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80)
980화 연기
능운자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동굴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봉인해서 없애 버릴까, 아니면 들어가서 살펴봐야 할까?
사실 본심만 말해 보라면 마도 전승은 세상에 나오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발견된 이상 이대로 봉인해 버리고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을 발견한 사람들의 눈이 너무 많았다.
상수 영가의 노야도 줄곧 동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당히 흥미가 동한 게 분명했다.
백호당의 혁련장봉도 왔는데, 그는 더더욱 동굴 안의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 백호당이 마도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혁련장봉 자신은 마도 무공을 수련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바로 그때 느긋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운자 장문은 마존의 전승을 놓고 걱정하고 계시오? 흐르는 물은 막을 수 없는 법, 지금 봉인한다 해도 훗날 누군가가 그 봉인을 풀 것이오. 차라리 들어가서 살펴본 뒤, 마도의 흉물을 공평히 나누어 각자의 종문에서 다시 봉인하는 것만 못하지 않겠소.”
능운자가 고개를 들어보니 수보리선원의 나마였다. 다른 서초 세력도 적잖게 왔다. 천사부의 노천사는 오지 않았으나 현룡자와 장도령이 함께 왔다.
좌망검려와 풍운검총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오래도록 서초를 벗어나지 않았던 진청제마저 직접 행차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존의 전승 때문에 왔으나 진청제는 서초 땅에 오래 있다 보니 답답해서 구경이나 하러 온 것이었다.
나마를 잠시 바라보던 능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좋겠지. 삿된 것이 다시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강호의 평화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실 각 대문파에서 봉인해 놓은 마도 물건은 적지 않았다. 기록도 있고 병기도 있었다. 어떤 물건은 그냥 망가뜨려 없애는 것이 봉인하기보다 간편한 법이다.
그러나 무사로서는 마도 무공이라 해도 그것을 통해 추측하고 탐구해서 얻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아예 망가뜨릴 방법이 없어 봉인하는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종문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다. 종문이 멸망하지 않는 한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터였다.
바로 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도 종문에서 쓸 수 없는 것이면 삿된 물건이니 봉인해야 한다고? 그걸 누구 맘대로 정하겠다는 거요?”
초휴가 상천량과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둘러서서 구경하던 무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다.
먼젓번 정마대전, 다시 말해 북연과 동제의 전쟁에서 초휴는 결정적 순간에 나타나 판세를 뒤집었다. 그 뒤로 초휴의 명성은 더욱 대단해졌다.
능운자는 진화련신일 때도 초휴를 어쩌지 못했다. 이제는 무려 천지통현이건만 여전히 초휴를 제압할 수 없었다. 강호에는 초휴가 능운자의 천적 아니냐는 말까지 나도는 판이었다.
초휴를 본 능운자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초휴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던 듯했다.
그러나 초휴는 일부러 늦게 온 것이었다.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이 다 왔을 때쯤 느긋하게 왔다.
“하하! 옳은 말이다! 본좌가 곤륜마교와 별 상관은 없지만, 옛 사대 마존은 존경할 만한 이들이 분명하지. 그들이 남긴 전승이라면 우리 배월교도 손에 넣고 싶군. 겸사겸사 제사도 드리고 말이지.”
서초 땅의 정도 종문이 모두 왔는데 배월교가 빠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야소남이 아니라 동황태일 혼자서 배월교도를 이끌고 왔다. 어쩌면 야소남에게는 사대 마존조차 자신보다 못한 존재라서 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강호 종문의 절반이 넘는 강자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나마와 능운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초휴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야소남이 없다지만 배월교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이쪽의 실력으로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청제나 상수 영가처럼 중립적인 세력도 마존의 동굴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봉인을 강행하면 저들은 불만을 품을 게 분명했다.
나마가 손을 내저었다.
“진법을 풀어봅시다.”
어차피 막기는 틀렸다. 동굴 안에 정말 마도의 흉물이 있다면 그때 가서 빼앗아도 늦지 않을 터였다.
상수 영가 같은 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거야 상관없었다. 초휴 같은 마도 무사 손아귀에 떨어지지만 않으면 될 테니까.
초휴가 옆에서 웃었다.
“이 진법은 우리 곤륜마교의 선배가 남긴 것이니 우리가 가장 잘 알지.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풀어보는 게 빠르지 않겠소?”
그 말에 육장류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 진법은 모두 천곡마존이 직접 남긴 것일세. 그가 따로 남긴 전승도 없을 텐데, 은마권에 진법을 깰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냥 선수를 치고 싶은 게 아니고?”
육장류 등은 이미 여기가 천곡마존과 관련된 유적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초휴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원한 것이 정확히 이런 결과였으니까. 그러나 겉으로는 냉소를 지었다.
“남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을 모르시는군. 죽고 다치는 게 겁나지 않으면 직접 해보시구려. 천곡마존이 남긴 진법이 그리 쉽게 풀릴까?”
그 진법은 천곡마존의 전승을 원길이 모방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옛날 동해의 동굴에서 천곡마존은 이미 중상을 입어 빈사의 지경이었다. 각종 재료도 부족했기에 그가 펼쳐 놓았던 진법은 사실 원길이 복원한 것보다 위력이 떨어졌다.
육장류와 진무교 무사들이 진법에 손을 쓰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을 들이고서야 진법을 해체할 수 있었다.
동굴에 들어선 후로도 가는 내내 여러 가지 위험한 함정과 진법을 맞닥뜨렸다. 육장류와 다른 이들은 그 모두가 천곡마존의 수법이라고 판단했고,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는 길 내내 마주치는 모든 것이 그들의 심증을 더욱 굳혀 주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분명 천곡마존이 남긴 유적이었다!
