 양자 삼고 싶어 했다.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초휴의 앞길은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일거에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초휴가 담담히 말했다.
“이 종주, 저와 의견이 좀 다른 것 같소이다. 방금 말씀하셨지요. 그냥 숙이고 그를 의부로 받아주면 어떠냐고요. 하지만 이 초휴의 지위가 있는데, 내가 왜 숙여줘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곽행존 저자가 내 의부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그 주제에? 웃기는 소리!”
이파순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랬다. 초휴의 성격은 본래 강경했다.
위서애 역시 그의 스승 혹은 아버지 같은 사이였고, 은마권에서 그간 쌓아 온 인맥까지 전부 초휴에게 넘겨주었다. 초휴를 사실상 자신의 후계자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위서애는 초휴더러 자신을 스승이나 의부로 섬기라고 한 일이 없었다. 곽행존은 안목이 좀 좋다는 걸 빼면 위서애와 비교할 바가 못 되는 위인이 아닌가.
그러나 안목 생각을 하니 이파순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저 늙은이가 안목 하나는 비범하긴 하구려. 조원풍을 양자로 거둔 후 수십 년간 양자를 들인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단번에 초 대인한테 혹해서 달려든 걸 보면 초 대인도 분명 훗날 대단한 일을 해낼 거요.”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걸 저자의 안목에 기댈 필요나 있겠습니까? 이 초 아무개가 허풍떠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던 개라도 그 정도는 알 텐데요.”
이파순은 제 머리를 탁 쳤다. 하마터면 깜박할 뻔했다. 사실 초휴 정도의 나이에 이만한 성취를 이뤘으면 그의 앞날이 얼마나 무궁무진할지는 머저리라도 알아보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곽행존이 거둔 양자가 어쩌다 얻어걸린 횡재였다면, 지금의 초휴를 양자로 삼는 것은 다 만들어진 보물을 공짜로 줍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경우의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남이 위급한 틈을 타서 이득을 보겠다는 속셈이었으니, 초휴가 불같이 화를 낸 것도 당연했다.
사람의 마음만큼 다루기 어려운 게 또 있을까. 만일 초휴가 미약한 실력으로 어렵게 지내는 형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초휴는 양자 제의를 받아들여서, 오늘 일은 또 한 번 곽행존의 신안을 증명하는 미담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곽행존은 초휴의 나이에만 주목하고 그의 지위와 실력을 간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쌍방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그간 신중하게 처신해 온 습관 덕분에 그 자리에서 폭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피를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초휴가 축수연에서 사람 죽이기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잖은가.
초휴가 떠날 준비를 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초 대인, 잠시 기다리십시오.”
돌아보니 쫓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백동래였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백 선생, 이렇게 나를 쫓아 나섰다가 곽오야에게 밉보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백동래가 가벼이 웃었다.
“곽오야는 아첨하는 무리에 온통 둘러싸여 있으니 저 한 사람에게 신경을 쏟을 리가 없지요. 그리고 예전 같으면 좀 걱정이 되었겠습니다만, 지금이야 그럴 일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말한 백동래는 갑자기 낯빛을 엄숙히 했다.
“초 대인, 동해 땅의 힘을 빌려 동제를 공격하실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곽행존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청풍해 바닥에서 그의 영향력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허탕만 치고 돌아가게 될 겁니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상관없소이다. 동해 땅의 풍토와 인심을 두루 구경한 셈 치지요.”
초휴의 느긋한 태도를 보고 백동래가 진지하게 말했다.
“초 대인, 굳이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은 아까 하셨던 말씀에 저도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야 합작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 말이지요. 저와 합작을 해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뭘 합작합니까?”
백동래의 눈빛이 음침해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초 대인이 곽행존을 처리해 주십시오. 그럼 저는 동해 땅의 강호 세력을 소집해 동제를 공격하겠습니다!”
