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8)
958화 빠르다!
납란해는 초휴에게 질투심이 일었다. 옛날에는 그 역시 초휴처럼 젊은 나이로 진화련신에 오른 실력자였다.
능히 윗세대의 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곽행존이라는 의부까지 버티고 있으니, 청풍해에서 누가 감히 그에게 대들겠는가.
그러나 강동명에게 다리를 잃은 후로는 온 세상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의부는 그를 중히 여기지 않게 되었고 부용소의 눈빛에는 은연중에 그를 깔보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원풍! 그 나중에 굴러들어온 놈은 감히 강동명을 객경으로 쓰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납란해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처사가 아닌가. 그 일을 곽행존에게 하소연해 보았으나, 의부는 형제끼리 화목하게 지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오만하기 그지없던 자가 이런 처지로 전락하자 납란해의 마음은 평정을 잃었다. 특히 옛날의 자신처럼 젊고 기세가 비범한 초휴를 본 지금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다.
다리만 멀쩡했더라도 지금쯤 자신은 동해의 초휴가 되어 있을 게 아닌가. 축수연에서 그가 초휴에게 적의를 드러낸 것은 의심만이 아니라 질투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납란해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꺼져라! 모두 꺼져! 꺼지지 않으면 네놈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본인도 다리가 없으면서 남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니,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자신의 고통이 사그라들기라도 하는가?”
납란해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몸을 휙 날려 공중에 떠올랐다. 초휴를 바라보는 눈에 경악의 기색이 가득했다. 분명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 자가 왜 여기 나타난 거지?
그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섬 전체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 소리조차 전혀 안 들리지 않는가.
다리가 잘렸다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수한 생사의 싸움을 겪어왔다. 납란해는 일순간에 초휴의 목적을 눈치챘다.
“초휴! 네놈이 감히!”
초휴는 담담히 냉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몸에서 불광이 일어나더니 대일여래의 법상이 나타났다. 불인이 작렬하는 위세는 마치 산을 무너뜨릴 듯했다.
납란해는 양다리를 못 쓰게 되어 전투력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간 쌓았던 실력이 있었다. 인결을 맺자 끝없는 수증기가 하늘을 가릴 듯한 파도로 변해 그의 앞에 가로놓이더니, 울부짖는 바다가 몰아치듯 불인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대한 위세의 불인은 파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납란해는 사정없이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강대한 힘에 경맥마저 진동하는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초휴가 성큼 다가섰다. 대일여래의 법상은 위엄 있고 신성해 보였으나 정작 불인은 인정사정없이 또 폭발했다.
납란해는 노호성을 질렀다. 전신의 모공에서 안개처럼 피가 터져 나와 수증기와 융합하더니 무수한 핏물의 창으로 변해 초휴를 덮쳤다.
그러나 그 역시 불인의 힘에 고스란히 깨져나갔다. 선혈을 울컥 토한 납란해의 낯빛은 종잇장처럼 창백해졌다. 눈에는 공황과 불신이 가득했다.
사실 해외의 무사인 납란해의 견문은 아무래도 중원 무사보다 못했다. 동해에서는 만날 수 있는 강자도, 다닐 만한 땅도 한계가 있었다.
납란해가 일평생 만나 본 최강자는 그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든 강동명이었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을 더 만난 것이다. 강동명처럼, 저항할 배짱마저 말살해 버리는 존재를!
세 번째 불인이 작렬했다. 이번에 초휴가 맺은 인결은 무색정대수인이었다. 불인의 위력이 천지를 비틀어 버릴 듯이 만물을 압살했다. 납란해는 그 힘을 막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초휴는 방천화극을 꺼내 들었다. 대역극법을 펼치자 산과 강을 부술 듯한 패도적인 위력이 내리꽂혔다. 방천화극은 단숨에 납란해의 호체진기를 찢고 가슴을 꿰뚫더니 그를 땅바닥에 못 박아 버렸다.
그 방천화극은 신병이 아니었다. 천도전갑은 너무 손상이 심해서 이제 더는 형태를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평범한 보병이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고, 사실은 병기를 쓰지 않아도 죽일 수 있었다. 초휴가 병기를 쓴 것은 오직 남의 눈을 속일 목적에서였다.
