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9)
959화 연쇄살인
부용소가 말했다.
“맞습니다. 초휴의 수법 같지도 않고, 그자가 이런 짓을 저지를 이유도 없지요. 초휴는 동해에 원군을 청하러 왔는데, 넷째를 죽인다고 해서 목적이 이뤄질 것도 아니잖습니까? 넷째가 죽었다고 우리가 그를 도와줄 리는 전혀 없으니까요. 혹시 화풀이로 그런 것이라면······.”
거기까지 말한 부용소는 곽행존을 힐끔 보았다.
“만일 화풀이라면 넷째를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의부님의 적통 자손은 밖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자 곽가의 적통 제자들은 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들은 지금껏 밖에서 대담하게 설치고 다녔다. 곽가와 지존도 일맥이라는 뒷배가 그들을 굳건히 지켜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사람이 죽어 나가니 깨달음이 왔다. 그들의 뒷배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제 집안 자식들을 불러들이고 싶었다. 바깥은 너무 위험하다. 역시 지존도에 있는 편이 안전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더 조사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일단은 납란해의 시체를 그대로 보존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백리파병이 침중하게 말했다.
“의부님, 한동안은 곽가 사람을 모두 불러들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넷째가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서 이리된 것인지, 아니면 누가 지존도 일맥을 노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의 시선이 부용소를 향했다.
“셋째, 자네도 한동안 열풍해 갈 생각은 하지 말게. 창룡함대를 동원해서 단서도 좀 찾아보고.”
부용소는 코웃음을 쳤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소.”
분부를 마친 백리파병과 부용소는 떠났다. 수하들을 불러들여 단서를 찾아볼 셈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죽였는데, 근처 해역에서 기척을 느낀 사람이 없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곽행존은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으나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자꾸 불안하고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만 그런 게 아니라 백리파병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희미하게, 몽롱하게 뭔가 보일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 겹은 결국 뚫어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배를 몰아 신병도로 돌아왔다. 백리파병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 능숙하진 못했으나, 그래도 휘하의 인원이 적지는 않았다. 그들을 동원해서 조사를 시키면 나름대로 수확이 있지 않겠는가.
그때 느닷없이 바다에서 만 장은 될 듯한 파도가 일었다. 그 두려운 파도는 울부짖듯 쏟아지며 순식간에 백리파병의 거대한 배를 뒤집어 버렸다.
백리파병은 물속으로 떨어졌으나, 온몸을 강기가 감싸고 돌면서 바닷물을 밀어냈다. 순간 야단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배는 병기를 주조하는 비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들어간 재료의 팔 할은 쇠였고 무수한 진법이 새겨져 있었다.
열풍해를 오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거니와 청풍해 해역은 대부분 풍랑이라곤 일지 않았다. 이런 해일 같은 파도가 그의 배를 뒤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물을 밟으며 한 걸음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낯빛이 확 변했다. 근방 십 리가 물의 장벽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마치 감옥처럼 말이다. 바보라도 매복에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의 벽에 한 줄기 금이 가더니 물 위를 걸어오는 초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를 본 백리파병은 그제야 사건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흉수는 초휴였다!
“초휴! 네놈이었나! 왜 넷째를 죽인 것이냐? 왜 우리 지존도와 적대하려는 거냐! 우리가 합작에 동의하지 않아서? 의부님이 너를 양자로 삼겠다는 게 그리도 기분이 나빴나!”
백리파병은 초휴의 소행임을 알아차렸으나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초휴가 그렇게까지 속이 좁단 말인가? 그런 작은 일로 사람을 죽일 만큼?
“그렇게 알고 싶나?”
초휴의 질문에 백리파병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에 가거든 넷째 동생과 함께 해답을 찾아보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휴의 내력진화가 거세게 타올랐다. 불길에 검은색 멸세지화가 섞여 있었다.
내갈기는 일권에 실린 힘 때문에 우레 같은 폭음이 울렸다. 주먹을 내지른 순간 천지가 내려앉고 산하가 쪼개질 듯했다.
백리파병은 노호성을 질렀다. 눈부신 백색 강기가 칼날처럼 빛나며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병기가 없었으나 두 팔과 다리가 병기와도 같았다.
