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ded as the Iron-Blooded All-Master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슬슬 됐으려나.”
베로니카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지면에 깔린 어둠을 바라보았다.
루스가 [흑수주박진>에 걸려들고 시간이 꽤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세뇌 작업이 끝났을 터.
기대된다는 듯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 베로니카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꿀렁!
그러자 바닥의 어둠이 꿈틀거리더니 새카만 표면이 천천히 융기하기 시작했다.
이내 어둠이 물처럼 흘러내리며 나타난 건, 루스였다.
“…….”
다시 모습을 드러낸 루스는 말이 없었고, 눈동자는 시체처럼 탁 풀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분위기.
영락없이 [흑수주박진>으로 인해 정신이 나간 인간의 특징이었다.
“흐음, 아니지. 아니야.”
하지만 베로니카는 그런 루스의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안심하긴 일렀으니까.
“너라면 왠지 연기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베로니카가 빙글거리는 웃음을 머금었다.
[흑수주박진>은 정신계 주술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금단의 주술.신의 가호를 받아 영혼이 철벽처럼 단단하다던 교황마저도, [흑수주박진> 속에 한 번 집어넣기만 하면 주인의 발을 핥는 개새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고대룡의 피가 흐르는 유일무이한 인간이 아니던가?
만약 루스가 정신력까지 고대룡처럼 지고하다면 [흑수주박진>이 먹혀들지 않았을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넌 방심할 수 없는 꼬맹이니까. 한 가지 확인 절차를 좀 밟아야겠어.”
“…….”
베로니카는 만약 루스가 달려들면 언제든지 그를 죽일 수 있도록 감각을 곤두세운 뒤.
속삭이듯이 작게 말했다.
“오른손을 잘라. 너 스스로.”
제 손으로 직접 신체 부위를, 그것도 손가락이 아니라 손 전체를 절단하는 것.
아무리 주인을 향한 충심이 깊은 자라도 한 번쯤은 망설일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흑수주박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주술에 걸려들었다면 오른손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부분도 기쁜 마음으로 잘라 낼 수 있어야 한다.
망설이지 않고 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때는 세뇌당한 척 연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베로니카는 그리 생각하며 루스를 물끄러미-.
콰직-!!
“……아핫.”
섬찟한 파육음이 울려 퍼지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베로니카의 얼굴 위로 피가 튀었다.
루스가 [유혈성천>을 단검으로 만든 다음, 서슴없이 제 오른손을 자른 것이었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오른손.
베로니카가 킥킥 웃으며 루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손목까지 통째로 잘렸음에도 표정에는 한 치의 미동도 없다.
[흑수주박진>에 걸린 인간의 특징 중 하나가 고통에 무덤덤해진다는 것이었다.육체의 감각과 정신이 오로지 베로니카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에만 집중되어, 통각마저 똑바로 느끼지 못하게 되니까.
‘손을 자르기 전에 고민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어.’
이 정도 확인했으면 충분하다.
경계심을 거둔 베로니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루스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녀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루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전에도 생각한 거지만 얼굴이 참 내 취향이라니까. 죽이기 아까울 만큼.”
“…….”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 보렴?”
“어머니.”
“아아……!”
두 눈에 뜨거운 욕망을 피워 내며 몸을 부르르 떠는 베로니카.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루스 프리드, 그것도 ‘반인반룡’을 손에 넣다니!
“맞아. 오늘부터 내가 네 어머니란다.”
“…….”
“손을 자르게 한 건 미안해? 난 또 네가 거짓말하는 줄 알고, 나는 참 나쁜 엄마라니까.”
스윽-.
지면에서 꿀렁거리며 올라온 검은 손들이, 루스의 오른손을 베로니카에게 가져다주었다.
베로니카는 아직도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절단면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고선 주문을 읊조렸다.
스스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세포 조직과 근섬유 다발들이 이어지며 절단면과 오른손이 깔끔하게 접합되었다.
“이제 아프지 않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래, 그래. 내 아들.”
베로니카는 양팔을 활짝 벌리고선 루스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그의 뒤통수를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꾸르르르륵-!!
전신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더니 이내 크게 부풀어 오르는 베로니카.
인간이라기보다는 혈관이 선명하게 불거진, 빨간 살덩이 풍선 같은 기괴한 형상이 된 그녀의 중심부가 살결을 찢으며 활짝 벌려졌다.
베로니카의 품에 기대 있던 루스는 자연스레 그 살덩어리의 구멍 속으로 집어삼켜질 수밖에 없었다.
