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63)
963화 북연의 위기
“오늘에서야 세상 이치를 깨달았구려. 강동명 같은 사람이 왜 그리 검도에 미친 바보가 되었는지 전에는 몰랐지. 무도의 길은 마치 이 동해 바다의 물결처럼 끝이 없는 것인 것 같소. 우리가 아무리 온갖 계책과 모략을 꾸민들, 바다 위에 떠 가는 배와 마찬가지외다. 겉보기에는 안심하고 항해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강자가 일으킨 한 번의 파도조차 견뎌내지 못하지요. 강동명이 그런 강자고, 초휴 역시 마찬가지요.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쇠로 지은 거함이라 해도 일격에 무너지는 것이니.”
멀어져 가는 초휴의 모습을 바라보며 백동래는 탄식했다.
관신통도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알 것 같소이다. 누군들 이 바다의 끝이 어디인지 가 보고 싶지 않겠소.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양이 깊어지는 것에 비례해서 앞길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는 법이지요. 나도 진화련신에 들기 전에는 수련밖에 몰랐소. 툭하면 몇 년이나 폐관 수련을 하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일 년을 넘기는 일도 거의 없소이다.”
백동래나 관신통 같은 강자의 경우, 그들이 진화련신에 오른 것은 천부적 자질 덕도 있었지만 강한 의지력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대부분 시간을 무도 수련이 아니라 사업 경영에 쓰고 있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다.
백동래가 말한 대로였다. 무도는 끝없는 대해와도 같다. 누구도 그 한계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 무도를 익히기 시작했을 때는 진단경이 극한이라고 생각했다. 진단경이 되고 보니 진화련신이 진짜 강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진화련신이 되면 또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천지통현의 지존 강자 앞에서는 그들 역시 좀 강한 개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웠다.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강동명 같은 성격을 지닌 자, 초휴처럼 힘에 집착하는 자, 그런 사람만이 최절정까지 갈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시다. 여러 세력과 의논해서 최대한 속히 동제를 공격해야 합니다. 초 대인의 앞길은 끝없이 뻗어 나갈 거요. 지금 잘 보일수록 우리에게도 유리할 겁니다.”
백동래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에게도 신안 같은 게 있어 초휴의 운이 보여서가 아니었다. 곽행존이 타산지석이 되어준 덕분이었다.
초휴와 잘 사귀어 두면 세력과 이득을 거머쥐게 될 터였다. 반대로 그와 사이가 틀어지면 저승 구경을 하게 될 것이다.
* * *
초휴가 바다 건너에서 일을 꾸미는 동안 북연 쪽은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려 있었다. 동제의 국력은 북연보다 강했고, 동제의 강호 세력 역시 북연보다 곱절은 강했다. 동제 무림 전체에 북연의 도문과 정도 세력까지 가세했으니 은마권으로서는 도저히 그 압력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관중형당 쪽은 철군했으나 동제와 북연의 국경에 동제 구변강군 중 일곱이나 몰려와 있었다. 북연군의 전선은 하마터면 그대로 무너질 뻔했다.
그러나 북궁백리 역시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예 진국오군 십 분의 일을 이끌고 나와 죽을 각오로 대항했다.
부상자와 전사자가 속출하는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시체가 쌓이고 나자 적을 깊숙이 유인해서 전장에 혈련대진(血煉大陣)을 펼쳤다.
북궁백리는 그 방법으로 동제 구변강군 중 하나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동시에 북연군 역시 대진에서 죽어 나갔다. 적군 천 명을 죽이는 대가로 아군은 육백 명이 숨진 수준이었다.
혈련대진은 수십 리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혈살의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고 살아있는 모든 것의 기척이 모조리 끊겼다.
동제 측은 대규모 군대를 끌고 와서 사투를 벌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자잘한 기습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북궁백리가 또 무슨 수를 써서 전군을 몰살해 버릴지 두려웠던 것이다.
그야말로 미치광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 발광하면 아군의 희생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여없애니 말이다.
북궁백리의 위명 덕분에 북연에는 별 소란이 없었다. 만일 다른 자가 감히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자신이 먼저 죽었을 것이다.
북연 국경의 군영에서, 항무는 한 손에 향초, 다른 손에는 방어 진형도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가끔 향초를 사납게 베어 무는 모습은 마치 동제 놈들을 씹어먹겠다는 기세처럼 보였다.
