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87)

987화 반당의 무리를 쓸어버리다

초휴의 뒤에 서 있던 상천량은 한껏 흥미로운 표정으로 탄천마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런 것이 천지 규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정혈의 부족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상천량한테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저 물건이 본연의 기량을 다 발휘하면 정말로 일정 영역 내 천지의 규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천지통현 무사가 천지를 제어할 수 없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보게, 다른 놈들은 죄다 자네가 맡게나. 노부는 저 술 주전자에 호기심이 생겨서 말이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천량은 냅다 탄천마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한 손을 크게 내젓자 거기에 서려 있던 마기가 흩어졌다.

초휴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사무애 무리를 상대하는 데 별다른 부담감을 못 느끼던 참이니, 상천량이 돕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초휴의 손에 잡힌 사월도로 혈살의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들며 응집되더니, 시뻘건 혈월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주위의 모든 힘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에 사무애가 나직이 일갈하자 그의 온몸에 걸쳐 흉악한 모습의 악귀가 셋이나 떠올랐다. 그가 공장 수인을 결하자, 그 흉흉하던 악귀들이 삽시간에 그의 뱃속으로 빨려들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얼굴에 흑색 마문이 무수히 번지더니 급기야 그의 기운이 폭증하면서, 사람 자체가 더없이 사납고 포악하게 변했는데 그 광경은 실로 섬뜩했다.

시커먼 안개가 그의 일신에 감도는 가운데,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괴이한 진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진법의 한가운데 몸을 둔 사무애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호성을 내지르자 그 흉흉하던 악귀의 기세가 극한치까지 치솟았다.

이에 사무애와 동시대를 살았던 혈교도인마저 놀란 눈으로 그 공포스러운 모습을 쳐다보았다. 귀왕종의 무도에 괴이하고도 사악한 면이 짙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귀왕종 제자들은 상대에 맞설 때 온갖 기이한 술법으로 상대의 혼을 쏙 빼서 기선제압부터 하는 게 공식처럼 되어 있었다.

지금도 사무애는 초휴에 맞서기 위해 귀왕종의 비술을 두 가지나 동시에 사용했다. 그것도 다짜고짜 동귀어진이라도 할 기세로 전력 출수한 것이다.

초휴를 얼마나 어려운 강적으로 인정했길래 저렇듯 각오가 대단한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 사람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사무애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는 게 아니라, 계획이 실패했으니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휴의 기세를 보니 도주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목숨까지 걸 각오로 도주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자칫 도망갈 기회마저 사라질 듯했다.

하지만 사무애가 어떤 모습을 보이건 간에 초휴의 도세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가 벼락처럼 일도를 내리친 순간 천지간의 모든 게 변했다.

시간이 멈추면서 공간도 정체한 것이다. 마치 천지간을 통틀어 움직일 수 있는 건 초휴의 일도뿐인 듯했다. 그리고 세상 무엇도 그 일도의 파괴력을 막아설 순 없었다!

파자결의 시전 앞에 진법 따위가 무엇이며 악귀의 화신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모든 게 파자결에 의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 토막이 나버렸다.

사무애의 얼굴에 잔뜩 퍼져 있던 마문도 어느샌가 사라지면서 그의 이마를 시작으로 혈선 한줄기가 길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몸뚱이 전체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더니 ‘쿵’하며 양쪽으로 무너져내렸다!

도신에 묻지도 않은 피를 습관처럼 털어내며 초휴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거라면 요란법석을 떨지나 말 것이지.”

사무애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혹은 초휴를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도기 일당만 하더라도 최소한 한 번씩은 초휴와 대결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았다. 급기야 일대일로 붙어야 할 상황이 오면 재고의 여지도 없이 도주할 자들인 것이다. 지금이야 자기편 머릿수가 많다는 것만 믿고 억지로 용기를 쥐어짜 내서 협공에 나섰지만 말이다.

먼젓번 해외에서도 ‘동해 제일전장’이라 불리던 백리파병조차 초휴의 몇 초를 당해내지 못하고 절명했건만, 이미 저무기에게 중상을 입은 사무애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 그가 어찌 일대일로 초휴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어설프게 허장성세만 부리다가 낭패를 보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정혈을 태워 도주하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초휴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요란법석만 떤 셈이었다.

초휴가 일도로 사무애를 참살하자 다른 이들은 놀라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지금까지는 그들 역시 머릿수의 우위만 믿고 초휴와 한번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애가 고맙게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그 생각이 허황된 것이었음을 알려준 셈이 된 것이다. 더러는 숫자의 우열로만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법이다. 초휴를 상대하는 건 사실상 천지통현 강자에 맞서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초휴는 도를 거두더니 이번엔 혈교도인(血蛟道人)에게 눈길을 돌렸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 눈빛에 혈교도인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의 입에서 절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초 대인, 목숨만 살려주시오! 이게 다 사무애 저자가 나를 미혹시켜 벌인 일이오. 솔직히 나는 대인을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소이다!”

싸움에 앞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건, 무도를 익힌 자들로서는 웬만하면 있기 힘든 일이다. 대부분은 목숨 걸고 싸우거나 도망치는 선택을 할망정, 대놓고 상대에게 허리를 굽혀 자비를 바라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혈교도인은 이런저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현재는 물론이고 팔백년 전에도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일개 낭인 무사로서 강호 밑바닥을 전전하고 산전수전을 헤쳐가며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그까짓 체면 같은 건 챙기지 않고 살아왔건만, 목숨을 구걸하는 게 대수겠는가.

