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ded as the Iron-Blooded All-Maste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망치에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자연의 초목을 떠올리게 만드는 녹색 머리칼과 백옥(白玉)을 박아 넣은 양, 동공이 없는 새하얀 두 눈.
베로니카가 거느리는 여느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창백한 피부에, 복장 또한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긴 했지만…….
틀림없다.
‘……실비아 란.’
지금 베로니카가 소개한 이 여인은.
틀림없이 ‘스오던’의 무투가 캐릭터인 ‘실비아 란’이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베로니카가 수하로 거느린 시체 중 한 명이라니.
루스는 그야말로 본인이 가진 게임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루스, 네가 오기 전까지는 내 최고의 걸작이었어. 실비아 란. 너도 잘 아는 이름이지?”
“……500년 전, 마황과 싸웠다던 여섯 명의 용사 중 하나 아닙니까?”
“응, 맞아! 멋지지 않니? 수백 년 전에 세상을 구했던 역전의 용사가 지금은 내 장난감이라니!”
깔깔 웃으며 실비아를 꼭 끌어안는 베로니카.
다른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실비아는 미동 없는 표정으로 베로니카의 애정 공세를 받아냈다.
루스 또한 태연하게 그런 둘을 바라봤지만, 속으론 도저히 충격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하다 하다 이젠 진짜 별 지랄 같은 변수가 다 튀어나오는군.’
충격적이다 못해, 뭐 이딴 막장 전개가 다 있나 싶어서 헛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게임 속 주연 캐릭터가 베로니카의 시체 병사로 부려 먹히고 있다니…….
이 세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죄다 500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이미 죽은 인간을 개조시켜 자기 병사로 만드는 「시체 예술가」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변수긴 하지만, 변수가 일어난 원인을 짐작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아니, 근데 잠깐만.’
사고를 이어 나가던 루스는 잠시 멈칫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때, 마황을 쓰러뜨리고 차원이 붕괴하지만 않았더라면…… 녀석들의 영혼이 대륙 곳곳에 뿔뿔이 흩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이 세계에 빙의하고 처음으로 데미안을 만났던 날. 그가 한탄하면서 외쳤던 말이다.
그렇다. 차원 붕괴.
500년 전, 여섯 용사는 그 현상에 휩쓸려 영혼이 흩어졌다.
……즉, 베로니카가 거둘 시체 자체가 남아 있지를 않다는 말이다.
혼자서 머리 싸매 봤자 무슨 답이 나올까.
루스는 그냥 대놓고 베로니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머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거? 좋아, 뭐든 물어보렴!”
“500년 전의 용사들은 마황을 쓰러뜨린 후, 차원이 무너지면서 이 세상에 유해를 남기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응, 맞아.”
“그런데 어머니께선 어떻게 실비아…… 누나의 시체를 거두신 건지.”
“아, 그거 말이야? 간단해.”
실비아를 껴안고 있던 베로니카가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손날을 세웠다.
대답하다 말고 손날은 왜 세우는 거지?
루스가 의문 쩍은 표정을 짓던 가운데.
파각-!!
수박이 으깨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살점과 핏물이 루스의 얼굴에 후두둑 튀었다.
……베로니카가 손날로 옆에 있던 실비아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
정신 나갈 것 같다.
진심으로, [철혈심>이 없었다면 베로니카랑 같이 있으면서 비명을 몇 번이나 질렀을까.
게임에서도 베로니카만 나오면 유독 수위가 19금으로 널뛰기했는데, 이렇게 현실로 보니 그 잔혹성이 실로 압권이었다.
“흥흥~.”
그런 루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슨 액세서리 고르는 것처럼 실비아의 잘린 머리 단면을 뒤적거리는 베로니카.
“아, 찾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다, 발랄하게 외치며 베로니카가 꺼낸 것은.
속에 녹색 불꽃이 일렁거리는, 반투명한 수정이었다.
“이것 덕분에 우리 실비아에게 육체를 선물해 줄 수 있었지.”