두 주먹이 부딪친 순간 강대한 힘의 파동이 주변으로 둥글게 퍼져 나갔다. 바다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끝없이 소용돌이치며 폭발했다. 한가운데는 아예 부서지다시피 해서 자잘한 물안개로 변했다.
백리파병의 안색이 변했다. 곽행존의 축수연 때와 똑같지 않은가. 그는 초휴의 일권에 담긴 위력을 당할 수 없었다.
연신 뒷걸음질하기에 급급한 와중에 팔의 갑옷이 찢겨나갔다. 백리파병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초휴는 무표정하게 다시 한번 일권을 날렸다. 극한의 힘이 고스란히 담긴 주먹이었다. 일권, 또 일권이 날아오자 신병과도 견줄 만한 갑옷은 완전히 조각났다. 백리파병은 아예 나가떨어져 피를 토했다.
백리파병이 고함을 지르자 온몸의 기혈이 포효하며 주변 천지의 힘을 장악했다. 그의 일권에 파도는 거대한 핏빛 용의 포효로 변해서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초휴는 여전히 주먹을 내지르는 단순한 동작을 취할 뿐이었다. 그것은 하늘 위와 땅 아래를 통틀어 다시 없을 유아독존의 일권이었다.
진화연신(眞火煉身)은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다. 천지의 기운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만의 힘으로 천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초휴의 그 일권은 일찍이 진청제가 깨달았던 권의(拳意)였다. 진화연신을 수련한 무사라면 모두 깨달을 수 있는 권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휴는 속성으로 진화연신을 익힌 셈이었다. 천지에 기대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발휘한 일권을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급의 경지에서 육체를 수련한 정도로 따지면 진청제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적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핏빛 수룡이 부서져 나갔다. 끝없는 혈기도 그 일권의 힘에 완전히 박살이 나서 피안개로 흩어졌다.
백리파병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초휴가 일권을 내질렀을 때 그는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 일권의 위력과 기세는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추구해 온 힘의 극한이기도 했다.
하늘의 뜻인가.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갈구해오던 일권에 죽을 줄은 몰랐다. 초휴의 일권이 내리꽂히는 순간 백리파병은 거대한 힘이 자신의 몸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앞이 핏빛으로 물든다고 생각한 순간, 그대로 그의 숨이 끊겼다. 초휴의 일권은 그의 모든 방어를 가루로 만든 것도 모자라 온몸의 뼈마디까지 박살을 내 버린 것이다.
바다에 잠겼던 백리파병의 배가 떠올랐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고기밥이 된 뒤였다.
진법 때문에 바닷속에서도 엄청난 파도가 일었다. 백리파병쯤 되는 진화련신 고수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그런 상황에서 물 위로 나올 수는 없었다.
백리파병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갑판에 내던진 초휴는 물의 장벽에서 걸어 나왔다. 백동래의 작은 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초휴가 이렇게 빨리 백리파병을 해치운 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으나, 먼젓번 납란해 때도 그랬으므로 이번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좀 더 쉬웠다.
“초 대인, 이제 기회를 기다렸다가 부용소를 처리하실 겁니까?”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용소를 제거할 수 있으면 제일 좋지요. 하지만 연달아 두 사람이 죽었소. 부용소가 바보 머저리라도 다음 목표가 자신인 줄 눈치챌 테니,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소. 지금 우리의 힘이라면 지존도를 정면 공격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게 없으니까.”
백동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탄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곽행존의 양자 둘이 순식간에 죽은 것이다. 이제 그들의 계획은 거의 구 할쯤 달성되었다고 해도 좋았다.
다음날 백리파병의 배와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가 멈췄던 해역은 그리 구석진 곳이 아니라서 오가는 배가 꽤 많았다.
그리고 백리파병의 쇠로 된 배는 청풍해에서 퍽 유명했다. 다들 그 배가 가만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배에 올라가 보니 백리파병이 시체가 되어있지 않은가.
청풍해 전체가 일시에 끓는 냄비처럼 시끄러워졌다. 납란해가 죽었을 때는 대부분이 그 소식을 알지 못했다. 곽가 사람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백리파병의 시신은 외부인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납란해도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풍해의 분위기는 온통 흉흉해졌다. 몇몇 사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곽오야를 노리는 것이다. 청풍해 전체를 뒤흔들 격변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지존도의 곽행존과 부용소는 땅에 놓인 백리파병의 시신을 보고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제만 해도 백리파병은 그들과 함께 납란해의 시신을 조사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그 자신이 시체가 되었으니, 이런 충격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어찌 된 일이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곽행존은 거의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했다.