초휴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보더니 애원에 대한 응답을 내놓았다. 대흑천마신의 법상에서 멸세지화가 터져 나온 것이다. 초휴의 살심이 제대로 동했음을 알게 되자, 더 물러날 곳이 없어진 혈교도인이 악을 썼다.

“초휴! 이판사판이다. 같이 죽자!”

외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혈기가 자욱이 피어오르더니 육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혈기가 응집된 그의 몸이 인갑(鱗甲)으로 뒤덮이더니,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면서 요사한 마귀의 형상을 방불케 했다.

그가 뿜어내는 숨결 역시 흉수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더는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는 육신으로 변해서 작열하는 멸세의 불길에 맞선 그는 초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초휴가 한 발을 내딛는 순간 풍운이 돌변했다. 대지마저 그의 가공할 힘을 견뎌내기 어려웠던지 발밑의 지면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수를 보여주는 일권이 터져 나왔다. 극강의 힘이 실린 일권에 천지가 반응하는 것처럼 엄청난 폭음이 솟구치며 고막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혈교도인은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렸다. 초휴의 철권에 가격당한 그의 팔 한 짝이 어느샌가 혈무로 변해 피어오르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철권을 내리치자 혈교도인의 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나마 혈기가 더욱 짙어지며 몸을 뒤덮은 인갑이 보강되는 듯했으나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초휴의 일권이 사정없이 상대의 기혈을 파훼시키자 선혈이 분수처럼 용솟음치며 흘러나왔다. 후속 출수로 단번에 그를 끝장내려는 순간, 돌연 육강하가 튀어나오며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그 영감탱이의 기혈에 요사한 흉수의 기운이 서려 있어. 피를 섞는 건 아직 시도해본 적 없으니, 이참에 그자의 기혈이 어떤지 맛이나 한번 보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강하의 일신이 다짜고짜 한줄기 핏빛 광망으로 화하더니 혈교도인의 전신을 뒤덮었다. 눈 깜박할 순간에 온몸의 선혈이 죄다 뽑혀 나간 혈교도인은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변해 땅바닥에 내쳐졌다.

하지만 육강하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드러내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혈교도인의 선혈에 실린 힘이 강력하지는 않은 듯했다.

이로써 초휴의 출수는 마무리되었다. 사무애의 잔당들은 그의 수하들이 이미 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무애는 진조선 등만 가세해도 수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초휴가 대동한 수하들 가운데 만만한 자들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진화련신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여봉선과 매경령조차도 그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현장을 싹 다 정리하자 이제 산목숨이라고는 사도기와 곤막, 두 사람뿐이었다. 사무애 무리의 참담한 최후를 코앞에서 본 두 사람에게 싸울 의지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도기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초 대인, 노부가 패배를 인정하리다. 이 길로 깊은 산중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겠노라고 약속하겠소. 완전히 강호에서 물러나서 죽은 것처럼 살겠소이다.”

사도기는 초휴와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배를 맛보았다. 이제 간이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어 두려움만 남은지라, 초휴의 그림자조차 밟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옆의 곤막도 몇 마디 보탰다.

“노부도 대인 눈에 띄지 않게 서역으로 돌아가서 쥐 죽은 듯 살겠소. 평생 중원 쪽으로는 눈길도 안 돌리겠다고 맹세하리다.”

진조선 등도 보다못해 중재에 나섰다.

“초 대인, 이번 일은 이 정도로 매듭지읍시다. 저 두 사람은 이미 만신창이가 다 되지 않았소. 평생 대인의 일에 끼어들 자격 따위는 사라졌으니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시구려.”

방금 사무애 일당이 처결당할 때 진조선은 나서지 않고 한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도 생각할 머리가 달려 있으니, 사무애 일당이 자신을 이용하려 들었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사무애가 죽을 위기에 처한 걸 보면서도 돕기는커녕 구경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도기와 곤막은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은가. 그 둘은 누가 뭐래도 은마의 오랜 원로인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진조선과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미 수십 년, 심지어 백 년 가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온 사이가 아닌가. 이래저래 사무애와는 구별해서 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진조선도 사람인지라 이게 남의 일 같지만은 않기도 했다. 따라서 초휴가 여기서 은마 일맥을 참혹히 죽이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오늘은 저들이 죽지만. 내일은 자기 차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초휴가 냉랭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러분, 아직도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저들을 용서하기 싫어서가 아니외다. 자고로 사람이란 자기가 한 짓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 아니겠소. 더러는 너그러이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대광명사 화상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지. 도검을 내려놓으면 성불도 할 수 있다고 말이오. 흥! 결국 개소리지!”

초휴의 얼굴에 부쩍 살기가 짙어졌다.

“우리 마도 일맥이 언제부터 그 중놈들처럼 가식을 떨었단 말이오? 강호에서 물러나겠다고? 목숨부터 내놓고 물러나시지!”

초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등 뒤에서 불마의 법상이 솟구쳤다. 대일여래가 무색정대수인을 결하자 사도기의 몸이 그 힘에 갇혀버렸다.

뒤이어 대흑천마신의 세 번째 눈에서 멸세지화가 거세게 작열하더니 그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도기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죽기를 각오한 그는 최후의 일전을 벌이려고 온몸의 기혈을 아낌없이 불사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목숨을 걸어보기도 전에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전신에서 맹렬히 타오르던 기혈이 제어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 마구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멸세지화 속으로 흘러드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멸세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육강하는 똥 씹은 표정이 되어 연신 입을 삐죽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