북궁백리가 막사로 들어왔다. 그는 북연 조정에서의 학자 같던 차림새를 싹 걷어치우고 새빨간 갑옷을 걸친 채였다. 혈살의 기운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그의 전신에 맺혀 있었다.
북궁백리를 본 항무가 향초를 하나 건넸으나, 북궁백리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자네 쪽 상황은 어떤가?”
항무의 낯빛이 굳어졌다.
“별로 낙관적이지 않소. 방어선을 십여 리 후퇴시켰지. 지형에라도 기대야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까. 동제 비웅군(飛熊軍)도 간신히 물리쳤는데 우림군까지 올 줄이야 몰랐지 뭔가. 하지만 남궁위우 그놈도 다친 모양이야. 그 망할 방천화극도 안 보이더라고. 평범한 보병을 들고 싸우는지라 제 상대로 몇 합 버티지 못했지. 그놈이 잽싸게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버렸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항무는 마지막 향초를 콱 베어 물어 뱃속으로 삼켜 버렸다. 북궁백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우림군도 왔다고? 내가 얼마 전 구변강군 중 하나를 몰살했는데, 우림군을 금세 보냈다는 건 지금 동제 국경을 지키는 병력은 일개 군밖에 안 된다는 소리 아닌가?”
항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일군도 안 될 거요. 얼마 전에 서초에서도 나섰으니까. 우문복(宇文復) 그 허여멀건 한 돼지가 랑야군(琅琊軍)을 이끌고 국경에 진을 쳤소. 고작해야 동제의 마지막 일군을 붙잡아둔 정도이지만. 서초 병력은 너무 하잘것없어. 그 정도로도 이미 한계에 달했을 거요. 구변강군이 전부 몰려왔으면 우리 부담이 더 커지긴 했지만. 지금 동제는 안팎의 병력을 모조리 동원했소. 황성이야 고수들이 지키고 있으니 겁낼 게 없겠지. 우리가 거기로 날아가서 여호창을 죽여버릴 재주는 없으니까.”
전쟁이 이런 상황까지 진행되면 책략은 둘째 문제고, 기본적인 힘이 중요했다. 동제의 국력은 너무 강성했다. 그들이 전력으로 나서면 북연에서는 목숨을 걸고 막아내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북궁백리가 손을 내저었다.
“여호창이 못 견뎌 할 때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하네. 동제의 실력이 강성하다지만 하늘은 그들에게 천하를 통일할 운을 주지 않았어. 동제 황제들은 계속 평범하고 용렬한 자들만 나왔으니까. 우리 북연 진국오군은 결사의 각오를 다졌건만 동제는 일군을 잃은 것만으로도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네. 이렇게 마지막까지 싸워도 우리 북연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결국은 물러날 수밖에 없겠지.”
북연과 동제의 전쟁은 먼젓번에도 그렇게 끝났다. 사실은 북연이 이겼다고 할 수도, 동제가 패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결과였다.
그건 전부 여호창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소심하고 신중한 사람이라 큰 도박을 걸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공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북연이 위군을 집어삼키는 걸 묵인한 셈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 여호창은 이미 늙었고 그의 기백은 아마 그 시절보다도 못할 것이다. 평온하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나 하고 있을 게 뻔하니, 엄청난 부담을 지려고 할 리가 없었다.
항무의 눈이 동쪽을 향했다. 보기 드물게 근심이 서린 얼굴이었다.
“여기는 그래도 좀 버틸 만하지만, 위군 쪽은 동제의 정도 무림 전체와 싸워야 하오. 게다가 강산각까지 합류했으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러고 보니 초휴 그자는 대체 어딜 간 거지? 좀 빠르게 행동할 수 없느냐 이 말이야. 하필 이 중요한 때에 쏙 빠지다니, 이제부터는 향초를 주지 말아야겠어.”
* * *
항무가 말한 대로 위군의 상황은 심각했다. 아니, 사실은 그가 말한 것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위군은 위국(衛國)이 되어 있었다. 강산각이 새로 세운 위국은 위군 무사들을 모집해서 선봉에 세우고 공격해 왔다.
