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93)
993화 감히 혼자서
천문은 워낙 곤륜산맥 끝자락에 외따로 있는 데다, 중원 강호에 딱히 정보망이라 할 만한 것도 두지 않았다. 그러니 강호 소식을 입수하는데 늘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호 정보에 좀 어둡다 싶은 시간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초휴 같은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천문은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강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직이 분명했다. 하늘 꼭대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존재 비슷한 것도 맞았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강호 세력한테나 해당하는 말일 뿐이다. 대광명사나 천사부와 같은 대형 세력 앞에서는 천문도 기고만장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초휴의 세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어느덧 천문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할 만큼 상대가 막강해진 것이다.
부쩍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때, 나신군이 경솔하게도 초휴와 일전을 불사하러 갔으니, 이게 제 무덤을 파는 짓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임창룡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답했다.
“당연히 막으려 했지요. 하지만 나신군의 성격상 누가 막는다고 해서 들을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오적송이 혈무려를 비롯한 주위 무사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어찌 된 영문인지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로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천문의 특수한 제도는 도를 넘어서리만치 잔혹한 경쟁을 야기했다. 그런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들이라면 동급 경지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자들인 것이다.
다 같은 진화련신이라고 해도 천문의 진화련신은 강호의 여타 동급 무사들보다 단연 우위에 있었다. 감히 최고라 자처할 수는 없다 해도 최상위에 속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과열 경쟁체제가 막강한 실력자들을 키워낸 한편, 구성원들끼리 서로 불화케 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그러니 동료가 위험을 자초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구경만 한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평소 그들은 늘 자기가 살기 위해 상대를 짓밟아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찌 그들이 동료의 위기를 알아서 막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임창룡, 나와 함께 서곤륜으로 가서 나신군을 데려오세.”
제오적송은 당장 임창룡과 함께 나신군을 뒤쫓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혈무려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나신군의 관상을 보니 양미간에 검은빛이 도는 것이 아무래도 이번에 큰 화를 당하지 싶소.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신장 자리에 관심이 있으면 한번 기대해봐도 될 듯하단 말이지.”
그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짓는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천문 내 진화련신 실력자는 절대 적지 않았으나, 신장 자리는 고작 아홉 자리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덟 자리인 셈이었다.
제오적송의 자리는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으니 말이다. 해서 내심 나신군이 죽길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 이들 중에도 적지 않았다.
* * *
그 무렵 곤륜산 용문 앞.
은마 일맥이 저무기의 지휘 아래 한창 용문관을 복구하고 있었다. 초휴가 곤륜산에 올라 마도의 기치를 다시금 높이 쳐들었다는 이 엄청난 소식은 일파만파 강호로 퍼져나가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마도 입장에서 새롭게 굴기할 희망을 보게 해준 엄청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간 마도가 내내 약세를 면치 못한 바람에 기댈 언덕 하나 없는 낭인 출신 마인들의 삶은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일단 배월교와 같은 명마 종문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은마 일맥에 붙는 것도 곤란했다.
까놓고 말해서 한참 열세에 처해있는 그들한테서 무슨 비호를 받는단 말인가. 각자도생하기 바쁜 와중에 누가 누구를 보살펴 주겠는가. 하지만 이제 상황이 완연히 달라졌다.
초휴가 곤륜산에 마교를 재건했다는 소식은 암흑 속에 빛나는 등불처럼 갈 길 잃고 헤매던 마도 무사들을 무수히 끌어들였다. 그들이 찾아오는 족족 초휴는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주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실력의 강약이 엄연히 존재했고, 천부적 자질도 제각각이었다. 기량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을 모두 같이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여 초휴는 그들 모두가 곤륜산에 집결하길 기다렸다가 차등을 두고 그들을 구분 지었다. 그리고 왕년에 곤륜마교가 했던 방식을 따라 각지에 당구를 세우고 무사들을 재배치했다.
또한, 용문관은 곤륜마교의 체면이 걸린 곳이니만큼 심혈을 기울여 복구하는 한편, 저무기로 하여금 잠시나마 용문관의 수비를 맡게 했다.
용문관을 지키는 임무는 그 상징성을 감안해서라도 은마 일맥의 직계 출신 무사에게 맡기는 게 합당했다. 물론 중량감 면에서도 모자람 없는 인물이어야 했다.
일단 매경령은 여인의 몸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자신처럼 아리땁고 예쁜 미인을 매일같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얼굴 팔리도록 험한 바깥에 세워 놓을 수는 없을 터였다.
육강하도 후보 선상에 오르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 구석이 큰 게 문제였다. 그를 세워 두면 곤륜산을 오르기도 전에 식겁해서 도망칠 사람들이 줄줄이 나올 듯했다. 하여 결국 저무기가 수문장으로 낙점된 것이다.
곤륜마교의 재건 소식이 퍼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당장은 서역의 마도 무사들이나 몰려들었을 뿐, 중원 무사들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해서 한동안 저무기는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온종일 의자에 늘어져서 복구공사를 감독하는 게 전부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 저무기가 돌연 정색하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갑옷 차림의 우람한 신형 하나가 용문관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일신에서 발하는 기세로 봐서 진화련신이 분명했다. 그리고 상대가 결코 좋은 의도로 온 것이 아님을 저무기는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저무기는 나신군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지난날 초휴에게 놀라 도망친 이후로 꽤 오랫동안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세도 흉흉하게 용문관 앞에 나타난 이 진화련신 강자에게서는 충만한 적의가 느껴졌다. 한마디로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려고 온 게 틀림없었다. 저무기는 손짓으로 부하들을 한옆으로 물러나게 한 후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형장께선 우리 마교에 어떤 용무로 오셨소?”