초휴의 낯빛은 그대로였으나 이파순은 기겁을 했다. 백동래도 청풍해에서 잘 알려진 거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대범하고 호탕한 사람이건 혹은 심계가 깊은 사람이건, 그 세력은 곽행존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청풍해에서 백년간 패주 노릇을 해 온 곽행존에게 감히 이런 마음을 품다니 정말로 놀랄 일이 아닌가.
백동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목이 많아 번잡하군요. 초 대인, 우리 천수일각의 배가 저기 있는데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초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초휴가 응낙하자 백동래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당장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한다면 가망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백동래의 배에 앉은 초휴가 물었다.
“백 선생, 사실 나는 굉장히 궁금합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지요?”
백동래가 입을 벌려 웃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 오르고 싶어 하잖습니까. 이런 일에 굳이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내 길을 막고 있는 자가 비켜줄 생각이 없으니,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는 수밖에요.”
가볍게 웃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냥 다 터놓고 말씀드리지요. 제가 곽행존을 처치하고 싶었던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초 대인은 동해 땅에 방금 오셨으니 곽행존의 신기한 이야기만 잔뜩 들으셨겠죠. 확실히 남들이 입에 올릴 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일은 모르시겠죠. 곽행존의 지존도, 그리고 곽가는 이미 청풍해 일대의 해악입니다.”
“그럼 곽행존은 동해를 홀로 지배하는 유아독존이 되려는 거군요?”
백동래가 냉소했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나이가 들어 그럴 힘이 없습니다. 곽가 사람들도 속셈이야 있겠으나 대놓고 다른 세력을 집어삼킬 수는 없지요. 곽가는 적통 제자를 하나씩 다른 종문에 보내서 ‘도움’이라는 명목을 내밀며 이득을 긁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천수일각도 벌써 몇 군데나 곽가 사람들에게 점거당했습니다. 곽행존의 친아들 중에는 쓸 만한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역겨운 방법을 쓰는 것이지요. 제 자손들에게 장기적인 생계를 마련해 주는 셈이랄까요. 하지만 정말 그의 생각처럼 모든 사람이 꾹 참기만 하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초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곽행존이라는 자를 대체 뭐라고 형용해야 할까?
아랫사람들을 벗겨 먹는 것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법이다. 초휴가 북연 무림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희 것을 가져가는 대신 너희에게도 실질적 이득을 준다. 너희가 매달 바치는 공봉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보여주겠다······. 그게 초휴의 방식이었다.
북연 무림에서도 속 쓰려 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내는 공봉이 효과가 있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초휴의 진무당은 딱 정해진 금액만큼만 받았다.
곽행존은 어떤가. 초휴만큼 패도적으로 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무딘 칼로 살을 베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를 베어갈지조차 알 수 없는 셈이 아닌가.
곽행존의 이런 소행은 그의 자손과 후대를 망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가 죽은 뒤 양자들이 곽가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곽가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초휴는 탁자를 두드렸다.
“그렇다면 곽행존이 지존도를 오래 유지하는 건 쉽지 않겠군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점이 있는데. 굳이 왜 날 찾아왔소? 나는 중원 사람이고, 동해에는 얼마 전에 왔을 뿐입니다. 즉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 겁니까?”
백동래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즉흥적으로 든 생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초 대인이 정말 도와주신다면 이번 일의 성공률은 크게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좀 전에 초 대인이 곽행존과 다투지 않았다면 저도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곽오야의 지존도가 청풍해에 우뚝 선 지 백년이 지났습니다. 그 대단한 위세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지요. 그래서 그간은 다른 사람을 찾아 연합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상대방이 저를 팔아넘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초 대인이라면 안심이지요. 외부인인 데다 방금 곽행존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으니 말입니다. 초 대인의 성격상 곽행존에게 기댈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여기 청풍해에서는 초 대인과 손을 잡는 것만이 가장 탁월한 선택이지요.”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백동래를 훑어보았다.