강산각의 유일한 장점은 돈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그들은 곽행존의 위세에 힘입어 오랫동안 해외와 중원 간의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본래 경천회의 몫이었던 이득까지 적잖게 빼앗아갔으니, 그간 쌓은 재물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후한 상을 내걸어야 용사가 나서는 법이고 위군 무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강산각이 이득을 내세워 꼬드기자 다들 고분고분 그 명령을 따라 선봉에 나섰다.
그들뿐이 아니고 순양도문, 진무교, 백호당, 그리고 동제의 정도 세력까지 가세했다. 진무당으로서는 거대한 압박일 수밖에 없었다.
북연 위군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은 진무당과 위서애가 데려온 은마권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항숭이 이끌고 온 황실 공봉당 무사들, 북연 황족 고수들도 있었다.
위군에 모인 인원은 동제와의 국경에서만큼 많지는 않았으나 하나같이 수준 높은 전력이었다. 전투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국경의 북궁백리는 대진을 치는 독한 수법을 써서 동제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위군 상황으로는 무슨 계책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싸워야 했다.
위군 상망산 근처의 작은 성, 성주부에 위서애와 모두가 모여 있었다.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지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위군과 북연 연동 땅 사이에는 상망산이 가로놓여 있었다. 바로 직전의 싸움에서 북연 측은 크게 패해 상망산을 잃고 연동까지 밀려났다.
그 싸움에서는 순양도문 능운자가 직접 나섰다. 천지통현의 위세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었다.
상천량의 오성은 그보다 뒤떨어지지 않았고, 수양 역시 능운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은 했으나 전투력은 아무래도 능운자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 자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외부의 요인 때문이었다.
고수끼리 겨룰 때는 바늘 끝만 한 차이로도 승부가 갈리는 법이다. 다운자가 정혈로 신병 순양을 발동했고, 운몽자는 순양도문에서 실전된 지 오래였던 비술을 가르쳤다. 신병 순양에 남겨진 여 조사의 표지를 깨운 것이다. 상천량은 결국 참패하고 물러났다.
위서애 측은 강산각, 순양도문, 진무교, 백호당에다 북연 정도 무사들까지 합친 전력에 맞서 격전을 벌였다. 정도 측의 인원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은거하고 있던 낭인 고수들까지 영입했는데 하나같이 진화련신의 강자였다. 그 수준 높은 전투력에 진무당 측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원수에서 상대가 안 된 진무당은 패퇴를 거듭했다. 결국은 항숭이 구룡인을 써서 용맥의 근원으로부터 힘을 끌어내고서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망산은 적군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용맥의 힘은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일 용맥 자체가 손상을 입으면 북연의 국운도 막대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다음 공세도 이렇게 맹렬하다면 진무당은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대청의 분위기가 푹 가라앉은 것을 보고 육강하가 말했다.
“왜 이렇게 부모 잃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들 있나! 초휴 그 애송이가 무슨 수를 내서 돌아올 게 아니냔 말이다. 그 애송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패 아니겠어?”
그 자리의 모두가 부상자였으나 육강하만은 얼굴이 발그레하고 퍽 윤기가 돌았다. 저번 황위 쟁탈전에서 육체를 재구성했지만, 그때는 죽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은지라 절정기 실력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이번 정마대전에는 참전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양측 무사만 합쳐도 십만이 넘는 인원이다.
직전 싸움에서는 피가 내를 이루어 흘렀다. 진화련신의 고수조차 다칠 정도였고 진단경도 몇 명이나 죽었다.
그 기회를 틈타 육강하는 전장에서 기혈의 힘을 듬뿍 흡수했다. 그야말로 싸울수록 강해진다는 말 그대로 몸의 상태를 더없이 좋게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판세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다. 육강하의 실력이라 해 봐야 높게 쳐 줘도 진화련신 최절정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게다가 그는 머저리처럼 혈해마존이 드디어 돌아오셨다는 따위 말을 전장에서 고래고래 외쳐댔다. 그러자 순양도문 운몽자, 진무교 한구사, 백호당 혁련장봉, 그리고 동제 황실 공봉당의 진화련신 고수들이 순식간에 그를 포위했던 것이다.
육강하는 실컷 두들겨 맞은 끝에 머리를 감싸 쥐고 쥐새끼처럼 도망쳤다. 그는 늘 본인이 혈해마존이라고 입버릇처럼 외쳐댔으나 진짜 사대 마존은 아니었다. 전투의 국면 전체에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