“…….”
수정을 눈에 담은 루스는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생긴 수정을 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
【???의 영혼석】
등급: ?
효과: ????
=====
‘실비아의 영혼석……!?’
상상치도 못한 발견인지라 루스는 하마터면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다.
설마 실비아 란의 영혼석을 여기서 발견할 줄이야!
베로니카가 영혼석을 쓰다듬으며 후후 웃었다.
“이건 실비아의 영혼이 응축된 결정체란다. 서부의 어느 사원에서 굴러다니는 걸 마침 지나가던 내가 발견했지.”
“그렇다면 실비아의 육체를 창조하신 것도……?”
“맞아. 결정체 속에 담긴 실비아의 기억과 정보들을 토대로 내가 재구성했지. 육체는 어디까지나 껍데기에 불과하고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체의 핵(核)이야.”
베로니카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영혼석을 다시 잘린 머리 단면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 순간.
스스스스!!
목 없는 시체 꼴이었던 베로니카의 머리가 시간이 되감기는 것처럼 순식간에 재생했다.
“영혼만 있으면 생전의 모습과 흡사하게 육체를 재구성하는 건, 나한테 있어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루스는 그저 ‘시발 어떻게 한 거지’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루스는 상상 이상인 베로니카의 능력에 감탄하며,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생전의 모습과 흡사하게 육체를 재구성했다면, 생전의 능력도 똑같이 쓸 수 있습니까?”
“당연한 말을! 오히려 내 손길을 거친 덕에 500년 전보다 지금이 더 강할걸?”
허언은 아니었다.
확실히, 아까부터 계속 베로니카로부터 심상치 않은 투기가 느껴졌다.
그냥 가만히 서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8성인 루스를 긴장하게 할 정도인데.
만약, 그녀가 본격적으로 투쟁심을 발휘하게 된다면……?
‘……꽤 성가신 걸림돌이 생겼어.’
‘용족화’를 강화하고 난 뒤, 베로니카를 처리할 꿍꿍이였던 루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앞에 있는 실비아는 루스가 아는 실비아가 아니다. 오직 베로니카의 명령만 따르는 호위무사지.
그러니 베로니카랑 싸운다는 것은 곧, 실비아 란과 싸운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인 셈.
‘500년 전의 실비아만 해도 내겐 벅찬 상대인데, 그때보다 더 강화된 상태라니.’
물론, 실비아의 공격 패턴이랑 스킬은 모조리 꿰고 있으니 싸움이 전혀 안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결코 쉽지 않은 격전이 될 터이다.
‘뭐, 어떤 식으로든 실비아랑 부딪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루스는 멍한 표정을 지은 실비아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실비아 란의 영혼석.
그것이 여기 있다는 정보를 손에 넣은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만 한다.
영혼석이 있어야지만 대신전으로 가서 실비아를 성좌로 부활시킬 수 있으므로.
물론, 영혼석을 얻으려면 우선은 저 머리통을 박살 내야 한다는 선행 과제가 따른다.
‘시발 하드코어도 이런 하드코어가 있나.’
베로니카를 없애야 하는 것도 모자라, 500년 전의 무력, 그 이상을 가진 실비아 란까지 감당해야 한다니.
덕분에 실비아의 영혼석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흉성’으로 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지만…….
순탄하지 못할 게 뻔한 앞날을 떠올리니 속에서 한숨이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 *
그 후.
베로니카는 실비아에게 대신 ‘흉성’의 안내를 맡겼다.
자신은 그동안 ‘루스를 더 완벽하게 만들 준비’를 하고 오겠다며, 어딘가로 훌쩍 가 버렸다.
그렇게 둘만 남겨졌을 때, 실비아가 음울한 목소리로 루스에게 말을 걸었다.
“날 따라와라.”
“…….”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어떻게 목소리까지 그대로 실비아의 그것과 똑같이 재현했을까.