사람들은 고생해 가며 온갖 악독한 진법과 함정을 다 깨부쉈다. 대전에 거대하게 웅크리고 있는 검은 뱀 까미를 보았을 때는 모두가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지금 강호에는 흉수가 몹시 드물어서 십만대산 같은 곳에나 어쩌다 발견될 뿐이었다. 일단 그런 것이 세상에 나타나면 움직이는 보물창고 취급을 받아 금세 무사들이 달려들어 공격했다. 거의 교룡이 다 된 구렁이라니, 이런 것은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진청제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큰 놈이면 쓸개도 몸에 좋지 않을까?”
사람들은 진청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정말 상식 밖의 인간이 아닌가.
정작 수진자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종문의 기록에서 본 적이 있소. 옛날 곤륜마교 무심마존이 검은 구렁이를 키웠다더군. 그는 잔인한 성품에 살육을 즐기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지. 심심하면 정도 종문의 무사를 죽여 구렁이의 먹이로 던져 주었답디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저 구렁이가 바로 무심마존이 키우던 놈일 거요. 그러니 여기 있는 것은 천곡마존만이 아닐지도 모르지.”
누구 할 것 없이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곤륜마교 마존이 둘이나 있다니! 대체 이 동굴이 어떤 곳이기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을 때 초휴는 심마의 힘을 갈라 소리 없이 까미의 머릿속으로 보냈다. 까미는 이미 저번에 정신력이 망가져서 식물 뱀이 된 상태였다.
심마의 힘은 아주 기이한 것으로 정신력과는 달라서 남에게 들키지 않았다. 게다가 지능을 지닌 존재이니 구렁이를 조종하기에도 알맞았다.
초휴가 고생해 가며 까미의 몸뚱이를 여기까지 가져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심마가 조종하는 대로 까미는 천천히 머리를 들고 눈을 떴다. 까미가 포효를 터뜨리자 엄청난 양의 독액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마가 손을 휙 젓자 만(卍) 자 불인이 나타나며 가볍게 독액의 분사를 막아냈다. 동시에 능운자의 순양검에서도 만 갈래 빛이 뿜어져 나와 까미를 직격했다.
일순간 동굴 전체가 검광에 휩싸였다. 무수한 비늘이 흩어져 날리고, 까미는 몸부림을 치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초휴는 눈썹을 움찔했다. 심마는 임무에 충실했다. 연기가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지금 심마가 조종하는 뱀은 기어 다니는 시체나 마찬가지라 통각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진짜처럼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마의 등 뒤에서 부처의 법상이 나타났다. 보병인(寶甁印)을 맺으니 무한한 불광의 병이 뱀의 머리를 덮어 감쌌다. 인결이 날아가는 순간 보병이 줄어들며 단번에 뱀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심마의 정신력이 초휴의 머릿속으로 돌아오더니 꿍얼거렸다.
“지독한 중이로군. 출가한 사람은 자비를 품는다고 하지 않았나? 직업상의 윤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군그래.”
천지통현에도 강약의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초휴도 적잖은 천지통현 강자를 만나본지라, 현 강호의 지존 강자 중에서 누가 비교적 강하고 약한지 알아볼 수 있었다.
종신수와 군무신은 말할 것도 없고, 야소남의 막강함도 천하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천사와 나마는 당대 강자 중 야소남과 일대일로 겨뤄볼 만한 사람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 수 아래였다. 상천량과 능운자가 제일 약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능운자가 약한 것은 천지통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는 탓에 내실이 모자라서였다. 상천량은 녹도에서 천지통현에 올랐을 만큼 자질이 대단했으나, 환경의 부족함은 어쩔 방법이 없었다.
먼젓번 정마대전에서 능운자가 순양검을 쓰지 않았다면 상천량도 그 지경까지 밀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능운자가 신병 순양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수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까미는 나마의 손에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머리가 아예 날아갔지만 아무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전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무심마존과 천곡마존의 시체를 보고 하나같이 침묵에 빠져들었다.
정말 곤륜마교의 마존이 아닌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명이나 있다니!
그 옛날 강호 최정상급으로 무수한 정도 무사들에게 끝없는 공포를 안겨다 주었던 존재가 시신일망정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들 중 시신이 가짜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죽었다 해도 그 기세는 꾸며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초휴가 나서더니 싸늘한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기 두 분은 우리 성교의 대선배님이오. 여기에서 돌아가셨으니 응당 시신을 수습해 잘 모셔 드려야겠소이다. 사람이란 죽으면 그만이오. 당사자가 죽었으니 옛날의 인과도 모두 끝난 게 아니겠소? 만일 두 분의 시신을 욕보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은마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소!”
사람들이 보기에 초휴의 그런 태도는 아주 당연했다. 마도 일맥은 내분이 잦았고, 별로 단결이 잘 되지도 않았으며, 법도 같은 것도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침범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이 있었다. 예컨대 옛날 오대 검파가 조화천마기를 미끼로 마도 일맥을 낚으려 했을 때가 그랬다.
당시 마도 일맥 전체가 격노했다. 조화천마기는 마도의 정통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두 마존의 시신 역시 곤륜마교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다른 세력이 욕보이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능운자가 무겁게 말했다.
“시신은 상관없지만, 시신에 있는 물건은 가져갈 수 없네. 은마는 곤륜마교를 재건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지 않나. 만일 사대 마존의 전승을 손에 넣으면 강호에 큰 재앙이 될 터!”
초휴가 앞으로 나서더니 날카롭게 말했다.
“무슨 말이 그렇소! 손에 넣는다니? 본래 우리 은마의 것이오!”
그러나 능운자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오백년 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초휴는 곧장 도를 휘둘렀다. 광포한 마기가 폭풍처럼 일어나며 능운자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