방천화극이 납란해의 심맥을 완전히 찢어발겼다. 초휴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서 무표정한 얼굴로 방천화극을 뽑았다.
순간 납란해의 호흡이 한없이 약하게 꺼져갔다. 죽기 직전 납란해는 초휴에게 삿대질을 했으나, 결국은 마지막 한 마디를 뱉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그에겐 많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분명 떠났던 초휴가 왜 돌아왔는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등등. 애석하게도 그는 답을 들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초휴는 죽은 자에게 열심히 복습을 시켜 주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체를 힐끗 본 그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섬 근처에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그 작은 배가 보이지 않았다.
무수한 진법이 배에 새겨져 있었고, 선창 아래에서도 여러 진법 대사가 진을 펼쳐 섬의 기척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백동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존도 공격 계획은 하루 이틀 짠 것이 아니고 어언 십년이 가까웠다.
이제 드디어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건만, 막상 과정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동래는 내심의 초조함을 억지로 누르고 바둑판을 가져왔다.
“이 종주, 가만히 기다리기도 지루하니 바둑이나 한 판 두실까요?”
이파순은 고개를 저었다.
“됐소. 아마 시간이 모자랄 거요.”
백동래는 잠시 멍해졌다가 말했다.
“이 종주, 안심하시지요. 제가 바둑을 그리 못 두지는 않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가 대국을 시작하면 초 대인은 이미 일을 끝냈을 거라는 뜻이오.”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백동래는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는 본래 초휴와 함께 가서 납란해를 협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휴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남들이 눈치챌 흔적과 기운이 남기도 쉽다는 것이었다.
초휴가 납란해를 이기리라는 것은 백동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처리할 거라는 말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납란해가 다리를 못 쓴다고는 해도 명실상부한 진화련신 아닌가.
그가 의혹에 빠져 있을 때 초휴가 배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백동래는 화들짝 놀랐다.
이파순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뭐랬소. 시간이 안 된다니까요.”
“초 대인, 벌써 해결하셨습니까?”
백동래의 눈에는 경악의 기색이 가득했다.
초휴는 담담했다.
“고작 폐인 하나잖소. 이보다 더 오래 걸리면 나야말로 폐물인 셈이지요. 됐소. 납란해는 죽었으니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립시다. 백리파병이 나서면 그때 그자를 치지요.”
초휴의 계획은 한 번에 몰려가서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각개격파하는 것이었다.
납란해가 제일 죽이기 쉬웠다. 작은 섬에는 그 말고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백리파병에게는 신병도가 있었다. 신병도 전체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나 백리파병 휘하의 정예는 적지 않았다.
만일 하나라도 놓치면 누군가 외부에 소식을 알릴 위험이 컸다. 그래서 초휴는 일단 납란해를 죽인 뒤 백리파병을 유인해서 해치울 생각이었다.
백동래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여전히 경악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납란해는 그래도 바다 건너에서 손꼽히는 고수인데 초휴는 닭 모가지 비틀듯 죽여 버린 것이다.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런 힘을 지닌 초휴조차 중원 무림의 정도 세력에 밀려 해외로 구원군을 찾으러 왔다는 점이었다. 중원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 만하지 않은가.
작은 배는 소리도 없이 떠나갔다. 납란해의 시체는 그로부터 이틀 뒤에야 발견되었다.
그가 또 화를 내어 아랫사람을 다 쫓아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곽행존은 그래도 양자인지라 걱정이 되었다. 해서 곽가 제자들을 시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가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납란해가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납란해가 죽었다는 소식에 곽행존 휘하 세력은 완전히 폭발했다. 모두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달려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감히 지존도 일맥을 건드린 적이 없었건만!
그러나 납란해의 시신을 본 곽행존의 첫 반응은 슬픔이 아니라 공포와 당황이었다.
* * *
곽행존은 정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평화가 깨졌기 때문이다.
양자를 들인 이후, 정확히 말해 신안을 지니게 된 이후 그는 줄곧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고생하지 않았으며, 여러 양자의 힘에 기대어 청풍해에 군림해 왔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태연하고 여유롭던 평소의 태도를 벗어던지고 납란해의 시신을 끝없이 맴돌며 중얼거렸다.