과연 첫인상대로였다. 심계가 정말 깊었다. 초휴의 짐작이 맞는다면 이 자가 곽행존을 칠 궁리를 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꾹 참고 견뎠다.
조금 전 대청에서도 그는 무의식중에 백동래를 보았었다. 그때 백동래는 아주 공경하는 태도로 곽행존에게 선물을 올렸다.
곽행존을 바라보는 눈에는 숭배와 존경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초휴가 언제 눈을 돌려 주시하건 백동래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연기라는 것은 잠깐 하기는 쉬워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잠시 후 초휴가 웃었다.
“청풍해에서 곽행존에게 도전하겠다는 기개는 감탄스럽군요. 나는 총명한 사람과 합작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보아하니 백 선생은 총명한 분 같소.”
동해 땅의 무사를 끌어와서 동제를 칠 수만 있다면 우두머리가 누가 되건 초휴에게는 상관없었다. 곽행존이 기회를 걷어찼으니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그만 아닌가.
백동래도 청풍해에서 명성이 꽤 높았다. 아마 이런 날을 위해 줄곧 암암리에 명망을 쌓아 왔을 것이다. 곽행존 일맥을 해치우고 백동래가 그 위치를 차지한다면, 청풍해의 힘을 동원해 동제를 치는 것도 가능했다.
초휴가 응낙하자 백동래도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계획을 짠지 수년이 되었건만 지금까지 실행하지 않았던 것은 실력이 모자라서였다. 곽행존은 오랫동안 청풍해의 패주였다. 그 자신이야 별 것 아니어도 간접적으로 쥐고 있는 세력이 대단히 강대해서 백동래가 뭘 어찌해볼 여지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곽행존의 수하 세력이 가장 약할 때였다. 조원풍은 중원으로 떠나 중원 무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마침 초휴는 곽행존과 척을 졌다. 백동래는 이 틈을 이용해 초휴와 이파순이라는 강대한 조력자를 얻은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해서 그는 계획이 다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일단 초휴부터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초휴가 무겁게 말했다.
“백 선생, 연합하기로 했으니 당신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보시지요. 천수일각의 힘만으로 지존도를 멸망시킬 수는 없을 거요.”
백동래가 웃었다.
“초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천수일각 혼자서는 지존도를 칠 수 없지요. 저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사실 동해 땅에도 곽행존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몰래 저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예컨대 청풍해 경도맹(驚濤盟) 맹주 관신통(冠神通)이 있습니다. 초야 출신으로, 작은 섬 여럿을 규합해 경도맹을 만든 사람이죠. 수하의 실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사람 수가 많습니다.”
“그와 곽행존의 양자 백리파병은 불공대천의 원수입니다. 옛날 백리파병에게 중상을 입은 적이 있고, 그의 신병도 백리파병이 망가뜨렸으니까요. 관신통 외에 적지 않은 낭인 고수도 회유했습니다. 지금은 다들 청풍해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제가 전갈만 보내면 이레 안에 달려올 겁니다. 그리고 초 대인이 잘 아는 사람인 경천회 회주 용천영도 제 편입니다. 경천회는 청풍해와 중원을 오가는 최대의 상회로 무역량이 어마어마하지요. 전에는 ‘성승’ 담연대사의 도움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담연대사가 중원 땅에서 입적한 후 뒷배가 없어진 경천회는 갖은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곽가 사람들이 조원풍과 합세해 경천회의 거래처를 적잖게 빼앗아간 거죠. 멀쩡한 일류 대상회가 삼류로 전락한 겁니다. 옛날 담연대사의 은덕이 아니었더라면 용천영의 목숨마저 달아났을 겁니다. 천수일각에서 다루는 물건도 경천회가 가져오는 것이 많은데 이렇게 됐단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지존도를 쓰러뜨릴 날을 기대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초 대인이 합류하셨으니 용 회주도 몹시 기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