그는 일평생 너무 순조로운 삶을 살아왔다. 신안이 생긴 뒤로는 항상 이기는 패를 미리 보고 걸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앞길은 갈수록 창대해졌고 가는 곳마다 이득이 발에 챘다.
어느 정도 세력이 모인 뒤에는 구천애를 비롯해 양자를 들이기 시작했다. 치고받고 죽이는 일은 그들에게 시키고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그 이득만 누렸다.
이제 거의 사백 살에 가까운 노강호였으나, 그가 겪은 고난과 좌절은 강호에서 고작 몇 년 구른 낭인 무사만큼도 되지 않았다. 일평생 무탈하고 순조롭게 사는 것도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젊은 시절에 좌절과 고난을 겪지 않은 채 늙으면 약간의 충격에도 놀라 죽을 지경이 되는 것이다.
곽행존에 비하면 부용소는 훨씬 침착했다. 청풍해에서는 곽행존의 위세를 등에 업으면 만사가 해결되었으나 열풍해에서는 항상 자신의 실력과 수단으로 헤쳐나왔던 것이다. 그는 침중하게 말했다.
“의부님,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이들은 우리 지존도 일맥을 노리는 겁니다. 흉수는 절대 한 명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실력이 아무리 강한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둘째 형과 넷째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넷째는 방천화극에 죽었습니다. 둘째 형은 원래 자신의 장점이었던 강력한 힘에 당해서 온몸의 뼈가 박살이 났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두 명의 강자가 손을 쓴 겁니다. 그리고 아주 강대한 세력이 그들의 동정을 엄폐하고 있고요.”
곽행존은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대체 누가 우리 일맥과 원수를 졌단 말이냐? 노부가 이리 오래 사는 동안 그런 강자들과 척을 진 일은 전혀 없었지 않으냐? 이럴 줄 알았으면 생일을 지낼 때 점술 대사라도 모셔다 점을 쳐볼 것을 그랬다. 운수가 이리 나쁠 줄을 내 어찌 알았겠느냐?”
부용소의 미간이 확 파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의부가 고작 이 정도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곽행존의 신안은 워낙 명성이 대단했다. 부용소는 곽행존이 그를 양자로 삼겠다고 했을 때 미칠 듯이 기뻤다. 자신도 이제는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그가 오늘날 이룬 성취는 의부 곽행존의 은덕이 아니라 그 반대로 양자들의 성취가 지금의 곽행존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곽행존이 너무 태연했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한 사람처럼 냉정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곽행존의 이런 모습이 부용소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헛기침을 했다.
“의부님, 적은 숨어 있고 우리는 드러나 있습니다. 일단 지존도를 굳건히 지키는 게 우선입니다.”
곽행존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하인이 알려왔다.
“노야, 천일수각 각주 백동래와 경도맹 맹주 관신통, 경천회 회주 용천영이 찾아왔습니다.”
부용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일까요?”
곽행존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둘째의 부고를 듣고 조문을 하러 온 것이겠지. 평소에도 고분고분하던 자들이기도 하고. 특히 용천영은 경천회의 거래를 우리 곽가에 적잖이 양보했지.”
부용소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게 어디 용천영이 양보한 것이던가. 곽가 사람들이 강압으로 빼앗은 것이지.
“의부님,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 중 품성이 괜찮은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관신통은 둘째 형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제 형이 죽었으니 폭죽이라도 터뜨리며 경축하고 싶은 기분일 텐데 조문을 오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백동래는 겉으로는 호탕한 척하지만, 사실은 속이 음험한 자입니다. 웃는 얼굴로 칼을 꽂을 인물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곽행존은 의아하게 여겼다.
“그럴 리가? 그간 백동래는 언제나 나를 공손히 대했다. 축수연 때마다 보내는 선물도 너희 다음으로 그가 가장 잘 챙겼고 말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하지만 신안으로는 어떤 사람이 장차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룰 것인지 볼 수 있을 뿐, 그자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