* * *
[보통 미친년이 아니로다. 설마 주술이 걸렸는지 확인하겠답시고 오른손을 자르라 할 줄이야…….>살덩어리 안쪽.
루스가 살덩어리 안쪽으로 집어삼켜지며 덩달아 따라가게 된 엔투르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살덩어리 내부는 내장 기관이나 뼛조각 같은 것들이 무분별하게 사방 곳곳에 놓여 있어 대단히 혐오스러웠다.
심지어 좁아터지기까지 해서, 루스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르라고 해서 진짜로 서슴없이 자르는 네놈도 보통 미친놈은 아니고.>‘별다른 방법이 없었잖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만약 그 미친년이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평생 왼손잡이로 살 작정이었느냐?>‘날 금쪽처럼 여기는데 안 고쳐 줄 리가 없지.’
적어도 죽여서 시체로 만들기 전까지는, 베로니카는 루스를 잘 만든 도자기처럼 애지중지 여길 터이다.
연기인지 아닌지 검증만 끝내고 나면 다시 치료해 주리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잘라 낼 수 있었다.
[어떻게 자기 손을 자르는데 무슨 무 써는 것마냥 서슴없이 자를 수 있단 말이냐, 이 나사 빠진 놈아…….>‘만약 내가 단 1초라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연기하고 있다는 걸 들켰을 테니까.’
[손이 썰리는 와중에도 신음 한 번 안 내고…… 네놈은 역시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해…….>신음이라.
……솔직히, 손을 자를 때는 힘들긴 했다.
아무리 이 세계에 빙의한 뒤로 산전수전을 겪은 루스라 해도, 오른손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 고통에까지 무덤덤할 순 없다.
한데도 표정 변화도, 신음도 없이 참아 낼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철혈심> 덕분.
실로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하여 가까스로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진짜 존나 아팠어.’
사실 속으로는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질렀지만 말이다.
그런 루스의 속내를 알 리가 없었던 엔투르는, 여유롭게 오른 손목을 빙빙 돌리는 그를 보며 살짝 질색했다.
[단언컨대,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 온 이 몸도 너 같은 생물체는 처음이로다…….>용족 중에서 가장 미친놈들이라고 평가받은 블랙 드래곤들도, 지옥 구덩이를 기어 다니는 악마들도 루스보다는 정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엔투르가 감탄과 경악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던 가운데.
띠링-!
[기욤 나딜란과 베로니카로부터 살아남으셨습니다!] [‘에픽 퀘스트: 대위기’를 클리어했습니다!] [완벽한 업적! 생존을 넘어 7대 거악 중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픽 퀘스트의 보상이 최고 등급으로 상승합니다!] [전례 없는 대활약에 보상의 정산이 지연됩니다!]퀘스트 완료 소식과 함께, 눈이 어지러워질 만큼 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욤 나딜란은 죽었고 베로니카는 당분간은 루스를 살려 두기로 결심했다.
그로 인해 시스템도 에픽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다고 인정한 모양.
꾸드득-.
퀘스트가 끝나면서 특별 혜택이었던 ‘용족화’도 해제됐다. 각질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은색 비늘들.
그런데.
‘……보상의 정산이 지연된다고?’
이런 적은 또 처음인데.
시스템은 항상 퀘스트 조건을 만족하면 칼같이 보상을 지급했다. 지연은 이례적인 경우다.
루스는 살짝 실망할 뻔하다가, 그 위에 적힌 글귀를 이제야 발견하고선 눈을 좁혔다.
‘보상의 등급이 최고 등급으로 상승했단 말이지…….’
보상이 지연된 이유였다.
이번 에픽 퀘스트는 무려 4번과 17번, 18번. 세 개의 메인 퀘스트가 통합되면서 발생했다.
‘17번이랑 18번 모두. 각각 기욤 나딜란과 베로니카와 본격적으로 맞서게 되는 퀘스트였지.’
7대 거악이 메인 보스로 등장하니만큼 보상 또한 짱짱했다.
한데 그 두 개 퀘스트가 하나의 ‘에픽 퀘스트’로 통합되었다.
그만큼 보상 또한 막대하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
게다가 퀘스트가 요구한 ‘생존’ 이상으로, 기욤 나딜란을 사살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보상 등급까지 올라갔다.
안 그래도 엄청난 보상을, 한층 더 엄청나게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인 셈.
이러한 이유로 시스템조차 정산을 미루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찌 됐든 내가 한 개고생에 합당한 보상을 줘야 하니까.’
골머리 좀 앓겠군.