나신군이 저무기를 힐끗 쳐다보았다. 발밑의 개미를 쳐다보듯 경멸이 가득한 그 눈빛에 저무기는 대번에 심사가 틀어졌다.
“초휴 그놈은 어딨나?”
상대가 초휴를 부르는 호칭을 듣자 저무기는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느꼈다. 불청객이 온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질세라 저무기도 대차게 나갔다.
“대체 어느 문파 출신인가? 우리 마교가 곤륜산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함부로 모욕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 말에 나신군이 차갑게 두어 번 웃음소리를 내더니 다짜고짜 저무기에게 일권을 내질렀다. 저무기는 상대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출수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지라 창졸간에 월인의 광망으로 가슴팍을 보호했다.
환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월인의 광휘가 크게 일며 그를 감쌌다. 당장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으니, 일단은 방어 태세부터 갖춘 것이었다.
분명 나신군이 일권을 내질렀음에도 둘 사이의 공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저무기는 자신의 몸이 가없는 도날의 지옥 한가운데 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찬 강풍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덮쳐오더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월광을 거침없이 갈라버리는 게 아닌가. 결국 격렬한 폭음과 함께 저무기의 월광은 산산이 파훼 되었다. 그리고 한 번도 체감해보지 못한 괴력이 덮쳐옴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저무기가 수인을 결하자 허공의 월광에 핏빛 광망이 스며들더니, 수중의 월인이 나신군을 향해 무수한 예기를 쏟아냈다. 이와 동시에 붉게 물든 채 허공에 걸려있던 혈월도 혈살의 기운을 품은 채 나신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신군은 조소를 머금었다. 강호의 범상한 진화련신 무사들 따위는 절대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약해도 너무 약했으니까!
나신군이 수인을 결한 순간, 저무기의 주위로 무형의 벽들이 층층이 세워지기라도 한 양 강력한 힘이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벽 사이의 간격이 급격히 좁혀지더니 압살의 기운이 끊임없이 가중되어갔다.
월인과 혈월이 무형의 벽을 가격했으나 소리만 요란할 뿐 전혀 파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무형의 벽에 갇힌 상태에서는 천지의 힘마저 쓸 수 없음을 알아챘다.
그건 바로 영역이었다! 유일하게 천지통현 강자만이 천지의 일부를 장악하여 자신이 뜻한 대로 영역을 응집해내는 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정체 모를 불청객이 형성해낸 모종의 공간은 저무기의 공세를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힘과 그의 사이를 단절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것이 영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진화련신인데 어떻게 영역 형성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렇듯 저무기가 혼란스러워하게 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천문의 무사들은 너나없이 상고의 공법을 수련해왔는데, 그 공법이 강호에 전해지는 공법들과 원천은 같을지 몰라도 더러는 상이한 구석들이 있었다. 예컨대 방금 나신군이 쓴 비법이 영역은 아니라도, 천지통현이나 응집해낼 수 있는 영역과 상당히 흡사한 특징을 띠고 있었다.
저무기가 비록 진화련신에 오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전투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천문 신장 앞에서는 반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압당한 것이다.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도 무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 눈치 빠른 자가 이 사실을 보고하려고 다급히 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웅장한 곤륜산의 덩치가 근사하게 보였지만, 막상 화급한 상황이 닥치고 보니 사람 엿 먹이기 딱 좋구나 싶었다. 통신용 진법이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은지라 저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을 생고생하며 기어올라야만 산정상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숨이 넘어가도록 산을 오른 무사는 기운이 쑥 빠지고 말았다. 산 정상에는 초휴 휘하의 고위층 인사들이 아무도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육강하는 오백년 전 추억의 흔적을 찾아 그리움에 젖어보려고 오늘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상천량은 곤륜산이 안정될 때까지 상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을 지키기로 했었다. 그런데 폐관 수련이 별 도움이 못 된다면서 근자에는 곤륜산을 휘젓고 다닐 때가 많았다. 전설 속 천산설련(天山雪蓮)이 이 근처에 있는 게 맞는지, 있다면 재배도 가능한지 알아봐야겠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초휴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곤륜마교에 들어온 진조선 등의 무사들은 하필 이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기존의 세력기반을 통째로 이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러 잠시 떠난 것이었다.
초휴야 당연히 폐관 중이었다. 해서 보고를 위해 올라온 무사는 한참을 헤맨 끝에 가까스로 매경령을 찾아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매경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불청객이 정도 종문 무사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요즘 그들은 초휴의 계책에 단단히 휘말려서는 독고유아의 환생과 관련된 단서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찾고 찾다 끝내 찾는 데 실패하면, 그때야 초휴에게 칼끝을 돌릴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매경령이 판단하기로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다. 이렇게나 빨리 자기들이 속은 걸 눈치챘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대체 어떤 자가 왔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속히 저무기를 돕기 위해 하산하려던 그때, 어느샌가 초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소식을 전한 무사에게 물었다.
“웬 놈이 온 것이냐? 자네도 본 적이 있는 자인가?”
갑작스러운 초휴의 등장에 그 무사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겨우 한 놈입니다만, 소인은 모르는 자였습니다. 저무기 대인도 모르는 눈치였구요.”
초휴의 눈에 서릿발 같은 예기가 번뜩였다.
“감히 혼자서 곤륜산에 쳐들어와 시비를 걸었단 말이냐? 죽고 싶어 환장한 게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