“누구냐? 도대체 누가 감히 넷째를 죽였단 말이냐!”
곽행존의 그런 모습에 백리파병마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헛기침을 했다.
“의부님, 당황하지 마십시오. 우리 지존도가 어떤 곳입니까. 흉수가 누구든 천지통현의 강자만 아니라면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기실 백리파병은 좀 슬펐다. 그와 납란해는 사이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곽행존은 백리파병을 데려오고 얼마 되지 않아 부용소와 납란해를 양자로 거두었다.
납란해가 어렸을 때 백리파병은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사형제인 동시에 친구 같은 사이였다. 납란해는 좌절을 겪은 뒤 음침한 성격이 되었으나 백리파병을 대하는 태도만은 변함이 없었다.
곽행존은 백리파병을 토닥였다.
“이번 일은 일단 네게 맡기마. 너와 넷째는 사이가 좋았지. 얼른 범인을 찾아내서 넷째의 복수를 하도록 해라.”
백리파병은 고개를 끄덕이고 납란해의 시신을 확인하러 다가갔다.
그는 놀고먹으며 지내온 곽행존과 달리 줄곧 위로 기어오르기 위해 살아왔다. 이런 일에 아주 익숙했다. 옆에 있던 부용소도 도왔다.
그는 납란해나 백리파병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부 암투 따위에 골몰할 때가 아니었다. 부용소는 백리파병과 함께 납란해의 시신을 확인했다.
잠시 후 백리파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단한 강자로군. 넷째는 거의 일방적으로 압도당한 끝에 죽었어. 정혈까지 태웠는데도 상대를 막는 데는 실패했군그래.”
부용소도 말했다.
“상처를 보면 넷째는 방천화극 같은 병기에 죽은 것 같소. 상대방의 힘으로 추정하자면 아마 진화련신의 최절정일 것 같군.”
백리파병이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넷째의 몸에서 특이한 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청풍해를 통틀어 방천화극을 병기로 쓰는 자가 있던가?”
부용소가 고개를 저었다.
“중원에는 방천화극을 병기로 쓰는 무사가 더러 있소. 특히 군에 몸담았던 장수 출신이 그렇소. 방천화극 같은 병기는 전장에서 주로 쓰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여기 해외의 땅에는 보통 도나 검을 쓰는 사람이 많지요. 설령 방천화극을 쓰는 무사라 해도 실력이 진화련신까지 될 리는 없소.”
그 대답에 백리파병이 다시 질문했다.
“열풍해 쪽은?”
부용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열풍해 깊은 곳에 은거한 고수 한 사람이 방천화극을 쓰지요. 하지만 그는 흑염강기를 수련한 사람이오. 그런 강기는 거세고 뜨거워서 일단 출수하면 흔적이 뚜렷이 남소. 하지만 넷째의 몸에 상대의 강기 흔적이라곤 전혀 없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넷째를 왜 죽였을까, 동기가 뭘까 하는 점이오.”
백리파병은 골치가 아파져서 머리를 주물렀다. 그 역시 그게 의문이었다. 도무지 짚이는 바가 없지 않은가. 대체 누가 다리도 쓰지 못하는 납란해를 죽였단 말인가.
그간 납란해가 남의 미움을 산 적이 없냐고 하면, 그야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작은 섬에 은거하는 신세가 아닌가.
그러니 권세를 지닌 인물과 척을 질 일이 없었다. 미움을 샀다고 해 봐야 그를 모시던 하인들 정도일 텐데, 하인들이 납란해를 공격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때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곽행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얘들아, 혹시 초휴가 한 짓은 아닐까?”
부용소와 백리파병은 서로 마주 보더니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백리파병이 말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초휴는 진작 동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초휴에 관한 자료를 보면 도법에 능하다고 되어있습니다. 대광명사 방장이며 천지통현인 허자를 일도로 몰아세웠다는 기록도 있구요.”
초휴가 현무진공을 쓴 적이 있기는 했으나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런 상세한 자료까지 해외에 알려졌을 리는 없었다. 풍만루라 해도 가장 상세한 자료까지 찾아봐야 겨우 한마디쯤 언급되어 있을까 말까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