무생물인 시스템한테 골머리란 표현을 쓰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신경 써야 할 사정이고 루스가 알 바는 아니었다.
‘기대되는걸.’
과연 얼마나 터무니없는 보상을 안겨 줄지.
그때까지 이쪽은 그냥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쩌어억-.
기대심으로 부푼 마음을 안던 가운데, 꽉 닫혀 있던 살결이 다시 갈라지며 외부가 드러났다.
“도착했어, 루스. 이제 밖으로 나와도 돼~.”
“…….”
루스는 웅크리던 몸을 펴고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깥은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척박한 황야였고, 앞에는 3층 건물 높이만 한 시커먼 철탑이 세워져 있었다.
“엥? 뭐야.”
살덩어리에서 다시 백발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온 베로니카가 루스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멋드러진 은색 비늘들은 어디로 가고, 다시 평범한 사람의 외관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또 그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그럴 필요 없는데.”
“제 의지가 아닙니다, 어머니. 제가 하루에 반인반룡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흐음, 그래? 대략 어느 정도?”
“10분 내외입니다.”
사실은 그에 훨씬 못 치지만, 아까 싸우면서 ‘용족화’를 유지한 시간이 10분을 훌쩍 넘겼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분이라. 엄청 짧네? 역시 너는 완벽한 반인반룡이 아니었어.”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른하게 눈꼬리를 휘며 루스에게 팔짱을 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렴! 내가 가져다주는 음식 잘 먹고, 내가 하라는 것만 잘하면 10분이 아니라 10시간도 거뜬할 거야!”
“역시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아유, 귀여워. 확 죽여서 가지고 놀고 싶네. 하아, 하지만 당분간은 참아야겠지?”
베로니카는 뜯어먹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이 군침을 삼키며 루스의 뺨을 꼬집었다.
루스는 절로 구겨지려는 얼굴 근육을 [철혈심>을 발휘해 열심히 관리해야 했다.
“추운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베로니카는 한 손으로는 루스의 손을 잡아 끌면서, 한 손으로는 철탑의 석문을 밀었다.
쿠구구구-.
육중한 소리를 내며 석문이 밀리기를 잠시, 철탑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짠!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
루스는 동태처럼 텅 빈 눈을 하면서도, 속에서 치밀어 오르려는 구역질을 참았다.
[어욱…….>비위가 그다지 강하지 못한 엔투르는 양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괴로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꿈틀, 꿈틀-.
찌걱-.
밖에서 보면 그저 특이할 게 없었던 첨탑의 내부는.
온 사방이 내장과 무언가의 살점들, 그리고 핏물투성이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실타래처럼 엉켜진 창자와 심줄이 천장에 길게 늘어져 점액 같은 것들을 뚝뚝 흘려 댔고.
바닥과 벽은 연분홍색 살점으로 이루어져, 이따금 맥박이 치듯 꿈틀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휴지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인간의 팔과 다리, 그리고 뼛조각들.
여기가 바로 베로니카의 본진이자 본체.
살덩어리 탑.
흉성(凶城)이었다.
‘시발, 혹시 내가 괜한 생각을 한 건가?’
‘스오던’의 엔딩을 여섯 차례나 본 루스였으니, 당연히 ‘흉성’이 이런 곳이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의 3D 그래픽으로 보는 것과 현실로 직접 마주하는 것 사이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하는 법.
다른 건 몰라도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썩은 살들에서 풍기는 악취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 당분간 이런 지랄 맞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모, 못해! 이 몸은 자신 없다고!>‘미, 미안하다. 엔투르.’
루스는 처음으로 엔투르에게 사과했다.
베로니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흉성 안을 총총 뛰어다녔다.
“어때, 아늑하지?”
“예.”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아니지, 너는 내 아들이니까 여긴 네 집이 맞구나? 헤헤. 아무튼 루스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게 참 많아. 네가 지낼 방이라던가, 네 누나라던가.”
……누나?
갑자기 누나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혹시 그 쓰레기 키메라들을 말하는 건가?
루스가 속으로 혼란을 느낄 무렵.
찌걱-.
공간의 한편에 마련된 살덩어리 장막이 걷히며, 누군가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모습을 본 루스는.
“아, 마침 왔네. 인사해, 루스. 얘가 오늘부터 널 다정하게 대해 줄 네 누나란다. 정식으로 소개할게.”
“…….”
뇌에 표백제를 부은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지고야 말았다.
“이름은 실비아 란! 너도 몇 번 들어 본 이름이지?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가족이니까 사이좋게 지내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