실비아는 루스를 데리고 ‘흉성’의 이런저런 시설들을 안내해 주었다.
……솔직히 루스가 봤을 땐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어딜 가도 악취랑 살점이랑 피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데, ‘시설’ 같은 걸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실비아가 가이드가 되어 안내하고, 루스가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며 맞장구를 쳐 주기를 대략 한 시간.
마지막으로 실비아가 안내한 장소는, ‘흉성’에 살면서 루스가 기거할 방이었다.
“여기서 자면 된다.”
“…….”
최선을 다해 추임새를 넣어주던 루스도 이 순간만큼은 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방…….
방이 맞기는 하다.
침대도 있고, 카펫도 깔려 있고, 물건 같은 것들을 놓을 작은 탁상도 확실히 마련되어 있으니.
문제는 그것들의 재질이 전부 다 무언가의 살점과 뼛조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지만…….
살점과 뼛조각을 엮어서 만든 침대의 시트와 바닥에 깔린 시트는, 아무리 봐도 인피(人皮)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이 몸은 이딴 곳에서 자느니 차라리 변소에서 지내겠느니라…….>‘침대에 몸을 뉘어야 하는 건 난데 왜 네가 난리냐, 엔투르.’
[아무튼 이 지랄 같은 곳에서 지내야 하는 건 이 몸도 마찬가지이니라! 그, 그래! 이렇게 하자! 네놈은 여기서 지내거라. 이 몸은 당분간 밖에서 잘게…….>‘우리는 서로의 목적을 이루는 그날까지 쭉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 아니었던가? 비겁하게 도망치지 마라, 엔투르.’
[이, 이놈. 평소엔 날 그렇게 무시했으면서 이럴 때만 운명 공동체 운운을……!>엔투르는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옆에서 꽂히는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루스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침대 주변을 서성거리던 가운데.
실비아가 냉기가 풀풀 흐르는 목소리로 전혀 와닿지 않는 소리를 했다.
“편하게 지내라.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날 찾아오면 된다.”
“고맙습니다.”
“…….”
“……?”
루스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살덩어리 문 앞에 멀뚱멀뚱 선 실비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안 나가?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없다.”
“그럼, 왜 안 나가시고 여기 계속 계시는 건지…….”
“왜냐하면 내 방도 여기이기 때문이다.”
“…….”
늘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탈출하기를 꿈꿔 왔던 루스였지만, 오늘처럼 지구가 애타게 그리웠던 적은 없었다.
피비린내와 살점으로 가득한 방에 시체랑 24시간을 함께 지내야 한다니.
이 무슨 끔찍한 악몽이란 말인가.
그때, 실비아가 반대편으로 몸을 홱 돌리고선 가부좌를 틀었다.
루스는 어딘가 그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져서,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가부좌는 실비아 란의 ‘대기 모션’이었다.
플레이어가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캐릭터가 혼자서 자동으로 취하는 포즈 말이다.
……저런 것까지 재현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
‘신경을 어떻게 안 써, 시발.’
루스가 등을 보인 실비아 몰래 손바닥으로 얼굴을 짚기를 잠시.
“……음?”
문득 그녀의 목덜미에 시선이 닿은 그는 가늘게 눈매를 좁혔다.
정확히는, 그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기이한 디자인의 문신을 보고선 놀랐다.
‘저 문신, 설마-.’
생전의 능력을 복원했다고는 했지만, 설마 저것까지 재현했어?
루스가 입을 살짝 벌리며 놀라던 그때.
“내가 돌아왔다!”
발랄한 목소리로 외친 베로니카가 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루스는 재빨리 다시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선 베로니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수상쩍은 붉은색을 띤 액체가 가득 담긴, 플라스크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실비아가 안내는 잘해 줬어?”
“예.”
“후후,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출렁-.
베로니카가 플라스크를 흔들며 불길한 웃음을 띠었다.
“완벽한 반인반룡으로 거듭나기 위한, 그 첫걸음을.”
오